소설리스트

38화 (38/79)

운청산은 당황했다. 평소라면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마주쳐도 어색한 인사를 나눈 후에 헤어지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 가르침을 달라하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가르침을 달라는 말 자체는 더 황당한 것이었다. 연이 닿지 않는다 하여 배움을 멈추고 출곡해야만 했던 운청산이었다. 누구를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운청산은 아무 말도 못하고 멀뚱하니 송학 등을 바라만 보고 서있었다. 그때 청인자가 송학 등을 헤치고 다가와 말했다. 

“청산! 사손들이 가르침을 청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존장의 체모를 유지할 수 없는 법이다. 뭔가 가르쳐 줘야지.”

“뭘 말입니까?”

운청산이 정말 모르겠다는 눈빛을 드러내자 이번에는 청인자가 당황했다. 청인자는 주먹으로 입을 가리며 두어 차례 큼큼대다가 

송학 등을 힐끔 보았다. 

“그건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보아라, 저 배움을 갈구하는 반짝이는 눈들을. 저 눈들을 외면할 작정이냐?”

운청산은 난감한 표정으로 송학 등을 다시 바라보았다. 정말 무언가를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운청산은 송학 등을 어색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호흡이 어느 정도나---?”

운청산이 말끝을 흐리는 순간 송학이 먼저 말했다. 

“육전입니다. 소사숙조.”

그 뒤로 사전이니 오전이니 하는 대답들이 연이어 들려왔다. 운청산은 그 정도 수준이었을 때 무엇을 배웠는지 상기해 보며 

다시 물었다. 

“그럼 무엇을 주종으로---?”

또 다시 송학이 먼저 말했다. 

“육양수와 분광뇌풍검법입니다. 소사숙조.”

그 뒤로 연이어 답변이 들려왔다. 

청인자는 도대체 뭐가 그리 좋은지, 한참 고민 중인 운청산의 뒤에 서서 헤죽헤죽 웃고 있었다. 

운청산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거기 송학이라 했소?”

송학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이쪽으로 나와 보시오.”

“청산! 사손들이다. 편히 말해도 된다.”

뒤에서 청인자가 끼어들었다. 운청산이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게 더 편합니다.”

청인자는 아랫입술을 내밀고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운청산이 송학과 사 장의 거리를 두고 

서서 말했다. 

“공격하겠소. 막아 보시오.”

순간 송학이 긴장된 눈빛으로 물었다. 

“손으로 하시렵니까?”

“마음대로 하시오.”

송학은 운청산이 빈손임을 깨닫고 언제든 출수할 수 있도록 공력을 돋웠다. 순간 운청산이 오른발을 내밀어 바닥을 굴렀다. 

“헉!”

송학은 헛바람을 내뱉었다. 갑자기 발바닥을 찌르는 날카로운 기운 탓에 허공으로 튀어 오르게 되어 자세가 흐트러져 버린 

것이었다. 

송학은 급히 운청산을 찾았다. 그 순간 운청산의 검결지는 이미 송학의 목젖을 누르고 있었다. 

송학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본 것은 운청산의 진각뿐이었고 그로 인해 몸이 허공으로 한 치 정도 떠오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 장을 격하고 있었다. 겨우 한 치 떠올랐다가 내려서는 그 순간에 사 장을 좁히기란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송학은 운청산이 검결지를 거두자마자 사제들에게 눈을 돌렸다. 사제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모로 저었다. 그때 운청산이 아주 

느릿느릿하게, 생각을 짜낸다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했다. 

“호흡을 육전에 맞추고 대붕무영을 펼쳤소. 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 가지. 음, 지금의 내력이라면 많이 뛰고, 더 

빨리 뛰라고 밖에 말할 수 없소. 곤륜의 무공은 알다시피 빠른 신법이 받혀주지 않으면 그 위력이 반감되오. 비붕신법이 

단순히 이동을 위한 신법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배운 무공들을 활용할 방법은 더욱 늘어날 것이오. 난 그렇게 배웠소.”

