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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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수는 평소와는 다르게 상쾌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침상을 박차고 나무 마루가 악 소리를 내도록 발딱 일어서 보았다. 

좋은 기분이었다. 두 발은 굳건하고 머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청수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창문 쪽으로 움직였다. 정성들여 만든 태가 역력한 등나무 탁자와 의자를 지나, 창가에 이른 

그녀는 굳게 닫쳐진 원목 창문을 힘차게 밀어제치고 받침목을 세웠다. 

세상과 그녀의 기분은 별개인 듯 어둡고 비가 내렸다. 그래도 그녀의 기분은 흔들리지 않았다. 침울해지기는커녕 창틀에 두 

팔꿈치를 대어 턱을 받치고 콧노래를 불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평소라면 흥건히 젖은 요와 이불을 힘겹게 제치고 나왔으리라. 나무 바닥이 콧방귀도 끼지 않을 정도로 

힘겹게 버티고 섰으리라. 몽롱한 정신 탓에 눈에 힘은 없고 머리는 무거워 어렵게 지탱했으리라. 깨어난 시간이 오랠수록 점차 

나아지기는 했지만 오늘처럼 눈을 뜨자마자 상큼한 기분을 만끽할 수는 없으리라.

더욱 기분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상쾌한 기분이 오늘 하루가 아니라 앞으로 두어 달 정도는 지속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아는 탓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비를 좋아했다. 특히 장마철의 폭우를 편애했다. 오로지 장마철의 비만이 그녀로 하여금 맑고 상쾌한 기분으로 

깨어날 수 있게 해주는 탓이었다. 

허기를 느낀 이청수는 날아갈 것만 같은 걸음으로 마루를 놀래게 만들고서 방을 나섰다. 

또 다른 방이 있었다. 거실의 용도로 만들어진 듯, 탁자가 있고 흔들의자가 있고 책상이 있었지만 침상은 보이지 않았다. 

이청수는 우선 방을 가로질러 문부터 활짝 열었다. 눈앞에서 쏟아지는 비와 빗소리가 정겨워 그녀는 또 다시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탁자로 다가갔다. 언제나처럼 그곳에는 먹을 것이 있었다.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정도가 아니라 풍성하게 있었다. 나뭇잎에 

정성스럽게 싸매어 놓은 주먹밥도 있었고, 소담스럽게 담아 놓은 고기며 잘 구워진 생선도 있었고, 한쪽에는 등나무 바구니 

가득 과일들이 담겨있었다. 

이청수는 탁자에 앉아 주먹밥을 들었다. 나뭇잎을 벗기고 입으로 가져가는 동시에 왼손으로는 사과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엉덩이가 들썩여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듯 벌떡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주먹밥을 오물거리며 한참 동안이나 밖을 바라보던 이청수는 손바닥에 묻은 밥알들을 핥고 나서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다시 

사과를 입으로 가져가던 이청수는 기묘한 눈빛으로 어둠 속을 응시했다. 

이청수는 갑자기 사과를 탁자 위로 던져두고 문가에 놓인 나무신발을 신고서 밖으로 나갔다. 금세 옷이 젖어 얇은 청의가 몸에 

찰싹 달라붙었지만 이청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숲으로 들어섰다. 

숲은 미로와 같았지만 그녀는 집안을 거닐 듯 지체 없이 나무들 사이를 지나쳤다. 빗소리와는 또 다른 물소리가 들렸다. 

숲을 빠져나온 이청수는 잠시 동안 전면에 펼쳐진 어둠을 두리번거리다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내리막길이었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발이 깊이 빠져들어 결국 장딴지까지 빠져 들었다. 

나무신발까지 진창 속에 남겨두고서야 불어난 강가에 이른 이청수는 거센 물결이 흐릿하게 보이는 전면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다시 강가로 두 발짝 더 움직여 허리를 접고 두 손을 뻗었다.

낙하하던 운녹산의 시간이 멈췄다. 무기력한 상태로 허공에 정지되어 있던 운녹산은 가슴에 짧은 발이 달린 것 같이 작아진 

운현산이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것을 보았다.

운현산은 분명히 웃고 있었다. 코와 입과 턱이 피범벅이 된 상태에서도 그렇게 웃고 있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어찌 보면 비웃음 같기도 했다. 마치 “네 속내를 다 꿰고 있다. 그냥 따라준 것뿐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운녹산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무기력했다. 몸을 비틀 수도 없었고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그냥 보고 있어야만 했다. 

“녹산 형! 그렇게 해서라도 살고 싶으면 사시구려.”

