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79)

대곤륜의 품은 광대하여 귀신도 능히 품나니    

청해성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땅이다. 사천이 여타 지역에 비해 낮은 분지지형이라면, 청해성은 타 지역에 비해 오악에 비견되는 

고지대에 평지가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될 고원지대다. 

그나마 사람이 사는 동쪽 지역은 낮은 축에 속하나 그것도 청해호(靑海湖)를 지나 감숙(甘肅) 접경지역에나 들어가야 그래도 

성시(成市)를 이룰만한 환경이 될 뿐, 나머지 대부분 지역은 사막과 먼지만 풀풀 날리는 고원형 초원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휴우! 겨우 여기까지 왔군. 죽는 줄 알았다.”

등 뒤로 이제 막 떠오른 태양의 따듯한 기운이 느껴지는 아침, 청인자는 아득히 멀리 곤륜산의 초입이 바라보이는 

청남초원(靑南草原) 북동쪽 끝자락에서 한숨을 돌렸다. 

청인자는 아스라한 곤륜산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끙, 소리를 내며 힘겹게 어깨의 짐을 내려놓았다. 

특이하게 생긴 짐 자루였다. 마치 팔소매가 없는 옷처럼 두 개의 대나무 중앙을 부드럽게 휘어 두 어깨에 걸 수 있도록 

만들고, 앞뒤로도 구십 도로 휘고 서로 칡 망사로 연결하여 두 개의 선반을 만들었다. 

앞에는 그간 청인자가 들고 다니던 바랑을 비롯해서 운가에서 준비해준 건량, 아이를 위한 옷 보퉁이, 용량이 큰 수통 그리고 

곤륜을 떠날 때는 없던 삼척 반의 장검이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뒤에는 두툼한 옷을 입고 얇은 면포로 만든 입마개를 한 

운청산이 해를 보며 앉아 있었다.

청인자는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앞쪽 선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물통을 꺼내 흔들어 보고는 다시 한 번 곤륜산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본 청인자는 우선 한 모금 마셔 입안을 깔깔하게 만들던 모래들을 게워냈다. 그리고 아낌없이 물을 들이켜 

갈증을 완전히 해소해버렸다. 

청인자는 물통을 들고 운청산에게로 다가가 입마개를 벗겼다. 운청산은 무표정한 얼굴로 청인자를 힐끔 보다가 금새 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청인자는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고 운청산의 입에 수통을 대어주었다. 몇 모금 삼킨 운청산이 입술 양쪽으로 물을 흘림으로써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뜻을 밝혔다.

청인자는 옷소매로 운청산이 흘린 물을 닦아주고 내친 김에 소매에 물을 부어 운청산의 얼굴도 닦아주었다. 운청산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저 해만 바라볼 따름이었다. 

수통의 마개를 단속한 청인자는 다시 앞쪽 선반을 다 풀어헤쳤다. 운청산의 옷이 떨어지고 바랑이 구르고 음식 보자기가 

내려졌다. 

청인자는 제일 밑에 깔려있던 두꺼운 천을 꺼내어 드문드문 풀기가 보이는 바닥에 깔고 운청산을 들어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때서야 청인자도 운청산의 등 뒤로 가서 누웠다. 

운청산이 청인자의 배에 슬며시 기댔다. 청인자는 흐릿한 미소를 짓고서 뻐근한 가슴을 주무르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눈물 그렁한 얼굴과 안도감이 물든 얼굴, 이상하게 상반되는 표정이라고 느꼈던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도망치듯이 몰래 

운가를 떠난 것이 십여 일 전 늦은 오후의 일이었다. 청인자가 운청산을 대면한 날로부터 사흘이 지난 날이기도 했다. 

바로라도 떠나고 싶었지만 경의상에게서 운청산을 즉시 떼어 낸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인 것도 같았고, 운청산이 워낙 

유리그릇 같은 아이기도 해서 준비가 많이 필요했던 탓이기도 했다. 

