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79)

   

          

“흐아! 좋아! 다 왔어. 검각산을 지날 때는 축축하고 찜찜한 것이 기분이 엿 같더니만, 이 냄새를 맡아 봐! 집에 

왔다구.”

“그래, 우리 드디어 집에 온 거야. 가 봐야지. 먼저 갈게. 억! 뭐야? 놔! 왜 잡아? 가고 싶어. 가고 싶다고. 왜 

갈 수 없는 거야?”

“으아아아아아아!”

“제발! 소리 지르지 말아요. 청산이 또 울잖아요. 제발! 우리 청산이 편히 살 수 있게 해주세요.”

“안돼! 나, 가야 돼. 보고 싶단 말이야. 으아!”

“청산아! 으흐흐흐흑! 놓아 줘. 나 갈 거야. 제발 놓아 줘.”

장창을 든 적의무복 차림의 두 청년이 곽자렴을 향해 포권을 취해보였다. 곽자렴이 고맙다 말하고 포권을 취해 보이자, 

청년들은 다시 검각산을 향해 사라졌다. 

“후! 다행이구먼. 혹시라도 산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운가 사람들 덕에 겨우 빠져나왔어.”

곽자렴의 말처럼 좁고 평탄치 못한 길은 어느새 사라지고 마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이 뻗어있었다. 그 길을 따라 

민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곽자렴은 말을 상초소이가 탄 말 옆에 바짝 붙이고 고개를 숙여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아기는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뭔가 

편치 않은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곽자렴은 측은한 눈빛을 드러내며 아기에게 손을 뻗었다. 

“자게 내버려 두면 안 됩니까? 여간 신통한 게 아닙니다. 이렇게 오래 자는 건 처음입니다.”

상초소이의 말에 곽자렴은 고개를 저었다. 

“안되네. 아기의 혈을 오래도록 짚어 두는 것은 건강에 좋지 못하네. 아이가 하도 울어대니 혹시라도 성대가 뒤집히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여 수혈을 짚었으나, 지금은 우는 것이 차라리 나을 걸세.”

검각산의 초입에 이르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조심씩 커졌다. 무엇이 그리 불안한지, 검각현에 다다르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아예 

산을 찢어놓을 것만 같이 울어댔다. 

두 사람이 안절부절못했던 것은 당연했다. 우는 것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지만 성대가 뒤집혀 기도가 막힐 정도로 울어 제치니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이었다. 

곽자렴은 배가 고파서 그런 것은 아닐까 짐작했다. 어른이야 반나절 굶는 것이 무슨 대수일까 마는 아이로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리라.  

상초소이는 아니라고 말했다. 배가 고파 우는 울음소리는 이미 다른 울음소리와 구별할 수 있다했다. 배가 고플 것은 틀림이 

없었지만 그 이유로 산이 흔들리도록 울지는 않을 것이라 말했다.  

상초소이가 아기를 어르느라 정신이 없는 동안 곽자렴은 결국 지난 이틀 동안 손대지 않았던 아기의 수혈을 짚고 말았다. 

그렇게 강제로 재운 수법에 상초소이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런 수법이 있었다면 왜 진작부터 하지 않았냐고 물었었다. 

그런데 지금 곽자렴이 그 신통한 수법을 해제해 버렸고 눈을 뜬 아이는 다시 소리쳐 울었다. 

“어서 가세. 밥 한끼 먹을 시간이면 운가에 당도할 것이니 빨리 가서 먼저 젖어미부터 찾아보세.”

상초소이는 아기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릿한 불빛을 흘리는 민가들을 스치면서 곽자렴은 의아한 구석을 발견했다. 어둡다 하나 이제 겨우 저녁을 먹고 배를 두드릴 

술시 중반이었다. 측간으로 향하는 사람 하나쯤은 보일만도 한데 민가들은 불빛만 흘릴 뿐, 사람의 기척을 드러내지 않았다.

“허! 전과는 많이 다르구나. 검각산 입구에서부터 운가 사람들이 길 안내를 하는 것도 그렇고, 산에 따로 길을 표시해 둔 

것도 그렇고, 저녁 전에는 벗어나야 한다고 길을 재촉하는 것도 이상하다 했더니만, 산을 벗어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 모든 

것이 탁탑참요검과 연관이 있는 일인가?” 

