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79)

  

여느 때와 달리 운가의 아침이 부산스러웠다. 젊은이들이 대연무장으로 모여들었고, 장년인들과 초로인들이 천의각 근처에 몇몇씩 

무리를 지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천의각의 문이 열렸다. 다섯 명의 초로인과 장년인들이 이야기를 멈추고 천의각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억지로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외로이 서있던 운녹산이 따랐다. 

운검정의 집무실에 들어서니 이미 운검정과 보천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운검정의 손짓에 따라 초로인과 장년인들이 탁자 위에 

놓인 검각산의 모형 주위에 둘러섰다. 

주위를 둘러보던 운검정이 운녹산을 발견하고서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는 되었으니 나가 있거라.”

순간 방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냉각되었다. 초로인과 장년인들이 운검정의 눈치를 보며 운녹산을 힐끔거렸다. 그들의 눈에는 

여실한 동정의 기운이 감돌았다. 

장차 운가를 계승할 후계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처럼 취급되니 안쓰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이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는 금의대에 속해있던 젊은이의 아비 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운녹산이 살아 돌아왔을 때 분노하여 책임을 묻자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운녹산에 비견될 만한 자질을 가진 젊은이도 

없는데다가 운검정이 무참하게 홀대를 하는 것을 보다 보니 차마 공론화시키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이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도 운검정의 박대는 심해져만 가서, 옆에서 보는 이들은 그 누가 되었건 간에 

운녹산을 측은해 하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 운녹산에게는 개인적으로 처숙이 되는 보천자가 자리한 곳에서마저 드러내놓고 박대하니 안절부절못하는 이들은 오히려 

초로인과 장년인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 냉기를 깨고 나선 이가 보천자였다. 

“소가주에게 물어 볼 것도 있고 하니 동석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주.”

보천자는 운녹산이 아직 공식적으로 소가주가 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 운녹산을 칭할 때면 

언제나 소가주라 불렀다. 하지만 거기에는 누구도 따로 토를 달지는 않았다. 

운검정은 미간에 잡힌 주름을 반 정도 풀고서 턱짓으로 빈자리를 가리켰다. 운녹산은 참담한 심정을 억누르며 보천자의 맞은 편 

자리에 섰다. 

보천자가 운녹산에게 흐릿한 미소를 지어보이고서 운검정에게 말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운검정이 목례해 보이고 말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보천자가 목례로 답해보이고서 검각산의 모형을 둘러싼 사람들의 면면을 훑어 그들의 시선을 한데 모았다. 

“하루 이틀 전에 생겨난 문제가 아니니 모두들 대충은 아시리라 믿습니다. 빈도가 어제 소가주와 함께 검각산의 봉산결계를 

점검하고 산의 기운을 느껴보고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결계는 무탈했으나, 참요검 결계의 기운에 상처 입은 요물들의 살기가 

빈도의 뼈골까지 와 닿더이다. 조금만 더 지체한다면 요물들로 인한 폐해가 천북 땅 곳곳에서 나타날 뻔 했습니다. 그래서 

내일, 만월이 되어 음기가 최고조로 달하면 운가의 정예들이 모두 입산하여 요물들을 일거에 퇴치하기로 하였습니다.”

보천자가 잠시 말을 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동요하지 않았다. 다만 소소한 질문이 던져졌다. 

“대체 요물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진인?”

백염이 군데군데 섞인 멋들어진 수염에 호안(虎眼)을 지닌 초로인의 질문이었다. 그가 바로 운검정의 둘째 동생이며, 

무림에서는 호협(虎俠)이라고 알려진 운한정(雲寒精)이었다. 

보천자는 그 내용의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 바로 대답했다. 

“빈도가 참요검의 영력으로 결계를 친 지도 벌써 일 년이 지났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참요검이지만 악기나 

살기를 지닌 원혼들은 감히 그 기운에 대항하지 못하고 힘을 잃고 말 테지요. 문제는 원래부터 산에서 살아가던 생명들입니다. 

이 검각산은 예로부터 많은 피를 본 곳이고 또한 도적들이 들끓던 곳이었으니, 그동안 쌓인 피와 원한과 살기가 어찌 적다고 

하겠습니까? 애초에 산세 자체가 살기를 품고 있는데, 시신을 파먹은 동물들과 피와 주검들의 원백(怨魄)을 영양분 삼아 자란 

수목들이 어찌 미물다운 삶을 살아가겠습니까? 그것들이 제 수명을 잊고 호귀(狐鬼), 사귀(蛇鬼)는 물론이요, 황귀(黃鬼)와 

백귀(白鬼) 그리고 회귀(灰鬼)들이 되어 들끓고 있더이다. 또 그것들이 제 본분을 잊고 수목귀(樹木鬼)가 되어 피를 

갈구하고 있더이다. 그러니 지금의 검각산은 달리 요마산(妖魔山)이라 불러도 가히 틀린 이름이 아니올시다.”

