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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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언제부터 그곳에서 살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그냥 그곳에서 처음부터 살고 있었다. 

그들은 알고 있다. 먼 옛날 그들의 조상들은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훨씬 넓은 지역에 걸쳐 살고 있었음을. 

그들은 천성이 착한 사람들이었다. 방대한 지역을 소유하고 있었으면서도 오만하지 않았고, 서로 사랑할 줄 알았으며, 그들에게 

풍요로운 삶을 주신 신들을 경배할 줄 아는 경건함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들보다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이들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터전의 한 귀퉁이에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을 때, 

그들은 환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하나 둘씩 찾아와서 이미 한 마을을 이루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땅을 줄여가며 함께 풍요로움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시비가 붙었다. 스스로 중화인(中華人)이라고 부르는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이들은 원래부터 그 땅의 

주인이 자신들이라며 더 많은 땅을 원했다. 더불어 사는 땅이니 함께 나누자고 양보도 해보았지만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이들의 대답은 오만한 것이었다. 

“빌어먹을 미개인들아! 여기는 중화인들의 땅이다. 우리 땅에서 얼른 사라져라. 그렇지 않으면 다 죽이겠다.”

자연신이 베풀어 주는 대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던 그들은 조금 더 하얗고 코가 더 큰 이들이 휘두르는 서슬 퍼런 도검과 창 

앞에서 힘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평야에서 쫓겨나고, 들판에서 쫓겨나서 결국에는 그들이 지배하던 땅 가운데서 가장 척박한 고원 위에 자리 잡았다. 

그 땅도 여전히 넓기는 했다. 그러나 워낙 척박하여 신이 베풀어 줄 수 있는 것이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그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원을 내려와야 했다. 고원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살지 않는, 오직 그들의 조상신들만이 

영면에 들어있는, 그 강가로 내려와 고기를 잡았다. 

그러다가 그들은 한 사람을 만났다. 그 역시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으나, 그들의 현명한 

조상신들이 경고했던 그들과는 달랐다. 

젊지도 늙지도 않았던 그는 열정적이었고 신념에 가득 차 있었으며 과거 그들의 조상이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친절하게 대했다.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주기를 바랐던 그들은 천성이 시키는 대로 곽자렴이라고 불리는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사람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강산이 한 번 변하고 또 몇 해가 지났으나 그들 가운데 현명한 몇몇 노인들이 걱정했던 일들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고, 그들은 

곽자렴이라는 사람과 더불어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사람들이 문명이라 부르는 것들의 혜택을 나누었다. 

그들은 행복했다. 자연신께서 주시는 것들과 곽자렴이 제공해주는 것을 부족들 모두와 함께 나누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갔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다.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이들이 흔히 말하는 것들 가운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이들과 관계를 갖지 말고 살라는 조상신들의 말을 무시한 대가가 찾아왔던 것이다. 

인간을 믿고 살아가는 착한 그들도 처음에는 피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반항하고 울부짖어보았으나, 결국에는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이들의 위협에 굴복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던 곽자렴을 배신하고 말았다.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이들이 늘 하던 그 짓을 그들 스스로 행하고 만 것이었다.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기다리던 부락의 아녀자와 아이들이 이레 전에야 돌아왔다. 기쁨을 노래하여야 할 마을의 장정들은 그들을 

부둥켜안으며 하나같이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피골이 상접한 육신에 생기가 사라진 눈빛은 그나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생환과 재회의 기쁨을 표현할 수조차 없는 

정신의 파괴만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부앙초소이는 친구들에 비하여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적어도 그의 아내와 여덟 살 된 아들은 살아서 돌아 왔고, 

시간이 흐르면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끌려간 여든다섯 명의 아녀자와 아이들 가운데 아홉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을 잃은 친구들의 울부짖음은 아직도 

부앙초소이의 귓전에서 맴돌고 있었다. 

부앙초소이는 닷새 동안 아내와 아이들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아내가 거동을 시작하고 

아이는 흐릿하게나마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때서야 부앙초소이는 친구 동료들과 함께 부락 밖으로 나가 그가 곧 해야 할 일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녀석들이 오보추혼사(五步追魂蛇)라고 부르는 붉은 반점 난 뱀 몇 마리를 잡기 위한 그 작업은 겨우 반나절 

만에 끝났다. 그리고 적절한 크기로 자란 꼿꼿한 대나무를 구하는 것은 촌각의 시간이 필요했을 따름이었다. 

밤이 되어 부락에서 가장 큰 족장의 집 앞에 모여든 장정들은 부는 화살촉과 죽창 그리고 곽자렴으로부터 얻은 묘도에 독을 

흠뻑 묻혀 두고 천시를 고려하여 유지로 싸두었다. 바로 어제 저녁의 일이었다.

부앙초소이는 아내와 아이들이 돌아온 이래 처음으로 아내의 얼굴을 가슴에 묻은 채로 숙면에 빠져들었다가 새벽에야 일어났다. 

