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79)

도서명 : 괴선3

저자명 : 임준욱

출처 : 천리안

  <지은이 소개/ 임준욱>

무협작가 임준욱의 스타일은 ‘성장물'이다. 몇 안되는 듯싶지만 꾸준하고 알찬 그의 작품 목록을 보면, ‘촌검무인'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성장물'로 분류할 수 있다. 소년이 청년이 되고, 결혼도 하고, ‘직업인'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사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임준욱인데 특히 ‘무림인'의 이야기이다.

1999년 <진가소전>으로 데뷔하여 대표작으로 <농풍답정록> <건곤불이기> <촌검무인> <괴선> 등이 있다.

제목  1장. 새는 둥지를 떠나지 않으려 해도 1

독안괴선전 권 삼. 천륜이라고 무겁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새는 둥지를 떠나지 않으려 해도

흰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방이었다. 문도 하얗고 창틀마저도 하얀, 그 방은 백여 명이 한꺼번에 들어서도 숨쉬기가 불편할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그 방에는 별 다른 가구나 장식물이 일체 없었다. 다만 중앙에 대리석 원탁과 열두 

개의 대리석 의자가 덩그렇게 놓여 있을 뿐이었다.

하얀 대리석 문이 열리면서 십여 명의 사람들이 방으로 들어섰다. 그들 가운데는 중의 모습을 한 자도 있고 도사의 형색을 한 

자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백의를 입은 노인들이었다. 그들이 의자를 하나씩 차지했다. 오직 두 자리, 문을 마주보며 창을 

등지는 자리와 그 맞은편 자리만이 공석이 되었다. 

그들끼리도 서로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 듯, 옆 사람과 가볍게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고 수인사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시 방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일제히 말을 멈추고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쟁반을 든 백라의 차림의 네 여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다시 시선을 돌려버렸다.  

여인들은 원탁을 둘러서서 사람들 앞에 찻잔을 놓고 들어올 때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일 각 후 또 다시 문이 

열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문으로 옮겨졌다. 

백견삼을 입은 선풍도골의 노인이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들어섰다.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노인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접었다. 

“좌상을 뵈옵니다.”

노인은 두 손으로 앉으라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무도 착석하지 않았다. 노인이 빈 자리에 가서 먼저 앉은 

후에야 일제히 자리에 앉았다. 

노인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시선을 주고 눈인사를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음! 두 사람 빼고는 모두 모였군. 공사다망할 텐데 별 것도 아닌 일로 불러서 미안하구먼. 파불(破佛)이나 음도(陰道)는 

그간 다른 이들과 교류가 없었으니, 지금쯤 서로들 얼굴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사람들은 송구하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특히 얼굴에 긴 상처가 난 중과 뼈밖에 없는 듯한 도사가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이 특별히 그들을 주시하며 다시 말했다. 

“이왕 왔으니 천군을 배알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천군께서는 아직 폐관 중이시네. 아! 우상도 자네들을 보고 싶어 

했네만 아쉽게도 천기신사(天璣神師)와 함께 점창의 일을 마무리하러 갔다네.”

순간 사람들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음양의 조화가 깨져있는 문양의 도포를 입고 있는 차가운 눈빛의 

초로인이 말했다. 

“드디어 시기가 무르익은 것입니까?”

노인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음도,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사천 무림을 상대로 우리가 승산이 있을까?”

초로인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오늘에서야 알았습니다만, 이렇게 쟁쟁한 분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석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좌상이라는 노인마저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자네들이 제각기 역량을 키웠고, 파불과 음도가 가세한데다가, 여기 오행신문에서도 오행신마를 셋이나 키웠네. 이제는 

능히 붙어볼 만은 하지. 하나 천군께서는 다만 이기는 것을 능사로 여기지 않으시네. 사천 무림을 도모한 후에도 그대들이 

여전히 보필해 주길 바라시네. 천하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순간 사람들은 감격한 눈빛이 되어 일제히 허리를 접으며 소리쳤다. 

“천군께 영광을!”

노인은 사람들이 감격을 모두 발산할 충분한 시간을 주고 나서 말했다.

