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79)

일권 끝이네요.^^; 

하늘은 극복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

1. 육체 없는 영혼은 경망스럽다.

귀신은 죽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마지막 숨이 끊어진 곳을 떠나지 못하며, 죽을 당시에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죽을 

때 느꼈던 고통을 그대로 지닌 존재다. 

귀신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살아생전의 밝고 맑았던 기운을 모두 잊고서 차츰 어둡고 차고 음침하게 변해가며, 오로지 원과 

한만을 생각할 뿐 남의 고통에는 무감각해진 존재다. 

또 귀신은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하기에 스스로 혼란스럽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기에 사람을 늘 놀라게 하고 이기적인 요구를 

하며 투정부리는 경망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간다. 어디로 가는 거지?” 

“북쪽일 거야. 그렇지, 형?” 

“그래. 북쪽이 틀림없어. 간다. 히히히, 상초소이는 분명히 사천으로 갈 거야. 그가 준비한 것을 봐. 묘도를 들었어. 

식량도 며칠꺼리는 되겠는 걸. 먼 길을 떠나는 거야. 사천이야. 그가 사천 아니면 어디로 갈까? 아야, 아파!”

“그래요. 용문수로표국일 거예요, 형님들. 으흐흐흐, 간다. 갈 거야. 우리 집에 돌아가는 거야. 으흐흐흑, 배가 아파. 

여기 왜 구멍이 뚫려 있는 거야? 왜 피가 계속 나오는 거지?”

“시끄러, 임마! 넌 죽은 거야. 이 자식아. 아프긴 뭐가 아파? 응? 추산이 너 죽었어? 아! 우리 지금 간다고 그랬지? 

암! 용문수로표국에만 이른다면 집에 가는 것은 여반장이지. 청수, 아니 형수가 남긴 것을 보면 못 찾을 수 없을 거야.”

“제발! 제발! 말 좀 하지 마세요. 드러나지 말라구요. 청산을 편히 자게 해주세요. 예?”

“에이, 제기랄! 그게 우리도 잘 안된단 말이요. 녀석 뒤에만 있으려 해도 우리도 모르게 눈앞에서 얼쩡거리게 되는데 

어쩌라구? 형수! 재수 없어. 그만 좀 울어.”

“흐흐흑!”

“이런 제길! 형수, 또 우는구만. 야! 이놈들아. 입 다물고 청산이 녀석 뒤에 서려고 노력해 보자구. 이 녀석이 

살아있어야 우리도 집에 간다구. 으아! 또 아프다.”

“나 참! 해도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란 말이오?”

“닥쳐! 하라면 그냥 해!”

“쳇!”

그들에게 공간이란 무의미했다. 구겨져 뭉쳐있을 수만 있으면 되었다. 아홉이 되었다가 다시 하나로 뭉뚱그려졌다가 때로 

서넛으로 갈라지기도 했다. 누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고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구별되지 않았다. 

그들은 피와 어둠이 흐르는 곳을 선호했다. 그래서 지금 머물고 있는 장소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가끔 밝은 빛이 들어오는 

순간이면 괴성을 지르며 함께 뭉쳐져 어둠의 틈새로 파고들지만, 때로는 빛이 그리워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빛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래 견디지 못하고 괜히 자신이 빌려 쓰고 있는 공간의 주인에게 짜증을 부렸다. 

그들은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있으면서 공간의 주인을 괴롭힐 따름이었다. 

                 *        *         *    

곽자렴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인들이 대개 그렇듯이 곽자렴 또한 자신이 제어하지 않는 마차에 몸을 맡기는 것을 싫어했다. 

무엇보다도 갑갑했다. 사방이 탁 트인 배와는 달리, 사방이 꽉 막혀 있는 마차 안의 환경이 싫었다. 출렁이는 물결을 

넘나드는 큰 흔들림이 아닌 작은 돌 하나에도 영향을 받는 그 경망스러운 잔 떨림에 짜증이 일었다. 