“어허, 이런! 내 안 그래도 예전부처 검각산을 볼 때마다 기분이 찜찜하더니만---. 코앞에서 그 따위 요물들이 들끓고 

있었구나. 허면 진인! 우리가 내일 일제히 산으로 가서 그깟 미물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오? 여우와 뱀이야 원래 요물 

소리를 들으니 그렇다 쳐도 족제비나 고슴도치는 물론이고 쥐까지---, 쯧쯧쯔.”

운한정이 얼굴을 찡그리며 혀를 차는 순간, 단정하고 차분한 모습의 초로인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따위 미천한 요물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꼭 참요검 봉산결계가 필요했을까요, 진인?”

낮았다고 들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명료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보천자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초로인의 얼굴을 주시했다. 

자신이 한 일의 당위성을 의심받아서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보천자는 다만 초로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금의대원 운명산의 아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대답을 잠시 늦춘 것뿐이었다. 

그의 어조 속에서 느껴지는 억제된 슬픔을 동정하기에,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을 

그때 운검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기정!”

그저 이름을 부른 것뿐이었건만, 운검정의 첫째 동생이며 강호에서는 다정검객이라 불리는 운기정은 눈을 감았다 뜨고 나서 

보천자에게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결례했습니다, 진인.”

보천자는 같이 포권을 취해 사과를 받고 다시 운한정과 운기정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창피해 하거나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올시다. 고양이가 아무리 사나워도 몽둥이 하나 든 장정 앞에서는 여전히 

고양이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방안에 갓난아이밖에 없을 때는 다른 문제지요. 그와 다를 것이 없는 이치입니다. 검각산의 

요물들 가운데 가장 미천한 요력을 지닌 회귀라 할지라도 두엇만 모이면 장정 하나 발기발기 찢는 것은 문제도 아니올시다. 

그것들은 또 영악하여 자신보다 강한 기세를 드러내는 인물에게는 몸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산의 인근 마을을 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보시지요. 그 결과는 명약관화한 일이 될 것입니다.”

보천자는 잠시 말을 끊고 좌중의 반응을 살폈다. 운기정을 포함한 모두가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천자는 

운기정에게 눈길을 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빈도가 참요검 봉산결계를 펼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사악한 기운이 산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는 것이 

첫째요, 지속적으로 상처 입혀서 화를 돋우는 것이 둘째며, 요물들을 소탕하는데 있어서 주무기로 사용하는 것이 셋째입니다. 

이미 언급했습니다만, 오늘 산을 살펴보니, 봉산결계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목적은 충분히 달성되었더이다. 이제 남은 것은 

소탕하는 일뿐이지요. 그러나 내일 저녁 그것들을 처치하려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준비는 요물들을 

감당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된 까닭이 아니고, 한 놈이라도 놓쳐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할까봐 두려운 탓입니다. 소가주, 

준비하라 한 것은 모두 구했던가?”

운녹산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르신 대로 길이 아홉 치가 넘는 동경 이백 개에 모두 칠성을 새겨 마련해 두었고, 괴황지(槐黃紙)와 경면주사 역시 

넉넉히 준비해 두었습니다만, 시간이 촉박하여 가로 한 치에 세로 한 치 반의 목패 이백여 개를 만들만큼의 벽조목(霹棗木)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해서 미처 여쭙지 못하고 나머지 백 사십여 개의 목패는 벽조목 대신에 도화목로 만들었습니다.”

보천자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말했다.

“그렇지.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그 짧은 시간에 쉽게 구할 수 있겠는가? 복숭아나무로 대체한 것은 잘한 일이네. 효력이 

떨어지기는 하네만 그것만한 것도 없지. 역시 일을 맡길 만 하구먼.”    

운녹산은 송구하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여 보천자의 웃는 눈을 외면했다. 그때 운검정이 건조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정도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지요. 계속하시지요.”

