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79)

사람이 귀찮아서 세상 속으로

신수사태와 나라연은 쉬지 않고 들려오는 광명사의 종소리를 뒤로 하고 가슴이 터져라 달렸다. 이 각 만에 불이문(不二門)을 

지나 관음사의 경내에 이른 두 사람은 눈을 부릅뜬 채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병장기가 부딪히고 비명이 난무하고 피가 선연한 광경을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불타의 법을 구하는 도량을 피로 물들이며 야차같이 병장기를 휘두르는 자들 역시 부처를 모시는 

사람들인 까닭이었다.

재차 살펴도 틀림이 없었다. 보기 드문 검은 색의 가사(袈裟)였으나 가사임에는 틀림이 없었고 거기에 염주를 목에 두르고 

민머리에는 계인까지 찍혀 있었다. 그 같은 모습을 한 남승들이 적어도 쉰 명은 되었고, 그 무공 수위도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비구와 비구니가 서로를 죽인다! 

신수사태와 나라연은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때 혈기가 감도는 계도로 중년 비구니의 목을 날려버린 남승이 광소를 터뜨리며 탁한 목소리로 외쳤다.  

“크하하하하! 타불살불(打佛殺佛)! 쳐라. 죽여라. 부처를 죽이고 부처의 창녀들도 다 죽여라.”

광소에 눈 돌리던 신수사태가 돌연 정신을 되찾고 부르짖었다. 

“타불살불? 파불당!”

그 순간 신수사태의 신형은 이미 허공으로 치솟고 있었다. 파불당 소리를 듣는 순간 나라연도 정신을 차렸다. 

파불당(破佛黨)!

파계를 했다고 해서 모두 악인으로 치부할 수는 없으리라. 아무리 속세의 연을 끊고 불법과 도를 구하고자 하나, 중도 

인간이라 결국 욕망을 참지 못하는 자가 생길 수 있다. 

파계승이 생기면 파계의 경중에 따라 적절한 처벌을 아니 할 수 없는데, 파계의 정도가 가벼운 경우는 면벽참회(面壁懺悔)를 

명하고 중한 경우에는 환속시켜 민간의 법에 따르도록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파계승이 무승(武僧)의 경우라면 처벌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나 불살생계(不殺生戒)를 파하거나 상대를 강제하여 

불사음계(不邪淫戒)를 파한 경우는 처벌에 대한 심각한 고려가 요구된다. 단순히 환속시키는 것만으로는 후환을 남길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무승이 있는 사찰은 파계에 대한 처벌의 경중을 다음과 같이 나누고 있다. 

일. 악인을 죽여 만인을 구한다는 취지에서 공식적으로 불살생계를 유보한 경우, 살업을 행한 승인은 백일 면벽으로 죽음을 

당한 자가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참회할 내생을 가질 수 있도록 부처의 자비를 구한다. 

이. 허락을 구하지 않고 파계했으나 그 뜻이 사심이 없고 권선징악의 공익에 따른 경우, 승인은 그 자신의 뜻에 따라 

환속하거나 면벽참회 삼백일에 처한다. 

삼. 결과적으로 계를 파한 것이 되나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경우, 그 결과의 경중에 따라 면벽참회에 처하거나 환속시켜 속가 

대협의 삶을 권고 받을 수 있다. 다만 그 결과가 민간의 법에 저촉되는 경우는 무공을 폐하여 환속시킨다. 

사. 사사로운 욕망에 따라 계를 파한 경우, 그 결과가 가벼운 경우에는 불법과 인연이 없다하여 승적을 폐하고 환속시킬 수도 

있으나, 만약 불살생계나 불사음계 혹은 불투도계(不偸盜戒)를 파한 경우라면 무조건 무공을 폐하고 사지근맥을 잘라 

파문시킨다.  

위의 일과 이 경우와 삼의 대부분의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으나, 무승의 무공을 폐하여 파문시키는 경우에는 문제가 생기는 

일이 종종 있다. 특히 사의 경우에는 발각 당하기 전에 도주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는 전국의 사찰에 통문이 돌고 명을 

받은 각 사찰의 계율승(戒律僧)들은 그들을 잡을 때까지 뒤쫓는다. 