운청산이 어찌 살아왔는지, 무슨 버릇이 있는지를 자세히 듣게 된 청인자가 가장 먼저 했던 것은 바로 그 이상하게 생긴 짐 

지지대였다. 그것이라면 이동 중이라도 앞뒤로 돌려가면서 운청산이 늘 해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분명히 효과를 보았다. 

심지어는 밤에도 앞쪽에 앉혀 안아드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부작용이라면 운청산이 잠 못 들고 이마로 연신 청인자의 

가슴을 박아댄 까닭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청인자는 경공을 펼쳐 최단시간에 곤륜까지 가려고 노력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움직였다면 운가에서 곤륜까지 이십여 

일은 걸렸으리라. 천북고원과 천서고원은 물론 청해성 안에서도 워낙 험지가 많은 까닭이었다. 

그러나 오랜 여행은 운청산 같은 아이에게는 무리였다. 하루라도 빨리 도착해야 했다. 청인자는 더 이상 붉어진 운청산의 눈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밤에 많이 이동하고 아침나절 되어서야 잠시라도 해가 가리지 않는 곳에 이르러 잠깐 눈을 

붙이고 운기조식으로 피로를 회복했다. 그리고 오후부터 새벽이 올 때까지 또 달렸다. 청인자마저 지칠 만큼 강행군이었다.

힘이 든 만큼 운청산에게도 미약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청인자에 대한 어떤 믿음이 생긴 것 같았다. 무표정한 것은 

여전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의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그 느낌에서 새로운 힘을 얻지 

못했다면 지금 청인자는 곤륜산이 바라보이는 곳에 있을 수 없으리라. 

배에서 미약하지만 규칙적인 떨림을 느껴졌다. 귀로는 낮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청인자는 눈을 떴다. 그리고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운청산이 낮게 가르릉 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청인자는 두 발을 비벼 오른쪽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그 발을 뻗어 등짐의 앞쪽 선반에서 운청산의 두꺼운 누비 솜옷을 

발가락에 끼워 당겼다. 

누비 솜옷으로 운청산을 덮어준 청인자는 깍지 낀 손으로 머리를 받히고 하늘을 보았다. 

“아! 그나저나 그 돈을 받아올 걸 그랬나? 뭐랬지? 가문의 돈을 사사로이 쓸 수 없어 이것 밖에 준비하지 못했다? 

그랬었지. 그 돈이 삼만 냥이라? 통도 크지. 하! 그 돈 받아왔으면 한 십 년 신객 짓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청인자는 운녹산이 내밀던 전표다발을 떠올리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청인자가 곤륜을 떠난 것이 다섯 달 전의 일이었다. 길에서 보낸 시간을 제외하고도 석달 이상을 청해와 사천 그리고 귀주와 

호북을 더듬었다. 

돈은 얼마 되지 않으면서 시간만 잡아먹는 신객의 일과, 도사 차림이 효과적인 부적 팔고 사주 관상 보아주는 일은 물론이고, 

제법 돈을 만질 수 있는 수궁사(守宮砂) 놓아주는 일까지 두루 했으며, 반선 노인이 준 산삼도 팔아치웠다. 

그렇게 해서 손에 쥔 돈이 사천 이백 냥이었다. 그것도 곤륜삼(崑崙蔘)을 알아보는 작자를 만나 삼천 냥이나 받을 수 있어서 

그 정도였지, 그렇지 않았다면 반선 노인의 말처럼 별 소득 없이 돌아가야 하리라.

거기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면서 운녹산이 건네던 삼만 냥은 얼마나 큰 거금인가. 하지만 받을 수 없었다. 동생의 목숨 

값을 받는 것 같았고, 조카를 맡아 기르는 대가를 얻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에휴! 아까워라. 지금 체면 따질 때가 아닌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청인자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눈을 내리깔아 운청산을 살폈다. 여전히 가르릉 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녀석 오랜만에 곤히 잠들었구나. 그래, 편히 자거라. 이 도사 삼촌도 한 숨 자야겠구나.”

