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79)

   

“견디게!”

오량 등은 만자강이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견디면 산다!

믿고 있었다. 평소에는 거리낌 없이 술자리를 같이 하고 음담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지만 또 일면으로는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 바로 만자강이었다. 이제 그가 복수의 검을 떨쳐 동료들을 죽이고 자신들에게 상처 입힌 수적들을 갈가리 

찢어발기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오량 등의 의심 없는 믿음과는 달리 만자강은 암담했다. 암향표에 몸을 싣고 선실을 뛰어넘어 청성칠심이파검 가운데서도 

가장 익히기 어렵다는 검파난첩(劍波難疊)의 절초를 십성 전개했다. 그것은 허를 찌르는 공격이어서 반 수 이상을 

무력화시키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결과는 달랐다. 오량 등이 살아남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어피인들은 기습을 당해 놓고도 단번에 검파난첩의 기운을 느끼고 

공격을 수비로 전환해 내었다. 결과적으로 단 두 명의 어피인들만이 다시 일어서지 못했고 나머지는 최소한의 손해를 보는 

것으로 검파난첩을 받아넘긴 것이었다. 

만자강은 선수의 난간에서 벗어나 어깨에 걸치고 있던 검을 늘어뜨리는 흑면사내를 주시했다. 암향표에 칠십이파검을 알아보면서도 

놀라기는커녕 입가에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며 박수를 보내는 인물, 바로 그가 수적들의 우두머리였다. 

그의 웃음은 만자강을 당혹감 속으로 빠뜨렸다. 웃는 가운데서도 점차 매서워지는 그의 눈매를 다시 확인한 만자강은 표두로서의 

임무를 못다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빠져들었다. 

바로 그 순간, 잠시 물러섰던 어피인들이 서서히 다가서고 있었다. 만자강의 검에서도 푸른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피어올라 

검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니들 뭐야? 저 양반은 내 손님이야, 내 손님. 니들 건 그 뒤에 있잖아, 자식들아. 물러서.”

흑면사내가 눈살을 찌푸리고 입술을 삐죽 내밀고서 어피인들을 훑어보자 어피인들이 배의 난간 쪽으로 물러섰다. 

흑면사내는 만자강의 검신에서 감도는 기운을 살펴보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 흑면사내는 흔들리는 갑판을 평지 걷듯이 뚜벅뚜벅 

걸어 만자강과의 거리를 일장으로 좁혔다. 그는 곧장 검을 들어 만자강을 향해 뻗었다. 순간 누그러졌던 만자강의 검에서 

시퍼런 청기가 다시 꿈틀거렸다. 

“아차! 이런 멍청이!”

사내는 흑색 가죽 검갑이 검을 감싸고 있음을 확인하고 훌쩍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만자강을 향해 환한 미소를 보이고는 그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어피인을 향해 검을 뻗었다. 

특별히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겨누는 것만으로 검갑이 앞으로 부드럽게 튀어나갔다. 어피인이 검갑을 받아들자 흑면사내는 

다시 만자강에게 검을 뻗으며 두 발짝 앞으로 걸었다. 

만자강은 눈살을 찌푸렸다. 기이하기는 해도 검갑이 감싸고 있는 상태에서는 분명히 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검신이 

드러난 순간 사내의 검은 이미 검이 아니었다.

세상의 빛을 모두 흡수한 듯한 무광택의 흑색 검신에는 검인(劍刃)이 없었다. 또 예리한 검첨이 달려있어야 할 곳 역시 

손가락 하나는 들어갈 것 같은 검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만자강의 눈길이 자신의 검첨에 닿아있음을 본 흑면사내는 다시 한번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자! 이제 한번 해 볼까? 기대만큼은 했으면 좋겠는데---.”

흑면사내가 갑자기 무기를 강으로 내뻗었다. 순간 하신이 수전(水箭)이라도 뿜은 듯 누런 강물 한 줄기가 튀어 올라 

흑면사내의 병기 구멍과 맞닿았다. 

만자강은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펼쳐 보이는 신기한 광경 탓이 아니었다. 그 안에 숨어있는 상대의 경지가 

예사롭지 않았던 탓이었다. 장강의 물줄기를 순식간에 끌어들이는 능숙한 접인공(接引功)에, 채찍과 같은 가느다란 물줄기의 

형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이물성형(以物成形)의 공력이 겸비되어야 가능한 경지였다. 

