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79)

                 *           *           *

닭울음소리가 새벽을 깨운 지 반 시진 가량 지난 때였다. 한 밤중에 깨었다가 어느새 다시 잠이 들었던 경의상은 품속에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에 다시 잠에서 깼다. 그 꿈틀거림은 어느새 하나의 작은 인영으로 변하여 경의상의 품에서 벗어났다.

실눈을 뜬 경의상은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검은 인영을 지나 방문을 바라보았다. 방문이 은은한 붉은 끼로 물들어 있었다. 

경의상도 부스스 소리를 내며 무거운 몸을 일으켜 호롱불을 밝혔다. 

문 쪽으로 다가가던 작은 인영이 몸을 돌렸다. 이제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소동은 구부정한 허리를 펴고 경의상을 

바라보았다. 

경의상이 말했다. 

“청봉아! 벌써 나가려고?”

소동은 대답 없이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경의상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소동은 다시 돌아서서 문을 열고 나갔다. 

그때 경의상이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밥 때 놓치지 말고 돌아와야 한다.”            

소동이 다시 돌아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서 방문을 닫았다. 

경의상은 잠시 동안 닫힌 방문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누웠다. 

“하! 몸이 예전 같지가 않아. 요즘 들어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아직은 힘을 잃으면 안되는데, 저 어린 것이 

홀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는 정정해야 하는데---. 무정한 놈! 아무리 관심두지 말라 했다고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고 

산단 말인가?”

경의상은 환히 웃는 운녹산의 얼굴을 떠올렸다. 오년 전, 검각산 요물 소탕이 있었던 그날부터, 운검정과 운녹산 부자 

사이에는 해빙기가 찾아왔다. 그때부터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운녹산은 과거의 위상을 회복했고 얼굴에 웃음도 되찾았다. 

그러나 유독 운청산에게만은 웃음 짓지 않았다. 가끔은 안쓰럽다는 눈빛을 보내기도 했지만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았고 포옹 같은 

애정표현은 아예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경의상도 그것을 당연시했다. 애초에 그녀가 그리 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운녹산의 운청산에 대한 관심은 

가히 무심이라고 할 정도여서, 경의상은 가끔씩 운녹산이 운청산을 꺼려한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래서 청산이 아비 없는 자식이냐, 한번쯤은 안아주는 것이 어떠냐 했더니만, 운녹산은 슬픈 눈빛으로 운청산에게서 자꾸 

이청수가 떠올라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경의상은 운청산이 불쌍해서 눈물짓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얼굴에 귀기가 어렸다 하여 하인 시비들마저도 형식적으로 대할 뿐 

진정을 보여주는 이들이 없었다. 

다만 운검정이 운녹산과의 감정을 푼 이후 경의상에게 올 때마다 운청산을 안아주었지만, 운청산은 늘 울었고 걷게 된 이후로는 

운녹산을 피하듯 운검정마저 피했다.

그러니 경의상은 더더욱 운청산을 싸고 돌 수밖에 없었다. 한때는 공평무사하고 온화한 노마님 소리를 들었으나, 이제는 

운청산만 감싸는 늙은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었다. 그렇게 경의상이 애지중지 키웠으나 운청산은 모든 것에 늦었다. 젖을 떼는 

것도 늦었고, 걷는 것도 늦었고, 대소변을 가리는 것도 늦었다. 더구나 입은 아예 떨어지지 않아서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경의상으로서는 안타까워서 미칠 노릇이었다.

혹시 벙어리에 바보는 아닌가 의심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울음소리 분명한 것을 보면 목소리가 안나오는 건 아닌 것 

같았고, 말하는 것에 즉각 반응하는 것을 보니 바보도 아닌 것 같아 그나마 안심하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우는 일이 없는 대신 어린아이답지 않게 늘 인상을 썼다. 얼마나 괴롭게 얼굴을 찡그렸는지, 잘생긴 이마 한 

가운데와 미간에 굵은 주름살이 패여 있었다.

그래서 또래의 아이들마저 이상하다고 운청산을 피했다. 벙어리, 바보라고 놀렸다. 어떤 때는 운청산이 자기보다 나이든 

아이들에게 다가가기도 했는데, 아이들은 하나 없이 운청산을 외면했고, 운청산은 그럴 때마다 소리 없이 눈물 흘렸다.

그래서 운청산은 외톨이였다. 운청산이 하는 일은 동이 트는 순간이면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을 찾아가며 하루 종일 해를 

따라다니는 것과 밥을 먹는 것이었고, 해가 떨어지는 순간이 되면 다시 경의상에게 돌아와 그녀의 주변에서 놀다가 잠자는 

것뿐이었다.

“아! 저리도 착한 것을---. 잘 때가 아니면 손 하나 타지 않는 아이인데, 왜 그리들 싫어하는지.”