거기에 더해진 아기의 울음소리는 곽자렴의 짜증에 부채질했다. 그러나 곽자렴은 울다가 지쳐 상초소이의 품속에서 겨우 잠이든 

아기를 바라보며 짜증을 속으로 삭였다.

그 아기가 용문수로표국에 책임을 묻지 않은 운가의 핏줄이어서가 아니었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할 한 돌짜리 핏덩이여서도 

아니었다. 상초소이로부터 아기의 어미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출산하였으며 어떻게 죽었는지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곽자렴은 상초소이가 전해 준 그 출산의 처절함을 영상으로 그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물기어린 아기의 얼굴을 

동정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겨우 잠들었군. 무슨 연유일까? 배고파서 우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곽자렴은 마차의 한 구석에서 피곤에 찌든 얼굴로 구겨진 채 잠들어 있는 젖어미를 흘끔 바라보고서 토가족 말로 말했다. 

엄지손가락으로 아기의 눈가를 훔치고 있던 상초소이가 조용히 말했다. 

“상메오 말로는 무서워서 토해내는 울음이랍니다. 현자 부룬카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저주가 아이에게 이어져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라 하셨지요. 그래서 늘 이렇게 울다 지쳐서야 잠을 잡니다. 그것도 오직 상메오와 내 품에서만 잠이 

듭니다. 불쌍해서 보지를 못하겠어요. 운가에 가면 나아질까요?”

상초소이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그 또한 자식이 있었지만 품속에서 어리광을 부리는 대신 또래들과 토끼를 쫓고 뱀을 잡을 

나이였다. 그랬기에 운청산이라 불리는 아이는 상초소이에게는 새로이 얻은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청수를 대신하여 부모가 된 상초소이와 상메오는 이청수를 생각하며 지극정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목이 쉴 때까지 울었다. 상초소이와 상메오는 그런 아이를 부둥켜 앉고 눈물로 날을 지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가 돌이 지나자 상초소이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겨우 금패 하나를 가지고 한인들 가운데 아비를 찾아주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여정이 될 것이 뻔했기에, 우선 젖이나 떼고 나서 길을 나서려 했었다. 그러나 아비라도 만나면 정체모를 저주를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결심한 즉시 부족을 떠났던 것이었다.

산 설고 물 선 사천 땅에서 상초소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곽자렴 뿐이었다.

곽자렴은 상초소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환대했다. 금패의 의미를 모르는 상초소이로서는 곽자렴이 자신을 대신하여 수소문해 줄 

안내인이나 붙여주었으면 했었다. 그러나 곽자렴은 아이의 사연을 듣고 금패를 보는 즉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곧바로 

상초소이에게 면복을 입히고 자신도 떠날 채비를 했었다. 이제 상초소이는 수소문할 필요도 없이 바로 아이의 아비에게 가고 

있는 것이었다. 

돌을 밟은 듯 크게 덜컥거리는 마차의 진동으로 인하여, 곽자렴은 아기로부터 측은지심이 가득하던 시선을 뗐다. 

곽자렴은 마차 안과 마부석을 가르는 검은 장막을 걷어 전면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달려왔던 평평한 관도가 오르막길로 변해 

있었고 그 끝으로 첩첩 산들이 드리워져 있었다.

“허! 벌써 검각산이 보이는구나.”

초로의 마부가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예, 나리. 일각이나 더 가면 이 마차로는 그 이상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요.”

곽자렴이 보기에도 길이 점점 험해지고 또 좁아져가고 있었다. 곽자렴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장막을 내렸다.   

마부의 말대로 일각 정도가 더 지나자 마차가 멈춰 섰다. 곽자렴과 상초소이는 다시 시작된 아기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마차에서 내렸다. 

곽자렴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첩첩이 쌓인 날카로운 봉우리들을 바라보면서 홀로 중얼거렸다. 

“허! 조화롭지 못하도다. 산이라면 의당 나무숲도 있고 흙 땅도 있고 바위도 있어야 하련만, 어찌 이 여름에 저리 

암석들뿐인고. 바위산 날카로워 금기가 철철 넘쳐흐르니 어찌 살기가 하늘을 찌르지 않을까. 옛말에 이르기를, 

소산생귀(小山生鬼)요 대산성선(大山成仙)이라 했으니, 운가가 탁탑참요검에 집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야.”