아내와 아이들은 약간의 생기가 감도는 얼굴로 단잠에 빠져 있었다. 

부앙초소이는 잠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두 무릎을 잡고 아내와 아이들을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가기 싫다. 아니, 며칠만 미뤘으면 좋겠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보호 아래 있는 사람에게 채찍질을 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침을 뱉은 

놈들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침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가 존경하는 타이순과 친구 넷의 목숨을 격류 속에서 잃게 만든 

놈들을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앞서, 그들을 믿음으로 대해준 사람들을 배신하게 만든 놈들에게 복수를 하지 않는다면 부족의 잃어버린 명예는 

영원히 되찾지 못하리라. 

부앙초소이는 조용히 집을 벗어났다. 정수리와 어깨와 가슴에 연이어 떨어지는 빗방울에서 섬뜩한 한기를 느낀 부앙초소이는 

가볍게 진저리를 침으로서 기분 나쁜 기운을 떨쳐버렸다. 

추운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이들이 겨울이라고 말하는 계절이 아니라면 한 조각 천으로 치부를 

가릴 뿐인 부앙초소이가 한기를 느낄 까닭이 없었다. 

기분 탓이리라. 오늘부터 그가 해야 할 일과 겪어야 할 일을 상상함으로서 생긴 두려움 그리고 뒤에 남겨두어야 할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한꺼번에 뒤엉켜 부앙초소이로 하여금 몸을 떨게 만드는 것이리라. 

부앙초소이는 미련이 가득한 눈빛으로 담과 방이 따로 없는 자신의 작은 집을 바라보았다. 아내와 아이의 얼굴이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입술을 깨물면서 집을 외면했다. 

이미 생기를 되찾아버린 아내와 아이의 얼굴은 그의 복수심을 무디게 할 뿐이었다. 부앙초소이는 재회 당시의 그 처참했던 

아내와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고 항상 웃음으로 대해주었던 만자강과 휘하의 표사들이 당했을 죽음의 참담함을 상상했다. 

부앙초소이는 비장한 얼굴로 토왕묘(土王廟)를 향해 걸었다. 토왕묘는 엊저녁에 그가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이들의 

말로 ‘유쾌한 이리’라는 뜻이 되는 자신의 이름 상초소이를 ‘성난 이리’라는 뜻의 부앙초소이로 바꾸고 복수의 맹세를 했던 

곳이었다. 그곳이야 말로 약해지려는 자신의 마음을 다시 한번 더 예리하게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부앙초소이는 마음을 다지듯 나지막하게 전사의 노래를 불렀다. 시작은 혼자였지만 부앙초소이 홀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다. 

노랫소리가 그의 뒤에서 들려왔고 다른 목소리가 옆에서도 들려왔다. 

부앙초소이는 어느새 자신의 옆에 다가와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친구와 동료들과 일일이 얼굴을 맞대었다. 

부앙초소이는 그들의 눈에서 자신의 눈을 보았다. 두려움을 숨기지 않는 동시에 불타오르는 그러나 경건한---.

이유는 결말을 아는 까닭이다.

방이라 부르기는 너무 컸고 대전이라 부르기는 작은, 기이한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원통형의 그 공간에 걸려있는 몇몇 그림들은 

하나같이 불을 소재로 한 것들이었고 그 그림들의 틀은 몇 안되는 가구들와 마찬가지로 하나같이 철제였다. 바닥이 흙으로 되어 

있다는 것과 창문이 하나도 없다는 것 역시 그 방의 특이함을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그곳 중앙의 텅 빈 장소에 다섯 사람이 모여 있는데 그들은 그 장소보다도 더 기이한 분위기를 풍겼다. 부드럽게 느껴지는 

얇은 황견의(黃絹衣)를 입고 같은 재질의 몽면(蒙面)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여인이 공간의 정중앙 흙 위에 앉아있고, 그녀의 

동쪽으로는 청의(靑衣)를 입은 깡마른 장년 사내가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묘한 미소를 짓고 있으며, 서쪽에는 백의(白衣)를 

입은 중년인이 백광이 유독 두드러진 눈에 살기를 가득 담고 서있었다. 그리고 남쪽에는 왠지 화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적의적발(赤衣赤髮) 중년인이 있으며, 북쪽에는 홀로 얇은 철 항아리에 술인지 물인지 모를 액체를 그득 담아서 앞에 놓아두고 

철판을 바닥에 깐 채 철 신발을 신은 흑의 청년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서있었다. 

그러한 배치만으로도 기이하다 할 것인데, 더욱 이상하게도 중앙에 앉은 여인을 정점으로 네 사람이 하나같이 똑 같은 일장 

간격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었다.

중앙의 여인이 편지인 듯싶은 종이 한 장을 무릎 위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제들! 금혼기(金魂旗)가 마무리를 맡으라 하시는구나.”