송학은 허탈한 얼굴로 사제들에게로 돌아섰다. 그가 익히 아는 대붕무영에 단순한 찌르기였을 뿐이었건만 어느 하나 제대로 

알아본 것이 없었다. 더구나 비슷한 수준으로 공력을 낮추었다 하니 지금껏 도대체 무엇을 배운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진각으로 땅을 울리는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 대붕무영은 지겹도록 연습했던 것이다. 무엇이 다른가? 활용을 생각한 적이 

없었던가? 진각으로 정확히 발밑을 공략할 수는 없다. 힘을 집중시킬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해야 하리라. 대붕무영은 그저 

멀리 가겠다는 생각으로만 펼쳤다. 화려한 것만 쫓았건만 기본들만으로 이런 활용이 가능했다니---. 우물 안 개구리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송학이 자괴감에 휩싸여 있을 무렵, 노는 아이처럼 한쪽에서 대붕무영을 짧게 펼치는 연습을 하던 청인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운청산에게 말했다.

“청산! 이런 기본적인 거 말고 이 녀석들이 뭔가 대오각성(大悟覺醒)할만한 것이 없을까? 뭔가 폭발적으로 화려한 것 

말이야. 가르침이 너무 짧잖아?”

운청산은 지금도 등에서 스멀스멀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만 같은데 또 무엇을 하라하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운청산은 자신도 

모르게 송학 등을 살폈다. 

고개 숙인 송학을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이 이미 운청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운청산은 절로 감기려는 눈을 치뜨며 

말했다. 

“무-무엇이 궁금한 지 잘 모르겠소. 무-묻는다면 대답을 찾아보겠소.”

즉각적인 질문이 터져 나왔다. 청학자의 막내제자 송운의 질문이었다.

“검강이 난무하던 그날을 생각하면 초식이 무슨 의민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력을 높이는데 주력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습니까?”

운청산은 잠시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초식을 모르는 자가, 검기상인(劍氣傷人) 혹은 검기성강(劍氣成罡)의 경지에 이르기는 어려운 일 같소. 호-혹시 이른다 

하여도, 초식이 튼실한 자라면 능히 당적할 수 있소. 검으로 팔방을 방어 할 수 있는 사람도 검기로 그 반경을 넓히면 

허점이 드러나는 법. 같은 공력을 지닌 상대가 초식으로써 허점을 파고들면 초식이 허술한 자는 막아내기 힘들 것이오. 

바-반대로 생각해 보아도 마-마찬가지요. 초식을 알고, 음 검기상인에 이른 자는 초식을 펼칠 때 드러나는 파탄을 쉽게 알 

수 있소. 곧 자신의 허점을 메우려 할 것이고, 더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지 않겠소?”

모두들 대충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운청산은 충분치 못하다는 그 표정의 의미를 읽고 마루에 놓여 있던 검을 

손안으로 빨아들였다. 

챙! 

운청산은 검을 뽑아드는 순간 바로 휘둘렀다. 

취뤼뤼뤼뤼뤽!

내력을 주입하지 않은 듯 은광만이 번득였다. 운청산은 검을 거두면서 물었다. 

“무엇이오?”

모두가 하나같이 대답했다. 

“첩풍성벽(疊風成壁)!”

“그렇소. 분광뇌풍검법의 방어초식 가운데 첩풍성벽이오. 이 초식의 경우 검신을 맞대야 하는 경우라면 힘의 소모가 과하오. 

검을 세 번 휘두르는 것으로 충분히 방어가 되니 필요 없는 동작이 많다는 뜻이 되오.”

모두가 눈을 뚱그렇게 떴다. 분광뇌풍검법이 무엇인가. 곤륜의 오랜 역사가 만들어낸 지고한 검법이었다. 아무리 소사숙조라지만 

함부로 깎아내려서는 안 되는 검법이었다. 

운청산이 말을 이었다.

“분광뇌풍검법의 뛰어난 점은 바로 여기에 있소.”

운청산이 다시 첩풍성벽을 펼쳤다. 이번에는 검이 움직이기에 앞서 검풍이 일고 움직인 후에는 청광이 번득여 운청산의 신형을 

가려버렸다. 검광이 걷히고 운청산의 모습이 다시 드러났다. 