청인자는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도 오른손을 자신의 배와 운청산의 등 사이로 넣어 장심을 운청산의 명문으로 가져갔다. 

청인자의 신법은 특이했다. 발끝으로 땅을 콕 찍는 것만으로도 칠팔 장을 부드럽게 이동했고 두 팔을 벌려 살짝 흔드는 것으로 

충격 없이 착지하여 또 다시 발끝으로 땅을 찍어 허공에서 낮게 미끄러져 갔다. 

그러한 움직임은 검법과 신법으로 강호에 그 무명을 떨치는 곤륜의 신법양절(身法兩絶) 가운데 비붕신법(飛鵬身法)에서 나온 

것이었다. 

허공을 자유자재로 유영한다하여 곤륜을 대표하는 신법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이 박투시(拍鬪時) 전개된다면, 비붕신법은 

이동시에 유용한 신법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지금 청인자가 펼치는 신법은 비붕신법 중에서 움직임이 부드럽다는 

비붕불명(飛鵬不鳴)이었다.

대붕이 나니 그 속도, 강호의 어느 신법에 비해 떨어지겠는가. 거기에 옷자락조차 펄럭이지 않는다 하여 불명이 붙었으니, 

소리 없이 빠른 신법 비붕불명은 능히 강호의 수위를 다투는 경공절예라 할 것이었다. 

가히 무림의 일절이라 할 수 있는 비붕불명이라 하더라도 우스꽝스러운 등짐을 앞뒤로 진 청인자가 펼치니 우습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습과는 달리 청인자의 얼굴은 낭패감으로 물들어있었다. 이제 겨우 산의 초입에 들어섰을 따름인데 해는 곤륜산의 두 

봉우리 사이에 몸을 반이나 감추고 있었다. 운청산은 물론이고 청인자마저도 너무 오래 잠을 잤던 것이었다. 

운청산의 얼굴에 불안감이 가득했다. 

“안되겠군. 서두르자.”

청인자는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의 배와 가슴에 등을 대고 있는 운청산의 상체를 두 팔로 감았다. 그리고 바로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파르륵!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청인자의 신형은 단번에 십이장을 건너뛰었다. 대붕무영(大鵬無影)이었다. 지금껏 충격으로부터 

운청산을 보호하기 위해 비붕불명을 펼쳤다면 이제는 속도에 주안점을 두어 대붕무영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한번의 날개 짓으로 삼천리 바닷물을 튕겨 태풍을 만들고 그 바람을 타고 단번에 구만리장천을 난다는 대붕. 등의 길이 몇 

천리인지 알 수 없고 펼친 날개는 창공에 구름 드리운 것과 같다했거늘, 그 거대한 붕조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니 과장이 

심하다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러나 대붕무영이 신법제일 곤륜에서도 가장 빠른 신법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탄력 받은 청인자의 신형이 한 번 도약으로 십오륙 장을 움직였다. 파르륵,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옆으로 찬바람들이 

슉슉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얼굴에서 땀이 흐를 새가 없었다. 맺히는 순간 바람에 실려 날아가 버렸다. 

평평한 초원이 끝나고 어느새 완만한 경사로에 들어섰다. 그다지 무성하다 할 수 없는 소나무 숲 사이로 겨우 두 사람 

지날만한 좁은 길이었다. 

이미 운청산의 호불호를 다 알고 있는 청인자는 허공으로 솟구칠 때마다 소나무 위를 날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곤륜은 이미 

해를 집어삼켜버렸고 산의 위쪽으로는 붉은 여운만이 감돌고 있었다. 

“으으으으으으!”

운청산의 이빨 사이로 낮은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청인자는 멈추지 않았다. 

다시 반각이 흐른 후에야 청인자가 멈추어 섰다. 그의 앞에는 회색 구렁이가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것 같은 같은 좁은 계단들이 

급격한 경사로 곤륜산의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곤륜파가 자리 잡고 있는 태령봉(太靈峰)의 정상까지 뻗은 그 계단의 수는 모두 삼천육백 개. 청인자는 아득하리만치 길게 

뻗은 계단들을 바라보며 한숨 돌렸다. 

