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7장. 하늘 그물 넓고 넓어 성긴 것 같아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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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님. 별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써둔 것을 잘라 올리는 통에 미처 못보고 고치지 못한 겁니다.
요번 주로 2권 연재가 끝납니다. 수정 시에는 반드시 고치지요.^^;;;
*귀곡산인의 산인은 환사랑님이 글 다신 것처럼 신선 선(仙 = 人+山)의 의미로 보시면 될 것 같지요? 이렇게 댓글로 따로
설명한다는 것은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소린데...-.-
산에 파묻혀서 살아야 하는 사람, 선도를 추구할 자질을 가진 사람의 복합적인 의미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지 모르겠으나, 괴선에서 나오는 산인지상(山人之相)이란 그냥 그럴 듯 하라고 만든 말입니다.^^;;;
*검치, 검귀란 특별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검에 미친놈이란 뜻으로 쓴 거지요. 혼동 되시면 검귀로
통일하지요.
하늘 그물 넓고 넓어 성긴 것 같아도
반선노인은 벌거벗은 채 황토침상 위에 누워있는 운청산에게서 침들을 거두었다. 정수리에 꽂혀있던 마지막 침마저 뽑아낸
반선노인이 운청산의 볼을 두드리며 웃었다.
“다 됐구나. 나가서 놀아라.”
운청산은 침상을 벗어나 방 한쪽에 급조한 듯 보이는 나무침상에 걸려있는 옷을 주섬주섬 걸쳤다. 그리고 반선노인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문으로 다가갔다.
때마침 문이 열리고 귀곡산인이 들어왔다. 운청산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귀곡산인도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자신의 옆을 지나치는 운청산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었다.
운청산이 방문을 닫고 나가자 귀곡산인이 반선노인에게 물었다.
“어떤가?”
반선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착해.”
“그것 말고.”
반선노인이 그때서야 정확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다시 말했다.
“음! 한 이틀 정도면 될 걸세. 저주라는 말에 혹해서 말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인 줄 알았나 보네. 어릴 때 너무 많이
울어서 성대가 온전치 못해. 뒤집어졌다해야 하나? 그때 약 몇 첩 먹여 다스려 주었다면 아무 것도 아닌데. 그리고 금액고의
약력이 생각보다 많이 흡수되었네. 아직 어린데다가 식탐이 없는 아이라 그런가 봐. 며칠 후면 뭘 시작해도 좋을 것 같군.
어떻게 할까?”
귀곡산인이 뭘 말이냐는 듯 눈을 치떴다. 반선노인이 다시 말했다.
“검귀 쪽 말일세. 내 생각에도 저 아이는 무공을 익히는 게 좋아. 이미 인당이 열린 아이인데 상단전만 너무 혹사시키면
온전히 자랄 수 없지.”
“음! 그래야지. 근데 폐관은 풀었는가?”
반선노인이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불행한 인생이야. 그릇이 아닌데 안되는 것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귀곡산인이 말을 이었다.
“태을의 그늘이 너무 큰 탓이지. 차라리 세상에 나갔다면 검선은 아니더라도 검왕 소리는 듣고 살 것인데---.”
“그렇지. 곤륜에게도 큰 손실이야. 이놈이 안에서 떡 하니 중심잡고 있으면, 운상이 얼마나 움직이기 편하겠는가? 결국
태을이 너무 한 것이지. 죽어서도 사람의 마음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니 결국 사제는 인생을 허비하고 제자는 고생하지
반선노인의 말에 귀곡산인이 동의하는 기색을 보이고서 말을 바꾸었다.
“어쨌든 녀석이 폐관에 든 지 얼마 되지 않으니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놔두세.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테지만 무공이야
늘어 나오지 않겠나. 그 동안은 읽고 쓰는 것이나 가르치는 게 낫겠구먼. 근데 그놈은 아직인가?”
반선노인이 깜빡했다는 듯 자신의 이마를 두드렸다.
“왔다 갔을지도 모르지. 혼자서는 들어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 오늘 한번 다녀오겠네.”
귀곡산인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서 문을 나섰다.