의아한 점이 많았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는 곽자렴으로 하여금 의문을 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거기다가 불빛이 점차 많아지고 

마침내 사람의 모습도 하나 둘씩 드러나, 곽자렴은 결국 의문을 지우고 말았다. 

검각현의 중앙에 들어서자 그때서야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생기가 느껴졌다. 사람들이 길가를 오가고 주루에서는 

네댓 명씩 모여 술 마시는 광경도 보였다. 

곽자렴도 구석 한 자리 차지하고 한 잔 술로 갈증을 해소하고픈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번에도 아이는 짧은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유혹을 뿌리친 곽자렴은 마침내 검각현의 현청을 지나 유달리 커 보이는 천북제일무가 운가의 대문 앞에 이르렀다.

“크흐흐흑!”

“왜 이러는 거야? 왜 갈 수 없는 거야? 가고 싶어!”

“끄흑! 드디어 왔는데---. 이 방을 나서서 담 하나 지나면 거기에 내 아이가 있고 마누라가 있는데---. 왜? 어째서 

갈 수 없는 거야? 가고 싶어!”

“젠장! 시끄러! 우리 못 간다니까. 우리는 청산을 벗어날 수 없어. 저주 받았다 그러잖아. 조용히 찌그러져 있으란 

말이야. 씨팔! 아파. 우리 마누라가 보면 “호” 해 줄 텐데. 보고 싶다.” 

“큰어머니? 큰어머니시다.”

“대부인? 그래, 대부인이야.”

 의미를 초라하게 만드는 검박한 방이었다. 그러나 상초소이에게는 그마저도 번잡한 듯, 우는 아이를 어르며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상초소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차 거칠어져 갔다. 아마도 영빈각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눈살을 찌푸리리라. 

곽자렴은 그토록 큰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에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작은 입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바로 그때 문이 열리고 궁장 차림의 노부인이 들어섰다. 환갑에 가까운 얼굴이었지만 세로로 흐르는 주름살 하나 없어 고아한 

기품이 느껴졌다. 그녀가 바로 운가의 안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대부인 경의상이었다. 

경의상은 의아한 눈빛으로 울고 있는 아이와 상초소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점 찌푸림도 없이 상초소이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상초소이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경의상에게 건넸다. 

기적이 생겼다. 단 한번 눈을 마주친 것뿐이었는데,  곽자렴을 초조하게 만들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잠시 

후, 아이는 가슴 벌렁거리는 거친 숨소리만 남긴 채 울음을 멈추었다. 

경의상은 그때서야 곽자렴에게 시선을 주었다. 곽자렴이 먼저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곽자렴이 운대부인을 뵙소이다.”

경의상도 목례를 했다. 

“많은 수고를 끼쳤거늘 그때는 경황이 없어 미처 인사 나누지 못했지요. 헌데 무슨 일로 집안일밖에 모르는 이 아녀자를 

만나자 하셨는지---.”

경의상은 눈짓으로 곽자렴에게 앉기를 권했다. 그리고 자신도 탁자 건너편에 앉았다.

곽자렴은 대답 대신 물었다. 

“운 대공자도 같이 뵙자 청했습니다만---.”

경의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해 들었으나 녹산은 지금 본가에 없습니다. 무당으로 떠난 지 사흘 되었지요.”

곽자렴은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문득 아이가 경의상의 품속에서는 울지 않는 것을 깨닫고 눈을 치떴다. 곽자렴은 의아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경의상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핏줄인가? 아! 결례했습니다. 운가의 죄인 곽모가 가주께 먼저 인사 올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만, 먼저 

대부인을 청한 이유는--- 바로 안으신 그 아이 때문입니다.”

경의상은 더욱 더 의문에 차 곽자렴을 바라보다가 이제는 숨이 잦아든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경의상이 계속 말하라는 듯 

곽자렴의 눈을 잠깐 바라보았다. 

곽자렴은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궁리하다가 문득 상초소이에게 말했다. 

“등짐을 주게.”

상초소이는 등짐을 벗어 곽자렴에게 건넸다. 곽자렴은 등짐을 열어 두 개의 나무판과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금패를 꺼내 

경의상 앞에 놓았다. 