그렇게 만자강이 당혹감에 휩싸여 있을 때,

쉐엑!

귀청이 서늘해지는 소리와 함께 흑면사내의 병기 끝에 매달린 수편(水鞭)이 강물과 단절되면서 만자강을 후려쳤다. 

만자강은 아차 하는 그 순간 오른발로 오량을 선실 쪽으로 밀어내며 그 탄력으로 허공으로 치솟았다. 근 삼장에 달하는 

물줄기가 성난 수룡이 되어 만자강의 발바닥을 스치고 지나갔다. 

흑면사내는 허공을 휘도는 만자강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짓고서 병기를 미약하게 흔들었다. 한 치 안에서 오가는 작은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병기의 끝에 달려 꿈틀대는 물줄기는 천지 사방을 난자했다. 

만자강은 갑판에 발 디딜 틈도 없이 허공에서 정신없이 휘돌고 또 돌았다. 선풍처럼 휘돌아 상대의 정신을 빼놓고 소리 없이 

접근하여 상대를 죽음 앞까지 내몬다는 청성의 신기 암향표가 한낱 물줄기를 피하는데 쓰이고 있었다. 

방금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던 물줄기가 다시 만자강의 허리를 물겠다고 달려들었다. 만자강은 발로 허공을 후려차서 물줄기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동시에 검을 내뻗어 심천무파(深川無波)의 쾌속한 초식으로 물줄기를 후려쳤다. 

물줄기에 버금가는 굵은 청기가 물줄기와 맞부딪쳤다. 

팡! 

청기가 사라지고 물줄기가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햇볕이 쨍쨍한 가운데 부슬비가 내리는 신기한 현상을 보면서도 

만자강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비 내린 끝에 작은 무지개가 아롱졌다. 그 너머 웃음 짓고 있는 흑면사내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만자강은 처음으로 

바닥에 내려섰다. 

안색이 창백했다. 제자리에서 손목만 놀리는 상대 앞에서 공력손실이 극심한 암향표를 쉬지 않고 펼치면서 광대 짓을 했으니 숨 

가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병장기를 늘어뜨린 채 무방비 상태로 미소를 짓고 있는 흑면사내를 웃고 있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만자강에게는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는 것이 우선이었다.  

만자강의 낯빛이 서서히 돌아오면서 그의 검도 다시 사나운 기색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흑면사내가 다시 병기를 강으로 

내뻗으면서 동시에 왼손을 물방울이 맺힌 갑판을 향해 뻗었다. 갑판의 물방울들이 조금씩 움직이더니 이내 사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허공으로 치솟았다. 

흑면사내의 병기는 또 다시 긴 물줄기를 달고 있었고 그의 왼손 앞에는 물방울들이 모여 주먹만한 구체를 이루고 있었다. 

“계수마공(癸水魔功)?”

만자강을 머리 속을 떠돌던 수많은 단어들 가운데 유독 계수마공이라는 단어만을 끄집어내어 입 밖으로 토해냈다. 순간 

흑면사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신공이라 부르는데. 어쨌든 알아는 주네. 끝까지 몰라줬다면 섭섭할 뻔했어.”

만자강은 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아득한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공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으리라. 정도의 공력이 오행기(五行氣)를 두루 다독이고 조화시켜 성취를 이루는 반면에, 유독 

오행의 한 기운만을 취하여 극대화시키는 무공들이 있다고 들었다. 바로 오행마공(五行魔功)이 그것이었다. 

정공이든 마공이든 간에 그 성취는 익히는 사람의 자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비슷한 자질에 비슷한 수련기간이라면 같은 대성의 

경지가 아닌 바에야 한 가지 기운만을 파는 마공 쪽이 우월하리라. 

계수마공은 오행기 중에서도 특히 수의 기운을 극대화시킨 무공인데, 오늘 만자강은 수의 기운이 천지를 감싸는 장강의 격류 

앞에서 계수마공의 주인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만자강은 전신을 옥죄어드는 암담함을 뚫고 바로 흑면사내에게로 쇄도했다. 금리도천파의 신법으로 빠르게 흑면사내의 앞까지 이른 

만자강은 검을 잇달아 다섯 번이나 내뻗는 해파압천지(海波壓天地)의 수법을 펼쳤다. 