운청산이 귀곡에서 지낸지도 한달이 지났다.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전신에 침 맞는 일도
어제로 끝이 났다.
그래서 운청산은 눈을 뜨자마자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귀곡에 온 이후로 그의 자리가 되어버린 연못가의 작은 바위 위에
앉았다.
운청산은 무표정한 얼굴로 봉우리의 옆구리로 삐져나오는 햇살을 느껴보았다. 사실 이제는 더 이상 햇볕을 탐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나서지 않는 것은 아니나 예전처럼 흉측한 모습으로 윽박지르거나 모기가 앵앵대는 소리를 질러대지도 않으니, 보아주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귀곡산인의 말로는 느리지만 귀혼이 아닌 신명의 성정을 조금씩 되찾고 있는 탓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줄줄 흐르던 피도
멈췄고 흘러내린 내장들도 다시 뱃속에 넣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가끔씩은 미소를 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햇살아래 나가는 것에는 반대하는 것 같았지만, 햇볕을 탐하는 것은 이미 운청산의 습관이 된 터라 그들도 크게
얼굴을 찌푸리지는 않았다.
부끄러운 듯 겨우 귀퉁이만 살짝 내비치는 해를 바라보며 운청산은 문득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했다. 어차피 무섭지도 않은
혼들이니 봐도 상관이 없는 문제고, 어머니라 했던 여인은 운청산이 먼저 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물어볼 게 많은데,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할머니를 볼 수 없는 상실감을 대신 채워주는 그 미소가 그리워졌다.
운청산은 바위에서 일어섰다. 그때 귀곡산인의 집에서 은여우 호연이 엉덩이 위로 꼬리를 만 채 통통 튀는 듯한 걸음으로
도도하게 걸어왔다.
운청산은 자신의 주위를 천천히 맴도는 호연을 보며 쪼그리고 앉았다. 호연이 주변을 돌던 원의 크기를 줄여가다가 꼬리로
운청산의 얼굴을 간지렷다.
운청산은 손을 뻗어 호연의 등을 쓰다듬었다. 호연이 운청산의 옆에 앉았다. 운청산은 호연의 목둘레를 쓰다듬고 머리를
쓰다듬고 턱 밑을 쓰다듬었다. 호연은 지그시 눈을 감고 운청산의 애무를 즐겼다.
처음이었다. 입곡한 첫날에는 아예 근처에도 오지 않으려 하더니 며칠이 지나서야 눈길을 끌면서 차츰 거리를 줄여나갔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운청산의 손을 허락했다.
운청산은 기뻤다.
그는 말하지 않는 대신 느낌으로 사람을 살폈다. 그 느낌은 대개 상대의 눈빛과 표정 그리고 손길을 통하여 따뜻함과 차가움
그리고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거리감으로 구분되는데, 그가 기억하는 한 따뜻함을 느낀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었다.
할머니와 외숙과 반선노인이 그들이었고, 조금은 모호하지만 귀곡산인도 끼워 줄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따뜻함을 주는 존재들이었다. 자신이 먼저 손을 뻗어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는 희박했다.
그런데 오늘 처음 호연에게 느낌을 전달할 수 있었고 호연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호연이 사람이건 미물이건 하등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감정을 전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운청산은 몸을 수그려 호연의 목을 안았다. 따뜻했다. 운청산은 호연에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냈다.
“호연이라고 했지? 나 아무래도 여기 오래 살아야 할 것 같애. 잘 지내자.”
아이들만이 낼 수 있는 청아한 목소리였다. 운청산도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깜짝 놀랐다. 감정이 목소리에 실려
이렇게 완전하게 전달될 수 있을 줄은 스스로도 몰랐었다.
운청산은 계속해서 말했다. 호연이 말을 알아듣든 말든 말했고, 연속해서 토해내는 말들이 제대로 의미가 담긴 문장들인지
고려하지 않고 말했다. 운청산이 듣고 싶은 것은 문장이 아니라 음성 하나하나의 청아함이었다.
운청산은 자신의 목소리에 취해 평생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청산! 이리 오너라.”