운녹산은 운검정의 무정한 눈길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보천자는 운녹산을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오늘 내일, 빈도는 소가주가 준비한 것들로 벽사퇴마부와 명목망귀부를 만들 것입니다. 그것들과 동경 그리고 참요검이 있다면 

능히 요물의 간사함을 알아차리고 남김없이 처치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이곳과 이곳 그리고 이곳 등 몇몇 곳의 요기가 제법 

강하니 가주께서는 인원 편성에 주의를 기울이셔야 할 겁니다.”

보천자가 검각산의 모형에 손가락을 짚어가며 설명을 끝내자 운검정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그간의 희생이 적지 않은데 어찌 가볍게 일을 처리하오리까? 걱정하지 마시오.”

말끝에 운검정의 눈길이 운녹산에 이르러 차갑게 변했다. 그러한 행동은 작은 듯하지만 누구나 쉽게 눈치 챌 수 있는 일이기도 

해서 방안의 공기는 다시 싸늘하게 냉각되었다.

운녹산은 절로 악다물어지는 이빨을 힘겹게 벌리고 슬픈 눈빛으로 하소연하듯 운검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운검정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한 몇 분의 의견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팽팽하네요. ^^;;;

제 편의를 위해 우선 일안을 따르겠습니다. 연참을 기대하신 몇 분께서는 이해하시기를...

한숨, 가슴 속 응혈이 시원하게 풀리는

탁탑천왕 신당 앞에서 재초(齋醮)를 행하는 보천자와 두 제자들은 도관에 무당음양장포(武當陰陽長袍)까지 걸치고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학우선(鶴羽扇), 왼손에는 칠성법검(七星法劍)을 든 보천자가 제자들이 두드리는 소고에 맞춰 너울너울 춤을 추다가 

삼두육비의 탁탑천왕의 신상 앞에 멈추어 섰다.

보천자는 법검과 학우선을 제자에게 건네고 한 자 길이의 향 두 자루에 불을 붙인 후에 탁탑천왕의 발 앞 제단으로 다가가 

연신 허리를 접었다.

보천자는 서른여섯 번이나 잇달아 허리를 접은 후 향을 향로에 꼽고 나서 조심스럽게 두 발을 물러섰다. 보천자는 다시 

품안에서 노란 부적 한 장을 꺼내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곧추세우고 진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퇴마천장 탁탑천왕께서는 신당에 강림하시어 요마로부터 고통 받는 인간들에게 천력을 빌려 주사이다.”

보천자는 왼손으로 오른손에 쥐어진 부적을 나누어 쥐고 찢듯이 좌우로 벌렸다. 순간 한 장이던 부적이 아홉 장으로 늘어나 

보천자의 가슴어림에서 허공을 부유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보천자가 부적의 아래쪽을 받히듯 두 손을 휘두르자 부적의 

아래쪽에서 불꽃이 피어올라 순식간에 타서 사라져버렸다.

기이한 일이 생겼다. 부적이 타서 생긴 연기는 신당의 문이 사방으로 활짝 열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짙어져 노란 구름 되어 일렁거렸다. 그 구름들은 곧 탁탑천왕의 발밑을 감싸고 서서히 돌아가면서 이내 탁탑천왕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때 보천자가 느닷없이 오른손을 뒤로 뻗어 낮게 소리쳤다.

“검!”

순간 제자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검첨을 잡아 칠성법검의 검파를 보천자의 손바닥 위에 놓았다. 보천자는 검을 가슴 앞으로 

가져가 하늘을 향해 곧추세웠다. 

보천자의 전신이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금새 칠성법검의 검신마저 부르르 떨렸다. 그 순간 보천자의 전신에서 장엄한 

서기가 뻗고 입에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만령을 억압하는 듯한 굵고 엄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오오오! 인간들을 불쌍히 여겨 나 탁탑천왕이 강림하였으니, 이제 천도(天道)가 다하고 삼진(三辰)과 오성(五星)이 

이루어지며 일월(日月)이 구비되었도다. 

깊은 곳에서 나오고 은밀한 곳으로 들어가 영기가 도를 떨치고 영기가 만신(萬神)과 통하니 영기가 끝내 사악함을 몰아내어 

귀신이 소실되어 사라지라라. 

영안(靈眼)을 보는 요마, 눈이 멀 것이고, 

영언(靈言)을 듣는 사귀, 귀가 멀게 될 지어다. 

감히 나의 영력에 대항하는 사마요귀가 있다면 재앙을 면치 못하리니, 영력의 전수자는 길하고 요마사귀는 흉하리라.”