“으으으으으으으!”

청인자는 신음성을 내지르며 뒤통수로 자신의 가슴을 연신 들이박는 운청산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시 운청산을 등짐으로부터 

번쩍 들어 얼굴이 자신의 가슴을 향하도록 앉혔다. 

“다 왔단다. 조금만 참아라. 선령선신(仙靈善神)이 가득한 산이니 네 숙부들이 감히 너를 놀라게 하지 못하리라.”

거짓말은 아니리라. 청인자는 이미 그 조짐을 느끼고 있었다. 해 떨어지면 시작되는 운청산의 고통스런 반응이 하루 전과는 

달랐다. 가슴을 들이박는 그 충격도 전보다 약해졌다. 

청인자는 믿었다. 자신이 곤륜의 도사가 된 것이 곧 하나뿐인 피붙이를 도우라는 하늘의 명이란 것을. 곤륜이라면 운청산을 

고통으로부터 능히 해방시켜 줄 수 있을 것이고 믿었다. 

청인자는 가슴을 들이박는 운청산의 상체를 꼭 안고 다시 계단을 쏘아져 올라갔다.   

“어? 청인사형!”

아직 동안을 채 벗어나지 못한 청년이 막 산문을 지나온 청인자를 불렀다. 계발을 지은 것을 보면 분명 도사일 것이나 입고 

있는 옷은 득라가 아니라 얇고 빛바랜 흰색 홑겹 무복이었고 손에는 삼척 반의 장검이 들려있었다. 

길게 한숨을 내쉰 청인자는 왼손으로 떨리는 운청산의 뒷머리를 쓰다듬고서 청년을 응시했다. 

“잘 있었냐, 이놈아?”

청년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야 여전합니다만 사형은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도사 신분으로 돈 버시느라 고생이 막심하셨나 봐요? 어? 근데 그 아이는 

누구? 제자 들이시려구요? 둘째 사형이 난리 칠 텐데---.”

청년이 걱정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아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 달라붙었다. 

“저리가, 인석아.”

청인자는 손을 휘젓고 나서 등짐을 벗었다. 어깨에 걸리는 부분에 두껍게 무명을 감았다 해도 아픈 것은 마찬가지였다. 

청인자는 운청산을 들어 가슴에 안고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어 뻣뻣하고 욱신거리는 어깨를 휘돌렸다. 

청년, 청인자의 사제 청현(淸玄)은 사형의 피곤한 기색이 가볍지 않음을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그가 왜 모르랴. 곤륜의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이 바로 청인자였다. 

도교를 신봉하는 사람이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청해성이라 경제적으로 늘 힘든 곤륜이었다. 그러니 곤륜파는 자급자족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은 삶을 사는 것 또한 도사의 마음가짐과는 달라서 돈 버는 일을 꺼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겨우 

늦은 봄에서 늦은 여름까지 산을 돌아다니며 나물을 뜯고 약초를 캐는 것이 고작이어서, 대부분이 돈 버는 일에는 극히 

소극적이었다. 결국 곤륜의 팔십여 도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체면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은 청인자 한 사람뿐이었다. 

“미안합니다, 사형! 다음번에는 제가 꼭 따라 나서겠습니다.”

청현자는 진정이 가득한 얼굴로 청인자를 응시했다. 어깨를 휘돌리고 있던 청인자가 씩 웃으며 청현자의 어깨를 툭 쳤다. 

“다음번이 어딨어, 인석아? 가려면 이번에 가. 이 사형이 이 녀석 때문에 신객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올라왔다. 내일 

편지 들고 곡마래 들러 마다까지 가서 전해주고 와.”

청현은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러나 청인자의 가슴을 쿵쿵 박아대는 아이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 무언가 곡절이 있음을 

깨달았다. 

“알겠습니다. 혼자 돈 벌라 하시면 자신 없습니다만, 편지 읽어주고 오는 거야---.”