무뚝뚝한 목소리였다. 운청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귀부 앞에서 귀곡산인이 바라보고 있었다. 운청산은 다시 한번
호연의 머리를 쓰다듬고서 좋은 기분을 이어 대답했다.
“예!”
단 한마디였지만 그 명쾌하고 깔끔한 음성에 귀곡산인도 깜짝 놀랐다. 운청산은 미약하게 변하는 귀곡산인의 얼굴을 즐기며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때 귀곡산인이 다시 말했다.
“뛰어 오너라.”
금새 숨이 가빠져 뛰는 것을 싫어하는 운청산이었다. 그러나 귀곡에 온 이후 처음으로 운청산은 뛰었다. 옆에서 호연이 통통
튀며 따라왔다.
무려 오십여 장을 뛰었다. 운청산은 자신의 변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발가락 하나하나에 힘이 실렸다. 가슴이 힘차게
두방망이질 쳤다. 숨이 차올랐지만 오늘처럼 상쾌한 적은 없었다. 이제는 운가의 아이들처럼 공을 좇아 한없이 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운청산이 귀곡산인에게 이르렀다. 숨이 할딱거렸다. 그러나 그렇게 기분 좋은 적은 없었다. 귀곡산인이 무표정하게 운청산을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려 동부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입가에 실낱같은 미소가 어렸다.
동부에 들어간 운청산은 귀곡산인이 가리키는 그의 연공석에 엉거주춤 앉았다. 귀곡산인은 금방 이해했다. 늘 쪼그려 앉거나
다른 사람의 무릎 위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자세가 그렇게 어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앉아보아라.”
귀곡산인이 반가부좌를 틀었다. 운청산은 자세히 살피고 같은 자세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어색하더니 이내 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귀곡산인이 더 이상 자세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운청산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청산! 이제부터 이 할아버지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큼!”
귀곡산인은 스스로를 할아버지라 칭해놓고 어색한지 헛기침을 하면서 말을 끊었다. 청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귀곡산인은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가장 잘 알다시피 네 속에는 아홉이나 되는 혼령들이 머물고 있다. 들으니 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너의 어미 되고
숙부들 된다 하더라. 이 할아버지의 능력이면 그 가운데 네 어미는 편한 곳으로 보내고 네 숙부들은 네 눈에 띄지 않게 숨길
수 있다. 하지만 모정을 모르고 자란 너이기에 네 어미를 당장 편한 곳으로 보내기가 주저되는구나. 어떠냐? 네가 장차 나의
가르침을 받아 열심히 공부하면 네 어미는 물론 숙부들과도 이야기할 수 있느니라. 하겠느냐? 말겠느냐?”
운청산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려운 선택이었다. 경의상이 늘 배워야 한다고 되풀이해서 말했으니 공부한다는 것이야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어미를 당장 편한 곳으로 보낼 수 있다는 사실과 서로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사이에서는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운청산은 울상이 되어 귀곡산인을 바라보았다. 귀곡산인은 그 마음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귀곡산인이 호연에게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너는 나가 있거라.”
호연은 싫은 기색을 들어냈으나 귀곡산인의 눈이 빨갛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자 꼬리를 내리고 동부 밖으로 나갔다.
귀곡산인이 동부의 입구 쪽으로 오른손 중지를 내뻗으며 휘저었다. 순간 그의 손가락 끝에서 붉은 밧줄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입구 앞에 봉(封)라는 글자를 형성했다.
귀곡선인이 다시 그 글자를 향해 오른손바닥을 휘둘러 문지르는 시늉을 하자 봉자가 짓눌린 듯 흩어지더니 붉은 문으로 변했다.
동부 안은 일순간에 어두워졌다. 어둠을 싫어하는 운청산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때 귀곡산인이 탁자 위에 있는 유등에
손가락 퉁겨 불꽃을 일으켰다.
“무서워 할 까닭이 없다. 지금부터 네 안에 있는 어미의 혼령을 불러내어 의향을 물어볼 것이다. 너는 그저 편히 누워있으면
되느니라.”
