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79)

                    *         *         *

관도에 주저앉은 청인자는 아무리 흔들어도 반응이 없는 물통을 다시 바랑에 넣고, 양 볼을 불렸다 좁히기를 반복하여 겨우 몇 

모금의 침을 만들어냈다. 청인자는 그것을 한참동안이나 입안에 굴리고 다시 바짝 마른 입술을 축였다. 

“에휴! 죽겠다. 해갈이 안되는구나. 장마철이 다되어 가는데 이놈의 해는 또 왜 이리 사나워? 아이고, 배도 고프구나.”

청인자는 이글거리며 노려보는 태양을 마주보다가 결국 외면하고 고개를 저었다. 하릴없이 관도를 바라보던 청인자는 문득 눈에 

이채를 드리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인데---.”

누가 옆에 있었다면 어이없다 했으리라. 풍경이라고 말할 것도 없었다. 관도가 있고 양옆에는 허허벌판, 그리고 그 외에는 

낮은 구릉이 하늘과 맞닿아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청인자는 퉁기듯 일어나 바랑을 든 채로 내달렸다. 그리고 곧 구릉에 

닿았다. 

“후와! 다 왔었네.”

청인자가 바라보는 풍경은 구릉 뒤에서 보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넓은 장강이 도도히 흐르고 바로 그 앞으로는 작지 

않은 마을이 넓게 퍼져 있었다. 

청인자는 제자리에서 쿵쿵 뛰어 먼지를 털어내고 손바닥을 급하게 움직여 얼굴과 머리를 털었다. 그리고 도포자락으로 얼굴과 

목에 묻은 땟물을 훑어냈다. 

“원시천존! 가호를 내리시어 무사히 풍도에 도착했습니다. 그럼 감사히 배 채우겠나이다. 원시천존!”

청인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구릉을 내려갔다. 풍도현에 이르러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묻던 청인자가 마침내 제법 규모가 있는 

객잔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미시 말에 이르렀는지라 객잔 안은 그리 바쁘지 않았다. 겨우 탁자 둘 만이 손님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창가 아닌 

가장 안쪽의 조용한 곳에 자리 잡은 청인자는 소년티를 갓 벗은 점소이가 차를 내려놓자마자 벌컥벌컥 들이켰다. 

“도사님! 묵으시렵니까? 아니면 식사만---.”

점소이가 의례적인 친절이 드러내며 말했다. 청인자는 찻잔의 마지막 물기로 입술을 축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청인자는 갑자기 검결지를 지어 소년에게 내뻗으며 말했다.

“원시천존! 보셨나이까? 갈증 난 도사에게 차부터 권하는 친절한 아입니다. 천존께서 보우하시어, 이 소년이 젊어서 부자 

되고 중년되어 다복하며 나이 들어 건강하게 하옵소서.”

순간 점소이의 얼굴이 절로 지어지는 미소를 참느라 실룩거렸다. 바로 그때 청인자가 찻잔을 내밀며 말했다. 

“이보게. 여기 요사동(姚沙童)이라는 사람이 있나? 여기 있다고 들었는데---.”

점소이는 공손히 차를 따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사동? 그런 사람 모르겠는데요? 이름 참 희한하네요.”

청인자가 흐릿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래밭에서 싸질렀다고 사동이라네. 근데 정말 모르나? 이리로 옮겼다고 들었는데. 청해성 출신으로 키가 오척이 조금 넘고 

얼굴은 순둥이 같이 생겼지.”

순간 점소이가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를 보이다가 말했다. 

“청해성 출신이라구요? 그러면 혹시 총점(總店) 형님? 으응? 총점 형님 성이 요씨인 건 맞는데---, 이름이 

“총점? 일단 가서 물어 보게나. 곤륜에서 청인자가 왔다고 해봐! 반색을 하면 내가 찾는 사람일세.”

청인자는 다시 차를 벌컥 들이킨 후에 안으로 들어가려는 점소이의 손에서 차 주전자를 은근슬쩍 잡아챘다. 점소이가 싱긋 

웃으며 차 주전자를 놓았다. 점소이가 사라지자 청인자는 아예 주전자를 입에 대고 차를 부었다.

“아이고, 도사 형님! 이게 얼마만입니까요?”

오척 단구에 눈 꼬리가 쳐진 순한 얼굴이지만 몸은 다부진 청년이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청인자에게 달려왔다. 청인자는 차 

주전자를 내려놓고 목으로 흘러내리는 찻물을 닦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사동이 네 이놈! 전에 있던 곳에서 어디로 갔는지 말해주지 않아 찾느라고 혼났다, 이놈아!”

청년은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얼굴로 청인자의 손을 덮치듯 잡았다. 

“도사 형님! 이놈 때문에 고생하셨군요. 죄송합니다.”

청년 요사동은 청인자의 손을 잡은 채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청인자가 빙긋 웃으며 왼손으로 요사동의 손을 토닥였다. 