“만약 세 번만으로 충분하다 해서 필요 없는 동작을 버렸다면, 검기성강지경에 달한 상대를 만났을 때 단순한 

유성투월(流星透月)의 초식만으로도 뚫리고 말았을 것이오. 그러나 여섯 번 잇달아 펼침으로써 첩풍성벽은 검기성강지경의 

상대로부터 완벽하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되오. 다시 말해서 분광뇌풍검법은 애초에 검강을 일으킨다는 전제하에 수정 보완된 

검법이란 뜻이오.”

순간 제자들이 일제히 탄성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운청산은 던져도 될 검을 굳이 들고 마루로 돌아갔다. 그리고 내심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쳤다. 

“휴우! 역시 안 되겠군. 혹시나 했더니만 역시 제대로 익혔어.”

운청산의 거처가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던 청학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휴우! 역시 그렇지요?”

“헉!”

청학자는 난데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 나무에서 떨어질 뻔했다. 청학자는 소리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대편 

나뭇가지에 청우자가 앉아있었다. 

“사젠 언제 왔는가?”

청우자가 피곤한 눈빛으로 청학자를 마주보며 대답했다. 

“사형이 넋을 잃고 보는 동안이오.”

“누가 넋을 잃었다고 그래?”

청학자가 완강하게 부인하자 청우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가 오는 걸 모를 리가 없잖소? 서로 다 아는 처지에 거짓말하지 맙시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요. 우리가 

순간 청학자가 풀 죽어 말했다. 

“역시 안 되겠지?”

청우자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는 건 둘째 치고 제자들도 다 빼앗겼군요.”

“빼앗기긴 뭘 빼앗겨? 도움 좀 받는 거지.”

청우자가 다시 물었다. 

“이제 어쩔 겁니까?”

“뭘?”

“붙어 볼 거냐고요.”

“새삼스럽게 확인할 필요 있나?  그냥 모른 체 하세나.”

“역시 그렇지요. 좀 서글프군요.”

“많이!”

청학자의 말에 청우자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섭섭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홀가분한 미소였다. 

사백 운룡진인과 그 제자들이 실종되는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은 나름대로 곤륜의 무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운룡진인과 그 제자들 같이 정통을 계승한 사람들이 없어졌으니, 그간 상대적으로 편하게 지냈던 그들이 곤륜의 

정수를 체득하고 전해야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운청산을 보고 또 태악도인의 존재감마저 느끼게 

되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청우자가 말했다. 

“우리에게도 아직 한 가지 할 일이 남긴 남았네요.”

청학자가 이채를 띠며 물었다. 

“뭐가?”

청우자가 씩 웃으며 답했다. 

“태허도룡검!”

청학자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허도룡검을 익힌다는 것은 무공의 고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태허도룡검은 말 그대로 선검. 익힐 작정한다고 해서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끝을 보지 못하면 곤륜검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소청검법(小淸劍法)만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굳이 태허도룡검을 익히겠다는 의미는 이제 문파 전체의 발전보다는 개인의 성취를 앞세우겠다는 뜻이었다. 즉 검선을 

이루겠다는 검파의 도사 본연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가세.”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퉁겨 운청산 등으로부터 멀어졌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자 운청산은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가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땀방울들이 눌려 등 전체가 서늘하게 

식어버렸다. 

“후우! 다시는 못 할 짓이군.”

피곤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정말 몰랐다. 더군다나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송학 등이 떠나기 전의 모습을 떠올리자 전신에서 소름이 돋아 올랐다. 지금껏 그토록 어색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고 가르침에 감사한다는 인사를 하며 또 오겠다는 말을 남겼으니, 벌써부터 앞날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귀곡산인이 

허락만 한다면 곡으로 다시 들어가고만 싶었다. 

운청산은 부질없는 생각임을 깨닫고 고개를 내저었다. 

“도망칠까?”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운가로 돌아갈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고, 안 그래도 사람 대하는 것이 편치 않으니, 세상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운청산은 문득 경의상과 이청수를 동시에 떠올렸다. 두 사람이 한결같이 했던 말이 무엇이던가. 사람과 더불어 세상 속에서 

살라는 것이었다. 

‘휴! 할 수 없지. 밖으로는 나가고 싶지 않으니, 어떻게든 이들과 어울려 살아야지.’