그녀의 온화한 음성이 사라지는 순간, 그녀와 마주보고 서있던 남쪽의 적의 중년인이 붉은 머리카락들을 곤두세우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사저! 너무 하지 않소? 사저는 전체를 총괄하고 있고 막내는 이미 재미를 보았으니 괜찮을지 몰라도, 나와 목 사형은 뭐가 

되오? 더군다나 지리적 이점을 생각해 보면 나와 목 사형이 나서는 것이 타당하지 않소?”

적의 중년인은 서쪽의 깡마른 청의 장년인에게 동의를 구하듯 고개를 돌렸다. 그때 백의 사나이가 살기를 번득이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화 사제! 너무 다가왔군. 기분이 나빠지고 있어.”

적의 사내가 실수했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원래 그가 서 있던 자리로 급히 돌아갔다.

“미안하오. 막내 녀석과 마주보는 상황이니,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님은 아시지요?” 

백의 사내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황의 여인은 눈가에 떠돌던 흐릿한 미소를 지우고 대신 아쉬움이 드리웠다. 

“화 사제가 다가오면 기분 좋은데---.”

아쉬움을 드러내며 황의 여인이 적발 중년인에게 눈웃음쳤다. 

이번에는 깡마른 청의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화 사제 말이 맞지. 밀림에서야 나나 사저가 아니라면 화 사제가 오히려 어울리지. 더군다나 금의대라며? 그런데 금 

사제를? 금 대 금이면 시끄럽고 깨지는 것 많지 않겠어? 사저! 나하고 화 사제가 조용히 처리하고 올 테니까 한 번 보내줘 

봐.”

백의 사내가 안 그래도 살기 넘치는 눈을 치뜨며 청의 사내에게로 한 발 다가서서 차갑게 소리쳤다. 

“명령은 내게 떨어졌소. 내가 가오.”

순간 청의 사내가 미소를 버리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금 사제! 물러서라. 짜증나는군.”

북쪽에 서있던 흑의 청년이 얼굴에 흐릿한 아쉬움을 표하는 순간 백의 사내는 눈에서 번득이는 살기를 줄이고 뒤로 한 발 

물러섰다. 

“미안하오. 화 사제 때문에 안그래도 물러서려 했소. 어쨌든 목 사형은 몰라도 화 사제가 금의대의 상대로 적합하다는 것은 

동의하지 못하겠소. 천시가 화 사제를 말리거늘 그 무슨 말씀이시오.”

청의 사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 우기이니 화 사제가 나설 시기는 아니군. 허나 밀림에서라면 내가 적격인 것은 사실이 아니냐?”

그때 적의 중년인을 향해 여전히 눈웃음 치고 있던 황의 여인이 두 손을 좌우로 벌려 시비를 종식시켰다. 그녀가 다시 적의 

사내에게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야 화 사제가 말하는 것이면 모두 들어주고 싶은 사람이야. 그러나 명령은 명령! 게다가 무력이라면 금 사제의 금혼기가 

우리들 가운데 최강! 이번 일의 마무리는 명령대로 금혼기가 맡는다. 단 비후방(飛猴幇)에서 정면대결이야. 금 사제도 명심해 

둬. 도움은 없어. 홀로 남게 되는 경우라도 반드시 살아 돌아와야 해. 그래야 우리가 완전하니까.”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어조로 말을 끝낸 황의여인은 무릎에 놓여 있던 편지를 펼쳐진 그대로 백의 사내에게 던졌다. 

빳빳한 그대로 마치 지도(紙刀)와 같이 날아간 편지를 백의 사내는 아무런 무리 없이 받아 읽었다. 그리고 그것을 품에 

갈무리 한 후에 부드러운 눈빛으로 황의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소.”

웃음 띤 얼굴로 시종일관 듣기만 하던 흑의 청년이 말했다. 

“다 끝났지요? 그만 갑니다.”

그는 대답도 듣지 않고 앞에 둔 철 항아리와 철 발판을 그대로 놓아 둔 채 뒤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청의 사내도 거의 

동시에 뒤로 몸을 튕겨 여인으로부터 떨어졌다.

황의 여인이 적의 사내에게 말했다. 

“화 사제는 조금 더 놀다가지 그래?”

적의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오. 사저.”

황의 여인이 눈빛에 아쉬움을 드리웠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 사내마저 떠나고 이상한 공간에 오직 두 사람 만 남게 되자 백의 사내가 여인에게 다가섰다. 그가 살기를 완전히 죽이고 

여인에게 말했다. 

“사저, 나는 시간 많소. 가끔은 나도 보아 주시오.”

황의 여인은 눈가에 조소를 띄우며 고개를 흔들었다. 

“금 사제하고는 일 없다니까. 그만 좀 지분거려.”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오? 정녕 내가 화 사제를 죽여 버려야겠소?”