보천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이상한 목소리가 멈추는 순간, 보천자는 검을 늘어뜨리고 잠시 휘청거렸다. 그러나 이내 몸을 

추스른 보천자는 두 손으로 검파를 모아 쥐고 탁탑천왕에게 절을 한 후 신당을 나섰다. 

보천자는 신당 앞에 운집해 있는 운검정을 비롯한 운가 사람들을 일별하고 신당의 좌측에 세워진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에는 넓은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가로 세치 세로 다섯 치 정도의 괴황지와 경면주사유가 담긴 백자기 수십 

개가 놓여 있었으며 그 옆으로 굵기가 다른 붓 몇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탁자 옆에 기다리던 운녹산이 보천자에게 다가가 수건을 건넸다. 보천자는 말없이 수건으로 얼굴과 목과 손의 땀을 닦아내고 

다시 운녹산에게 건넸다. 

보천자는 운녹산을 일별도 하지 않고 오른손 엄지손톱으로 중지 끝을 찍어 피를 냈다. 피가 경면주사유에 뚝뚝 떨어졌다. 

보천자는 곧 붓을 들어 경면주사유를 휘저어 피와 경면주사유를 섞였다. 그리고 이를 세 번 마주친 후에 빠른 속도로 붓을 

놀려 괴황지에 붉은 선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가히 신필(神筆)이요 속필(速筆)이라 할 만한 운필(運筆)이었다. 쉬지 않고 붓을 놀림에도 불구하고 괴황지에는 그 크기와 

굵기가 일정한 부적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렇게 반 시진이 흘렀다. 제자들의 수발을 받으며 붓을 놀린 보천자가 어느새 이백여 장의 벽사퇴마부를 완성하고 마침내 긴 

숨을 내쉬었다. 

보천자가 두 제자들에게 말했다. 

“가져가 나누어 주거라. 그 동안 잠시 쉬겠다.”

두 제자들이 운녹산의 몫을 제외하고 나머지 벽사퇴마부를 조심스럽게 거두어 천막 밖으로 나갔다. 

부적을 조심스럽게 거둔 운녹산은 보천자의 귀밑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보고 다시 수건을 건넸다. 보천자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어제 보니 자네 마음고생이 여간 아니더군.”

운녹산이 슬픈 눈빛을 감추며 힘없이 말했다. 

“자초한 일이니 감수해야 한다고 매번 다짐합니다만 견뎌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도 기정 숙부님과 짝을 지워주시며 처숙께서 

짚으신 가장 흉험한 곳으로 자리배정을 하셨습니다. 위험에 앞장 서는 것이야 당연한 일입니다만, 기정 숙부님과 한 조를 

이루어주시는 것은 정녕 감당하기가 힘듭니다.”

금의대 몰살의 책임을 홀로 감당하여야 하는 운녹산에게 죽은 금의대원의 아비를 짝으로 지워준 일은 누가 생각해도 잔인한 

일이리라. 

보천자가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운녹산을 바라보다가 수건을 탁자에 놓고 운녹산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하늘이 인간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에는 반드시 그 까닭이 있는 법이네. 참게. 그리고 성심성의를 다하여 대답을 찾으시게. 

모든 의문의 진원은 결국 자신에게 있으니 시련을 당당히 마주하다 보면 결국에는 좋은 결실을 보게 될 걸세. 내 보기에는 

오늘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군.”

운녹산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천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 가볼까? 사마요귀들을 소탕해야지.”

보천자를 따라 천막을 나선 운녹산은 보천자와 헤어져 운가 사람들에게로 다가갔다. 운녹산은 산기슭 신당 앞에 도열한 수많은 

운가의 노소들이 일제히 자신을 보고 있다고 느꼈다. 

운녹산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당당한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대열의 선두에 있는 백염초로인 운기정의 앞에 

이르렀다. 

운녹산은 공손히 허리를 접었다. 운기정이 복잡한 심사를 그대로 드러내는 눈빛으로 운녹산을 빤히 바라보다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운녹산은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운기정의 옆에 섰다. 그때 대열의 앞쪽에서 이야기하던 운검정과 보천자가 운가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보천자가 원시천존을 연호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여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헛기침으로 뜸을 드리다가 마침내 큰 

소리로 말했다. 

“유시(酉時) 중반쯤 된 것 같소이다. 앞으로 두 시진 후, 그러니까 해시 중반까지는 여러분이 모두 각자 정해진 위치에 

있어야 하오. 날이 거의 저물었으니 멀리 가야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무리를 지어 결계를 가로질러 움직이시오. 결계 안에서 

홀로 돌아다니면 요물들이 떼로 달려들어 위험을 당할 수도 있소이다.”

