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79)

         

운경산은 오른손을 등 뒤로 돌려 엄지를 세웠다. 그리고 등 한 가운데를 긁적이기 시작했다.

“어이 씨, 꼭 긁기 힘든 데만 간지럽더라.”

운경산은 긁은 자리가 상처가 날 정도로 새빨갛게 되어서야 긁기를 멈췄다. 그리고 침상 끝에 나뒹구는 백의 무복을 걸쳐 입고 

동경 앞으로 다가가 오른손으로 턱을 붙잡고 얼굴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허어! 그 놈 참 잘 생겼다. 누구시더라? 그렇지! 천북제일무가의 절세미남 운경산이 아니시던가. 크크크!”

동경에 비치는 사내다운 얼굴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은 운경산은 앞섶을 모두 여미고 탁자를 지나 검가로 다가갔다. 어지러운 

방안의 모습과는 달리 검가에 얹혀진 사척 검은 한 치의 비틀림도 없었다. 

검신의 중앙을 쥐는 운경산의 태도는 경건하기 그지없어 조금 전의 장난스런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곧 이어진 말투에는 

이미 진지함이 사라지고 없었다.

“정말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야. 왜 검만 잡으려하면 등이 가려워지는 거야?”

“그거야 네 녀석이 씻지를 않기 때문이지.”    

등 뒤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경산은 경건한 태도로 검을 등에 맨 후에야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어렸다. 

“왔수?”

문가에 기대어 서있는 백의무복 사내는 인상이 운경산과 비슷했다. 굳이 다른 점을 찾으라면 키가 한 치 정도 작은데다가 

사나이다운 운경산에 비해 선이 조금 가늘다는 느낌 정도였다. 그러나 크게 다른 점도 한 가지 있었다. 운경산이 대충 

던져두었던 옷을 그대로 걸친데 반해, 문가의 사내는 한줄 구겨진 곳 없는 반듯한 차림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바로 운경산의 형이며 금의대주의 자리를 맡고 있는 운현산이었다. 운현산의 얼굴에도 흐릿한 미소가 감돌았다.

운경산이 문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근데 무슨 일이오? 막 자려던 참인데?”

운현산은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마당으로 내려서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많이 끼었는지, 달은커녕 희미한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이었다. 

“음! 하늘을 봐서는 모르겠군. 그래도 잘 시간은 아닌 것 같은데?”

운현산은 운경산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앞서 걸었다. 운경산이 껑충 뛰어 운현산과 보조를 맞추며 말했다. 

“홀로 잘 시간은 아니오만 같이 잘 사람이 없는 외기러기니 어쩌겠소? 꿈에서는 나타날까, 내 각시여! 더도 말고 형수만큼만 

되어라.”

“네 이놈!”

짐짓 꾸짖는 듯 하나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는 못했다. 그러나 내심 한 구석에서는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운경산의 나이도 이미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도 미혼인 것은 온전히 운현산의 탓이었다. 넘보던 경지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탓에 혼인을 마다하고 폐관에 들어 그 자신이 서른을 넘겨 일가를 이뤘으니, 운경산은 꼼짝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운현산은 운경산도 모르는 사이에 어른들끼리 혼담이 오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미안함을 털어버리고 애써 웃으며 다시 

말했다. 

“더도 말고 라니? 그 이상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네 형수가 이번에 네 신부감을 찾겠다고 고향에 

간다하는데 극구 말려야겠구나.”

운경산이 웃으며 말했다. 

“흥! 말리시구랴. 아니, 제발 말려주시오. 형은 모르시우? 여자는 말이오, 자기가 아는 사람한테는 절대 자기보다 예쁜 

여자를 소개시키지 않는다 하더이다.”

운현산은 자기보다 예쁜 여자를 어디서 구하냐던 아내 봉운정(鳳雲精)의 말을 떠올리며 쿡쿡댔다. 그때 운경산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운현산의 옆구리를 찔렀다. 