환청이었다. 그가 보는 운현산의 입은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환청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는 너무나 또렷하게 머리 속을 떠돌았다. 

운녹산은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그러나 무기력했다. 눈조차 깜빡일 수 없는데 손을 움직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때 멈췄던 시간이 다시 가기 시작했다. 운녹산은 아래로 떨어졌다. 그의 눈에 안도감이 떠오르는 순간 벼랑을 계속해서 

굴러가는 운현산의 모습이 잡혔다. 

작은 공이 되어 구르던 운현산의 신형이 마침내 벼랑의 하단부 넓은 바위에 부딪쳐 퉁겼다가 더 이상 구르지 않게 되는 순간, 

운녹산의 신형도 오랑하의 좁은 계류 속에 떨어졌다. 

물속에 깊이 들어갔다가 다시 떠오른 운녹산은 허우적대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운현산을 찾았다. 눈에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녹산의 두 눈에는 피가 튀고 뇌수가 흩어진 바위가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운녹산은 자신의 물질 솜씨가 거친 오랑하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을 먹었다. 물 

속에 숨어있던 바위들이 운녹산의 가슴과 다리를 거세게 후려쳤다. 옆구리를 찍고 팔을 긁었다. 

운녹산은 자신의 머리만은 보호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힘겹게 반항했다. 또 다시 물을 먹었다. 운녹산은 솜이었다. 전신이 

점점 무거워졌다. 

오랑하의 수신은 매정했다. 안그래도 힘겨운 운녹산의 발을 잡아 당겼다. 또 다시 물을 먹었다. 운녹산은 오른팔을 물 밖으로 

휘둘러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고 휘저었다. 

‘살고 싶어. 난 살아야 해! 살려 줘!’

수신은 비정한 장난꾸러기였다. 무엇이든 잡을 테면 잡아보라는 듯 운녹산의 신형을 물 밖으로 내밀었다가 다시 잡아당겼다. 

장난은 계속되었고 운녹산의 상반신이 물 밖으로 튀겨져 올랐다. 

그 순간 운녹산은 흐릿한 눈으로 흐릿한 무언가를 보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구 손을 저어 잡아보려 했다. 그때 

화답이 있었다. 

운녹산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하얀 손 하나가 그의 손을 굳게 잡고 있었다. 수신은 “쳇!” 하고 운녹산의 발을 

놓아주었다. 운녹산은 그때서야 안도하고 무거운 눈꺼풀을 내려놓았다.

이청수는 얇은 이불만으로 벌거벗은 육신을 가리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려 한 시진에 걸쳐 힘겹게 끌고 왔을 때는 인간인지 괴물인지 구분할 수도 없이 처참한 몰골이었건만, 옷을 벗기고 외상을 

돌보고 전신 구석구석을 닦아놓고 보니 예상보다 훨씬 수려한 용모였다. 

이청수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사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반듯한 이마를 지나, 뜨면 호목이 될 것 같은 눈두덩을 훑고, 

우뚝한 콧날을 더듬어, 얇게 느껴지는 파리한 입술을 쓰다듬었다. 

이청수로서는 처음 보는 잘 생긴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매혹시킨 것은 잘난 용모가 아니었다. 십 수 년 만에 처음 보는 

다른 얼굴인 탓이었다. 그녀가 늘 볼 수 있는 얼굴이 아닌, 그녀 자신의 분위기와 흡사한 사내의 얼굴에서 친근감을 느낀 

것이었다. 

이청수는 늘 외로웠다. 

이청수가 영혼의 이끌림을 받아 숲에 정착한지도 벌써 십오 년이 지났다. 숲에는 그녀만이 사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그 누구도 그녀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의 외로움은 다른 말을 쓰는 탓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숲의 

말을 열심히 익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외로웠다. 

그것은 사람들의 외면 탓이 아니었다. 오히려 숲의 사람들이 그녀를 경배하는 탓이었다. 이족임에도 불구하고 숲의 사람들은 

그녀를 ‘딴뚜사이난’이라 부르며 무릎걸음으로 기어와 그녀의 발에 입을 맞췄다. 그녀가 아무리 몸을 낮춰 그들과 같은 높이로 

마주보려 해도 숲의 사람들은 언제나 그녀보다 낮은 자세를 취했다. 그들은 아예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오직 한 사람, 스스로를 ‘사이난’이라 칭하는 노파만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으나 그것도 극도의 존경심을 품은 채로 꼭 필요할 

때 필요한 말만 했다. 