경의상은 다시 한번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운청산은 해를 좋아했다. 해가 보이지 않아도 그 온기만 느낄 수 있다면 그쪽을 바라보았다. 해가 뜨면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빛이 눈부셔도 실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추운 날에도 뜨끈한 방에 앉아있기보다는 두텁게 껴입고라도 해를 맞이해야 

편했다. 

혹시라도 비 오는 날이면 운청산은 하루 내내 경의상의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녀가 측간 갈 때도 따라다녔다.

운청산이 그렇게 해를 좋아하는 이유는 늘 보이는 것들이 태양빛을 피해 그의 머리 뒤로 숨는 탓이었다. 

물론 운청산은 한 여인을 좋아했다. 다른 것들과는 달리 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는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싫어하는 여덟을 보지 않기 위해서는 슬플지라도 좋아하는 하나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기억 저편에서부터 보아왔기에, 무섭게 느꼈던 것도 차츰 익숙해졌다. 무슨 말인가를 

하면서 윽박질러도 눈살을 찌푸리는 것으로서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가끔은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 때가 있었다. 기억에 없는데도 깨어보면 알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울고 있을 때가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기억이 끊기기 전에는 반드시 여덟 가운데 누군가가 해석이 잘 안되는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마구 윽박지르고 

울고 애원했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있던 자리에 없고 이상한 환경에서 깨어났다. 

운청산은 다만 그런 상황이 싫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들이 사나운 모습으로 나타날 

때는 항상 해가 지는 순간이었다. 해도 없고 주위에 경의상도 없는 때를 틈타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운청산은 거의 하루도 예외 없이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해를 쫓아다녔고 해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경의상에게로 

돌아갔다. 경의상의 손짓과 눈빛 그리고 따사로운 목소리와 함께라면 이상하게도 그것들조차 얌전해지는 탓이었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그늘로 숨어들 때가 있었다. 여덟의 곁다리가 끼는 건 싫었지만 여인의 환한 미소를 잊지 않기 위해서.

“으아! 이놈이 또 나간다. 형수! 제발 이놈 좀 말려줘요. 힘 빠져 죽겠단 말이오. 상처가 타는 것 같이 아프단 

“내가 어떻게요? 내 말도 안들리는 것 같은데. 난 좋아요. 청산만 편하다면 조금 아파도 좋아요.”

“왜? 왜 안 보려는 거야? 우리 아들 좀 보겠다는데, 우리 마누라 좀 보겠다는데, 왜 보지 않으려 하는 거야? 청산! 이 

자식아!”

“쳇! 형님 같으면 지금 우리 모습 보고 싶겠소? 아이고 따가워라. 저리 좀 비켜 봐요. 나도 좀 숨게. 어디까지 말했지? 

맞다. 어쨌든 참으라구요. 그냥 한 집에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란 말이오. 언젠가는 이놈이 우리말을 알아들을 날이 

있지 않겠소.”

“뭐라고, 이 자식아? 너 죽어 볼래?”

“어이 씨팔! 내 말이 뭐가 틀렸어? 좋아, 한번 붙어보자고.”

두 시진을 한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몸만 돌려 해를 보고 있던 운청산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열 발자국쯤 앞으로 나아갔다. 

운청산이 갑자기 얼굴을 찌푸렸다. 눈앞에 그늘이 생긴 것이었다. 

뒤로 두 발자국 물러선 운청산은 조금 열린 문을 바라보며 망설였다. 해를 따르다보면 가지 않는 곳이 없었고 이제는 사람들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직 한곳 목향각만큼은 가기가 꺼려졌다.

그곳은 이상하게도 거리가 느껴지는 아버지가 사는 곳이었다. 거리가 느껴진다 해도 그 혼자만 산다면 못 들어갈 것도 없지만 

무서운 여자가 있었고 귀찮은 남자아이들도 둘이나 있었다. 

망설이던 운청산은 결국 문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연못을 가르는 운교를 건너기 전이라면 들키지 않을 수도 있는 까닭에 용기를 

낸 것이었다. 

햇볕은 그 대가를 주었다. 실눈을 뜨고 태양을 바라보았다. 머리 속에서 째쟁거리는 소음이 들렸지만, 벌써 수년 동안 

들어왔던 소리여서 무시해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평온하고 포근했다. 운청산의 이마 주름살은 엎어 놓은 바가지처럼 

둥그렇게 휘어졌고 입술은 슬며시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한동안 햇볕을 즐기던 운청산은 갑자기 들려오는 기합성에 놀라 눈으로 소리를 따랐다. 연못 건너편에 세 사람이 

있었다. 운녹산과 목검을 든 운교인이 마주 서있었고 운강인은 구경하는 듯 바위돌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운청산은 자신도 모르게 운녹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운녹산은 막 청룡팔영을 시전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운교인에게로 다가갔다.