“근데 무슨 일이냐구요? 전에 없이 한밤중에 모이라 하니 궁금해 죽겠소.”

운현산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대공자, 아니 형님의 명을 전해야 돼. 장강 이남으로 가게 될 모양이야.”

운경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빙혼귀(氷魂鬼)가?”

운현산이 정색을 하며 낮게 꾸짖었다.

“놈! 말조심 하여라.”

“큼! 알겠소. 근데 장강 이남? 무슨 일로?”

운현산이 운경산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탁탑참요검, 도적들에게 빼앗겼나보더라. 그걸 찾으러 가는 게야.”

운경산이 눈에서 불을 토하며 외쳤다. 

“어떤 개자식들이 감히 본가의 물건에 손을 댄단 말이오? 흥! 그놈들 정말 재수 없구나. 제대로 걸렸어.”

운경산의 입에서 으드득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동안에 두 사람은 이미 넓은 청석 마당을 지나고 몇 개의 대문을 

지나 세가의 서쪽에 위치한 전각의 담 앞에 이르렀다. 

담을 따라 걷다가 대문을 들어서니 전체적으로 흰빛이 감도는 대리석 연무장이 보이고 그 뒤로 크지 않은 전각이 보였다. 

연무장에 삼삼오오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던 백의청년들이 운현산과 운경산에게 아는 체하자 그들도 청년들에게 웃어보였다. 

운현산이 전각의 첫 번째 계단에 올라서서 돌아서니 청년들은 어느새 그 앞에 삼열 횡대로 도열하여 운현산을 주시하고 있었다.

운현산이 전체를 훑었다. 각 열마다 열 명씩이니 모두 서른 명이었다. 운현산이 이번에는 각각의 눈들과 마주치며 상태를 

살폈다.  

“아픈 사람 없나?”

없다는 대답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운현산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갑작스럽긴 하다만 내일 우리 금의대는 대공자를 수행하여 장강으로 가게 될 것이다.”

운현산이 말을 끊었음에도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다만 눈빛이 흥분으로 물들었을 따름이었다.

운현산이 다시 말했다. 

“가주께서 수년간 공을 들이신 탁탑참요검이 장강에서 수적의 손에 들어갔다. 아직 수적들의 정체는 밝혀진 바 없으니 긴 

여정이 될 것이다. 곧 우기가 닥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천시와 지리에 맞춰 적절히 준비하도록.”

예라는 대답이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운현산은 만족스런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다시 말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본가의 오행무대 가운데 우리 금의대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아가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 금의대가 

본가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가문의 어르신들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바 크실 것이고, 세상 사람들도 우리를 주시하게 될 

것이다. 실망시키지 말자.”

말을 끝내고 운현산이 계단에서 내려서자 금의대원들은 만면에 환한 웃음을 머금고 옆 사람을 마주보며 오른손을 내뻗었다. 순간 

그들의 손에 칼날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면서 연속적으로 경쾌한 소리가 터졌다. 

파파파파파파파팡!

서른 명의 금의대원들이 하나같이 휘청거렸다. 그때 운경산이 계단으로 올라서며 말했다. 

“으이그! 무식한 놈들! 써먹을 데 없다고 동료들을 후려 치냐? 자식들아! 엿 같은 새끼들이 감히 본가의 물건에 손댔다. 

어떻게 해야 되겠나?”

파파파파파파파팡!

“죽여야지.”

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운경산이 활짝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렇지? 확실하게 본보기를 보여주자. 다시는 본가를 건드리는 놈들이 없도록. 해산!”

파파파파파파파팡!

또 다시 서로의 손바닥을 노리고 벽공장(劈空掌)을 날린 금의대원들이 서로의 어깨를 부딪치며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고서 

흩어졌다.  

운현산은 은은한 미소를 드리우면서 그들을 바라보다가 어두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두렵소, 형님! 무슨 뜻이오? 제발 우리의 능력만 높이 샀기를 바라오.”