당해야 할 처벌이 중하면 중할수록 반발도 심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그 결과로 파불당이 생겼다. 홀로 감당할 수 없으니 

파계승들끼리 무리를 지어 세를 형성한 것이다. 

조금씩 불어난 파불당의 힘은 계율승 몇의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졌다. 결국 소림과 아미의 주도로 대대적인 

토벌대가 조직되기에 이르렀는데, 파불당은 일순간에 꺼지듯이 사라져버렸다. 

그 후로 파불당의 종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귀주나 운남 어딘가에 터를 잡았다는 소문이 돌기는 했으나 누구도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다. 다만 가끔씩 일부 파불당의 무리들이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고 악행을 저질렀다가 사라질 따름이었다. 

그러나 가끔 나타나는 파불당의 무리들도 오늘과 같이 적지 않은 무리들이 한꺼번에 나타나 횡행한 적은 없었다. 더구나 불교의 

성지인 아미산에 모습을 드러내는 무모함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라연은 조금 전 중년 비구니의 목을 벤 파계승을 단호하게 처리하는 신수사태를 보면서 등에 멘 바랑을 꺼냈다. 그 안에는 

한 쌍의 검은 장갑과 흑오철(黑烏鐵)로 만든 두 개의 가는 흑단봉(黑短棒)이 들어있었는데, 각각의 끝에는 버들잎이 거꾸로 

깊숙이 박힌 듯한 장식이 달려 있었다.

나라연은 우선 장갑을 끼고 두 개의 흑단봉을 이어 붙였다.  

끼르륵, 소리가 나는 순간 두 개의 단봉이 어느새 여섯 자 가량의 철봉이 되었다. 나라연은 두 눈에 서릿발 같은 한광을 

드러내며 철봉의 중앙을 잡아 앞뒤로 가볍게 흔들었다. 

철컥! 

장식인 줄로만 알았던 버들잎들이 반원을 그리며 튀어나와 철봉의 양끝에 창극을 이루었다. 

퍽!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나라연의 십 장 앞에서 막 피가 튀었다. 남승 하나가 오십 근은 나갈 것 같은 육중한 

방편산(方便鏟)을 내리찍어 갓 소녀티를 벗은 비구니의 목을 날려버렸다. 엊저녁까지만 해도 나라연에게 창법을 가르쳐달라고 

떼를 쓰던 혜령(慧靈)이었다. 

나라연은 눈물 대신 관음혜정신공(觀音慧淨神功)을 끌어올렸다. 관음은 어디가고 줄기줄기 서릿발 같은 기운이 창끝에서 

맴돌았다. 

그때 남승이 돌아섰다. 코밑에 튄 핏방울을 핥으며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살불타불! 오오! 예쁜지고. 너로다. 본 부처가 기꺼이 자비를 내리려 하노라. 이리 오너라.”

광기에 물든 남승의 두 눈이 나라연의 전신을 훑었다. 그 눈빛이 어찌나 끈적거리는지, 눈만으로 옷을 다 벗겨낼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라연은 수치심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전신에 차가움을 더하고 바로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남승의 번들거리던 두 눈에 당황함이 어렸다. 십 장이었다. 그 거리가 단 두 번의 도약으로 사라져버렸다. 남승은 급히 

방편산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이미 나라연의 가슴 앞에서 교차하는 하얀 살기들을 방어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었다. 

남승의 눈에는 나라연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날개를 펄럭이는 한 마리 새처럼 보였다. 

“우악!”

철봉은 든 손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왼쪽 어깨가 날아가 버렸다. 쌍익단풍(雙翼斷風)의 식으로 남승을 무력화시킨 나라연은 

착지하는 대신 남승의 민머리를 걷어차 버렸다. 남승은 그가 죽인 어린 비구니처럼 뇌수를 흘리며 나뒹굴었다. 

나라연은 그 참혹한 모습을 보고도 일말의 흔들림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어린 비구니의 시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을 

따름이었다. 복수를 했으니 편히 가라는 말하는 듯.

나라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관음사의 경내를 둘러보았다.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방편산(方便鏟)과 계도(戒刀)가 

난무하고 창봉(槍棒)이 바람을 갈랐다. 그 사이사이로 드러나는 시신들은 피아 구분 없이 칠십여 구에 이르렀고, 적어도 그 

반은 비구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나라연의 차가운 두 눈이 아직도 날뛰고 있는 흑의남승들 가운데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이들을 찾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웅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타불! 복호승은 악도들을 제압하라.”