경의상은 의아함 가득한 눈빛으로 그것들을 살폈다. 왼손으로 먼저 금패를 집어든 경의상은 문득 무언가를 느낀 듯 급히 금패를 

내려놓고 거친 칼자국이 난무하는 판자를 집어 들었다. 

분명히 글자들이었다. 그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글자들이 아니었다. 경의상은 왼손으로 한자 한자 더듬어 그 뜻을 

헤아렸다. 

운 가가. 

사랑하면서 행복했습니다. 

기다리면서 슬펐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보여줄 아이가 있기에 견뎠습니다.

몸은 먼저 가게 되었지만 가가 곁에 아이가 있는 한 청수도 함께 있습니다. 

아이가 행복하면 청수도 행복합니다. 

경의상은 붉어진 눈으로 곽자렴을 직시하며 물었다. 

“죽었습니까?”

곽자렴이 되물었다. 

“아이 어미의 존재를 아셨습니까?”

경의상이 고개를 끄덕이자 곽자렴도 슬픔의 눈빛을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경의상의 질문에 대답했다. 

경의상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자 아이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경의상은 급히 눈을 뜨며 아이에게 눈을 맞췄다. 순간 

아이의 울음소리는 다시 잦아들었다. 

경의상은 아이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기다렸습니다. 녹산이 말했지요. 지 안사람에게는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내게 의논했지요. 원래 여색에는 별 뜻이 없는 

없어 다행이라 생각했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도 간절히 원했습니다. 처음에는 호통을 쳤지요. 이처(二妻)를 취하는 것이 큰 

허물이 될 수는 없다 해도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허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어찌할 수 없는 일. 게다가 눈빛이 

변했더이다. 너무 차갑게 컸다 싶어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 말을 할 때는 온기가 돌았습니다. 단순히 색에 빠져 

나오는 눈빛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허락했습니다. 어떤 아인가 궁금해 하면서 기다렸지요. 그런데 죽었습니까?”

경의상은 왼손으로 무릎에 놓인 아이의 머리를 받쳐 들고 자신의 이마를 아이에게 가져갔다. 다시 얼굴을 든 경의상은 그때까지 

살피지 못했던 판자를 바라보았다. 

“청수의 청자에 녹산의 산을 땄군요. 깨끗한 산이라---.”

경의상은 다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청산아! 불쌍한 것! 그래, 그래. 이제부터는 이 할미와 함께 살자꾸나.”

그렇게 몇 차례 아이를 얼른 경의상은 곽자렴을 응시하며 물었다. 

“어쩌다가 죽었습니까?”

곽자렴은 흘끔 상초소이를 바라보았다가 먼저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상초소이에게 전해들은 그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전했다. 경의상은 외간남자 앞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참지 못했다. 

곽자렴이 다시 상초소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렇게 아이 어미가 가버리자 그 동안 이 사람 내외가 아이를 길렀습니다. 진즉에 아비를 찾아주고 싶었지만 우리말과 글을 

모르는 터라 운 소가주가 아비인 줄 몰랐었고 또 젖먹이를 언제 끝날지 모를 여행에 끌고 다니기도 뭐해서 지금껏 

기다렸답니다.”

경의상은 눈물이 범벅된 얼굴을 틀어 상초소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상초소이의 앞에 섰다. 

상초소이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경의상은 아이를 안은 채로 깊숙이 허리를 접었다. 

상초소이는 경의상 같은 사람이 눈물 드러난 얼굴조차 숨기지 않고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허리를 접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진심을 담은 감사의 인사임은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상초소이는 별일 아니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이를 바라보며 순박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경의상은 상초소이에게 격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목례하고서 탁자로 돌아갔다. 

“토가족이라 하셨지요? 그때 일로 큰 화를 당하고도 우리 아이들 뒷수습을 해줬다는---.”

곽자렴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경의상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곽자렴은 의미심장하게 변하는 경의상의 눈빛을 보고서 듣지 않아도 뒷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상초소이는 한 냥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더라도 결국에는 천금 보상이 이루어지리라. 

상초소이는 자신의 의도가 훼손되는 까닭에 받지 않으려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곽자렴은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내심 바랬다. 