“뭐라구요?”

묵직한 미소로 동료들을 환송한 운경산이 운현산의 중얼거림을 언뜻 들은 듯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운현산은 순식간에 

얼굴에서 어두운 기색을 지워버리고 활짝 웃었다. 

“난 아버님이 너를 두고 중석(重石)이라 부르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 이중인격자야.”

“엉? 내가 왜 이중인격자요?”

운경산이 눈을 뚱그렇게 뜨자 운현산은 웃음을 실실 흘리며 걷기 시작했다. 

“그럼 아니냐? 모르는 사람들은 네 놈이 과묵하고 무서운 놈이라 생각하지. 네 놈이 마음 통하는 이들하고 하는 짓거리를 

본다면 놀라 까무러치고 말거야.”

운경산은 묘한 웃음만 흘릴 뿐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운현산의 어깨에 팔을 얹어 힘주었다.     

그그그그그그그!

육중한 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으며 운녹산은 운검정과 가문의 어른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애마 비영(飛影)에 올라탔다. 

그와 동시에 운현산과 금의대 또한 일사불란하게 말에 올랐다. 

운녹산은 운가의 본전 격인 숭의전(崇義殿) 앞에 배웅 나온 본가 사람들을 훑어봤다. 

중앙에 운검정이 보이고, 그 좌우로 세가의 어른들이 있으며, 그들의 좌측에 운검정의 부인이자 운가의 대부인인 

경의상(卿義尙)과 둘째 부인 상취월(桑翠月)이 나란히 서있었다. 그 옆으로는 운녹산의 아내 목추경(木秋瓊)이 왼손으로 

일고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소동의 고사리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 다섯 살 가량 된 아이의 볼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또 한 사람의 여인이 어린아이를 안고 있다. 

사람들을 훑어가던 운녹산의 시선이 목추경에게서 멈췄다. 그녀가 아름답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하얀 

얼굴에 붉고 가는 입술은 어쩐지 고고함이 지나쳐 차갑게 느껴졌다. 

운녹산의 시선이 살짝 비틀렸다. 또 다른 여인, 그에게는 제수(弟嫂)가 되는 봉운정이었다. 아름다움을 따지자면 목추경을 

따라가기는 힘들리라. 그러나 그녀에게는 목추경에게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동그랗다가 꼬리가 살짝 쳐진 눈매에서는 포근함이 느껴지고 꾹 닫힌 입가에서 흐르는 엷은 미소에는 너그러움이 묻어나왔다. 

목추경보다는 오히려 그녀가 운녹산의 어머니이자 가문의 살림을 도맡고 있는 경의상과 그 기질이 닮아 보였다. 

운녹산은 금세 초점을 자신의 아이들과 아내 목추경에게로 돌렸다. 그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어렸다. 순간 목추경의 왼손을 

붙잡고 있던 아이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목추경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운녹산은 목추경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고서 좌측으로 말머리를 틀었다. 음양쌍도(陰陽雙刀)가 따라 

움직이고 그 뒤로 운현산의 금의대도 대문을 향해 말머리를 틀었다. 

막 문을 나선 순간 운녹산이 문득 고개를 들어 먹장구름 가득한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운녹산은 얼굴을 살짝 찌푸리면서 

왼손을 들어 볼에 묻은 물기를 닦았다. 

운녹산은 앞을 본 그대로 운현산에게 말했다. 

“금의대주. 검각산을 벗어나기까지는 속도를 내야 할 것 같군.”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건조한 말투였다. 운현산은 낯빛을 흐리며 대답했다.  

“앞서시지요, 대공자. 보조를 맞추겠습니다.”

운녹산이 말 옆구리를 찍었다. 

후두두두두두둑!

운녹산과 음양쌍도가 앞으로 튀어나가자 운현산이 손을 들어 앞으로 내뻗었다. 순간 서른두 마리의 말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운녹산의 속도에 보조를 맞추었다. 