나라연이 뒤돌아보니 오십여 명의 군승들이 경내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아미정종의 절정 무승들인 복호승들이었다. 

흑의승인들이 당황하여 상대를 떨쳐내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나라연이 몸을 날려 한 장년 승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라, 이년!”

승인의 계도에서 독사의 혓바닥 같은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나라연의 이마를 내리찍었다. 

휘릭!

단 한번 휘돈 나라연의 검은 창에 붉은 기운은 사라져버렸고, 남승은 당황한 눈빛으로 물러서며 뒤를 돌아보았다. 

분노한 비구니들은 물론이고 복호승들까지 가세하여 파불당인들의 대부분을 주살했고 이제 그를 향해 다가오는 이들도 몇이 

있었다. 

남승은 나라연을 노려보며 말했다. 

“언젠가는 네 년의 가랑이를 찢어주겠다.”

남승이 발끝에 힘을 주려했다. 순간 나라연의 검은 창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휘돌았다. 

취뤼뤼뤼뤽!

귀청을 흔드는 낮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면서 나라연의 흑창이 휘돌았다. 처음에는 하나의 회오리만이 일더니만 이내 셋으로 

다시 다섯으로 변하여 나라연의 전신을 휘감았다. 마치 다섯 개의 선풍이 나라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남승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군봉쟁명(群鳳爭鳴)?”

비록 비세를 느껴 도주하려 하지만 나라연 혼자라면 능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봉쟁명이라면 말이 

달랐다. 

군봉쟁명! 

아미신창 비봉창법 가운데서도 가히 절정화라 할 수 있는 초식이었다. 시전자의 손놀림에 따라 천지사방으로 휘도는 창은 점차 

그 소리를 더해 나중에는 상대의 귀청마저 찢어버린다 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순간이면 수십 개의 부리들이 전신을 갈가리 

찢어놓는다고 했다. 

지금 그 초식이 가녀리게만 보이는 나라연의 전신을 휘돌고 있었다. 검은 창은 이미 나라연의 손을 떠나서 그녀의 손놀림에 

따라 사방을 휘돌아 지금 그녀의 모습은 수십 개의 검은 회오리에 가려져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으아합!" 

남승이 비명에 가까운 기합성을 내지르며 나라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계도에 감돌던 기운이 수십 갈래 뇌전으로 변하여 나라연 

전신을 후려쳤다. 순간 귀청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천지사방을 메아리치는 듯 하더니 붉은 기운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수십 줄기 검은 살기들이 남승을 전신에 꽂혀들었다. 

소리가 사라지고 창영들도 사라졌다. 나라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널브러져 있는 남승을 내려다보았다. 

전신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는데도 남승은 살아 있었다. 남승이 나라연을 올려다보며 힘겹게 말했다. 

“독사 같은 년! 자비심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구나. 일부러 급소를 다 피하고 찌르다니---. 모진 년!”

나라연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 볼 뿐이었다. 남승이 삶을 포기한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크흐흐흑! 파계도 내 뜻이 아니어서 그냥 그렇게 된 것이고, 살인도 내 뜻이 아니어서 그냥 이렇게 되었도다. 모진 광풍에 

휘감긴 연약한 꽃잎 같은 내 삶이여! 오늘에야 물가에 내려앉았구나. 크흐흐흐! 나 부처를 믿지 않으니, 내생도 믿지 

않으리.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으니 오늘로서 내 고된 삶도 끝나도다. 하하하하!”

나라연은 광소를 토하는 승인을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 승인이 나라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보게, 예쁜 처자! 아프구먼. 이만 끝내주면 안될까?”

눈에서 독기가 빠져버리자 남승은 평범한 초로의 승인에 불과했다. 나라연은 처음으로 눈을 끔뻑이고 승인을 스쳐지나가면서 

창봉으로 사혈을 찍었다.          

“틀림없이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나라연이 차갑게 중얼거리고 나서 경내를 둘러보았다. 난무하던 혈광과 비명소리는 사라지고 낮은 불호와 흐느낌만이 들려왔다. 