“교인아, 청룡팔영은 전혀 진전이 없구나. 도법에 치중하느라 신법이 드러나지 않아. 신법이 받혀주지 않으니 도법 또한 

망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 도법과 신법이 그렇게 따로 놀아서는 아니 된다. 특히나 청룡팔영의 경우 신법이 단순히 도법을 

펼치기 위한 보조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상대의 전신을 찍고 짓눌러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또 다른 묘수를 지니고 

있느니라. 그런데 너의 경우, 허리 아래쪽에서는 청룡팔영의 묘미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심각한 표정으로 경청하고 있던 운교인이 미간을 찌푸리자 운녹산은 말을 끊었다. 그리고 수련을 위해 쌓아놓은 통나무들에게로 

다가가 그 가운데 가장 굵직한 통나무를 손으로 찍어 허공으로 던졌다. 

높이 일장에 굵기가 사람 몸통만한 그 통나무가 운교의 두 치 앞으로 떨어져 삼분지 일쯤 땅에 박혔다. 꼿꼿이 선 통나무는 

여섯 자 정도로 조금 큰 사람의 키 높이와 비슷했다. 

운교인이 의아한 듯 운녹산을 바라보았다. 

“말보다는 직접 보는 것이 낫겠지? 강인이와 함께 이 장 밖으로 물러서라.”   

운교인과 운강인이 이 장 밖으로 물러서자 운녹산은 통나무와 일 장의 거리를 두고 낮게 몸을 날렸다. 

파르르르!

옷자락 펄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운녹산의 신형이 통나무를 중심에 놓고 나선형으로 휘돌았다. 순간 그의 신형이 하나둘 씩 

나뉘어져 어느 여덟으로 늘어났다. 높낮이와 위치가 다른 여덟의 운녹산이 하나같이 통나무를 바라보며 손을 내뻗고 발을 

휘둘렀다. 

통나무가 낮은 신음성을 흘리는 순간 수십의 파편들이 허공을 튀어 올랐다. 그리고 여덟의 운녹산은 어느새 하나가 되어 

운교인과 운상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녹산은 손짓하여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두 아들들을 불렀다. 운녹산은 두 아이들에게 통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국을 살펴보아라.”

아이들이 통나무로 다가가 천천히 한 바퀴 돌면서 아래부터 위쪽까지 샅샅이 살폈다. 통나무의 하단부에는 돌에 맞은 듯한 

뭉툭한 자국들이 많았고 중단에는 하단부의 자국과 온갖 사선들이 뒤섞여 있었으며 상단부에는 불규칙하게 겹치는 사선들이 

지배적으로 많았다.  

운녹산이 다가갔다. 

“이제는 청룡팔영에서 신법이 가지는 의미를 알겠느냐? 사선은 도를 대신한 수도 자국이다. 이렇게 안으로 깊이 찍힌 것은 내 

발끝에서 나온 경기가 만들어낸 자국이다. 이 또한 너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공력을 낮추고 속도도 떨어뜨린 것이니라. 대략 

오성의 성취도라 할 수 있겠지.”

운교인이 선망의 눈빛을 드러내며 물었다. 

“제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지요? 어찌하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운녹산은 흐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운교인의 머리를 툭 쳤다.

“권련백편(拳練百遍)이면 신법자현(身法自現)이요---.”

운교인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권련천편(拳練千遍)이면 기리자견(其理自見)이라. 즉 권을 백번 단련하면 신법이 절로 드러나고, 권을 천번 단련하면 권리가 

절로 보인다.”

운녹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알고 있구나. 구결을 알고 방법을 알며 자질 떨어지지 않는데 무엇이 걱정이냐? 부단히 노력하면 절로 깨치게 될 

것이다. 생각은 단지 한 가지, 모든 움직임에 뜻이 있음을 알고 나서 공수를 막론하고 헛된 놀림을 없애는 것, 그것에만 

집중하면 되느니라. 백간불여일련(百看不如一練)이라 했으니 해봐야지?”

운교인은 운녹산이 박아놓은 기둥을 상대로 청룡팔영을 펼쳤다. 통나무가 반발하니 허공에 펼쳐대는 것보다 더 큰 파탄들이 

드러났고, 그때마다 운녹산은 일일이 교정하여 주고 “다시”를 외쳤다. 

수십 번을 반복하자 대체로 둘 혹은 셋의 신형을 만들어 내니 운교인은 자못 고무된 표정을 지었고 운녹산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운녹산의 입에서 쉬자는 말이 나왔다. 그때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운강인이 운녹산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빠! 나도 청룡무상도를 배울래.”

운녹산이 운강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때 운교인이 다가와 운강인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넌 아직 안돼, 임마. 이 형도 열두 살부터 시작했는데---.”