자신과 함께 일하지 않는 이상 토가족의 살림은 크게 위축될 것이 명약관화한 일이었고, 만약 보상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으로 

상초소이가 살아가는 동안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으리라.   

곽자렴은 경의상의 또 다른 시선에 짧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가 경의상의 얼굴을 직시하자 그녀가 목례를 취하며 말했다. 

“공사다망(公私多忙)하신데 원로 마다않고 와주시니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운가가 이 사람에게 베풀어주신 후의를 생각하면 그런 말씀을 듣는 제가 오히려 부끄러워집니다.”

경의상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녀자의 소견으로도 공정한 처사였을 뿐, 후의나 은혜라 할 것이 없었습니다. 표적은 분명히 귀 표국이 아니라 본가였으니, 

강호에 몸담은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요. 더구나 오늘 저를 먼저 찾아주신 것은 정녕 사려 깊은 행동이셨습니다. 거듭 

감사합니다, 곽 국주님.”

곽자렴이 다시 말하려 했다. 바로 그때 아기가 울었다. 이때까지 잠잠했다가 갑작스럽게 터진 울음소리라 경의상은 당황했다. 

그녀는 서둘러 팔을 흔들어 아이를 얼러보았으나 울음은 계속되었다. 

그때 상초소이가 곽자렴에게 말했다. 곽자렴이 빙긋 웃으며 경의상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말하기를, 배고플 때 내는 울음소리라는군요. 그러고 보니 배가 고파도 한참 고플 때올시다. 검각산 앞에서 

젖어미를 떼어두고 왔으니, 젖먹인지 반나절이 휠씬 더 지났군요.” 

경의상이 깜짝 놀라 일어섰다. 

“원로에 노고가 쌓이셨을 테니 우선 편히 쉬시지요. 가주께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함께 뵙지요.”

곽자렴은 미소를 잃지 않고 포권을 취했다. 

“저희 걱정은 접어두시고 아이의 주린 배부터 채워주시지요.”

경의상은 아이를 허둥지둥 달려 나갔다. 곽자렴이 닫힌 방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쯧쯧쯔, 말도 못하고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그런데도 어른들 중한 의논하시는 것 알고 참았어? 놈! 장차 크게 되겠다. 

허허!”

해야 할 일을 끝낸 후라 곽자렴의 웃음은 울음소리의 여운마저 지워버렸다. 

“아! 큰어머니께서 우리를 안고 가시는구나. 그래, 어릴 때도 항상 안아주셨지. 포근했다. 우리가 밉지도 않으셨을까?”

“그렇지, 형? 빙혼귀가 밉다가도 큰어머니만 뵈면 금방 화가 풀렸지. 어머니는 왜 큰어머니를 왜 그렇게 싫어하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겉과 속이 다른 분은 아닌데. 말하니 보고 싶다. 어머니.”

“그래, 대부인께서는 늘 온화한 표정으로 우리와 놀아 주셨어. 우리들을 모아놓고 금도 타주시고 간식도 주셨지. 책을 

읽어주시고 따뜻하게 안아주셨어.”

“저 분이 운 가가의 어머니? 따뜻한 분이시네요. 살아서 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흐흐흑! 다행이야. 저 분이 우리 청산을 

길러주신다니 정말 다행이야.”

“에이! 형수님은 왜 또 울고 그래요? 나도 울고 싶잖아요. 근데 나 죽었다고 했지? 아닌데? 귀신도 울 수 있나? 으응, 

귀신도 이렇게 가슴이 뜨거워질 수 있구나. 나도 어머니가 보고 싶어. 흐흐흐흑!”

“짜지마, 이 자식아! 난 그냥 졸리기만 하구만. 응? 내가 잔 적이 있었나? 왜 이렇게 포근한 거야? 아프지도 않네. 

그냥 졸려.”

다음 날 이른 새벽, 상초소이는 운청산의 고사리 손을 쥐고서 눈물이 나도록 환하게 웃었다. 상초소이의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이별의 아픔을 무시한 채, 운청산은 야속하게도 경의상의 품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게 잠자고 있었다. 

곽자렴이 상초소이의 어깨를 잡았다. 

“그만 가세. 인연을 끊을 때는 여운을 남기지 않는 것이 좋아. 우리가 온 적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것이 저 아이에게도 

좋을 걸세.”