운현산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진 운녹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굳이 금의대주라 부르실 필요가 있소이까? 그냥 현산이라 부르시면 아니 되오? 어찌 목소리에 한 올 감정조차 담아내지 

않으시오? 형님이라 불러보려 해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운현산의 복잡한 심경처럼 그의 시선에 와 닿는 운녹산의 등은 점점 더 차갑고 멀게만 느껴졌다.

!

후두두두두둑!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는 경망스런 소고(小鼓) 소리처럼 느껴졌다. 

곽자렴은 제룡당의 대청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미간에 세 줄의 굵은 세로주름을 잡은 채 뒷짐을 지고 대청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때 표국 대문을 통하여 유지우산을 쓴 털북숭이 곽동량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아버님!”

곽자렴은 곽동량이 우산도 걷기 전에 채근하듯 물었다. 

“어찌 되었느냐? 선부(船夫)들은 모두 구했어?”

대청으로 올라선 곽동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많으나 강물이 점차 불기 시작한 탓에 아무도 나서지 않으려 했습니다. 할 수 없이 두당 열닷 냥과 의창에서의 

체재비 조로 닷 냥을 함께 지급한다는 조건을 걸고서야 선부들을 구했습니다.”

한 달 동안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노질을 한다 해도 세 냥 벌기가 힘든 세상이었다. 후하다는 용문수로표국의 신참 표사가 

받는 월삯이 네 냥이었다. 

사람을 태우고 강물을 따라 흘러가 한참을 놀다가 빈 배로 올라오는 그 한번의 운항으로 스무 냥을 얻을 수 있다면 

재신(財神)을 만난 것이리라. 

한 번 운항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대가치고는 너무나 출혈이 컸으나, 용문수로표국의 발이라 할 수 있는 토가족 사람들 

없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곽자렴도 전혀 아까울 게 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야. 백 냥을 준다 해도 아깝지 않아. 헌데 천북표국(川北鏢局)에는 들려보았느냐? 준비할 것이 

많을 텐데.”

곽동량은 품속을 뒤적이며 대답했다.  

“나가면서 들렸더니 막 전서를 받았더군요. 전에 왔던 세 사람과 금의대 전원이 온다 했습니다. 모두 서른다섯 명입니다.”

순간 곽자렴이 끙, 하는 소리와 함께 미간을 모았다. 

“금의대라 함은 젊은 아이들로만 구성되었다는---.”

곽동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 운가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오행무대 가운데 하나입니다. 소자가 알기로는 천북을 벗어나는 것이 이번이 

--.”

곽동량도 걱정된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곽자렴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경험일천, 패기만만 금의대인가? 그 패기, 지나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건 그렇고 나갈 때 알아봤다면 

곽동량이 품속에서 꺼낸 종이를 펼치며 대답했다. 

“묘도(苗刀) 사십 자루, 한자 수통 쉰 개, 웅황(雄黃)과 백반(白礬), 유지 바른 녹의(綠衣) 각 오십 벌 그리고 

우육포(牛肉脯)와 돈육포(豚肉脯) 기타 건량 열흘 치 등, 말씀하신 대로 빠짐없이 주문했습니다만, 급하게 모으는 바람에 

삼천삼백칠십네 냥을 쓰고 말았습니다.”

곽자렴이 고개를 내저었다. 

“돈 걱정은 말라니까. 어차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물건을 잃었어. 표국을 내어달라 해도 아무 말 못하고 주어야 할 

판이야. 이미 신용을 잃었는데 그까짓 돈이 문제일까? 표물을 찾을 수만 있다면 내 목숨도 내어줄 수 있어. 잊지 말아라. 