백의 사내가 금안에 안타까운 심정을 그득 담아 말했으나 여인의 눈빛은 차가왔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나가줘. 기운 빠지니까.”

백의 사내는 원망스럽다는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돌아서서 문으로 다가갔다. 

여인은 멀어지는 백의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금 사제가 싫지는 않아. 하지만 화 사제가 더 좋은 걸 어쩌란 말이야? 그래, 주책이라고 비난하려면 해. 하지만 

사제도, 우리가 인간의 마음에 앞서 배운 바 무공에 따라 감정이 갈린다는 걸, 느끼고 있잖아.”

              *            *            *

겨우 비를 피할 곳을 찾아 밤을 지내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건량으로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설 때 곽자렴이 이미 

여정은 하루하고도 반나절 정도 소요될 것이라 말했지만, 변화 없는 여로에 운가 사람들은 아침부터 짜증어린 표정을 드리웠다. 

우려했던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정은 폭우가 한팔 거들지 않아도 이미 힘들었다. 이틀 전까지 

내렸던 폭우로 길 없는 길은 발을 옮기기조차 힘들 정도로 질퍽거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등에 얹어지는 진흙의 무게는 

계속 무거워져 갔다.

숲 또한 그들에게 호의를 보이지 않았다. 말만 들어도 갑갑한 운남의 밀림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암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검각산과는 또 달라서 이름도 생소한 나무들이 얼굴을 긁고 발을 걸었다. 

산거머리들 또한 금의대의 발걸음을 지체시키는데 일조하고 있었으며, 격한 움직임으로 인해 체외로 배출되는 땀마저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슈욱!

일행의 선두에 서서 길을 트는 운명산이 신경질적으로 묘도를 휘두르자 한 줄기 서늘한 청기가 전방으로 이장이나 뻗어나가며 

지나치는 모든 것들을 베어버렸다. 

“형님! 말 못하는 초목에 대고 청룡무상도를 펼치다니 너무하는 것 아니에요? 아침부터 너무 힘 빼지 말자구요.”

운명산과 한조를 이룬 금의대의 막내 운초산이 말했다.

“갑갑해! 어제 간 길 또 가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는 거야? 짜증나.”

성격 급한 운명산에게는 확실히 답답한 환경이었다. 암석군으로 이루어진 검각산이라면 호랑이처럼 활보하고 다녔으련만, 삼협의 

남쪽 무산 끝자락은 반보 걷기도 힘들만큼 나무와 풀들이 많았다. 

손바닥만한 잎사귀들을 무성하게 달고 있는 동백나무와 같은 활엽수는 물론이고, 얼굴에 닿으면 절로 찌푸려지는 금전송 같은 

침엽수도 다수 있으며, 덩굴과의 식물들과 무릎을 건드리는 풀들도 많았다. 거기다가 지겹게도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으니, 

생각해 보면 운명산의 짜증어린 행동은 이미 예정된 것이기도 했다.   

운명산은 주변으로 진흙들을 마구 튀기면서 전진하여 다시 도를 휘둘렀다. 

운초산은 낮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쯧! 죄 없는 나무들만 불쌍하지. 누가 금의대의 활화산 아니랄까봐---. 하기야 명산 형님이 저래 준다면 나야 

어깨를 으쓱 치켜 올린 운초산은 얼굴에 튄 진흙을 닦아내고 편안하게 운명산의 뒤를 좇았다.

운초산의 뒤로 운경산과 나머지 금의대원들이 좌우의 무성한 수림을 예리한 눈빛으로 살피며 따랐고, 그 뒤로 곽자렴과 운녹산과 

운현산이 보조를 맞추며 차분한 걸음으로 움직였다.

“곽 대협! 이것을 길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 같은데,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는 것이 맞습니까?”

운현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처음부터 운녹산과는 다른 예의바른 언동을 유지하던 운현산이었지만 어제 오늘의 음성에서는 

곽자렴이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진심이 느껴졌다. 그것은 운현산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운녹산에게도 미약하나마 

변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곽자렴은 자신을 대하는 그들의 언동이 왜 변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 시기만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배가 

구당협에 들어선 이후부터의 일이었다. 

곽자렴은 자각하지 못해도 두 사람은 그때 곽자렴이 돈벌이에 정신이 팔린 노회한 무인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임을 깨달았고 더불어 그가 아직 무인의 기백을 잃지 않았음에 탄복한 것이었다. 

곽자렴은 운현산의 호의가 담긴 음성에 내심 의아해 하면서도 먼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즉시 오른발로 바닥을 찍어 

허공으로 솟구쳤다. 큰 나무들의 가지와 잎사귀들이 펼친 그물 사이를 유유히 뚫고 아무런 장애가 없는 삼 장 높이에 

도달했다. 

아무런 소음도 없이 부드럽게 제 자리로 돌아온 곽자렴이 운현산의 물음에 대답했다.