운강인이 입술을 쭉 내밀며 얼굴을 구겼다. 운녹산이 달래듯 말했다. 

“그래. 형 말대로 강인이 네가 시작하기에는 아직은 무리가 있구나. 하지만 우리 강인이는 형을 따라 본 게 많으니 

내년부터는 시작할 수 있을 게다. 그러나 넌 청룡무상도가 아니라 주작화운창부터 배워야 해.”

운강인이 내년부터 할 수 있다는 말에 실망감을 버렸다. 그러나 주작화운창을 먼저 배워야 한다는 말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왜 나는 주작화운창부터 배워야 해?”

운녹산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 

“강인이가 지금까지 배웠던 내공심법은 무엇이었지?”

“응! 본가의 금련오엽진결 가운데 화기를 일으키는 주작기.”

운녹산이 다시 말했다. 

“왜 그것부터 익힌다고 말했지?”

운강인이 잠시 기억을 더듬은 후에 대답했다. 

“내가 몸속에 금기가 많아서 불로 적당히 태울 필요가 있다고 했어.”

운녹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화령결이 적당하다 할 때가 되면 토기를 일구고 다시 금기와 수기 그리고 목기를 다듬어 몸속에 다섯 장의 꽃잎을 

품은 꽃씨를 만든다 그랬지? 그때부터는 네 성정과 적합한 백호기을 집중적으로 키워 금엽을 이루고 그 기운을 옮겨 다시 

수엽을 이루고 또 다시 목, 화, 토엽을 연속적으로 이루어 끝내 금련화(金蓮花)를 이루게 되는 것이야. 자 이제 생각해 

봐라. 네가 익히는 주작기에 제일 잘 어울리는 무공이 뭐지?”

운강인이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주작화운창.”

운녹산은 다시 운강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운강인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그래도 형처럼 청룡무상도를 배우고 싶은데---.”

정원의 작은 바위돌 위에 걸터앉은 운강인이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눈에 이채를 띄었다. 

“형! 바보 귀신이다.”

운교인이 눈을 치뜨며 말했다. 

“저 자식이 그렇게 오지 말라고 그랬는데도---.”

운교인이 운개교로 달렸다. 그 뒤로 운강인이 따랐다. 운녹산이 운청산을 발견하고 아이들을 말리려고 손을 뻗다가 운청산이 

화들짝 놀라며 급히 집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운녹산은 그래도 여전히 문 쪽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며 몸을 날렸다. 운개교를 통하지 않고 바로 연못을 가로지른 운녹산은 

방금 전 운청산이 쪼그리고 앉아있던 그 자리 앞에 내려섰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문밖까지 나갈 기색을 드러내는 두 

아이들을 말렸다. 

“너희들 동생이다. 사이좋게 지내야지.”

순간 운강인이 운녹산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바보 귀신이 왜 우리 동생이야? 엄마도 싫어하는데---.”

운녹산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배 앓아 낳은 자식이 아니라 하더라도 분명히 자식은 자식 아닌가. 경의상이 운현산과 

운경산에게 하듯이 따뜻하게 대하지는 못해도, 자식들에게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을 드러내면 안될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운녹산이 갑자기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크크큭!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그 사람에게 기대해? 말도 안되는 생각! 그러고 보니 내가 현산을 이리 대했던가? 

청수야! 미안하구나. 네 생각하면 이래서는 안되는데, 난 그 아이가 꺼림칙해. 용서해라.’

이제 열네 살이 된 운교인은 아비의 표정을 읽고 반항하려는 기색을 거두었다. 그리고 운강인의 어깨를 짚어 다시 운개교로 

향했다. 

운녹산은 두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저것으로 되었어. 지들끼리라도 우애가 있다면 된거야.”

운녹산은 멍한 얼굴로 돌아서서 한동안 운청산이 사라진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다시 돌아서려 했다. 

“응?”

운녹산은 방금 전 운청산이 쪼그리고 앉아있는 그 자리에 나뭇조각 하나와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음을 발견했다. 두 개의 

비슷한 그림이었다. 가운데 작은 원이 있고 그 원의 주변으로 작은 빗금들이 수백 개 그어져 있었다. 그 옆의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운녹산은 아예 쪼그리고 앉아 그 그림을 유심히 살폈다. 

“아! 이것은? 그렇군. 이것은 청룡팔영의 신법이다. 이 빗금들 하나하나가 모두 내 발과 얼추 일치한다. 그리고 이 옆의 

그림은 교인의 것? 그렇군. 그래서 이렇게 빗금이 모자라는구나.”

운녹산은 눈을 부릅뜨며 벌떡 일어나 문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운녹산은 다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끄트머리만 남긴 채 누각 뒤로 숨어있었다. 

랑을 아는 아이는 가슴으로 말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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