저들이 아무리 까탈스럽게 굴어도, 아무리 고깝게 느껴지더라도 우리는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느니라. 어떻게든 

표물을 찾아야 최소한의 면목을 세울 수 있는 게 우리 입장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곽동량이 머리를 숙이자 곽자렴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운가는 오늘 밤이나 늦어도 내일 아침에는 도착할 것이다. 네 고생이 말이 아니다만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배를 한 번 

더 점검해 보아라.”

곽동량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대청을 내려섰다. 

곽자렴은 곽동량이 대문을 빠져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무정한 하늘로 얼굴을 들었다.

“하! 내일은 비가 좀 그쳐 주었으면 좋겠는데---.”

곽자렴은 문득 고개를 돌려 대청 뒤쪽에 뚫린 문으로 내가를 바라보았다. 

“아! 부인이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나 모르겠군. 정성을 다 하여도 모자란데---. 하기야 최선을 다하고 있으리라. 표국의 

장래는 물론 우리 부자의 목숨까지 걸려있다 했으니 어찌 소홀할쏜가?”

곽자렴은 다시 뒷짐을 지고 대청을 빙글빙글 돌았다. 

폭우와 어둠을 틈타서 남포현을 스며든 서른다섯의 인마는 조용히 천북표국으로 들어섰다. 잠깐 동안 호들갑스런 음성이 들린 후 

지친 말울음 소리가 잦아들었다.

세 시진 후, 여명의 신은 세상 밝히기를 거부했으나 다행스럽게도 폭우는 세우(細雨)로 바뀌어 잠 못 이룬 몇몇 사람들의 

갑갑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다독였다. 

천북표국의 빈방을 모두 차지했던 방문객들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표국도 소란스러운 새벽을 맞이했다. 

희한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표국 내가의 우물 앞에 삼십여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고차 한 장만 걸친 채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이런 제기랄! 어제도 비로 목욕했고 오늘도 그럴 텐데 목욕은 왜 하라는 거야?”

쫙!

“아야야야야! 형엉! 뭐하자는 짓이요?”

운경산이 시뻘건 손바닥 자국이 난 왼쪽 어깨를 잡고 운현산을 노려보았다. 운현산은 한 바가지의 물을 퍼서 운경산의 어깨에 

쏟아 부으며 말했다. 

“하신께 제(祭)를 올리기 위함이라 하지 않느냐? 잡스러운 말과 생각을 지금 이 시점에서 모두 씻어 내어도 효험이 있을까 

말까한데, 웬 말이 그리 많으냐?”

운경산이 짐짓 고리눈을 치뜨는 운현산을 외면하며 중얼거렸다. 

“도적놈들 잡으러 가는데 제는---.”

운현산이 다시 손을 들자 운경산이 펄쩍 뛰어 물러섰다. 운현산이 준엄하게 말했다. 

“산에 가면 산 사람의 법도를 따르고 강에 가면 강 사람의 법도를 따르는 법이다. 만약 네가 이곳 법도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아버님의 뜻과도 배치되는 것이야. 네 말대로라면 도적놈들이 훔쳐간 탁탑참요검 또한 평범한 철검에 불과하지 않겠느냐?”

그 순간 벌거벗은 채 늘어서 있던 사내들에게서 달아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부대주! 산에서야 무서운 것 만나면 도망치면 되지만 삼협은 달라. 물귀신 되서 마누라 찾기 싫다구.”

“경산 형! 하라면 하지 웬 말이 그리 많소? 난 어릴 때 물에 빠져 죽을 뻔 한 적이 있다구요. 얼마나 무서운데. 잔말 

말고 몸도 씻고 마음도 씻고 욕념도 씻어 버리고 오로지 무사 안전만 빌란 말이오.”

운경산은 자신을 비난하는 금의대원들에게 졌다는 듯 두 손을 들어 보이고 경건한 태도로 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례차례 씻고 나서 금의대의 원래 복장인 백의무복 대신 흑의면복을 걸친 사람들은 식사를 걸러야 한다는 말에도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천북표국을 나섰다. 