운청산은 눈앞에 경의상과 이청수가 있는 것처럼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슈욱! 

청인자는 마지막 십여 계단을 경쾌하게 뛰어 올랐다. 

“다 왔다. 내려라, 취취.”

청인자의 등에서 소녀가 바닥으로 내려섰다. 여러 색의 면포를 덧댄 헐렁한 솜옷을 입은 소녀는 두 발로 바닥을 짚자마자 

비틀거렸다. 

청인자가 소녀를 급히 부축했다. 

“왜 그러느냐, 취취?”

소녀는 까맣고 앙증맞은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도사 아저씨, 어지러워요. 속도 메슥거리고---.”

“저런! 산취구나. 숨을 크게 들이 쉬고 세 번 잘라 뱉어라. 너 역시 높은 곳에서 사니 금새 좋아질 것이다.”

취취라는 소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청인자의 말에 따랐다. 한참이나 깊게 마시고 짧게 잘라 내쉰 소녀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어렵게 일어섰다. 

“이제 좀 나아졌어요.”

청인자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괜찮겠느냐?”

소녀는 깊은 보조개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청인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도사 아저씨가 뭐랬지?”

“도사 아저씨가 절 데리고 온 게 아니라 저 혼자 힘으로 왔어요.”

“좋아. 그럼 가볼까?”

소녀가 힘겹게 일어나 등에 걸려있던 주머니를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청인자의 팔을 붙잡고 곤륜의 경내를 지났다. 산길을 

지나 운청산의 거처에 이른 청인자가 운청산이 있음을 확인하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운청산은 하의만 입은 채로 마당에서 마보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의 두 손이 부드럽게 교차하여 끊임없는 반태극을 그리는데 그 

움직임만으로도 상반신을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슈슉!

갑작스런 바람소리에 놀라 살펴보니 부드럽게 휘돌던 운청산의 두 손이 세차게 뻗어 나와 서로 교차했고 금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청인자가 생각해 보니 조금 전 그 세찬 움직임은 그도 익히 알고 있는 용호풍운조의 절초 쌍룡번천이었다. 

슈슈슈슈슈슈슈슉!

또 다시 살피니 이번에는 육양수의 절초 구룡필삽뇌격이 펼쳐지고 곧이어 항룡유회에 천호만격이 이어졌다. 

‘이상하군. 모두가 곤륜권장팔절의 절초들인데 왜 마보세를 취한 채 펼치고 있을까? 거기다가 저 이상한 동작들은 또 

무엇이고?’

청인자가 의아한 눈빛으로 다시 운청산을 보는 순간 운청산은 마보세를 거두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쉬었다. 청인자는 

운청산이 긴장을 완전히 풀어 버리자 인기척을 내며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청산! 방금 뭘 했던 거지?”

운청산은 청인자의 곁에 깜찍한 소녀가 있음을 발견했으나 청인자가 먼저 물어 왔기에 대답부터 했다. 

“심심해서 태허도룡검의 구결 일부를 권법에 적용시켜 보려 했습니다. 잘 안되네요.”

“뭐야? 네가 태허도룡검을 익혔단 말이냐?”

청인자가 대경하여 눈을 치떴다. 운청산이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 이해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입문 구결 가운데 음양상생(陰陽相生) 변화무궁(變化無窮) 태극무형(太極無形)이라는 

구절이 있어서 서로 단절되는 권장팔절을 연환하는데 적용할 수 있을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곤륜권장팔절이란 곤륜파의 권장법 가운데서도 그 위력이 뛰어나며 특히 운룡대팔식과 적절히 어울리는 여덟 가지 초식을 

이름이다. 그러나 하나의 권법으로 일기관통(一氣貫通) 되는 것이 아니라서, 운룡대팔식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연환이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청인자는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소녀가 옷을 잡아 당겼다. 청인자는 자신이 소녀를 대동했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청인자는 놀란 눈으로 운청산을 바라보았다. 마주보고 있으니 소녀의 존재를 모를 턱이 없건만 운청산은 상반신을 드러내 놓고도 

천연덕스러운 표정이었다. 

“청산! 손님이 왔으니 웃옷을 입는 게 좋겠구나.”