보천자는 혹시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하여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정해진 자리에 기다리다 보면 반이 묻힌 탁탑참요검의 검신에서 붉은 비단 장막이 쳐지는 것 같은 변동이 있고나서 

탁탑참요검이 솟아오를 것이오. 여러분들은 그때를 기다렸다가 세 번의 호흡이 지나기 전에 조금 전에 나누어 준 벽사퇴마부를 

검이 나온 자리에 놓아주시오. 그렇게 되면 벽사퇴마부는 참요검을 대신하여 반나절 동안 결계를 대행하게 될 것이오. 그렇소. 

반나절이오. 그 반나절 만에 우리는 검각산의 요물들을 모두 퇴치하여야 하오. 뜻대로만 된다면 내일부터 여러분은 탁탑참요검의 

안위를 살피기 위해 원치 않는 검각산 일주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잔뜩 긴장해 있던 운가 사람들 가운데 특히 젊은이들이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힘을 잃었다 하여도 명색이 산신이 쥐고 있는 검이었다. 그러니 쉽게 빠져나갈 리 만무했다. 장정 둘이 붙어서 용을 

써도 힘으로 빼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장장 칠년의 노고가 기울여진 참요검 봉산결계였으니 만사불여튼튼이라는 말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날마다 검각산을 돌아다니며 결계가 훼손된 곳이 없는 지 확인해야만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결계를 치기 이전에 이미 검각산을 지나는 안전한 길을 개척하고 안내하고 밤길을 다니는 사람을 통제한 것은 칠 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껏 계속된 일이었다. 

고된 일이라기보다는 그렇게 쓰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러니 하지 않아도 된다는 보천자의 농담 섞인 말은 별로 웃기지 않는 

어조에 비해 많은 웃음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

보천자가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 참요검을 들고 결계 안으로 들어서면 예정된 대로 노소가 한조를 이루어 함께 움직이시오. 회귀 같은 것들은 요력이 

미천하다 해도 그 수가 많으니 방심하면 다칠 수도 있소이다.”

보천자가 다음 할 말을 정리하듯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가 다시 말했다. 

“만월이 떴소이다. 음기가 가장 성한 날이지요. 귀신, 요물의 힘 또한 성하게 될 것이오. 그럼에도 굳이 이런 날에 대사를 

치루는 뜻은, 상처입어 화가 난 요물들이 평소보다 더 강한 힘을 얻었으니 도주하기보다는 달려들기 쉽기 때문이오. 그러나 

그들의 본신요력이 참요검까지 지닌 여러분들에게 결코 댈 바가 아니니, 외형에 두려워하지 말고 주저 없이 참요검에 기를 

주입하여 베어버리시오. 초식은 의미가 없소. 참요검이 알아서 할 것이오. 그러나 자신의 영역을 가지고 주변을 군림하는 몇몇 

요물들의 힘은 상당할 것으로 생각되니 책임을 맡은 사람들은 작은 것에 힘쓰지 말고 책임만 다하시오.”

보천자는 말을 끝맺고서 곁에 기다리고 있는 운검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운검정이 보천자에게 포권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시간이 없으니 긴말 하지 않겠다. 다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희생이 있었으니, 그 희생이 헛되지 않게 깔끔하게 

마무리하도록 하자. 그리고 더 이상의 희생이 생기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보도록.”

운검정은 희생을 언급하는 순간부터 끝내 운녹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운녹산은 눈을 지그시 감아 운검정의 차가운 시선을 

피했다. 곁에서 흘끔 바라보던 운기정은 복잡한 눈빛을 드러내며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운검정이 오른팔을 펼쳐 검각산을 향해 뻗었다. 순간 운가 사람들이 노소불문하고 검각산을 향해 몸을 날렸다.

성난 벌 떼처럼 검각산으로 날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운검정이 보천자에게 물었다. 

“어렵지 않게 끝낼 수 있겠지요?”

보천자는 운검정의 노안에 미약하게 드러나는 불안감을 엿보며  안심하라는 듯 편안하게 미소 지었다.

“어제도 말씀드렸습니다. 요력이 간단치 않아서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할까 두려워 한다구요. 

걱정하지 마시지요. 어제 말한 세 곳의 일만 무사히 끝낸다면, 다른 곳은 대체로 수월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겁니다.”