“인석아!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나쁜 소식을 전하면 온갖 원망을 다 감당해 주어야 하고, 형식적으로라도 복도 

빌어주어야 하며, 아픈 사람 있으면 병구완도 해 주어야 하느니, 그게 어찌 쉬운 일이겠느냐? 허나 수행에도 도움이 될 터, 

한번 해 보아라. 자세한 것은 나중에 알려줄 테니 우선은 저 짐에서 바랑만 빼고 나머지는 내 방에 가져다 놓아라.”

청인자의 말에 암담한 표정을 짓던 청현자는 할 수 없다는 듯 등짐에서 바랑을 빼내 청인자에게 건네고 나머지를 들고 

사라졌다. 

한쪽 어깨에 바랑을 진 청인자는 멀리 보이는 태상궁을 직시하면서 중얼거렸다. 

“이제 어쩐다? 이 녀석을 반선 노인에게 우선 보여야 하는데, 귀곡이 어딘지 모르니 올 때까지 무조건 기다려야 하나? 

하루라도 빨리 보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휴! 어쩔 수 없지. 우선 사부님께 인사올리고 이 아이를 보이는 게 

순서겠지?”

청인자는 안쓰러운 듯 운청산을 내려다보고는 태상궁을 향해 발걸음 떼었다. 

“이놈아! 왔냐?”

“에구! 놀라라.”

등 바로 뒤에서 들리는 그 소리에 놀라 청인자는 펄쩍 뛰어 몸을 틀었다. 

“아휴! 제발 부탁이니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지 말란 말입니다.”

청인자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너 죄진 거 있냐? 왜 만날 그깟 일로 놀래? 귀신도 너 같은 놈은 안잡아 먹어, 이놈아! 그리고 나한테 보이고 싶다며? 

뭔데?”

반선 노인이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운청산을 발견하고서 이채를 띄었다. 

“골칫거리 생긴다 했지? 그놈이냐?”

청인자는 지난 십여 일 동안 무척이나 고생했지만 단 한번 운청산을 골칫거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남들이 보는 

시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긴말 하고 싶지 않기도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반선 노인이 대뜸 말했다. 

“돌려봐!”

청인자는 조심스럽게 운청산을 돌려들었다. 순간 운청산이 머리를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반선노인이 대번에 오른손 중지를 퉁기니 붉은 기운이 침처럼 솟아 운청산의 마혈을 제압했다. 

“영감님! 그것은---.”

“잠깐은 괜찮아, 이놈아! 개뿔도 모르면 참견 말고 지켜나 봐. 요 녀석, 어디 보자.”

반선노인은 두 손을 뻗어 운청산의 눈을 벌렸다. 그리고 코가 서로 닿을 정도로 얼굴을 디밀었다. 

“어라? 이놈 봐라. 신기한 놈이네. 어디 다시 한번 보자. 오! 정말 신기하군. 눈 속에 또 눈이 들었네. 그것도 아홉 

쌍이나? 허 참! 정말 신기하군. 귀곡에 데리고 가서 연구 좀 해야겠다. 귀신 늙은이가 더 좋아 하겠군.”

“청산을 왜 영감님이 데려가요? 아직 사부님한테도 보이지 못했습니다.”

청인자의 말에, 묘한 표정으로 운청산의 눈 속을 들여다보고 있던 반선노인이 눈을 치떴다. 

“너! 얘 문제 해결할 수 있어?”

순간 청인자가 정색을 하고 반선 노인을 응시했다. 

“가능하겠습니까? 무당의 보천진인이---.”

반선 노인이 허리를 펴고 다시 중지를 퉁겨 운청산의 마혈을 풀고서 피식 웃었다.

“보천진인? 그런 애도 있었냐? 있다 해도 귀신 좀 본다고 잘난 체 하면서 경면주사나 괴황지 없으면 부적도 못 그리는 

놈이겠지? 그 따위 놈이 뭔 소리를 지껄이든 내 알 바 아니고, 난 돼. 아니지, 내가 안돼도 귀신 늙은이면 틀림없이 돼. 

이리 주라.”