용문수로표국에서 보낸 사람을 따라 물소리가 들려오는 포구 근처에 이른 운가의 사람들은 축축하게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을 몰려있음을 보고 놀랐다. 

장정들뿐만이 아니었다. 세우(細雨)라 하나 지속적으로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녀자들도 있고 노인들도 있었으며 심지어 

어린 아이들도 다수 있어 그 수가 이백이 넘는 듯 했다. 곧 시작될 용신제(龍神祭) 때문이었다.

운녹산을 필두로 금의대가 앞으로 나아가자 사람들이 좌우로 비켜서서 길을 열었다. 사람들의 끝에 돌로 만든 사당이 있고 그 

앞으로 곽자렴과 몇 사람의 장정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운녹산 등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운녹산 등이 앞으로 나아가자 곽자렴 등이 맞이했다. 상견례를 마치자 곽자렴이 운녹산에게 말했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오만 반드시 필요하니 양해해 주시구려.”

운녹산은 의외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신제는 처음이나 본가에서도 때로 제례를 행하니 국주께서는 이쪽을 괘념치 말고 뜻한 바를 행하시지요. 다만 하신에 대한 

예에는 어두우니 그저 보고 따르기만 하겠습니다.”

곽자렴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리 연락을 해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운녹산이 용신제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보이면 

어쩌나 하고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그러한 사태가 일어난다면 겨우 구해놓은 선부들이 부정 탔다며 승선을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 어느 쪽이 진짜인가? 그날과는 사람이 달라. 오늘만 같다면 동행하는데 있어 큰 갈등을 빚지는 않으리라.’

곽자렴은 운녹산을 향해 크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다음 용신당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럼 부탁하오이다.”

곽자렴이 포권을 취하며 정중하게 말하자 석조사당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화의 도복 차림의 네 도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신호로 주위에 있던 장정들이 달려들어 석조 사당의 문을 열었다. 

사당이라고 해보아야 제단이 놓인 자리를 빼면 사람 대여섯 들어가기도 비좁아 재를 행하는 동안 사람들은 꼼짝없이 비를 맞아야 

할 판이었다. 

활짝 열린 대문 좌우에는 장강유하주(長江有河主) 삼협재용신(三俠在龍神)이란 대련(對聯)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누각처럼 

만들어진 사당 안의 삼층 제단 주변에는 형형색색 색등(色燈)이 서른여섯 개나 둘러쳐져 있었다. 또 제단과 사당의 사이에는 

길이 아홉 치의 장등(長燈)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앞에는 정성스럽게 마련한 태가 역력한 제물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허술한 보관을 쓴 늙은 도사가 제단에 향해 허리를 접으며 향을 살랐다. 노도사가 품속에서 옥간(玉簡)을 꺼내자, 나머지 세 

명의 중년 도사들이 각각 번(幡)과 선(扇) 그리고 학우(鶴羽)를 꺼내들고 늙은 도사를 따라 제단을 돌기 시작했다. 

“원시천존(元始天尊)께서 평안히 위무(慰撫)하시어 장강용왕신(長江龍王神)께 고하나니, 강에 계신 용왕신과 

좌우사직(左右社稷) 신령께서는 망령되이 놀라지 마시고, 정도(正道)로 돌아오셔서 안과 밖을 깨끗하게 하시며, 신령님들의 

가호를 비는 이 사람들이 무사히 다녀오게 하시기를 간절히 비오나니, 율령대로 급히 행하소서.”

도사들이 쉬지 않고 제단을 돌면서 제문을 음송하는 동안, 곽자렴을 필두로 하여 금의대는 물론 배에 승선하여야 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사당 안에 들어가 향을 사르고 절하기를 반복했다. 

그들의 뒤로 아들의 안전을 비는 노부모와 남편의 무사를 비는 아낙네들 그리고 아비의 생환을 비는 아이들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예를 행하자, 어느덧 시간이 두 시진이나 흘렀다. 