말을 마치자마자 귀곡산인은 붉은 기운으로 왼손을 물들여 누운 운청산의 머리 위로 뻗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훨씬 낮고 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고막이 바르르 떨리는 것만 같았다. 운청산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니, 누구도 그 뜻을 쉽게
헤아리지 못하리라. 그러나 누구도 벗어나지 못할 위엄 있고 단호한 소리였다.
운청산은 귀곡산인의 붉은 손바닥이 정수리로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때 붉은 기운이 운청산의 정수리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면서 흐릿한 그림자 하나를 끄집어내었다.
“눈을 떠라.”
운청산은 눈을 떴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전히 흐릿하나 항상 눈앞에서 아른거리던 그 모습보다는 훨씬 또렷한 모습으로
이청수가 따뜻하고 포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운청산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운청산은 자신의 정수리에서 솟아난 푸른빛 도는 하얀 실 같은 기운 한 줄에 의지하여 허공에서 대롱거리는 이청수를 그렁그렁
눈물 맺힌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 동안 그런 상태가 유지되었다. 귀곡산인이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각이 조금 못
되는 시간이 흐르자 귀곡산인이 다시 예의 그 음성으로 말했다.
이청수는 눈물을 흘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운청산으로서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청수의 눈물이
슬픔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귀곡산인이 짧게 한 마디 했다. 이청수가 귀곡산인에게 절을 하고 운청산을 응시했다. 이청수는 눈을 질끈 감아 흐르는 눈물을
잘라냈다. 똑 떨어진 눈물이 운청산의 얼굴 앞에서 소멸했다. 이청수가 환하게 웃었다. 운청산은 고였던 눈물을 두 귀 쪽으로
흘려보냈다.
이청수가 입을 움직였고 운청산은 그 말을 보았다.
“울-지-마, 내-아-기.”
운청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귀곡산인이 다시 한 마디 하자 이청수가 다시 절하고 운청산의 정수리로 빨려 들어갔다.
운청산은 아쉬워서 눈을 질끈 감았다. 사라지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마지막 그 모습을 머리 속에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귀곡산인이 붉은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뒤로 당기며 접는 시늉을 했다. 순간 붉은 문이 한 줄기 기운으로 화하여
귀곡산인의 장심으로 흡수되었다.
운청산은 눈두덩이를 자극하는 빛에 반응하여 슬그머니 눈을 떴다. 호연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왔다.
귀곡산인도 호연의 존재를 발견했지만 달리 말하지 않고 운청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네 어미는 기꺼이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운청산이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곡산인이 다시 말했다.
“알겠다. 오늘은 우선 네 숙부들을 편히 쉬게 하고 내일부터 공부를 시작하자꾸나. 힘들 것이다. 단단히 각오하여라.”
운청산은 얼굴에 결의를 드러내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귀곡산인이 입가에 미약한 미소를 지어 반선노인을 반겼다. 반선노인이 등짐을 오두막 문 앞에 내려놓으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귀곡산인이 반선노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얼굴이 좋아 보이는구먼. 나가서 좋은 일 있었나?”
“흐흐흐, 생각만 해도 재밌구먼. 청인 그 녀석 말일세. 별 볼 일 없다 싶었는데, 걸물이더라구. 나 따라다니는 동안에도
지 놈 볼 일 다 보는데, 그 행각이 어찌나 우스운지 나도 말려들어 돕고 말았네. 졸지에 관상쟁이에 돌팔이 의원노릇까지
했지 뭔가. 산 속에 살다보니 세상사는 재미를 잊고 있었는데 기분이 묘해지더군.”
귀곡산인은 왠지 씁쓸한 표정을 짓다가 곧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물었다.
“필요한 것은 다 구했나?”
반선노인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애초부터 다 구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네. 웅황(雄黃), 운모(雲母), 진사(辰砂), 계관석(鷄冠石) 등의
광물들이야 산지(産地)를 알고 있으니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으나, 제대로 된 지초(芝草)와 복령(茯笭)은 운이 닿지 않아
구할 수 없었네. 참! 태을우여량(太乙禹餘糧)은 정말 찾아보기가 힘들어. 얼마나 걸릴지---.”