청인자가 간절함을 담아 반선 노인을 응시하며 운청산을 내밀었다. 

“허! 그놈 참! 네 녀석한테 어울리는 눈빛이 아냐. 평소대로 해라. 재미없다.”

반선 노인이 운청산을 건네받았다. 순간 운청산이 청인자에게로 돌아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반선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운청산을 

청인자에게로 던져버렸다. 

“야! 네가 안고 와.”

청인자는 깜짝 놀라 운청산을 받으며 반선 노인을 응시했다. 곤륜제자라면 누구나 곤륜산 어디엔가 귀곡이라는 곳이 있고 그 

안에는 괴팍한 노인 세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운상자의 스승 태을진인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곳에 가본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는 대충의 위치조차도 알지 못했다. 

사람 모르기도 마찬가지어서, 태을진인과 가장 친했다고 하는 자칭 반선만이 가끔 곤륜파에 들릴 뿐, 나머지 두 사람은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겨우 아는 것이라고 귀곡의 실제 주인이 귀곡산인이라 불린다는 것 정도뿐이었다.

그렇지만 반선 노인마저도 신비로 점철되어, 젊은 제자들 가운데는 노인과 가장 잘 통하는 청인자마저도 반선이란 뜻이 이미 

반은 신선이며,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등선할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것과 의술에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 정도 밖에는 모르고 

있었다.

언젠가 청인자가 은근히 귀곡에 가보고 싶다는 뜻을 드러냈을 때, 반선 노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 혼자라면 데리고 

가도 상관이 없으나 귀곡의 진정한 주인인 귀곡산인과 또 다른 한 사람이 절대 원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지금 반선 노인인 운청산과 함께 입곡을 허락하였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저, 스승님께 아직 인사도---.”

“아, 그놈 참! 이놈아! 하루 늦게 온 것으로 하면 되잖아. 아니야. 오늘 밤이면 돌아올 수 있는데 뭐가 문제야?”

“귀곡이 그렇게 가깝습니까?”

반선노인은 청인자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훌쩍 앞으로 나아갔다. 청인자는 태상궁과 멀어지는 반선노인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결국 

뒤를 좇았다.

신법제일이라는 곤륜파에서도, 경공만큼은 둘째도 서럽다 할 청인자였다. 검에는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나 어릴 

때부터 운상자를 따라다닌 덕에 이미 이십대 초반에 운룡자의 제자들까지 뒤돌아 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인자는 반선 노인의 뒤좇기가 힘에 붙였다. 아무리 피곤하고 또 운청산을 안고 있다고는 하나, 약이나 

다루는 노인을 좇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가끔씩 뒤돌아보는 것이 봐주고 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북쪽으로 한 시진을 좇아가 태령봉과 또 하나의 봉우리 사이를 파고들었을 때, 청인자는 문득 괴이한 기운을 

느꼈다.

귀곡이라 했으니 분명히 계곡에 위치할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영산 곤륜, 그것도 곤륜파가 자리 잡은 태령봉 지척에 

그토록 음산하게 느껴지는 계곡이 존재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안개가 낄만한 날씨가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야가 트여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자욱한 안개가 깔려 일장 앞을 

분별하기가 어려웠다. 

습기는 흘린 땀과 어울려 청인자로 하여금 찝찝한 기분을 느끼게 했고 계곡에 흩어져 있는 나무 하나 땅 한 평마저도 칙칙한 

기운이 느껴졌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청인자는 끝내 반선노인의 종적을 놓치고 말았다. 청인자는 당황하여 사방으로 소리 질렀다. 

“영감님! 영감님! 어디 계세요?”

그때 안개 속에서 손 하나가 쑥 튀어나와 청인자의 목덜미를 잡았다. 그래도 곤륜의 제자인데 아무런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청인자는 안개 속 깊은 곳으로 딸려 들어가고 말았다.