“방향은 맞소. 이 사람이 겨우 네댓 번 토가촌을 방문했을 뿐이라 토가족처럼 산길을 제대로 꿰고 있지는 못하나,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몇 가지 있다오. 운망계에서 남하하다 보면 비후봉이 보이오. 그곳을 기점으로 북서쪽 숲은 토가족, 남동쪽 

숲은 묘족들이 군락을 이루어 살고 있다 들었소. 살펴보니 가는 방향으로 비후봉이 보이더이다. 늦지 않은 오후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오.”

곽자렴의 대답을 들은 이는 운현산만이 아닌 것 같았다. 운현산이 안도의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의 앞과 뒤에서 

십여 마리 녹학들이 분분히 허공으로 치솟았다. 가히 군학충천이라 할만한 장관이었다.

후두두두두둑! 

잔가지들이 부서져 비가 되어 떨어지는 순간 십여 명의 금의대원들이 곽자렴과 운현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순간이지만 사방이 

탁 트인 곳에 이른 금의대원들은 허공을 유영하듯 떠돌면서 시야의 자유를 맘껏 누렸다. 

전방의 먼 곳까지 시선을 옮기자 듬성듬성하게 돋은 산봉오리들 가운데 원숭이가 솟구치는 듯한 형상이 확연한 봉우리 하나가 

분명히 존재했다. 비후봉을 확인한 대원들은 허공에서 몸을 휘돌려 천천히 낙하하면서 자신들이 빠져나온 숲의 구멍들을 되찾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전방 백여 리! 힘들 내자구.”

누군가가 유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백여 리. 평지라면 경공을 펼쳐 반 시진이면 넉넉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애물이 많다는 

것을 상기하면 몇 배의 시간이 더 잡아야겠지만, 어쨌든 눈대중 할 수 있는 거리 안에 목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행의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일신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운명산의 뒤를 한가롭게 좇기만 하던 운초산도 묘도를 휘둘러 도기를 일으켰다. 숲이 비명을 지르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동안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길을 텄다. 뒤쪽에 있던 두 사람이 다시 그들을 추월하여 묘도를 휘둘렀다. 

그렇게 두 사람씩 번갈아가면서 선도하자 행군의 속도가 세배 이상 빨라지기 시작했다. 

숲의 생령들은 울부짖기 시작했다. 오만한 인간의 기세에 눌려 숨을 죽이고만 있었는데 이제 삶의 터전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기 

시작하자 숲의 거주자들은 울분이 맺힌 저주를 내뱉으며 금의대로부터 멀어지려고 발버둥쳤다. 

그러나 금의대는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밀림이라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경이적인 속도로 전진했다. 단 두 시진 만에 

숲길 일백 리를 관통하고서 방향을 틀었다. 

곽자렴은 지칠 줄 모르는 금의대의 체력에 찬탄하고 나서 문득 자신의 시대는 이미 끝났음을 확인하고 탄식했다. 원하지 않는 

일이었으나 불가피한 일이었다. 

곽자렴은 고개를 틀어 지친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걷고 있는 곽동량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늘 어리고 부족하다 

생각했었다. 더 가르치고 더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들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곽동량의 나이도 벌써 서른 넷. 함께 움직이는 금의대의 그 누구보다도 나이 들었다. 세월은 이미 그를 

시대의 주역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었다.  

‘물러나라는 하늘의 뜻이로다. 그래. 이번 일을 끝맺는 대로 저놈에게 자리를 넘겨야지. 허허허! 그런데 물려줄 것이나 

있으려나?’

곽자렴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사람들의 말로 ‘날쌘 원숭이’란 뜻인 느안카이는 자신의 이름 앞에 ‘분노한’이란 뜻의 

‘부앙’을 더 붙었음을 표시하듯 굳은 얼굴로 숲을 헤쳤다. 

그러나 부앙느안카이는 자신과 더불어 사는 생명들을 위해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주의를 늦추지 않았다. 가끔은 어쩔 수 없이 

더불어 사는 생명들을 죽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신께서 그들에게 불가피하다고 허락한 일이었다. 

유지에 싼 묘도를 들고 있으면서도 거추장스러운 넝쿨과 풀마저 조심스럽게 걷어내고 이동하던 부앙느안카이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얼굴 위로 떨어진 물방울들이 조금 전과는 달리 무게가 느껴졌다. 토왕신과 조상신들께 두려움을 맡겨두고 마을을 떠나오던 

순간에는 그렇게 드문드문 떨어지던 빗방울이 차츰 굵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부앙느안카이는 흐릿하게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신께서 우리를 가호하시는구나. 비여! 쏟아져라. 우리의 모습을 숨겨다오.”

부앙느안카이는 오른쪽 어깨에서 따뜻한 기운을 느꼈다. 지금 그는 신의 허락을 얻고 생명을 해치러 가는 길이어서 신경이 잔뜩 

곤두서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앙느안카이는 그 기운을 경계하지 않고 차분히 고개를 돌렸다. 