상초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운청산에게서 눈을 떼지는 못했다. 곽자렴이 다시 한번 어깨를 흔들자 상초소이는 마지못해 

말에 올랐다. 

곽자렴이 포권을 취해 보이자 경의상은 아쉬움이 담긴 눈빛을 드러내며 목례를 취했다. 

곽자렴도 말에 올랐다. 두 기의 인마가 막 열리는 운가의 대문을 소리 없이 빠져나갔다. 문 앞에서 상초소이가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렸다. 

경의상은 운청산의 몸을 돌려 상초소이에게 얼굴을 보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상초소이도 어색하게 목례해 보였다. 

두 사람이 경의상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경의상이 운청산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녀석, 야속하기도 하지. 만날 울기만 했다더니만, 아비 같은 사람이 떠나도 그리 자기만 하느냐? 청산아. 토가족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너 또한 없었을 게야.”

경의상은 운청산을 가볍게 토닥이면서 구름을 타듯이 부드럽게 걸었다. 그녀의 발길은 영빈각을 지나고 십여 계의 계단을 올라 

가주의 집무실이 있는 천의각(天意閣)에 이르렀다. 

천의각이 분명히 목적하였던 곳이었건만, 막상 그 앞에 이른 경의상은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경의상이 고개를 들어 천의각 

이층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동향에서 점차 그 세력을 넓히고 있는 여명과 같은 어렴풋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경의상은 다시 천의각의 문을 바라보며 발끝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나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경의상은 고개를 숙여 운청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후! 청산아. 너도 할아버지는 뵈어야겠지?”

그랬다. 운청산은 하루가 지나도록 운가의 가주이자 사적으로는 할아버지가 되는 운검정과 대면하지 못했다. 경의상의 망설임 

때문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운가에는 벌써부터 차가운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냉기의 중심에는 운검정이 있었다. 

운검정이 금의대원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호북과 귀주의 고원지역을 두루 훑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부패한 시신이라도 

수습했었건만, 운검정을 비롯한 일곱 사람만이 자식들의 시신을 거두지 못했었다. 

그 가운데서도 운검정의 슬픔은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은 하나 혹은 둘이었지만 그는 셋이면서 

모두를 잃었다. 

자식을 잃은 아비의 슬픔만으로 운검정은 충분히 힘들었다. 그러나 운검정은 온전히 아비의 심정만을 내세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는 사천의 사대세력 가운데 하나이며 전 무림의 일곱 세가 가운데 하나인 사천 운가의 수장이었다. 그가 잃은 세 아들은 

장차 운검정의 뒤를 이을 종통이었고, 결국 운검정은 후계자 모두를 잃은 것이었다.

세 아들에게는 역시 세 아들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 하나를 후계자로 선정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운검정은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다.   

개인의 슬픔을 삭이기도 힘든데 그렇게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 운검정 앞에 운녹산이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굳이 

운녹산이 아니더라도 종통이 이어질 것인데 이미 내정된 운녹산이 돌아왔으니 운검정으로서는 얼마나 기쁜 일이었겠는가.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운검정은 너무 기뻐서 홀로 눈물을 흘렸었다. 

문제는 그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하나가 돌아오니 아버지로서 나머지 둘이 그리웠던 것일까. 그렇게 기뻐하던 운검정이 돌연 

싸늘해졌다. 

운녹산을 볼 때마다 눈에서는 한기가 솟구쳤고 코에서는 삭풍이 몰아쳤으며 말끝에는 가시가 돋았다. 운녹산이 운현산 형제를 

미워하여 일부러 죽였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났다. 세월은 결코 약이 되지 못했다. 운녹산을 대하는 운검정의 기운은 여전히 냉랭하기만 했다. 아니, 

오히려 더 냉담해져서 부자지간의 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나아가서는 경의상과의 부부지정까지 약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경의상이 운청산을 보이지 못한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해진 탓이 아니라, 운검정이 이청수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만약 그것을 알게 된다면 나쁜 감정이 흐르는 와중에 좋은 해석이 나올 턱이 없다 짐작한 

탓이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곽자렴 또한 운검정과 대면하지도 못한 채 새벽에 세가를 떠나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 미루어 둘 수 없는 일이었다. 우선 미룬다 하여도 언젠가는 운검정의 귀에 들어가리라. 