운청산은 옷을 입으라는 까닭은 의문으로 남겨두고 느긋하게 옷을 걸쳤다. 태악도인의 용음진천을 방어하기 위해 발가벗고 

서있기도 하는 운청산이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몰랐다. 

청인자가 운청산과 소녀를 마루로 데려갔다. 청인자가 말했다. 

“이 아이를 모르겠느냐?”

운청산은 소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아! 밝아보여서 미처 못 알아 봤습니다. 그때 그 아이로군요.”

청인자가 묘한 표정으로 운청산을 살폈다. 다른 사람 대하는 것을 보면 무척 어색한데, 소녀를 보는 운청산의 얼굴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이상하네. 이러면 안 되는데---.’

청인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지금껏 운청산이 사람들을 그토록 꺼려했던 것은 상대들이 운청산을 어색하게 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녀는 일단 운청산보다 어렸고 그 눈빛에 한 점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니 운청산은 소녀를 대하기를 호연 

대하는 것처럼 할 뿐이었다. 

청인자는 의아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소녀를 소개했다. 

“그래, 이 아이가 그때 그 아이다. 엄취취라고 하지. 구명지은에 보답하겠다고 겁도 없이 곡마래에서 이곳까지 홀로 

찾아왔다는구나.”

소녀는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운청산을 바라보다가 가슴에 안고 있던 면포주머니를 열었다. 그 안에서 나무 찬합을 꺼낸 엄취취는 

운청산 앞으로 찬합을 밀고 뚜껑을 열었다. 

“양육과예요. 저희 집이 자랑하는 음식이랍니다. 드셔 보세요.”

양육과는 양고기를 얇게 썰어 소금 간을 하고 꾸득꾸득 해질 때까지 말린 후에 그것을 다시 여러 날 생강즙에 절인 것으로, 

청해성 남부 한인들이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만 먹는다는 귀한 음식이었다.

운청산은 곤륜에서는 감히 맛볼 생각도 못하는 양육과를 눈앞에 두고 눈살을 찌푸렸다. 엄취취가 불안한 눈빛으로 운청산을 

바라볼 때, 운청산이 청인자에게 물었다. 

“어쩌죠?”

청인자가 별 걸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쩌긴 뭘 어째? 맛있게 먹으면 되지.”

“대가를 바라고 한 일도 아니고 저 혼자 한 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육고기라 계율을 어기는---.”

운청산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하자 청인자가 말을 끊었다. 

“청산! 세상을 그리 고지식하게 살면 안 되느니라. 고기를 먹는 게 아니라 취취의 마음을 먹는 것이라 생각하면 되지 

않느냐? 생명의 은인에게 다만 양육과를 대접하고픈 마음에서 이백 리가 넘는 길을 홀로 걸어왔다지 않느냐? 남의 정성을 

거절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니라. 그리고 넌 도사가 아니지 않느냐? 계율에 얽매일 필요 없다.” 

운청산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묘한 표정을 짓는 엄취취를 직시하며 미소 지었다. 

“잘 먹을게. 외숙도 드세요.”

운청산은 양육과 한쪽을 집어 청인자에게 먼저 내밀었다. 청인자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간만에 일화네 양육과 한 점 얻어먹어 볼까?”

청인자가 양육과를 날름 받아먹자 운청산도 한 점 씹기 시작했다. 운청산은 눈을 지그시 감고 양육과를 오물거리며 그 맛을 

음미했다. 얼마나 오랜만에 먹어보는 육고기인가. 쫄깃쫄깃한 씹는 맛과 비린 맛을 완전히 없앤 생강의 향내가 어우러지니 문득 

경의상이 권하던 회과육 생각이 절로 났다. 

“맛있군.”

운청산이 눈을 뜨고 엄취취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순간 엄취취가 눈빛을 빛내며 얼굴 가득 기쁨을 드러냈다. 

“분명히 도사가 아니라 그랬죠?”

운청산이 양육과 한점을 더 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운청산이 막 양육과를 입에 넣고 서너 차례 씹는 순간 엄취취가 말했다. 

“운랑! 우리 언제 혼인해요?”

“응?”