부앙느안카이에게는 아내와 자식들만큼이나 소중한 사람의 손이 그의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그와는 늘 함께 다녔다. 그가 

존경하는 타이순이 신으로도 그 존재를 바꾸지 못하고 장강을 떠돌게 된 그 날도 함께 했었다. 바로 부앙초소이였다. 

부앙초소이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시 부앙느안카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서 흐릿한 미소를 발견한 부앙느안카이는 

동질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찌르르르르르르. 

부앙느안카이가 풀벌레 우는 소리를 내면서 하늘로 손을 뻗었다가 앞으로 내뻗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부앙초소이가 그의 뒤를 

경계하며 따라붙었다. 순간 부앙느안카이의 좌우와 뒤에서 풀잎 스치는 낮은 소리가 파도쳤다. 그래도 숲은 놀라거나 울분에 찬 

저주를 뱉어내지 않았다.   

그렇게 소리 없이 전진하기를 두 시진. 부앙느안카이는 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자연이 거의 다왔다고 

말해주는 장소가 나타나리라. 그곳을 돌아 다시 동쪽으로 반 시진만 더 가면 신의 분노를 산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이들이 모여 있는 이상한 마을이 나오리라. 

그곳에 이르면 부앙느안카이는 부앙초소이와 함께 그들에게 신의 벌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부앙느안카이는 부앙초소이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해야 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의 영혼을 달래어 조상신들이 숨쉬는 그곳으로 인도해야만 했다. 

부앙느안카이는 처연해지려는 눈빛을 가다듬어 단호함을 되찾았다.

쏴아아아아아아아!

굵어진 빗방울이 폭우가 되었다. 그래도 부앙느안카이는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린 빗물을 달게 삼켰다. 미약하던 풀잎 스치는 

소리마저 빗소리 안으로 스며들었으니 그가 하려는 일을 예상보다 눈물을 덜 흘리고 끝낼 수도 있으리라. 

부앙느안카이는 조금 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첩첩첩첩첩첩첩!

좌우의 가까운 곳에서 물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지금 같은 속도로 가다보면 일각 안에 자연의 이정표에 이를 것이고 

다시 한 시진이면 이상한 마을 앞까지 당도 할 수 있으리라. 

그 순간 부앙느안카이의 두 귀가 움찔거렸다. 그의 두 귀는 토가족 사람들의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보물 가운데 하나였다. 

신의 허락을 받아 자연의 일부를 얻으려 할 때면 언제나 그가 앞장섰다. 그의 두 귀가 알려주는 방향에 가면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이 있었다. 오직 그 한 가지 이유로 부앙느안카이는 사냥을 나설 때면 언제나 선두에 서왔다. 

부앙느안카이는 안색을 굳히며 주먹을 쥔 채 허공을 내지르는 동시에 풀벌레가 되어 울었다. 물 밟는 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오직 빗소리만이 공간을 메웠다. 

부앙느안카이는 창을 바닥에 내려놓고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두 손을 귀 뒤쪽에 붙이며 눈을 감았다. 그의 두 귀는 숲이 

내는 모든 소리를 한꺼번에 들었다가 하나씩 걸러내기 시작했다. 

폭우 소리를 먼저 지워버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지우며 풀잎에 떨어졌다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소리까지 

구분해 내었다. 

그래도 남은 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는 결코 자연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직은 낮지만 선풍이 이는 듯한 세찬 바람 

소리, 그러나 자연이 만들어내는 선풍소리와는 이질적인 소리. 그 뒤로 연이어 들려오는 물방울 튀는 소리. 그리고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 

심상치 않은 그의 행동을 지켜보던 부앙초소이는 마침내 차갑게 불타오르는 부앙느안카이의 두 눈을 확인했다. 부앙초소이는 

전방으로 뻗어나가는 부앙느안카이의 손을 보는 순간 전신으로 차가운 기운을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앙초소이는 놀란 뱀처럼 은밀하고 빠른 몸놀림으로 질퍽거리는 숲을 헤쳤다. 보이지도 않으련만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돌을 

밟아 물 튀기는 소리를 피하고 노루처럼 펄쩍 뛰어 넝쿨과 나무와 풀잎 사이사이를 지나며 삼십여 장을 전진했다. 

부앙초소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두 눈을 예리하게 빛내며 조심스럽게 몸을 낮췄다. 바닥에 엎드려 몸을 좌우로 연신 

비틀어 아예 차가운 진흙 속으로 반쯤 파고든 후에 가쁜 호흡을 낮추고 늦춰 존재를 죽였다. 

나뭇잎 사이로 멀리 번개가 치는 듯 일순간 청광이 번득였다가 사라지고 다시 바람소리 세차게 들렸다가 사라졌으며 풀잎과 

나무들이 비산했다가 산산이 흩뿌려졌다. 그리고 거리를 좁혀 다시 같은 현상이 반복되었다. 