그런 이청수에게 편하게 말을 걸고 위안을 주는 이가 있기는 있었다. 스스로를 ‘할미’라 칭하고 이청수를 ‘아기’라 부르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녀는 실체가 없었다. 오직 이청수의 꿈에만 나타나 말을 걸고 숲의 사람들에게 전할 영언(靈言)을 

들려주는 존재였다. 

사람이 그리운 이청수였다. 할미의 이끌림을 당하기 전에 늘 그랬던 것처럼 입김을 나누고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그리웠다. 그것이 바로 이청수가 느끼는 외로움의 실체였다.

이청수는 이미 쓰다듬었던 사내의 이마로 다시 손을 옮겨 손가락 사이로 사내의 머리카락을 흘려보냈다. 

이상했다. 이청수가 사내를 구한지도 벌써 반나절이 지났건만 사내는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내로부터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이청수를 늘 땀에 젖게 하고 지치게 만드는 할미의 기운에는 비할 수가 없이 약한 기운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비슷하고 약해서 

오히려 포근하게 느껴지는 기운이었다. 

이청수는 직감했다. 이 사내가 깨어나면, 그녀의 외로움이 크게 줄어들리라는 것을. 그랬기에 그토록 강한 느낌으로 구해달라고 

외쳤으리란 것을. 

“으으으으으으!”

마구 도리질하던 운녹산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상체를 일으켰다. 

“큭!”

전신 구석구석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었고 뼈마디마디가 모조리 부서진 것만 같았다. 운녹산은 어쩔 수 없이 눈을 

감고 목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달콤한 고통이었다. 살아있는 자만이 고통을 느낄 테니까. 운녹산의 입가에 

실낱같은 미소가 어렸다. 

바로 그때 그의 감겨진 눈앞에 나타난 얼굴 하나.

“그런 눈으로 웃지 좀 마! 미안하잖아.”

운녹산은 낮게 외치고 오히려 눈을 치떴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원목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들보며, 나무 

외에는 어떤 재질도 사용하지 않은 집안의 모든 것들이 중원의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지 못할 소박하고 독특한 것들이었다. 

그렇게 생소함에도 불구하고 그 기운만은 익숙하고 포근했다. 침상에서 등으로 올라오는 기운은 운녹산으로 하여금 기억하지도 

못하는 모태의 편안함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방 안의 가구 하나하나에서도 은은한 목향이 흘러 운녹산의 취향에 어긋남이 

없었다. 

편안한 공간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목이 타는 것만 같았다. 운녹산은 힘겹게 고개를 비틀었다. 그곳에 한 여인이 있었다. 

앉으면 절로 기울어져 잠이 솔솔 올 것 같은 등나무 의자에 모로 웅크린 채 약하게 코를 골며 잠자고 있었다. 

풀어헤친 검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대부분을 덮고 있어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젊은 여인인 것 같았다. 옷이라고 하기 보다는 

천으로 전신을 친친 감은 것 같은 느낌의 이상한 청의를 입었는데, 옷감이 중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까실거리는 느낌의 

것이어서 무척 시원하게 느껴졌다. 드러나 있는 팔과 허벅지가 얇아 부실하게 보였는데 그 피부는 또 까무잡잡하여 대조를 

이루었다. 

운녹산은 자신을 구원해 준 이족의 여인을 깨워보려 했다. 그러나 갈증은 운녹산의 목소리를 풀어주지 않았다. 운녹산은 하는 

수 없이 여인에게서 눈을 떼고 눈은 감은 채 한참 동안 혀를 굴렸다. 바짝 마른 입안에 조금씩 침이 고이자 힘겹게 목으로 

넘기고 다시 혀를 굴렸다. 

말라붙는 느낌이 겨우 가시자 운녹산은 몸을 조금씩 흔들어 자신의 상태를 차근차근 점검했다. 잠시 후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벼랑에서 떨어지기 전부터 어깨의 상처와 내상은 심한 상태였다. 그러나 다른 곳은 대체로 온전했었건만, 지금 살펴보니 

팔다리가 사이좋게 하나씩 부러진 듯 했고 적어도 세 대 이상의 갈비뼈에 손상이 있었다. 어깨의 상처는 더 벌어질 수 없을 

만큼 벌어진 것 같았고 오장육부가 제자리를 이탈한 듯 작은 흔들림만으로도 욕지기가 나오려했다.

운녹산은 조심스럽게 운기해보았다. 

“큭!”

기운을 일으키려하자마자 단전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운녹산은 자신이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었음을 깨닫고서 힘없이 눈을 

떴다. 

‘크크크! 첩첩산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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