경의상은 직접 듣지 않고 돌고 돌아 들어가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지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운녹산이 힘들어지더라도 정확하게 

상황을 전달하는 것이 운청산에게는 좋으리라. 

경의상은 답답한 마음을 심호흡으로 달래고 천의각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밟을 때마다 쿵쿵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았지만 경의상은 멈추지 않고 가야할 방 앞까지 이르렀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광경이 펼쳐졌다. 수백 수천 번 드나들었던 방이었다. 익숙한 건 당연해도 

생소할 까닭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소한 것이 있었다.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니, 방 중앙 탁자 위에 전에 없던 검각산 칠십이봉의 모형이 있었다. 점토로 빚은 듯한데 드문드문 

푸른색으로 희박한 나무군들을 표현하였고 회색으로 거친 암석군도 만들어 놓아, 마치 실물을 축소한 듯 정교하게 느껴지는 

모형이었다.

그러나 모형만으로 생경함을 느꼈다는 것은 뭔가 이상했다. 모형을 보는 것은 처음일지라도 이미 익숙한 칠십이봉이었고 벽에도 

수천 번은 흘려봤을 칠십이봉도(七十二峰圖)가 걸려있었다. 

경의상은 자신이 과연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방안을 훑었다. 이상하면서도 슬픈 일이었다. 정작 경의상에게 생소한 

느낌을 준 것은 모형이 아니라 익숙하다 못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남편 운검정이었다. 

운검정은 탁자 앞에 서서 모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틀림없이 경의상의 존재를 알고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의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경의상은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았다. 그리고 한발 더 다가가 말했다. 

“의논할 것이 있어요.”

슬픔이 묻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여 말하려 했었다. 그러나 말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흔들렸다. 

그때서야 운검정이 고개를 들어 경의상을 바라보았다. 경의상은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무심해도 너무나 무심한 얼굴이었다.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도 보내지 않을 눈빛이었다. 입을 열어 한 말조차 한 올의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무슨 일이건 부인 뜻대로 하시오.”

운검정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경의상은 눈앞의 운검정이 아득하게 멀리 느껴졌다. 경의상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서 말했다. 

“정말 너무 하십니다. 당신의 아내가 된지 삼십칠 년, 그 동안 소첩이 잘못 처신한 적이 있었나요? 소첩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리 대하십니까? 녹산을 잘못 키웠다구요? 철들기도 전에 소가주로 키운다고 법석을 떤 것은 당신입니다.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피곤에 지쳐 잠든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 것뿐이었어요. 잘 됐군요. 이왕 시작한 것 한번 

따져보지요. 녹산은 또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혼자서 살아 돌아왔다고요? 위험을 느꼈다면 애초에 말렸어야지요. 허락해 놓고 

살아서 돌아왔다고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며 살게 만들어요? 흥! 그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더 나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왔을 

거라고 확신합니까? 치졸하십니다. 무자비하십니다. 동생들을 죽였다니요? 내 자식입니다만 당신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모르십니까? 차라리 내치고 마세요. 왜 곁에 둡니까? 함께 나가리까?”

한번 터지기 시작하니 터진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운검정도 놀란 듯 경의상의 격앙된 얼굴을 멍한 눈으로 보고만 있었다. 

말이 끝났어도 운검정은 한참 동안이나 대답하지 않았다. 

경의상은 말하면서 더욱 더 설움에 북받쳐 결국 눈물을 흘렸다. 운검정의 눈빛도 흔들렸다. 운검정은 복잡하게 교차하는 애증의 

감정을 숨기려는 듯 눈을 감았다. 

바로 그때,

“으아아앙!”

운청산이 울었다. 경의상은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운청산을 흔들었다. 

“미안하구나, 청산! 울지 마라. 할미가 잘못했다.”

순간 운검정이 눈을 떴다. 복잡하던 감정은 어디가고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 아이는 누구요?”

경의상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녹산을 구해준 아이가 낳은 당신의 손잡니다.”

운검정은 아무런 반응 없이 차츰 울음소리를 죽이는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매가 묘하게 꿈틀대더니 종국에는 미간 

사이에 굵은 주름들이 잡혔다. 