그 뒤로 다른 소리가 들렸다. 말소리, 그러나 부앙초소이가 쓰는 말이 아니라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인간들의 

말이었다. 

부앙초소이는 전 신경을 귀에 모아 말소리를 들으려고 애썼다. 그 역시 대충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인 까닭이었다. 그러나 

들리는 것은 말이라기보다는 상소리에 가까워서 따로 내용을 거를 만한 것이 없었다. 

부앙초소이는 갈등했다. 조금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도대체 몇 사람이나 되는지 어떤 형태로 다가오는지 등등. 하지만 

전진해 오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그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도 전에 마주칠 공산이 컸다. 

부앙초소이는 입술을 깨물고 조용히 몸을 일으킨 후에 다시 민첩하고 은밀하게 왔던 길을 되짚었다. 그가 부앙느안카이에게 

이르렀을 때는 이미 일곱 명의 동료들이 모여 있었다.

“말소리가 코 큰 놈들이야. 너무 빨라서 제대로 살피지 못했어. 발소리는 스물 이상. 기운은 강했어.”

부앙초소이가 간결하고 긴박하게 소곤거리자 모두가 그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듯한 장년인을 바라보았다. 그가 물었다. 

“나는 원숭이 놈들이겠지?”

모두가 한결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장정들이 마을을 비운 사이에 패악을 부리고 사람들을 납치해 갔다가 다시 돌려줘 놓고 왜 다시 

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이 아닌 다른 누구로 짐작할 까닭이 없었다. 

조금 더 하얗고 코가 조금 더 큰 사람들로부터 비켜달라는 요구를 받지 않는 오지였다. 아예 그들이 발을 들이지도 않는 

영토였다. 수림 안에는 오직 토가족과 묘족만이 자리해 있으며, 숲을 막 벗어난 서쪽 고원에 이르러서야 나는 원숭이라 

자칭하는 인간들의 이상한 마을이 있었다. 

토가족과 묘족과는 특별히 사이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어서 가끔 사냥 중에 만나도 잠시 눈길만 마주했다가 스치고 지나갈 

뿐이었다.

나는 원숭이라 자칭하는 사람들과는 더더욱 만날 일이 없었다. 나는 원숭이들은 극히 호전적인 도적이었으나 숲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은 묘족이나 토가족이 무서워서라기보다는 감수해야할 위험과 노력에 비해 얻을 것이 없는 탓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그들의 이상하게 생긴 마을로부터 시작되는 넓은 고원에 널리 분포한 그들의 동족들을 괴롭히며 사는 

인간들이었다. 그래서 토가족의 장정들은 평소에 그들에 대해 별다른 경계 없이 마을을 비우고 다녔던 것이었다.

재차 생각하고 다른 가능성을 더듬어 보아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무엇이든 최초의 한번을 넘긴다면 되풀이는 수월해지는 법. 

나는 원숭이들이 아니라면 토가족들이 숨은 듯 살아가는 오지에서 하얗고 코가 좀 더 큰 인간들을 떼거리로 만날 일은 아예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리라. 

연장자는 부앙초소이를 응시하며 다시 물었다. 

“대형은 짐작이 가나?”

“오직 한곳에서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뱀형 같았습니다.”

“뱀형? 좋아. 중앙을 비우고 좌우로 흩어져 에워싼다. 내 신호로 일제히 공격!”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들은 살인에 대한 두려움과 강렬한 복수심을 동시에 드러내며 대답 대신 좌우와 뒤로 흩어졌다. 

이제 남은 이들은 부앙초소이와 부앙느안카이 뿐이었다. 

부앙초소이와 부앙느안카이는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허리춤에서 한 자가 조금 넘는 대롱을 꺼내 바닥으로 

휘둘렀다. 물방울이 남김없이 털려나오자 다시 허리춤에 있는 가죽 주머니에서 끝이 둥글고 편편한 한 치 가량의 침을 꺼내어 

대롱에 넣었다. 그 순간 그들의 좌우에서 미약한 움직임들이 감지되었다가 점차 멀어졌다. 동료들도 움직이는 것이다. 

두 사람은 바닥을 굴러 전신에 진흙을 바르고 나서 끈끈한 우정이 드러나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주먹을 뻗어 맞부딪쳤다.

“신께서 보살펴 주리라.” 

같은 말로 서로의 안위를 기원한 두 사람도 좌우로 흩어졌다. 두 사람은 주위를 살펴 오장 안의 시야가 막히지 않을 장소를 

물색했다. 부앙초소이는 유독 굵은 나무 위로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올라가 자리 잡았고, 부앙느안카이는 자신의 몸채만한 돌 

뒤로 납작 엎드렸다. 