청인자는 자신이 마치 연이 된 것만 같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 발을 지면에서 뜬 채 수백여 장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딸려 들어갈 때 지른 비명이 끝나는 순간, 두 발은 이미 지면에 닿아 있었다. 꽃 냄새가 약 

냄새에 섞여 콧속을 청량하게 만들었고 따뜻한 기운이 전신을 감쌌다.

청인자는 급히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바로 옆에서 반선노인을 발견했다. 

“헉!”

“이놈 이거, 곤륜제자 맞아? 방울 단 놈이 무슨 겁이 그렇게 많아?”

반선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청인자는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말했다. 

“귀곡이라니까---. 근데 여기가 귀곡이에요? 세상이 이렇게 갑자기 변할 수도 있는 겁니까?”

그렇게 물을 만 했다. 귀신들의 골짜기가 모두 이렇게만 생겼다면 누군들 귀신들과 더불어 살기를 마다하겠는가. 

밖은 밤인데 안은 늦은 오후나 된 것처럼 안온한 빛이 곡내를 비추고, 보지도 듣지도 못한 기화이초가 만발하고, 기암괴석이 

웅자를 드러내며, 곤륜에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활엽수들이 수십 종 그 푸른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곡 중앙에는 따뜻한 기운이 뭉클뭉클 솟아오르는 작은 연못이 있으며, 곳곳에 다람쥐와 사슴 등이 뛰놀고 있으니 귀곡은커녕 

가히 별유천지(別有天地)라 할만한 곳이었다.

반선노인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맞아, 귀곡.”

순간 청인자가 벌컥 화를 냈다. 

“이건 너무 하잖아요? 불공평합니다.”

반선 노인이 놀란 눈으로 청인자를 응시하자 청인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다 쓰러져 가는 누각 몇 채에 여든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삽니다. 겨울이면 씻지도 못하고 몇 겹을 껴입은 채 발만 동동 

구르는데, 귀곡이라더니 이게 뭡니까? 곤륜을 귀곡의 세분이 소유한 겁니까? 이렇게 좋은 환경이 있으면 개방하여 함께 살면 

좋잖아요? 나이가 들면 욕심도 준다 했는데, 아야!”

청인자가 머리를 주무르며 반선 노인을 노려보았다. 반선노인도 지지 않고 노려보면서 쌀쌀맞게 대답했다. 

“넌 임마, 이런 환경이 느닷없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건 사람의 공이 들어간 것이다. 이쪽은 내 전문이 아니라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만, 귀무 뭐라 하는 진으로 계절의 흐름을 막고, 지맥을 읽어 온천수를 끌어들이고,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모두 사천과 운남에서 일일이 옮긴 것이라더라. 귀신 늙은이가 이곳을 이렇게 변화시키려고 이십 년 이상을 

고생했다. 근데 어떻게 하냐? 그 귀신이 사람을 싫어하는데. 내가 여기 끼어 살려고 얼마나 알랑방귀를 뀌었는지 너 알아? 

아냐, 아냐. 너 따위가 알면 뭐해. 임마! 이런 곳에서 살려면 적어도 반선은 되어야지. 수행하는 도사가 거친 환경을 

싫어해? 이 호랑말코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저기 저 집에 가서 처박혀 있어. 가서 귀신 늙은이 데리고 올 테니까.”

집이라고 해봐야 조금 큰 오두막이라 부러울 것이 없을 텐데도, 청인자의 눈에는 그마저 근사하게 느껴졌다. 청인자는 뚱한 

표정을 지우지 않고 운청산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이상한 일었다. 그렇게 가슴을 박아대던 운청산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 것 말고는 별다른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온천수 

연못과 그 주변의 사슴, 다람쥐 등의 동물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청인자는 운청산의 변화가 귀곡의 환경과 상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반선노인의 초막으로 향했다. 그때 반선노인이 가다가 

돌아서서 협박조로 말했다.

“너, 내 집안에 물건 함부로 손대지마. 그러다 죽는 수가 있다. 경고했어.”

“쳇!”

청인자는 콧방귀만 뀌어 보이고 집으로 향했다. 

곤륜의 품은 광대하여 귀신도 능히 품나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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