운검정이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 

“흥! 그 사이에 계집질까지? 그것도 모자라 저렇게 귀기(鬼氣)어린 새끼까지 달고 들어오다니---. 죽일 놈!”

경의상은 더 이상 말해 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검정과 운녹산 사이에는 더 이상 깊어질 수 없을 만큼 

깊은 골이 존재했다. 그래서 이년이 넘은 지금도 운녹산은 둘째 공자가 없는 대공자로만 불리고 있었다. 

경의상은 운청산이 그 골 사이를 흐르는 물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조용히 말했다. 

“소첩이 알아서 키우지요. 그럼 하시던 거나 계속 하시구려.”

경의상은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나도록 돌아섰다. 경의상이 방문을 막 열었을 때였다. 운검정이 흐릿한 감정의 찌꺼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청산이라 했소?”

경의상은 발을 멈추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운검정이 말을 이었다. 

“아비와 자식이 같은 돌림자를 쓰는 법은 없소. 청봉(淸峰)이라 부르는 것이 좋겠소.”

경의상은 돌아서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면 다행이라 생각했고 일면 서글펐다. 이름을 고쳐주는 것은 곧 관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에 다행이었지만, 산자 돌림의 아래 항렬이 인(仁)자임을 떠올리니 완전히 인정한 것은 아닌 것도 같았기 

때문에 서글펐다. 

경의상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방을 나섰다. 

닫힌 방문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면서 운검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오, 부인. 어쩌겠소? 세월이 더 필요한 것을---.”

운검정은 또 한번 가슴이 오그라들 정도로 깊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청인으로 할 것을 잘못했는가? 아니야. 청산으로 지었다면 뜻이 있었겠지. 따라주는 것이 좋을 테지. 그나저나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지던데---. 보천진인이 오면 한번 보아달라고 해야겠구나.”

운검정은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눈을 지그시 눌러 비볐다.

“후아! 큰어머니가 그렇게 화를 내시는 건 처음 봤어. 언제나 온화하게 웃기만 하셔서 화낼 줄도 모르신다 

--.”

“그러게 말이다. 정말 깜짝 놀랐구나. 근데 빙혼귀가 많이 힘든가 봐?”

“그러게. 하지만 괜찮아. 우리는 죽었는데 그 정도야 감수해야지. 근데 내가 죽었다? 어? 내가 죽었어. 으허허헝! 내가 

죽었어.”

“쳇! 아직도 그것을 모른단 말이에요?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오네. 우린 죽었어요. 죽었어. 헤헤헤. 흐흐흑! 아니야, 

죽었는데 왜 아픈 거야? 아플 까닭이 없잖아. 난 살아있어. 헤헤헤, 살아있다. 살아있어.”  

천의각을 빠져나온 경의상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내가로 들어갔다. 그녀는 내가의 중심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바퀴 돌려면 이백여 보 정도 필요할 것 같은 작은 호수가 나왔고 그 뒤로 작지 않은 전각이 있었다. 운녹산의 거처 

목향각(木香閣)이었다. 

경의상은 목향각을 향해 호수를 가로지른 운개교 앞에서 잠시 멈칫거렸다. 목향각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목추경의 차가운 얼굴이 

떠오른 것이었다. 

“안 보일 수는 없는 일이지. 내가 기르고 녹산이 드나들면 어차피 알게 될 일. 차라리 어미가 되어줄 것을 진심으로 부탁해 

보는 것이 나을 게야.”

그렇게 홀로 말했지만 경의상 또한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껄끄러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오늘 

하루의 일만으로 끝내자는 것이 그녀의 심정이었다. 

식전 새벽부터 경의상의 방문을 받은 목추경은 당혹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맞았다. 

경의상은 침의 차림으로 맞은편에 앉은 목추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조심스레 경의상의 눈치를 살피던 목추경은 운청산을 

발견하고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경의상의 말을 기다렸다. 

누구냐고 먼저 물어봐주길 기대했던 경의상은 내심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녹산의 아이다.”