두 사람은 한번의 큰 호흡 후에 호흡의 간격을 늘이고 소리를 낮췄다. 아무리 예민한 사람이라도 쉽게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이 방법을 쓰면 산짐승마저도 아무런 의심 없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제 부앙느안카이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아는 

부앙초소이로서도 그의 존재를 찾아낼 수 없었다. 

시간이 흘렀다. 부앙초소이의 정수리에 떨어진 빗방울이 머리카락을 타고 뺨을 지나서 목을 따라 가슴까지 흘러내리는 시간이 

다섯 번이나 반복되는 짧고도 긴 시간이 흘렀다. 

부앙느안카이의 귀에만 들리던 숲의 비명이 부앙초소이에게도 선명하게 들렸다. 부앙초소이는 숲이 내지르는 비명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쳤다. 

바람을 동반하지 않고 일직선으로 폭우가 내리꽂히고 있었다. 빗방울이 나뭇잎과 대지를 두드리는 소리가 귓전에서 쟁쟁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질적인 바람소리는 자연의 소리를 찢고 부앙초소이의 귓구멍 속으로 꽂히듯 들어오고 있었다.

불안했다. 숲에서 태풍을 맞이한 적도 있는 그였기에, 지금보다 더한 비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한기에 

몸서리 친 적은 없었다. 자연으로부터 나오는 소리가 아닌 것을 알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불안한 감정이었다. 

부앙초소이는 문득 그와 부앙느안카이가 부족의 어르신을 모시고 나는 원숭이들의 마을에 들어갔을 때 보았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나는 원숭이들 가운데서도 제법 지위가 있어 보이던 구레나룻 중년인은 부앙초소이의 아내를 비롯한 몇몇 아낙들을 땅에 무릎 

꿇려 놓은 채 섬뜩한 살기를 드러내는 도를 휘둘렀었다. 그것도 그의 아내의 머리카락이 휘말려 올라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휘둘렀었다. 

그때 그 은빛 도신은 요사한 붉은 광채를 토해냈었다. 도신이 허공을 수평으로 가르며 차갑고 예리한 바람소리를 내는 순간, 

아낙네들이 눈을 질끈 감고 진저리를 쳤다. 물론 부앙초소이도 감히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가 다시 눈을 뜬 그때, 

수백가닥의 머리카락들이 잘려져 허공에서 한참이나 휘돌다가 떨어졌었다. 

그 중년인이 붉은 기운이 뭉클대는 도를 늘어뜨리고 조롱기 가득한 눈빛으로 누런 이를 드러내는 순간, 부앙초소이를 비롯한 

토가족의 대표들은 아득한 절망감에 빠져 두 다리의 후들거림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그들 가운데서도 부앙느안카이가 느꼈던 절망감은 그 누구보다도 컸었다. 살모사 같은 잔혹한 눈빛 속에 드문드문 드러나는 

욕정이 바르르 떨고 있는 부앙느안카이의 아내의 전신을 핥고 있었다. 

토가족 사람들은 결국 준비해온 말들을 입 밖으로 내뱉어 보기도 전에, 그들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한 사람의 등에 비수를 

꽂을 수밖에 없다고 결정하고 말았다. 

바로 그 소리였다. 분노한 사람에게서 절망감을 느끼게 만들었던 귀신의 소리. 

부앙초소이는 문득 자신이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음을 자각했다. 그때를 돌이켜 생각해 보니, 거리가 달랐다. 그때 그는 누런 

이빨의 사내로부터 겨우 다섯 발자국 앞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소리는 오십 보 이상의 거리에서 들려옴에도 불구하고 

그때보다 더 크게 들리고 있었다. 지금 오는 귀신은 그때의 그 귀신보다 수십 배는 더 강하리라. 

쉐에에엑!

폭우를 뚫고 푸른 번개가 번득이는 순간 또 다시 귀호곡(鬼號哭)이 밀림을 떠돌았다. 귀신이 훑고 지나간 자리는 어김없이 

풀과 나무들이 놀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부앙초소이는 떨려오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고 부는 화살을 굳게 움켜쥐었다. 

‘괜찮아. 아무리 귀신같은 놈들이라도 부는 화살에 맞으면 다섯 발을 떼지 못할 거야. 목이 부어오르고 손발로부터 시작되어 

이내 전신이 마비되고 말겠지. 눈이 튀어나오고 거품을 물거야. 그것으로 끝이지. 누구도 피해갈 수 없어. 냉정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야.’

부앙초소이가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을 때, 그들은 조심성 없이 오고 있었다. 이십여 보. 십여 보만 더 내딛으면 

부앙초소이의 시야에 잡히리라. 

또 한 차례의 귀호곡이 울려 퍼지고 그들이 다시 오보 전진한 바로 그 순간.

찌르르르르르, 풀벌레 우는 소리가 났다. 

부앙초소이는 당황하여 눈을 부릅떴다. 아직은 아니었다. 그와 부앙느안카이에게는 상대가 보이지 않았다. 

‘안돼에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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