그때서야 나라연의 눈에서도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비구니들이 비구니들의 시신을 모으고, 복호승들이 파계당인들을 모았다. 복호승의 가세로 비구니들의 주검은 서른아홉에 그쳤고, 

파계당인들의 시신은 쉰한 구에 이르렀다. 

단순히 숫자로 비교하자면 단 한 사람만이 도주한 파계당의 피해가 막심했으나, 관음사의 비구니가 모두 백마흔다섯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서른아홉이란 숫자는 결코 적다할 수 없었다. 더구나 그 서른아홉 가운데에 관음사의 장문인 

신정사태(神淨師太)가 끼어있으니 관음사가 입은 피해는 막대하다 할 것이었다.

그러나 악인이라 해도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 것. 관음사 경내에 대범창(大梵唱)이 흐르고 합동 다비식이 이루어졌다. 관음사의 

비구니들은 분노와 흐느낌 대신에 독송으로 도반들을 떠나보냈다. 

새로이 관음사를 떠맡게 된 사람은 아미제일창이며 신정사태의 사자(師姉)가 되는 신수사태였다. 

신수사태는 살아남은 일백 여 비구니들을 모아놓고 사자후를 터뜨렸다. 

“파불당이 사라지는 그 날까지 불살생계를 유보하노라.”

자비를 근본으로 하는 불타의 제자들이었다. 공공연히 복수를 부르짖는 것이 모양새가 좋을 턱이 없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의를 

다는 이들이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노호성을 터뜨렸다. 

“천하에 악인들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나찰의 창을 놓지 않으리!”

                *          *           *     

청학자는 탁자 위에 놓인 검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곧 한숨을 내쉬고 검을 외면했다. 청학자는 또 다시 탁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검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 아래에 위치한 탁자의 끝자락을 보고 있었다. 

“이게 어느새---.”

청학자는 자신도 모르게 탁자 위로 슬쩍 올라가 있는 손을 빼서 아예 팔짱을 꼈다. 

“휴! 말도 안돼. 손에 검을 쥔 것이 오십 년이 다 되어간다. 아무리 태악 사숙조의 제자라 하나 스물 셋 

소사숙에게---. 이건 불공평해.”

청학자는 다시 검을 노려보았다. 청학자는 믿고 싶지 않았다. 운청산의 검봉에 맺혔던 검환이 무려 삼 장이 넘도록 뻗어나간 

것은 틀림없이 착시일 것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었다. 청우자가 두문불출, 차 마시러 오는 일까지 잊고 

있다는 것은 그 역시도 지금 자신과 같은 충격과 허탈 속에 빠져 있다는 말이리라.

차라리 이기어검(以氣馭劍)이라면 충격이 덜했으리라. 이기어검은 검의 극의라 할 수 있는 심어검(心馭劍)과는 달라서, 공력이 

지고한 사람이라면 비록 검법을 모른다 하더라도 기로써 검을 움직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그래서 검인들은 이기어검을 

펼칠 수 있는 공력을 부러워하나 그것을 검법의 상승지경으로는 생각지 않았다.

청학자의 경우만 해도 그랬다. 그 자신이 아직은 이기어검을 펼칠 공력을 지니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기어검을 펼치는 

사람과 검을 맞대어 진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 역시 검강을 오 장에 이르도록 뽑아낼 수 있는 절정의 검인이었다. 

이기어검이라 하나 빠르고 세찬 화살과도 같은 것. 막아낸 후의 회전반경을 생각하면 방어가 어려울 것은 없었다. 

만약 운청산이 이기어검을 펼쳐 독안혈랑을 제압했다면 청학자는 반선과 함께 지낸 것을 상기하고 부러워할망정 패배감에 빠지지는 

않았으리라. 

그런데 검환이었다. 곤륜의 검강이 뿜어내는 그 파란 빛보다 훨씬 영롱한 기의 구슬이었다. 그것은 검법을 모르고는 만들어낼 

수 없는 조화였다. 

검을 익히고 기세를 깨쳐야 기세를 검기로 변환시키고 다시 검강으로 형상화 시킬 수 있다. 검강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단순히 

공력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경지였다.

그러나 그토록 오랜 수련이 필요한 검강지경임에도 불구하고, 검환을 구사하는 검인 앞에서는 수수깡을 든 것과 마찬가지리라. 