운검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미 반쯤은 사라져버린 운가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보천자는 문득 운검정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사람이 많으니 굳이 누구를 본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나, 보천자는 직감적으로 

운검정이 운녹산의 등을 보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운검정의 눈빛에 종전의 차가움이 아니라 걱정스러움이 배어 있음도 

깨달았다.

참요검의 결계를 거두고 다시 벽사퇴마부로 임시결계를 친 보천자는 결계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두 제자들과 함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신법을 펼치지 않고 쉬엄쉬엄 걷다가 막 작은 구릉을 하나 넘는 순간, 전면에서 귀청이 찢어질 듯한 

날카로운 울음소리들이 연이어 들려왔다. 

보천자와 두 제자들은 전면에 펼쳐진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찌지지지지지지직!”

과연 회귀들이 가장 많았다. 다 큰 고양이만한 쥐들을 요괴라고 불러야 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곤두서서 하얗게 보이는 

털들이 한 치에 이르고, 검은 눈은 유리알처럼 번들거리며, 이빨들 역시 한 치가 넘어 보였다. 그것들을 마주대하면 

고양이들도 감히 대항할 생각 못하고 달아날 것만 같았다.

가히 회귀라고는 부를만한 그런 쥐들 이십여 마리가 십여 장 위쪽에서 학익진을 펼친 듯 보천자의 전면에 포진하여 내려다보고 

있었다.

“과연! 이 산의 악기를 먹고 자란 놈들 가운데 그 능력이 가장 미천할 것인데도 저런 위세를 부리니, 그 동안 이 산중에서 

사라진 고혼들이 얼마나 많았을꼬? 그저 호환이나 당한 줄 알았겠지만 결국 저런 귀물들에게 살을 뺏기고, 또 다른 요물들에게 

정기를 빨려 능력을 키워줬을 따름이리라.”

보천자가 말을 끝내는 순간, 

“찌익!”

이십여 마리의 회귀들 가운데 유독 커다란 놈이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자 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회귀들은 지독히도 빨랐다. 한번 도약할 때마다 일장을 움직이고 땅에 닿는 즉시 다시 도약했다. 그것도 모자라 어떤 놈은 

높이 뛰고 어떤 놈은 낮게 날아 서로 교차하여 자리까지 바꾸어가며 달려들었다. 

“허허, 그놈들 참! 본능이 제 구실을 못하니 나 같은 사람마저 알아보지 못하고 달려드는구나.”

보천자가 흡족하게 미소 짓는 순간 두 제자들이 좌우를 호위하듯 붙어 섰다. 보천자가 먼저 검결지를 모아 진언을 외우며 

칠성법검을 부드럽게 휘두르자 두 제자들도 횡으로 법검을 휘둘렀다. 

법검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무인의 검에서 느껴지는 검기와는 사뭇 달랐다. 

대개의 검기는 내공의 성질이 어떠하든 간에 뇌전처럼 쾌속하고 얼음처럼 차가우며 야차처럼 살기가 넘쳐흐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상대를 상처 입혀야 하는 무공의 속성 상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러나 주사 빛 법검의 기운은 아지랑이처럼 너울거리며 손짓하고, 붉은 비단 금침처럼 부드럽고 포근해 보이며, 부처의 

서광처럼 신비하고 장엄해서 일부러라도 빠져들고 싶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눈에서는 악기를 뿜어내며 손톱과 발톱은 살기로 무장한 채 달려들던 회귀들은 법검의 기운을 대하는 순간, 불현듯 

주춤거리며 몸을 낮추어 피하려 했다. 그러나 느린 듯 보이던 법검의 기운은 어느새 격랑이 되어 회귀들이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공간을 점령해버렸다. 

유혹의 물결에 말려든 회귀들은 허우적대다가 비명을 토하고 곧 불길에 휩싸여 바닥에 떨어졌다. 

법검의 기운으로부터 겨우 벗어난 회귀들은 세 마리에 불과했다. 그 짧았던 한 번의 부딪침이 살아남은 회귀들에게는 본능을 

일깨워 준 것 같았다. 곤두세웠던 털들은 모두 몸에 밀착되어버렸고, 송곳 같던 이빨은 입속으로 숨겨졌으며, 요악한 살기가 

번들거리던 눈은 어느새 두려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가련한 몸짓과 두려운 눈빛으로 눈치를 보던 회귀들이 동시에 몸을 비틀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순간 보천자가 법검을 휘둘렀고 

두 제자들이 작은 목패를 던졌다. 