순간 목추경의 눈빛이 돌변했다. 그녀는 운청산을 노려보며 한기를 쏟아냈다. 경의상은 이미 짐작했던 변화였으므로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경의상은 이청수와 운녹산의 인연부터 그들의 이별과 곽자렴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청수의 출산의 순간 그리고 그녀의 죽음까지, 

가능한 소상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목추경은 일언반구도 없이 무표정하게 경의상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아니, 듣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경의상은 간곡한 눈빛으로 목추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또한 겪었던 일이니 네 심정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또 질투하지 말라고 죽어준 사람이다. 이해하고 

받아다오. 불쌍한 아이 아니냐?”

목추경은 경의상의 시선을 외면하고 입술만 씰룩일 뿐, 아무런 대답도 내어놓지 않았다. 경의상은 목추경의 눈을 좇아가 대답을 

강요했다. 

목추경은 경의상이 보내는 무언의 압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은 움직일 줄 몰랐다. 

목추경의 차갑운 눈빛이 경의상을 떠나 운청산의 얼굴에 닿았다. 눈빛은 한광을 더해가고 입술을 표독스럽게 꿈틀거렸다.  

경의상은 결국에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다. 내가 어리석어 생각을 잘못했구나. 그래, 네게 맡겨서는 밝게 크기가 어려우리라. 내가 직접 키우마.”

경의상은 운청산을 안아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목추경은 고개를 숙일 뿐,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경의상은 

그런 목추경을 내려보며 한숨을 내쉬고서 방을 나섰다. 

“에그, 못된 년! 정말 뱀처럼 차가워. 가까이 있기도 싫어. 저 여자 때문에 녹산 형이 더 싫었지. 목가가 뭔데? 

출가외인이라는 말도 몰라? 따지고 보면 저 여자 때문에 녹산 형이 청수, 아니 형수를 좋아했을 지도 몰라.”

“떽! 이놈, 경산아. 못된 년이 뭐냐? 못된 형수라고 불러야지. 아? 우리 죽었지? 못된 년! 저런 여자가 장차 가문의 

안주인이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구나. 에구! 청산이 이놈이 편해야 되는데. 그래야 우리도 편한데. 아! 내 마누라한테 

데리고 가면 좋을 텐데. 불쌍하다고 눈물을 질질 짜며 자기가 키우겠다고 난리칠 텐데---.”

“쳇! 거짓말 마세요. 형수 옆에 있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요? 그 속셈 모를까봐? 하지만 말은 맞아요. 순둥이 형수님이면 

아까 그 말 듣자마자 아이부터 덥석 안고 눈물 콧물 다 짤 겁니다.”

“아이구, 요 자식! 눈치도 빠르지. 추산이 이놈! 넌 뒈지고 나니까 더 똑똑해졌다. 마누라! 보고 싶소. 내 새끼 보고 

싶어. 응, 근데 나 죽었냐?”

“아이 정말! 생각 안나요? 거기 그 사천과 귀주 사이에, 그---. 응?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 흐흐흑, 엄마 얼굴이 

생각이 안나. 으헤헤헤. 난다. 생각났어. 으헤헤헤. 근데 무슨 말 하고 있었지?”

 밀고

운녹산이 무당장로 보천자와 그의 두 제자를 동반하고 운가에 돌아온 날은 운청산이 운가에 들어온 지 닷새가 지난 날이었다. 

그가 보천자와 함께 천의각에 들어서자 운검정이 말했다. 

“수고했다. 쉬어라.”

말의 표면적인 의미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얼굴표정과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가슴에 닿아 희노애락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운녹산은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겨우 추스르고 돌아섰다. 무표정한 얼굴과 무감정한 어조는 운녹산으로 하여금 운검정을 타인으로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부족하단 말인가?’  

운녹산은 얼굴에 드러나려는 절망감을 억누르며 보천자에게 포권을 취해보였다. 보천자도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눈에 

의혹을 드리웠다. 그러나 운검정의 앞이었다. 보천자는 즉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운녹산은 경직된 걸음으로 천의각을 나섰다. 그의 가슴처럼 붉은 노을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운녹산은 문득 꿈인 듯 아득한 지난날을 돌이켜보았다. 운가에 사람이 찾아올 때면 운검정은 자리에 없는 운녹산을 일부러 불러 

인사시키고 배석시켰다. 손님들에게 그의 자질과 의젓함을 은근히 자랑했고 한편으로는 그로 하여금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게 

했다.  

-2에서 계속

도서명 : 괴선2

저자명 : 임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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