귀곡산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했다.
“겨우 사 년일세. 자네 말대로 십 년 안에야 다 구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럼 언제 또 나가려나?”
“음! 우선 모은 것 다듬으려면 한 반 년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왜?”
귀곡산인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도대체 검귀 그 녀석에게 벽곡단을 얼마나 만들어 줬나?”
순간 반선노인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되물었다.
“응? 아직도 안나왔어? 이 녀석, 분통 터져 죽은 거 아냐?”
귀곡산인이 고개를 저었다.
“살아는 있어.”
“이상하네. 제대로 먹었다면 작년 이맘때면 나와야 하는데---. 절곡이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나?”
“그건 모르겠네.”
“그럼, 청산이 놈은?”
“우선 자네 서가에서 음양선법(陰陽仙法)을 찾아 읽어보니 쓸만해서 가르쳤네.”
반선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구먼. 건강을 다지고 기초를 쌓는 데는 그 이상 없지. 진전은 어떤가?”
“빨라. 일보일장(一步一丈)을 뛰어다니네. 호연과 술래잡기를 할 정도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면 일취월장(日就月將)할
반선노인은 크게 놀란 듯 귀곡산인을 응시했다. 칭찬에 인색한 귀곡산인의 성정을 익히 아는 반선노인이기에 오히려 운청산의
재질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던 것이었다.
반선노인은 슬그머니 눈길을 옮겨 호연을 따라 연못가를 빙글빙글 도는 운청산을 바라보았다. 귀곡산인도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반선노인과 나란히 섰다.
반선노인이 말했다.
“허! 녀석, 많이 컸구먼. 이제야 제 또래 아이 같아. 허면 학문은 어떤가?”
“기초소양은 갖췄네. 처음부터 시작할 생각하니 답답했는데, 다행히 아이 할머니가 까막눈은 면할 수 있게 가르쳤더구먼.
그래도 편치 않았어.”
반선노인이 안들어도 익히 알겠다는 듯 빙그레 미소 지었다.
“세상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소똥으로 여기는 자네가 경학을 가르친다? 땀이 삐질삐질 났겠구먼.”
귀곡산인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내 속에 들어갔다 왔나? 사실 그랬네. 내가 믿고 따르지 않는 것을 가르친다 생각하니 위선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더군. 그래서 결국 표피만 건드리다 말았네. 평생을 데리고 살아야 할 산인지상이라서 그나마 다행이지, 세상에 섞여 살
아이였다면 아예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을 거야.”
“허면 요즘은 무얼 가르치고 있나? 역을 가르치기에는 이른 나이 같고. 그렇다고 자네가 무공을 가르치지도 않을 것이고.”
“필법과 음율을 가르치네. 둘 다 빨라. 그래서 일부러 야단치려고 노력한다네.”
반선노인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일부러?”
“무심한 척 하지만, 외로워서 그런지 가르치는 것마다 매달리는 것 같아. 나이답지 않게 너무 진지해.”
반선노인이 안쓰럽다는 눈빛을 드러내어 운청산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그런가? 이제 마음을 드러낼 때가 된 것 같은데---.”
“습관이 되어 겉으로만 그런 거지. 호연한테 하는 걸 봐도 천성이 무정할 수 없는 아이야.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으니 난
좋아.”
반선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확인하듯 물었다.
“허면 자네 쪽 공부도 이미 시작했다고 봐야겠군?”
귀곡산인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리 봐도 무방하네만,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좀 더 두고 볼 일이야. 아이를 가르치면서 쓸데없는 고민이 생겼네. 우선
그것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아.”
반선노인은 놀란 듯 눈을 치뜨고 귀곡산인을 직시했다.
“자네 지금 고민이라 했던가?”
귀곡산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산을 가르치다가 마가 끼었나 보네. 새삼스레 내게 신선이 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워졌어. 내 나이 스물 둘에 스승을
만나 산인이 되었으니, 칠십여 년 동안 세상을 등지고 오로지 술(術)만 파고 산 셈이네. 선사께서는 전생의 업덕이 현생에
선연으로 이어졌다 하시지만, 전생이 무슨 대순가, 신선이 되겠다면서 평생 적덕을 쌓지 않고 살았는데? 자네 생각은
반선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군. 그럼 자네에게 선근이 있다는 것조차 의심하는가? 내 눈에 확연히 보이는데?”