작을수록 강한 것이 검환지경. 사오 장을 뻗어나가는 검강을 검으로부터 떨쳐내어 작은 구술로 집적시킨 것이니 작게 모일수록 

굳건한 것은 당연하리라. 

어디 그뿐인가. 검강을 펼쳐낸다는 것은 검법에 정통하다는 뜻. 검환을 초식에 실려 날릴 경지라면 손끝의 움직임만으로도 

검환을 천변만화시킬 수 있으리라. 막아내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리라.

청인자는 그래서 검을 들 수가 없었다. 힘차게 뽑아 나이 어린 소사숙과 기량을 겨루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도 패배가 

먼저 떠오르니 도저히 검을 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가르침을 얻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쉽게 잡을 수 있으련만, 나이가 걸리고 검을 잡은 세월이 발목을 잡는 것이었다. 

“에잉!”

청학자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을 벌컥 열고 나가서 세차게 닫아버렸다. 방안에 남은 것은 주인이 

버리고 간 검 한 자루 뿐이었다. 

잠시 후 방문이 슬그머니 열렸다. 손 하나가 문틈 사이로 들어왔다. 탁자 위에 외롭게 놓여있던 검이 주인의 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문이 다시 닫혔다. 

청학자가 어색한 모양새로 검을 틀어쥐고 밖으로 나서니, 연무장 한쪽에 때마침 그와 청우의 제자 일곱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있었다. 당장 가보려 했으나 청학자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일곱 제자들 앞에는 얄미운 청인자가 앉아서 

시시덕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학자는 기둥 뒤로 숨어 귀를 활짝 열었다. 

“너희들 말이야. 애초에 생각이 잘못된 것이다. 진정한 배움을 원한다면서 나이를 따지고 거리를 따진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진정한 마음만이 상대의 진정을 얻을 수 있는 법이야. 더구나 사숙조인데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뭐가 어려워? 어렵다고 말하는 

녀석은 진정으로 배우기를 원치 않는 녀석이야.”

청학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청인자의 말이 꼭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송학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사숙. 소사숙조와 저희는 배운 바가 다릅니다.”

청인자가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흥! 청안검객, 네가 그날의 일을 눈으로 보고도 아직 자존심을 버리지 못했구나. 못났다, 이놈! 네 녀석이 이 아이들 

가운데 제일이라고 자만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만, 내 보기에는 네 사부도 청산 소사숙조에 못 미친다. 감히 어디서 

이유를 붙이고 자존심을 내세워? 뭐라 배운 바가 달라? 끼놈! 고수는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원리를 아는 법! 곤륜의 

무공을 모두 섭렵했다 하시는 태악 태사숙조의 진전을 이은 소사숙조이거늘, 어디서 배운 바 운운 하는 게냐?”

청학자가 기둥 옆으로 슬쩍 고개를 내밀어 보니 자신의 제자 송학이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청학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 놈은 자신감이 과해. 한 번은 꺾어줄 필요가 있다 생각했었는데, 청인이 대신 해주는구나. 그건 잘했다, 청인, 

이 얄미운 놈아.’

그때 다시 청인자가 말했다. 

“배움을 갈망하는 자는 먼저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자, 자. 마음 정했으면 벌떡 일어나 가서 청하지 않고 뭐하느냐? 

어서들 가봐.”

송학이 먼저 일어났다. 순간 나머지 여섯 제자들도 일어섰다. 송학이 앞서서 걷고 나머지 제자들도 우르르 따라갔다. 

청인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비볐다. 

“그래, 가서 청산을 귀찮게 하거라. 아닌가? 아예 내가 나서서 불을 지펴 볼까?”

청인자는 느긋한 걸음으로 젊은 제자들의 뒤를 따랐다. 

청학자가 기둥 뒤에서 나섰다. 

“뭐야? 저 놈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이야?”

청인자마저 뒷담을 넘어서자 청학자가 다시 중얼거렸다. 

“이건 소사숙을 보러가는 게 아니라 청인 저 놈의 꿍꿍이속을 캐러 가는 거야.”

청학자는 청인자가 담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즉시 몸을 날렸다. 

람이 귀찮아 세상 속으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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