푸른빛 검파가 파도처럼 겹겹이 쌓이면서 흑면사내를 향해 뻗어나갔다. 흑면사내는 그 가공할 공세 앞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노는 듯 수편을 장강에 그대로 담가두고 오직 왼손만을 연달아 휘돌렸다. 일류 요리사의 손끝에서 밀가루 

반죽 한 덩이가 순식간에 원반이 되듯, 흑면사내의 왼손 앞에서 움찔대던 물 덩어리가 투명한 방패가 되어 사내의 전면에 

펼쳐졌다. 

첫 검파가 흑면사내를 내리눌렀다.

팡! 

검파와 물로 이루어진 방패가 부딪치는 순간 요란한 소리가 나며 물줄기가 흩어졌다. 흑면사내는 조금씩 뒷걸음질치면서 손을 

오므렸다 펴기를 연속적으로 반복했다.

파파팡! 

흑면사내의 움찔대는 손놀림에 따라 흩어진 물방울들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다시 뭉치고 넓게 펼쳐져 연이은 검파를 무리 

없이 막아나갔다.

네 번째 검파마저 수막을 뚫지 못하는 순간 만자강은 금리도천파를 거두고 급히 두 발로 갑판을 찍어 물러설 준비를 했다. 

그때 흑면사내의 오른손도 움직였다. 사내의 병기 끝에 매달린 수편이 둥그렇게 반원을 그리며 만자강의 등판을 찍었다. 그러나 

공격할 때 이미 방어를 염두에 두고 있던 만자강은 두 발을 즉시 교차하였다가 펼쳐 뒤로 휘돌면서 검을 내쳤다. 

천류직하(川流直下)! 

검 끝에서 피어난 예리한 기운이 투명한 뱀의 머리를 쪼개어버렸다. 다시 물줄기가 흩어지는 순간 만자강의 등 뒤에서는 

해파압천지의 마지막 기운마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그의 발아래 흩어져 있던 물방울들이 다시 흑면사내를 향해 또르르 구르기 시작했다. 만자강은 숨 한번 쉬지 못한 채 

몸을 휘돌려 사내로부터 멀어졌다. 

다시 일장 반에 이르는 거리를 확보하고 사내를 바라본 만자강은 상대의 병장기 끝에 매달린 물기둥이 현저하게 짧아진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사내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가득했고, 만자강은 온천지에 물뿐인 장강의 한 가운데 있었다. 

흑면사내는 만자강의 눈빛을 관통하는 암울한 기운을 읽고서 싱긋 미소 지었다. 사내는 왼손 앞에서 여전히 굼실대는 물 

덩어리를 손을 휘저어 둥그렇게 펼쳤다. 

조금 전과는 달리 지름 한 자 정도의 작은 원반을 만든 흑면사내는 웃는 가운데서도 매서운 눈빛으로 만자강을 바라보며 다섯 

손가락을 계속해서 튕겼다.

순간 원반에서 수십 개의 물방울들이 분리되어 빛살처럼 만자강을 향해 뻗어나갔다. 

만자강은 이빨을 악다물고 검을 휘둘러 칠십이파검의 구명절초 가운데 하나인 파랑성벽(波浪成壁)을 펼쳤다. 수십줄기 검기들이 

만자강의 전면에 펼쳐지자 만자강의 신형이 마치 바다 속에 있는 듯 보였다. 

투투투투투투툭!

기와지붕에 우박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파랑성벽에 물방울들이 부딪혀 수십 개의 포말들이 부서져나갔다. 그와 함께 

만자강의 얼굴도 일그러지고 그의 신형 역시 조금씩 뒤로 밀려나갔다. 

순간 흑면사내는 왼손을 오므려 넝마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수막을 한데 모았다. 그리고 다시 만자강을 향해 내뻗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주먹 반 만한 물 덩이가 약해진 파랑성벽을 두드렸다. 

팡! 