운청산이 잘 못 알아들었다는 듯 눈을 치뜨자 엄취취가 운청산과 자신을 번갈아 짚어가며 천천히 말했다. 

“운랑과 나, 언제 혼인하냐구요? 난 아무 때나 좋은데.”

“컥!”

운청산을 눈을 치뜨며 주먹으로 가슴을 마구 쳤다. 청인자도 놀란 눈을 치떴다가 양육과가 목에 걸린 운청산의 등을 두드리며 

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엄취취가 면포보자기를 열어 호리병을 꺼내 건넸다. 

운청산은 내용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벌컥 들이켰다가 또 한번 컥컥거리며 씹다만 양육과와 술을 한꺼번에 뱉어냈다. 운청산의 

충혈이 된 눈에서 눈물이 찔끔 흘러내렸다. 심호흡을 거듭하여 겨우 진정한 운청산이 엄취취를 바라보며 물었다. 

“운랑은 뭐고, 혼인은 뭐지?”

엄취취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난 처녀, 운랑은 총각. 총각이 처녀를 꼭 안았으니 혼인해야지요. 엄마가 그랬어요. 시집갈 나이가 됐다고. 난 음식도 

잘하고 아이도 낳을 수 있어요. 안 그래요? 도사 아저씨?”

청인자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눈을 둥그렇게 뜨고 엄취취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엄취취가 다시 말했다. 

“날은 여자 쪽에서 잡는 거라지요? 아빠가 아직 몸이 불편하니 움직일 수 있을 때 다시 올게요. 그때 상의해서 날을 

잡아요. 살림은 어디에 차리면 좋을까? 여기도 좋고 우리 집도 좋은데? 운랑은 어디가 좋아요?”

운청산은 공력을 끌어올려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엄취취를 곡마래까지 데려다 주고 온 청인자는 의외의 수확에 미소를 지으며 운청산을 찾아갔다. 

“청산! 장가가는 게 어떠냐? 괜찮은 아이다. 열여섯이니 조금 이르기는 하다만 한 이 년만 지나면 여자로 느껴질 것이야. 

장가가서 아이 서넛 낳고 평범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외숙!”

운청산은 보기 드물게 흰자위를 드러내며 청인자를 노려보았다. 청인자는 운청산의 명확해진 감정표현에 빙긋 미소 지었다. 

흑풍사의 일로 세상을 잠시 나갔다 온 것만으로도 운청산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스스로는 애써 웃음을 보인다 해도 그늘이 

쉬 가시지 않아 조카라도 쉽게 대하기 어려웠건만, 흑풍사의 일이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았다. 사람을 구하고 구한 사람과 그 

가족의 재회를 보며 느끼는 바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래, 조금씩 조금씩 젊어지는 것 같구나. 우리 애늙은이 조카!’

잠시 뜸을 드린 청인자가 말했다. 

“청산! 또 한동안 세상을 떠돌아야 할 것 같은데, 같이 가보지 않겠니?”

운청산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출산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청인자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 가기 싫으면 말고. 근데 곧 사질들이 또 가르침을 청할 것 같던데---. 그리고 곡마래에 갔더니 취취의 부모들은 

취취를 네게 시집보내겠다고 마음을 굳힌 모양이야. 거동 할 수 있게 되면 바로 찾아오겠다고 하더라.”

운청산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청인자가 물었다. 

“세상에 나가는 것이 그렇게 싫으냐?”

운청산이 찡그린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사람이 몇 안 되는데도 어색해 죽겠습니다. 세상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어떻게 지내란 말입니까?”

청인자가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이곳에서야 모두 관심 가지는 것이 비슷하고 또 사문에 연관되어 있으니 서로를 구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사람이 많다하나 저마다의 사정과 환경이 다르다 보니 남에게 

신경 쓸 여가가 없다. 이곳에서 살다가 모르는 사람들뿐인 대처에 나가면 오히려 외롭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굳이 너에게 같이 가자고 권하는 것이다. 적어도 경험은 해보고 싫다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 

운청산은 대답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또 다시 경의상과 이청수가 떠올랐다. 운청산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인자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운청산의 어깨를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 

‘청수야! 청산이 이제 세상에 나갈 모양이다. 네 원대로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이 오라비가 노력해 보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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