“그렇다고 상대를 얕잡아 보는 건 곤란한 일이야. 당금의 사천 무림은 강하네. 청성의 기세는 오십 년 전 그때의 일 이후로 

오히려 욱일승천(旭日昇天)하고 있고, 아미는 여전하며, 당가 역시 그 숨은 힘이 미지술세. 운가는---. 운가와의 그 일이 

언제 적 일이었지?”

노인이 그의 좌측에 앉아있는 적포노인에게 물었다. 적포노인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이십사 년 전의 일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났더라?”

노인은 모두가 알기를 바란다는 듯 좌중을 쓱 둘러봤다. 적포노인이 대답했다.

“당시 본문에서 그래도 최강이라 할 수 있었던 금혼기가 운가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금의대와 맞붙어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전멸지경에 이르렀지요. 겨우 서른 명에 불과한 금의대를 몰살시키기 위해 본문은 세력의 오할을 잃어야 했습니다.”

노인은 조금은 과장된 놀라움을 드러내며 어떠냐고 묻는 듯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익히 아는 사실이라는 듯 별 

동요가 없었다. 

노인이 다시 적포노인 오행신문주에게 물었다. 

“그게 벌써 이십사 년 전의 일이었군. 허면, 지금 부딪친다면 승산이 있겠는가?”

오행신문주가 되물었다. 

“운가를 본문이 단독으로 상대할 때의 승산을 물으십니까?”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행신문주가 잠시 생각했다가 대답했다. 

“오행신마를 셋 얻었다 하나 승산은 여전히 전무하다 할 것입니다. 저희들이 전멸이면 기력 여전한 늙은이들이 많은 그쪽 이할 

이상이 남을 것입니다. 다섯 모두가 성공했다면 승산은 저희 쪽에 있었을 것인데, 죄송합니다.”

노인이 손을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자네는 충분히 노력했어. 많아야 둘 정도 얻을 것이라 짐작했네. 셋이면 기대 이상이지.”

적의노인과 그 옆의 초로여인이 동시에 고개를 숙여보였다. 노인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여전히 냉철하구먼. 양패구사할 것이라 말할 줄 알았더니 이할은 남을 것이다? 흠! 내 보기에도 그래.”

노인은 좌중을 훑어보다가 비대한 승인에게 눈길을 멈춰 세우고 말했다. 

“파불이 도우면 비세는 겨우 면할 거라 예상하고 있네.”

모두들 침중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도 반론을 펴지 않았다. 노인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러한 승률은 무식하게 대놓고 싸울 때나 나오는 것이고---. 싸우게 된다면 전장은 사천이 아니라 일단은 이곳 

운남일세.”

사람들이 일제히 눈을 치떴다. 모두들 사천공략만을 생각했지 불러들인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다는 눈빛이었다. 

파불이라 불린 중이 얼굴의 상처를 실룩이며 물었다. 

“언제부터 시작할 계획이십니까?”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파불을 응시했다. 

“투기가 느껴지는군. 조급해 하지 말게. 내 나이 올해로 아흔 둘이네. 천군께서 족하(足下)에 천하를 두시는 것은 보지 

못하더라도 청성에 천궁(天宮)이 들어서는 것만은 보고 싶으니, 급하다면 내가 더 급하지. 머지않았어. 점창이 수습되면 

시작할 게야. 일단 시작하면 파불당을 가장 먼저 쓸 생각이니 각오해야 할 게야.”

노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하자 파불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가슴 설레는 것은 파불만이 아니었다. 기나긴 기다림이 곧 끝이 난다고 생각하니 모두들 격동을 숨길 수 없는 모양이었다. 

노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허! 이러라고 불러 모은 것이 아니야. 나도 자네들 근황이 궁금하고, 또 장차 한 몸이 되어 대업을 이룰 사람들끼리 

인사나 하라는 것이었어. 자, 자! 다들 일어나세. 지금쯤 주연이 준비되어 있을 테니, 모두들 가서 흠뻑 취해 보세나.”

노인이 먼저 일어서자 다른 이들이 거의 동시에 일어섰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흥분의 찌꺼기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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