겨우 몇 단어 알아듣는 한어라 상초소이는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곽자렴의 옆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곽자렴이 고개를 돌려 

상초소이를 바라보았다가 산을 향해 손을 뻗으며 토가족의 말로 말했다. 

“보게. 저기 저 산들을 넘어야 운가에 이를 수 있다네. 삼협의 잔도와 같은 벼랑길이 도처에 이어졌다 끊기기를 반복하니 

말조차 끌다 타다 해야 하네. 자네 걸음이 아무리 날래다 해도 아이를 안은 채로는 족히 반나절은 걸릴 터. 피곤하면 차라리 

하루를 쉬고 가는 것이 나을 게야.”

상초소이는 잠시 동안 검각산 칠십이봉을 바라보다가 낮은 옹알거림이 들려오는 마차의 장막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상초소이가 말했다. 

“노야. 하루라도 빨리 저 아이에게---.”

곽자렴이 고개를 끄덕이며 상초소이의 말을 끊었다. 

“자네 뜻을 잘 알겠네. 자넨 좋은 사람이야. 아니지. 자네들은 좋은 사람들일세. 그 인연, 평생 놓지 않으려 

했건만---.”

상초소이는 꼬리 잘린 곽자렴의 말을 음미하고서 미안하여 고개를 숙였다. 

곽자렴이 다시 배를 맡아달라고 청했을 때, 상초소이 등은 그 뜻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마을의 어른들은 배고파도 더 

이상 의지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상초소이 등은 아쉽지만 수긍했다. 적어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은 기억 저편에 묻어둘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이 곽자렴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 일인지도 알고 있었기에, 상초소이는 미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마차의 검은 장막이 열리고 후덕하게 생긴 젊은 여인이 아이를 안고 나서서 상초소이를 구해주었다. 

여인은 상초소이에게 끙끙 앓는 듯한 소리를 내는 아이를 건넸다. 상초소이가 얼른 아이를 받아 조심스럽게 어르는 순간 

곽자렴이 여인에게 물었다. 

“어떻든가? 잘 먹던가?”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사람이라고, 먹고 살겠다며 한참이나 빨았습니다요. 얼마나 세차게 빨아댔는지 젖가슴이 얼얼하네요, 나리.”

“다행이구먼. 이틀 동안 수고 많았네.”

곽자렴이 품속을 뒤져 은자 세 냥을 꺼내어 여인에게 건넸다. 여인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나리. 이미 주셨지 않습니까?”

곽자렴이 여인에게 웃어보였다. 

“먼저 주었던 것은 젖 값이었고 이번 것은 먼 길 동행해 오느라 수고한 값이네. 받게.”

여인은 잠시 동안 망설이다가 못이기는 척 은자를 받아들었다. 

곽자렴은 곧 마부에게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자네도 수고 많았네. 급히 오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으니 갈 때는 쉬엄쉬엄 쉬어 가게나.”

마부가 고개를 숙였다. 

“어이구! 저 험한 길을 정녕 가신단 말씀이십니까? 소인이 끝까지 모셔야 하는데---.”

“내 조심해서 가겠네. 너무 걱정 말고 가보게.”

곽자렴은 마부에게 다시 한번 웃어 보이고 마차의 뒤로 가서 두 필의 말을 떼어냈다.

마부와 여인이 곽자렴에게 고개를 숙였다. 곽자렴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서 말 한필을 상초소이에게 건넸다. 대바구니에 면포를 

깔고 그 안에 아이를 담아 가슴에 안은 상초소이가 곽자렴의 도움으로 힘겹게 말 위로 올랐다. 곽자렴도 훌쩍 말 위로 

뛰어올랐다. 

곽자렴은 상초소이가 탄 말의 고삐를 자신의 안장에 묶었다. 그리고 검각산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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