처음에는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던 몇몇 금의대원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사람들의 간절함을 느끼며 스스로도 

진심으로 빌기 시작했다. 특히 맛있게 보이는 제물이 가득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깐의 한눈조차 허용하지 않는 아이들을 

바라본 금의대는 자신들의 짧은 여정이 결코 단순한 뱃놀이가 될 수 없음을 확연하게 깨달았다.

비록 두 시진 반도 못되는 약식이었지만 어쨌든 용신제가 끝났다. 곽자렴이 도사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동안, 용문수로표국에서 

나온 아낙네들이 제물을 나누고 따로 준비한 용염면(龍髥麵)을 내어서 제의(祭儀)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권하였다. 

금의대 역시 과일과 용염면을 받았는데, 이미 옷은 비에 젖고 그때까지 요기도 하지 못한 터라 그 누구도 사양치 않고 용신당 

주변의 돌담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그것을 먹으려 했다. 

운경산은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많은 양의 용염면을 받아와 운현산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말없이 젓가락을 들어 면을 

휘저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

운현산이 막 면을 입에 넣으려다가 운경산에게 고개를 돌렸다. 

“왜?”

“이게 우연이오, 필연이오? 비가 그쳤소.”

운현산은 하늘을 보는 대신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는 자신의 국수 국물을 내려다보았다. 어차피 옷은 흠뻑 젖어있고 비는 오는 

지도 못 느낄 정도의 세우였는지라 따로 의식하지는 못했었다. 그렇지만 제가 끝난 순간 비가 그친 것은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었다. 

운현산은 운경산의 얼굴을 마주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왕이면 필연이라 해두자. 그래야 적어도 물에 빠져 죽을 염려는 하지 않지.”

“그럽시다.”

운경산은 흔쾌히 대답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비가 그친 것을 길조(吉兆)라 여기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씹지도 못할 정도로 볼이 부풀어 오른 한 아이와 시선을 마주친 운경산은 천진하게 웃으며 용염면을 입에 우겨넣어 

볼을 불룩하게 만들었다. 

금의대는 북천표국으로 돌아가 용문수로표국에서 준비한 개인의 행낭에서 녹의를 꺼내 갈아입고 다시 포구로 나왔다. 

넓은 선착장에는 칠장이 조금 넘는 듯한 배 두 척이 가볍게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고 함께 제를 지냈던 선부들이 양 어깨에 두 

개씩 모두 네 개의 긴 노를 얹어 배에 올라타고 있었다. 

“경산 형! 노가 원래 저런 건가요? 오른쪽과 왼쪽 것이 다르네.”

이제 갓 스물이 넘은 듯한 앳된 얼굴의 운추산이 묻자, 사람들이 일제히 노에 관심을 두고 보기 시작했다. 물 속에서 물을 

밀어내는 부위의 넓이가 달랐다. 오른 쪽 노가 현저하게 넓어 보였다.

운경산이 굵은 팔로 운추산의 목을 휘감아 조이며 말했다. 

“어휴! 자식! 쓸데없이 눈썰미도 좋아요. 네 녀석이 모르는 건 나한테 묻지 마. 알았어?”

운추산이 컥컥대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들의 앞으로 곽자렴과 운녹산이 다가왔다. 운현산이 주위를 

환기시키자 순식간에 대오가 정열 되었다. 

운녹산이 곽자렴에게 말했다. 

“말씀 하시지요.”

곽자렴이 운녹산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금의대를 대충 훑어본 후에 말문을 열었다. 

“그나마 비가 그쳐 다행이오만 어제와 그제 이틀 동안 내린 폭우로 강물은 평소보다 많이 불어 있소. 지금 여기서야 별 

위험을 느낄 수 없겠지만, 일단 기문에 들어서는 순간 배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할 것이오. 그러나 별 말이 없는 이상 

동요하지 마시오. 목적지는 무협과 서릉협 사이의 운망계(雲望溪), 물길로 대략 오백 리 조금 못 될 것이고, 빠른 물살을 

고려해도 두시진 이상 걸릴 것이오. 이 늙은이가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배 안에서는 신분을 불문하고 뱃사람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라달라는 것뿐이오.”