하얀 포말이 터졌다가 물안개 되었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 만자강의 신형도 실 끊어진 연이 되어 뒤로 날아갔다. 쿵 

소리와 함께 만자강이 돛대 하단부에 부딪쳤다가 주르륵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만자강의 입가에서 한 줄기 핏물을 흘러내렸다. 만자강은 절망 속에서도 마지막 기운을 뽑아내어 힘겹게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보아야 했다. 흑면사내가 자신을 향해 병기를 내뻗고 있음을. 

으아아아합!

만자강은 기합이라고는 할 수 없는 괴성을 내질러 흑면사내를 향해 달렸다. 

“흠! 투지라 해야 하나, 아니면 발악?”

흑면사내는 차갑게 말하고서 내뻗은 병기를 연이어 내질렀다. 순간 병기의 구멍에서부터 유리처럼 투명하고 실처럼 얇은 한자 

가량의 수전이 연달아 발사되었다. 

파파파파파팟!

만자강의 가슴과 어깨와 두 다리를 파고든 투명한 수전이 그의 배후에서 붉게 변하여 튀어나왔다가 힘을 잃고 갑판으로 떨어져 

핏물로 화한 순간, 만자강도 무릎을 꿇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피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입을 쩍 벌린 채, 만자강은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흑면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싱겁잖아. 하긴 옥로현진공(玉露玄眞功)이 없는 속가의 칠십이파검으로는 역시 무리였지?”

사내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만자강의 신형도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표두우!”

조마조마한 심정을 부여잡고 돛대의 앞쪽에 모여 만자강의 분투를 바라보던 오량과 두 표사들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절규했다. 

만자강이 죽은 탓만은 아니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죽음까지 결정된 때문이었다. 

그들의 절망감을 알고 있다는 듯, 흑면사내는 혀를 차보인 후에 그들을 외면하고 선실과 난간 사이의 좁은 통로로 발길을 

옮겼며 지나가듯 말했다. 

“너무 놀았어. 빨리 치우고 돌아가자.”

흑면사내가 좁은 통로로 사라지는 순간 어피인들이 오량 등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흑면사내가 미처 통로를 다 지나치기도 

전에 욕설이 터지고 세 마디 비명이 연속적으로 들렸다. 

통로를 완전히 빠져나와 선미의 좁은 갑판에 첫발을 디딘 흑면사내는 선타를 잡은 채로 완전히 얼어붙은 장오를 바라보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수고하네. 피곤할 텐데 그거 이제 내가 맡을까?”

막역지우(莫逆之友)라도 흑면사내처럼 친근한 어조로 말하지 못하리라. 장오는 그 어조에 오히려 심장이 오그라들 것만 같았다. 

흑면사내가 두 발짝 앞까지 다가섰다. 장오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오른손을 뻗어 도파를 잡고 도를 뽑아야 했다. 

그러나 그의 육신은 그의 의지를 배반하고 있었다. 통나무처럼 뻣뻣한 몸으로 겨우 움직인다는 것이 선타를 놓고 배의 후미 

난간 쪽으로 주춤주춤 물러나는 것뿐이었다. 

흑면사내는 싱긋 웃으며 장오가 조금 전까지 서있던 곳에 이르러 등을 보이면서 선타를 잡았다. 

그때 첨벙이는 소리가 연속하여 여섯 번이나 들렸다. 그리고 타타닥 소리가 들렸다. 장오는 자신도 모르게 좌우로 눈길을 

돌렸다. 아무도 타지 않은 팔보등선 두 척이 격류를 타고 구당협의 입구로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동료들이 다 떠난 모양인데, 거기 계속 있을래?”

또 다시 친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오는 쉽게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바로 번개가 머리를 관통하는 듯한 충격을 

받으며 사내가 한 말의 진의를 깨달았다. 

여섯 번의 첨벙이는 소리. 모두가 떠난 것이었다. 영혼은 남겨둔 채로. 그의 우상 만자강마저도.

장오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혼란스러웠다. 너무나 여유 있게 등을 보이고 있는 상대를 향해 가차 없이 도를 날리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도를 빼기는커녕 도파조차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대로 있다가는 결국 자신도 동료들과 같은 처지가 

되리라는 것쯤은 지금의 정신상태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꼼짝도 못하겠는데. 이 놈의 손은 왜 이 모양인거야? 좀 움직여 봐.’