“내게 선근이 있음을 선사께서 누차 말씀하셨네. 나 또한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네. 다만 신선이 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이 든 것일 뿐이야. 호풍환우하고 신통영통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렇게 산에 처박혀 사는데.”
“아하! 자네 심각하군. 그래서 아까 내가 세상 이야기 조금 비췄더니 그리 어두운 얼굴을 했었어. 그 생각을 한 게로군.
적덕선이 아닌 선인은 신의 능력을 가진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다? 허허! 자네 말대로 다 늙어서 마가 끼었군. 그건 어떤
조언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군. 청산을 가르치다 그리 됐으니 청산을 통해서 푸는 수밖에.”
귀곡산인이 얼굴에서 씁쓸함을 털어버리고 미소를 지었다.
“나 또한 그 수밖에 없다 생각하네. 허나 그리 하려해도 태악이 도와주어야 하는데---.”
반선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보게. 태악에게 말해 주는 게 낫겠지?”
“이제 와서? 자네가 잔인한 일이라 말려서 참았네만, 그 녀석에게 선연이 없음을 진즉에 알렸어야 했어. 알리지 않은 것이
더 잔인한 일이지. 나와는 달리 그녀석이 가야할 길은 분명히 따로 있어.”
반선노인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태을은 몰랐을까? 늘 그것이 마음에 걸려 자네를 말렸었어. 만약 알고도 그랬다면 너무 무심한 것 아닌가?”
귀곡산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을지 몰라도 알고 그런 건 아닐 거야.”
반선노인도 동의했다.
“그렇겠지? 알겠네. 내가 가서 끌고 나오지. 잠깐 잔인한 것이 평생 허송세월 보내게 하는 것보다야 나을 테지.”
귀곡산인이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안됐긴 하네만, 그것이 차라리 낫겠구먼. 그만 가보겠네. 청산이 공부시킬 시간이구먼.”
운청산은 붓을 내려놓고 옷소매로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훔쳤다. 그렇게 땀이 맺힐 정도로 더운 날씨도 아니니
글쓰기에 무척 공을 들인 것이 틀림없으리라. 그러나 그의 앞에 놓인 종이에는 단 한 글자 선(仙) 자만이 쓰여 있었다.
운청산은 두 손으로 종이를 받혀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무표정한 귀곡산인이 글자를 내려다 본 순간 퉁명스럽게 말했다.
“예쁘구나.”
그 말이 결코 칭찬이 될 수 없음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운청산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이 쓴 글을 응시했다. 외숙
청인자가 가져다 준 온갖 서책들의 글자보다 절대 못쓴 글씨라고 할 수 없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귀곡산인이 차갑게 말했다.
“네가 계집아이더냐? 그렇다면 잘 쓴 글씨다만 사내 녀석이 쓴 것이라면 글씨가 아니구나. 사람도 힘이 없고 산도 힘이
없다. 힘 빠질 선자라더냐?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내가 네게 원하는 것은 잘 쓴 글자가 아니라 한 글자에 네
심혼이 드러나는 힘찬 글자라고. 글씨에는 사람이 담겨있다. 제대로 된 글씨에는 귀신도 부리는 영력이 담겨있다. 다시
쓰거라.”
바로 그때 입구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났다.
“귀곡 형님!”
절망에 찬 목소리였다. 운청산은 깜짝 놀라 그림자를 보고 귀곡산인은 오히려 눈을 감았다.
산발한 회색빛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귀안 같은 무서운 눈빛을 한 앙상한 노인이 완전히 동부 안으로 들어서서
귀곡산인을 내려다보았다.
귀곡산인이 눈을 뜨며 말했다.
“청산과 호연은 나가 있거라.”