“총점이라면 점소이 두목이 아니냐? 규모도 작지 않고 장식도 번듯하니,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게로구나. 고생했다.”

“이 바닥을 십 년 굴러 이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다면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어야지요.”

청인자는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잡힌 손을 빼내어 바랑을 열고 편지 한 장을 꺼냈다. 순간 요사동이 편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읽는다?”

청인자가 말하자 요사동은 다시 침을 삼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청인자가 편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이놈아, 사동아. 에미다.

삼시세끼 잘 먹고 밑으로도 잘 통하냐?

그럼 된 거다. 위아래가 잘 통하면 만사형통이라더라. 막혔으면 얼른 의원님 찾아서 뚫어야 한다. 알겠지?

이 에미는 잘 있고, 줄줄이 네 동생들도 건강하다.

그런데 이 에미, 걱정이 있다. 막둥이가 머리통 좀 컸다고 자꾸 너 있는데 간다고 고집 부린다. 이걸 어쩌냐? 너 먹고 

살기도 힘든데 그 놈까지 가면 힘들겠지? 

두드려 패서 잡고는 있다만, 이놈이 언제 도망갈 줄 모르겠다. 어쩌냐? 

아이고! 내가 쓸데없는 소리 했다. 신경 꺼라. 

그리고 너 좋아하는 양육과(羊肉菓)를 만들었는데, 진인께서 너한테 가려면 석 달 보름 걸리고 또 사천이 더우니 쉬 썩을 

거라 하시면서, 말리시더라. 먹였으면 좋았을 것을---. 

어쨌든 우리 모두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 통하거라. 

에미가.”

가능하면 대필할 때 들었던 그때의 감정과 억양을 살리려고 노력한 청인자는 편지를 다 읽고도 고개 들기를 망설였다. 안 봐도 

어떤 상황인지 뻔히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요사동의 경우면 신객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나은 상황에 속했다. 먹고 살기 힘든 청해성에서 잘 살아보겠다고 

만리타향으로 나오는 젊은이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개중에는 요사동보다 더 크게 성공한 사람을 찾아볼 수 있지만 채 일 푼도 안되는 일이고, 칠 할 이상은 어렵게 연명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렇기에 요사동처럼 신객을 반기고 편지를 전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은 찾아가는 사람의 반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 반은 혹시 고향에서 돈을 보내지 않았을까 기대하는 이들도 있고, 그런 이들 가운데서는 신객이 중간에서 농간을 부려 

돈을 빼돌렸다고 억지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크게 성공한 몇몇 이들에 비하면 나은 편이었다. 간혹 성공하여 금의환향(錦衣還鄕)하는 사람들도 몇이 있지만, 

대개는 부모형제 몰라라 하고 신객 만나기를 꺼려하며, 혹시 만나더라도 신객에게 선심을 쓴다는 듯한 표정으로 돈 몇 푼 

던져주고 마는 이들도 있었다. 

청해성 한인들의 청탁이 모이면 신객 일을 해야 하는 청인자로서는 그런 인간들의 부모에게 소식전하는 것이 가장 힘겨운 

일이었다. 

그러나 청인자와 요사동은 청해성에 살 때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래서 요사동의 품성을 잘 알고 있었다. 

청인자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에그!”

예상대로 요사동은 얼굴에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청인자가 쥐고 있는 편지 끝자락을 잡고 있었다. 

“사동아! 내 보기에도 네 어머니 건강하시더라. 네 동생들도 잘 있고. 아! 네 동생 일화(一花)가 딸을 낳았다. 

예쁘더구나.”

청인자가 편지를 놓으며 말하자, 겨우 눈물을 수습한 요사동은 거꾸로 인 채 편지를 자신의 앞에 놓고 물었다. 

“정말이죠? 모두 잘 있죠?”

청인자는 요사동이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사동이 콧물을 훌쩍이며 웃었다. 그때 청인자가 어깨에 

힘을 빼며 축 늘어졌다. 순간 요사동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다시 물었다. 

“거짓말이에요?”

“배고파서 그런다, 이놈아!”

청인자의 대답에 요사동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급히 일어섰다. 

“조금만요, 도사 형님! 한상 거하게 차려 올릴게요.”

후다닥 뛰어가던 요사동이 급히 다시 돌아와 식탁 위에 놓인 편지를 고이 접어 품에 넣었다. 청인자는 요사동의 뒷모습을 보며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답장을 뭐라 써줘야 할지 빤히 보이는구나. 굶주린 내 배야, 잠시만 기다려라. 사동이가 거한 음식으로 위로해 

준다는구나.”

청인자가 배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다가 눈길을 돌려 문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련한 눈빛이 되어 다시 중얼거렸다.

“풍도라! 예까지 왔으니 이제 강만 건너면 되는가? 몇 년 만인지---. 십 년이 넘었는가?”

아련했던 청인자의 눈빛이 설렘으로 바뀌었다. 

자의 눈물은 더 뜨겁다. 1

글보기 화면설정

댓글 부분으로

고치기

지우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