“찍!”

조금 전과는 다른 예리한 주사 빛 기운에 대장 회귀가 두 쪽으로 갈라져버렸고, 목패에 맞은 나머지 두 마리 회귀들도 

단말마를 남긴 채 불길에 휩싸였다. 

두 제자들이 목패를 회수할 때까지 보천자는 걸음을 멈추고 검각산의 중심에 위치한 대장군봉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끝낼 수 있을 것 같구나. 회귀들마저 이리도 광분을 하는데 다른 놈들이야 오죽하려고.”

그때였다. 

“끼야야야야악!”

산의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괴음들이 연달아 들려오고 있었다. 보천자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리가 아님을 

즉시 알아차리고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 어디쯤일 텐데---. 아무튼 더 가보자꾸나.”

보천자는 법검을 쥔 채 뒷짐을 쥐고 나아갔다. 누가 보면 산책을 나왔다고 할 만큼 유유자적한 움직이었지만, 보천자는 사요한 

기운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걷는 와중에도 주변을 두루 살피던 보천자는 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번득이는 붉은 기운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각을 걷던 보천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렇지. 이쯤에는 있어야지.”

이상한 장소였다. 만월이 산을 비춤에도 불구하고, 보천자의 눈앞에 있는 장소만은 유독 어둡고 칙칙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동굴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단지 주위에 바위들이 얽혀 작은 공간을 만들었을 뿐이고 주변의 흙들이 유독 검고 

칙칙할 따름이었다. 

그 공간에 이상한 것이 하나 있었다. 공간의 느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움. 어둠 속이라 더 눈에 띄는 하얀 피부의 

나녀가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그것으로 가슴과 치부를 가린 채,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어허! 구중궁궐에나 있어야 할 경국지색이 산중에, 그것도 벌거벗은 채로 떨고 있단 말인가?”

보천자가 말하는 순간 여인이 고개를 비틀어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어둡고 칙칙하던 공간 전체가 환해졌다.

“하!”

보천자의 좌우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얼굴을 드러낸 여인은 환상적이라 할 만큼 아름다웠다. 달빛마저도 경배하는 듯 하여, 월궁의 항아가 강림했다 해도 믿으리라. 

옥같이 고운 피부 달빛 받아 반짝이고, 삼단 같은 머리카락 막 감은 듯 촉촉하며, 물기어린 눈빛의 처연함은 안아서 같이 

울어주고 싶을 만큼 슬펐다. 

보천자가 좌우를 힐끔거리고 혀를 찼다. 그리고 뒷짐 진 채 들고 있던 칠성법검을 좌우로 휘둘러 두 제자들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넋을 잃고 있던 두 제자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보천자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 동안의 수련이 헛된 것이로다. 이놈들! 어디 돌아가서 보자꾸나.”

두 제자들이 감히 보천자를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때 보천자가 여인을 향해 웃으며 물었다. 

“그래, 처자는 사람의 말을 하는가?”

여인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보천자를 슬픈 눈으로 바라볼 따름이었다. 

“쯧쯧쯧. 사람을 알아보고 벙어리 짓을 해야지. 아니면 식사 후에 입이나 닦던가. 회귀를 먹었나? 모자라면 저 밑에 많이 

있는데.”

그때서야 두 제자들도 여인의 입술 왼쪽에 희미한 핏자국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여인은 오돌오돌 떨면서 빨아들일 듯한 

눈빛으로 보천자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보천자가 웃으며 두 제자에게 말했다. 

“저것은 과연 사람의 말을 할 줄 모르는구나. 입을 벌리면 아마도 새 소리는 좀 낼 것이니라. 몇 해나 묵었겠느냐?”

보천자의 질문에 두 제자 가운데 왼쪽에 선 제자가 대답했다. 

“삼백 년은 족히 넘었지 싶습니다.”

보천자가 말했다. 

“그렇지. 꼬리를 살펴보니 대충 삼백오십 년은 묵은 듯 보이는구나. 오십 년에 사람으로 변신할 능력을 얻고 백년이면 저런 

경국지색으로마저 변하는 것이 여우니라. 곧 새의 말을 배우고 이어 사람의 말을 배우면 그 폐해가 막심했을 터인데, 그나마 

다행이로구나. 오십 년만 더 살게 두었다면 저것이 사람의 말을 하리라. 결국 마을로 숨어들 것이고 곧 사람들을 홀려 정혈을 

마음껏 들이마셨을 것이다. 그리 되면 영산에서 수련한 천녀호(千年狐)가 아쉽겠느냐? 천년호야 천지자연의 영기만 마시고 

사람들의 정을 취하지 않으니 호선(狐仙)이라고도 불리지만, 저것이 그리 된다면 이 사부는 감히 당적하지 못할 요괴가 

되리라.”