안그래도 호연은 겁에 질려 있었다. 표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운청산도 실은 무서웠다. 운청산과 호연은 괴노인의 좌우가
여전히 넓음에도 불구하고 벽에 가까이 붙어 동부 밖으로 나갔다.
귀곡산인은 그때서야 고개를 들고 괴노인의 눈을 직시했다.
“태악! 앉아라.”
괴노인은 무표정한 귀곡산인의 얼굴을 노려보다가 할 수 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이나 귀곡산인의 얼굴을
노려보고서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정녕 나는 해도 안되는 것이오?”
괴노인의 형형하던 안광이 누그러지며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귀곡산인의 눈빛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드러나지 않았다.
“안된다.”
차갑기만 한 목소리였다. 괴노인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귀곡산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소?”
“말해 주었다면 포기했겠느냐? 스스로 느끼리라 믿었다. 아직도 깨닫지 못했느냐?”
괴노인은 무심한 귀곡산인을 노려보다가 마침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다가 넋두리하듯 말을 흘렸다.
“알았소. 일 년 전에 벌써 알았소. 하지만 흘러간 세월이 아쉬워서---. 떠오르는 얼굴에 오기가 치밀어서---. 포기할
수 없었소. 스스로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들어갔었기에 차마---.”
그때서야 귀곡산인의 눈에도 흐릿한 연민이 어렸다.
“미안하구나.”
괴노인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오. 이제라도 말해 주어서 고맙소. 말려주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오. 백골이 되고 귀신 되어도 검을 놓지
않았을 것이오. 홀가분하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말과 달라 회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귀곡산인이 괴노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홀가분해 보이지 않는구나. 그러나 넌 억지로라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오로지 선근. 네게는 다만 그것이 없을 따름이다.
지금 네가 당장 싸우자 한다면 나와 반선은 너의 일검을 감당하지 못할 터. 네가 모자란 것이 아니니, 그것으로 되지
않았느냐? 내 보기에 너의 길은 달리 있다. 단지 선근이 있다는 이유로 세상을 등지고 선도일로를 고집하는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선연을 얻을 수 있도록 길을 뚫어주는 사람이 좋으리라.”
“허허허! 인선(人仙), 지선(地仙)이 아니라 대선(代仙)이고 대승(大乘)이란 말이오? 허허헛! 그렇게 위로하려 하지
마시오. 더 비참해 지는구려.”
귀곡산인은 허탈한 표정의 괴노인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놈! 내가 언제 맘에 없는 소리 지껄인 적 있느냐?”
순간 괴노인이 귀곡산인을 직시하며 말했다.
“평생 곡에 처박혀 선단에만 매달린 반선 형님은 선연이 닿고 평생 검에 매달린 내게는 연이 없다면 그것은 너무 불공평하지
않소?”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불루(疏而不漏)라 했거늘! 현생(現生)만 보고 전생의 업덕(業德)은 생각지 못함이니,
어리석구나. 명색이 도사란 놈이, 쯧!”
괴노인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얼굴 근육들이 쉴 새 없이 움찔거렸다. 그러다가 낮은 한숨이 새어나오고, 경련이 잦아들고,
다시 눈이 떠졌다.
“미안하오. 누구를 원망할 일이 아니거늘, 하지 않고는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소. 투정일 따름. 마음에 두지 마시오.”
귀곡산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
“내게 마음이 있는 것 같으냐?”
괴노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있는 것 같더이다. 아까 그 아이에게---.”
괴노인은 말을 하다말고 운청산이 남기고 간 선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귀곡산인을 보면서 물었다.
“그 아이가 쓴 것이오?”
“그럼, 내가 쓴 것 같으냐?”
“밥값 하라 했지요? 내가 남을 가르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가르치는 재미는 있겠소이다.”
괴노인은 벌떡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균형을 원한다 했다지요? 난 그런 것 모르오. 그냥 내식대로 가르칠 수 있는 만큼 가르치겠소. 그래도 된다면 내일부터
보내시오.”
반선노인과 운청산이 오척 정도의 목각 인형을 두 사람 사이에 눕혀 놓고 앉아 있었다. 목각인형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은
선이 몇 줄 그어져 있었다.