장오는 힘겹게 왼손을 움직여 오른손을 꼬집었다. 하지만 꼬집는 왼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오른손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들부들 떨릴 뿐 움직여 주지는 않았다. 

그때 다시 친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을 한번 시험해 보지 그래? 혹시 알아? 동료들과는 다른 처지가 될지.”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흑면사내가 나타났던 그 통로를 통하여 어피인 한 명이 나타났다. 그는 장오를 없는 사람인 듯 무시하고 

흑면사내에게 말했다. 

“준비 끝났습니다.”

흑면사내가 조금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좋아. 돌아간다.”

그때서야 어피인이 장오를 바라본 후에 손에 감추어 들고 있던 아미자를 꺼내 보였다. 그리고 허락을 구하는 듯 다시 

흑면사내를 응시했다.  

흑면사내는 어피인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보이고 다시 친근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도 빨리 결정해. 배를 돌린 후에는 귀찮아도 손을 써야하니까.”

장오는 구당협으로 빨려 들어가는 격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배의 앞머리에서 갈라진 물살들이 배의 후위에서 다시 합쳐지는 

선미 너머의 격류를 내려다보았다. 

수십줄기 물살들이 하나로 뒤엉키면서 부글거리고 움푹 파이고 때로 치솟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마귀의 입을 보는 것만 

같았다. 

휘리리리릭! 

소리에 놀라 다시 고개를 돌린 장오의 눈에 살기를 물씬 풍기며 휘도는 아미자와 어피인의 차갑게 번들거리는 눈빛이 동시에 

잡혔다. 

장오는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장오의 입에서 주르륵 피가 흘렀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오른손을 들어 상의 가슴어림의 바느질 자리를 움켜쥐고 눈을 감으며 상체를 난간 너머로 제쳤다. 

첨벙!

흑면사내가 물소리를 듣고서 싱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쯧쯧쯔, 아직 세상 단맛도 다 못 본 어린 녀석이던데---.이 격류 속에서 살아날 수 있을까?”

한편 물속에 빠진 장오는 오로지 본능적인 움직임에 몸을 맡겨 겨우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채 한 모금의 숨조차 돌리지 

못하고 다시 격류에 휘말렸다. 물질은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장오였지만, 삼협의 격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피부가 찢어져 조각조각 떨어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입을 벌려 다시 한모금만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격류는 거대한 

뱀처럼 그의 전신을 친친 감아 옥죄며 점차 더 깊은 강 속으로 끌어내렸다. 

‘제기랄! 이렇게, 이걸로 끝인 거야? 어차피 죽을 목숨인 것, 마지막은 사내답게 장식해야 했는데---.’

격류의 주둥이가 숨통을 깨물어버린 듯 호흡이 가빠왔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장오의 입에서 한줄기 물거품이 터져 

나왔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물거품 속에서 주름진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

용문수로표국의 표사가 되어 처음으로 표사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속만 섞이더니 이제야 제 밥벌이는 할 모양이라며 

장하다고 어깨를 두드리는 아비와는 달리, 그의 어미는 한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결국 집밖으로 뛰어나갔다. 

잔칫상은커녕 저녁밥조차 거르게 되어 장오와 그의 아비가 어미를 놓고 툴툴대고 있을 때, 마침내 그의 어미가 돌아왔다. 

배고프니 밥 달라는 부자의 간절한 요청을 일언반구도 없이 무시해버린 그녀는 붉은 글 같은 것이 써진 노란 종이를 유지에 

꼭꼭 싸더니 장오의 표사복 앞섶에 넣어 정성스럽게 바느질 했다. 

무엇이냐 물었더니 하백의 가호(加護)를 얻은 피수부(避水符)라고 했다. 장오가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눈살을 찌푸리자 그의 

어미는 거금 세 냥을 들인 것이니 반드시 영험이 있으리라 말했었다.

점차 또렷해지는 모친의 영상과는 반대로, 물속에서 절로 일그러지는 장오의 얼굴에 이상한 미소가 떠올랐다. 

‘거봐, 엄마! 세 냥, 눈뜨고 사기 당했잖아.’

장오는 몽롱해지는 정신을 애써 붙잡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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