보천자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말을 하면서도 웃음까지 곁들여가며 여유를 부렸다. 

“호! 보아라. 저것의 눈빛이 변했다. 꼬임에 빠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서 눈치를 보는 것이야. 너희 눈에는 저 꿈틀대는 

꼬리들마저 보이지 않는 것 같으니, 동경을 비춰라.”

오른쪽 제자가 품속에서 직경 아홉 치가 넘는 동경을 꺼내 여인에게 비스듬히 내밀었다. 바로 그 순간 만월의 빛이 동경에 

부딪치고 이내 여인에게로 뻗어나갔다. 

“끼아아아아악!”

웅크리고 있던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암처를 벗어나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만월 아래 여인의 둥근 가슴과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보천자의 제자들은 더 이상 현혹되지 않았다. 

굳이 술법에 연연하지 않더라도 선도에 입문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바로 닥나무의 빨간 열매를 장복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바로 명목망귀술의 근본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요력이 뛰어난 백여우의 변신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더라도 달빛 아래 드러난 상태애서까지 알아보지 못할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눈에는 지금 털이 곤두선 꼬리 네 개의 여우도 아니고 늑대도 아닌 요물이 보일 따름이었다.

십여 장을 튀어 오른 백여우가 발톱과 이빨을 세 치나 뽑아내고 바위를 밟은 후 보천자를 향해 쇄도했다. 순간 보천자가 

코웃음을 쳤다.

“흥! 아직은 멀었다. 천봉천봉(天蓬天蓬), 구원살동(九元殺童), 고도북공(高刀北功), 엄가기룡(嚴駕夔龍), 

위검신왕(威劍神王), 참사멸종(斬邪滅踪)!”

보천자가 진언을 외우며 음양장포를 잡고 두 팔을 활짝 폈다. 순간 벌어진 장포 안쪽에서 영롱한 기운의 주사 빛 그림이 튀어 

올라 부적의 형태로 점점 커지며 내려오는 백여우의 몸을 감쌌다. 

“끼아아악!”

백여우의 두 앞발이 교차하며 휘둘러지자 허공에 그려진 붉은 부적에서 불꽃이 튀어 올랐다.

“호오! 제법 묵은 요물이라고 뇌정소요신술(雷霆燒妖神術)을 견뎌내는구나. 하나---.”

보천자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끝내기도 전에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오위뇌신(五位雷神), 강림멸사(降臨滅邪)!”

보천자가 허공에 그려진 부적 뒤에서 검결지로 만든 두 손을 번갈아 교차하여 다섯 번이나 부적의 네 귀퉁이와 중앙을 찔렀다. 

그 순간 뒤로 밀려나던 부적에서 금빛 광채가 솟구쳐 올라 백여우의 전신을 강타했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악!”

백여우가 비명을 토하며 바닥으로 털썩 떨어졌다. 보천자는 허공에서 부적을 내리눌러 백여우 덮었다. 또 다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이불처럼 백여우를 덮었던 부적들이 타올랐다가 연기로 화해 사라졌다. 

바닥에 내려선 보천자는 시커멓게 그을려 연기가 솟는 백여우의 몸뚱이를 바라보며 장포의 옷깃을 여몄다.

“보았느냐? 만월의 정(精)은 원래 극음(極陰), 여우 역시 음기가 강한 동물이다. 그러니 원래대로라면 약이 될 것이지만, 

조요경(照妖鏡)으로 반사시키니 금수(金水)의 정(精)이 섞여 곧 독으로 작용하는구나.”

두 제자들은 좋은 공부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천자는 두 제자들에게서 눈을 떼고 산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요사한 비명소리가 대장군봉 가까이 이른 것을 보니 일이 순조로운 것 같구나. 하나 백여우의 요력이 뇌정소역신술을 견딜 

지경이면, 법술을 모르는 운가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낭패를 당하는 수도 있으리라.”

보천자는 다시 한번 귀를 쫑긋거려 사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가자는 말도 없이 허공으로 몸을 뽑아 올렸다.

숨, 가슴 속 응혈이 시원하게 풀리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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