운청산이 왼손 중지로 목각인형의 사타구니 사이부터 위로 빠르게 짚어 올라가며 말했다.
“회음(會陰), 곡골(曲骨), 중극(中極), 관원(關元), 석문(石門), 기해(氣海),--- 옥당(玉堂),---
천돌(天突), 염천(廉泉), 승장(承漿).”
운청산이 목각인형의 입술 아래에서 손가락을 떼며 반선노인을 응시했다. 반선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외우고 있구나. 그 스물 네 개의 혈을 임맥이십사혈(任脈二十四穴)이라 부른다. 이 임맥혈이 중요한 이유를 무엇이라
했더냐?”
운청산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공부의 시작이 되는 혈인 까닭입니다.”
“그렇지. 인체에는 세 군데 보물이 있다 했다. 삼주(三珠)라 하기도 하고 삼단전(三丹田)이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찾아야 하는 정주(精珠) 혹은 하단전(下丹田)이 바로 이곳 석문(石門)이니라. 혹자는 기해(氣海)가 단전이라고도 하고
이곳 관원(關元)을 단전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익히는 내공의 성질에 따른 것이다. 내 사견으로는, 기해는
음혈(陰穴), 관원은 양혈(陽穴)에 속하여 음한지공(陰寒之功)이나 양강지공(陽强之功)과 같이 한쪽으로 치우친 내공을 익히는
자들에게는 단전이라 불릴 수 있지만, 정종의 내공을 익히는 사람은 음양과 천지의 중앙에 위치한 인혈(人穴)이며
태극혈(太極穴)이 되는 이 석문을 단전으로 취하는 게 옳은 것 같구나. 내가 알기로 정종의 곤륜 내공 역시 이 석문을
단전으로 취하고 있다. 그러니 바른 수련은 곧 이곳에서 시작되어 옥당의 기주(氣珠)를 취하고 종국에 가서는 독맥(督脈)에
위치한 신주(神珠), 즉 이 인당(印堂)을 취하여 정기신을 일체시켜야 하느니라.”
운청산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반선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운청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떠냐? 태악 할아버지가 무서우냐?”
운청산은 잠시 대답을 주저하다가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워할 필요 없느니라. 지금은 마음의 문을 굳게 잠가둬서 그리 느낄 수 있겠다만 무서운 사람이 아님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청산! 무섭다고 해서 태악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한 치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무섭다고 모르는 것을
묻지 않고 넘어가거나 야단맞는 것을 두려워해서 아는 체 해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다. 태악 할아버지의 공부는 삼주 중에서도
정주를 중요시하는 공부니라. 내가 무슨 마음에서 귀곡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는지는 알겠다만, 귀곡 할아버지의 공부는
인당을 혹사시키는 것, 사도에 빠지면 요물이 되고 귀마가 되느니라. 강건한 신체에 강건한 정신이 자리한다고 누누이
말했듯이, 태악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소홀하면 귀곡 할아버지의 가르침 역시 제대로 따를 수 없다는 것을 유념하여야 한다.
알겠느냐?”
운청산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문이 열리며 흑의도인 태악이 들어섰다.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머리카락과 수염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반선노인과 운청산이 그를 바라보았다. 태악도인은 반선노인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청산! 시간이다. 가자.”
운청산은 즉시 일어나 태악도인에게로 다가갔다. 반선노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놈아! 아는 척 하면 동티라도 난다던?”
태악도인은 반선노인을 일별한 후 짧게 대답했다.
“가겠소.”
태악도인은 말처럼 바로 돌아서서 나갔다. 운청산은 반선노인에게 허리를 접고 급히 따라 나갔다.
“그래, 이놈아! 얼른 가버려라. 에잉! 속 좁은 놈 같으니라고---.”
운청산마저 사라지자 반선노인이 흐릿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청산이 뛰어가는구나. 결국 청산이 무뚝뚝해도 태악에 대니 조족지혈(鳥足之血)이 아닌가? 어쨌든 그 사부에 그 제자, 잘
만났구나. 허!”
하늘 그물 넓고 넓어 성긴 것 같아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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