곽자렴이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운녹산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운녹산이 금의대를 두루 살피며 말했다. 

“알아들었을 테니 국주께서 하신 말씀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 보다시피 배가 두 척이다. 금의대주와 금의대의 반은 나를 따라 

선도선(先導船)에, 나머지 반은 후위선(後位船)에 탄다. 바람이 동풍이라 지체 없이 출발한다 하시니 서두르도록!”

곽자렴과 운녹산이 돌아서서 선착장으로 향하자 음양쌍도가 그 뒤를 따랐고, 운현산이 금의대원 열 셋을 이끌고 뒤따랐다. 

그들이 모두 선두의 용문비선에 승선하자 운경산도 나머지 대원들을 이끌고 뒤에 있는 용문비선에 올랐다.

눈에 보이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배의 흔들림이 중심을 흐트러뜨릴 정도였다. 운경산과 

금의대원들은 본능적으로 하체를 무겁게 하며 겨우 중심을 잡았다. 그들은 놀란 심정을 얼굴에 과장되게 드러내며 서로에게 

한숨을 토했다. 

“후아! 보통은 아니네. 경산 형! 대단하지 않아요?”

운추산이 배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는 노수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운경산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노수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고리에 노를 거는 이도 있었고 밧줄을 푸는 이도 있었으며 자신의 허리에 묶인 줄을 난간에 묶는 이도 있었다. 

운추산은 조심스럽게 이동하며 노수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이런 젠장 할! 십년 과부, 성난 좆 본 듯한 기세로세. 아차하면 용궁행이로다.”

장년 노수의 중얼거림을 들은 운추산은 킥킥 웃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노수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의 눈에는 고요하기만 

강물이었다. 왜 배가 흔들리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을 정도로 잔잔했다. 

“별 거 없어 보이는데요?”

운추산의 지나가는 듯한 물음에 장년 노수가 운추산을 흘끔 바라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강물은 깊을수록 고요하고 힘찰수록 파도가 없는 법이오. 저리 사람 불안하게 고요한 것 보면 삼협에서는 우리도 속 

뒤집어지고 하늘이 노랗게 보일 게요. 삼협은 처음이오?”

운추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년 노수는 안됐다는 눈빛을 드리우며 혀를 차보였다. 

바로 그때 앞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뭐라 하셨소? 우리보고 화물칸으로 내려가라고?”

운추산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곽동량과 금의대에서 가장 성질 급한 운명산이 한 자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있었는데, 운명산의 

심사가 많이 뒤틀린 것 같았다. 살펴보니 선실 앞쪽에 나무판자가 들려있고 어둠 속으로 계단이 나있었다.

곽동량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어찌 할 수 없소이다. 갑판 위로 무게가 몰리게 되면 배가 쉽게 뒤집어지오. 평소라면 짐을 가득 실으니 그럴 일은 없소만 

지금은 어쩌겠소? 앞쪽 배도 마찬가지 일 것이오.”

운명산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배가 뒤집어지면 그땐 우리만 용궁행이겠군.”

곽동량이 차분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여기서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나 삼협이라면 좌초나 전복의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소이다. 그러나 삼협에서라면 위나 아래를 

따로 구별할 필요가 없소. 다 함께---.”

그때 운경산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해? 아까 무슨 말 들었어? 다들 시키는 대로 해.”

금의대원들이 싫은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하나씩 갑판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장년노수가 운추산에게 말했다. 

“젊은이! 좀 갑갑하긴 하겠으나 거기가 오히려 덜 흔들릴 거요.”

운추산은 장년노수의 말을 위로 삼아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갑작스레 어둠의 세계로 들어선지라 눈뜬장님의 신세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