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345화
120장 대종장
진백천이 정신을 잃는 그 순간.
하늘을 가리던 마기와 먹구름이 사라지며 태양이 떠오른 것은 무척이나 극적이었다.
하지만 잠시 눈을 찡그렸던 이들이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에는 두 구의 사체가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다.
“회주님!”
황대원은 다급하게 무기를 집어 던지며 떨어져 내리는 진백천을 안아 들었다.
그런데 그 상태가 심각했다.
이미 심장은 멎었고 전신이 종이쪼가리처럼 가벼웠다.
화산신검은 곧바로 진백천에게 다가와 그를 살펴봤다.
그는 진백천이 마천영을 끌고 하늘로 올라간 사실이 이 때문임을 알고 탄식을 흘렸다.
“……혼자서 감내하려 하다니……!”
황대원을 비롯해 다른 이들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진백천의 몸에 내력을 불어넣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오히려 굳어버린 몸이 내력을 이기지 못하고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화산신검이 그들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그의 명문혈(命门穴)에 손을 올리고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흰빛은 평범한 내력과 확연히 달랐다.
진백천의 몸이 순간 떨리며 반응을 보였다.
그나마 남아 있던 생명력의 잔재가 온기를 더했다.
‘자네는 이렇게 떠나면 안 되네.’
그의 전신으로 흘러드는 것은 다름 아닌 화산신검의 선천진기(先天眞氣)였다.
그 기운은 꺼져가는 진백천의 생명 불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혼자만으로는 역시나 무리였다.
“회, 회주니이임!”
그런 진백천과 화산신검을 향해 뱃살을 출렁이며 다가오는 인물이 있었다.
다름 아닌 약왕당주였다.
원래라면 정도회에 있어야 하지만 수많은 부상자가 생겨날 게 분명한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밑에 있는 의원들과 함께 부랴부랴 이곳으로 이동했다.
진백천이 마기자의 비동을 털면서 보낸 마기단(魔氣丹)과 그 밖의 영약들을 싸그리 챙긴 것은 물론이었다.
“아, 아니! 어쩌다 이 지경이 되셨단 말입니까!”
약왕당주는 기겁하며 재빨리 의원들을 시켜 탕약을 준비했다.
정도회의 무사들은 말하지 않아도 주변에 호법을 서며 시야를 가렸다.
“아끼지 말고 전부 넣어라! 전부다!”
수십 알의 마기단을 비롯해 약왕당주가 가져온 값비싼 재료를 전부 때려 넣었다.
물론 무작정 섞는다고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운이 상충되며 따로 먹는 것보다 못했으니까.
하지만 약왕당주가 이렇게까지 무작정 모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집성의가(輯成醫家)의 은신처에 다녀오기를 잘했구나!’
원래는 진백천과 함께 가기로 했던 곳이었다.
약왕당주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으로 산책하듯 다녀왔다.
그러던 중에 연꽃이 예년에 비해 일찍 펴 은신처를 찾아내게 되었다.
호기심이 많은 그는 도저히 진백천을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은신처 안을 탐색했다.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집성의가의 연단서와 그들의 최고의 비약이라는 금룡단(金龍丹)이었다.
황금용의 내단이라는 말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는 희대의 영약이었다.
“이놈들아! 어서 서둘러라!”
약왕당주는 극도로 조심스러운 손길로 금룡단을 모든 것이 섞인 탕약에 집어넣었다.
절대 섞이지 않을 것 같던 기운들이 한데 어울리며 서서히 금빛으로 물들었다.
그 어디에도 없고 다시는 만들어지지도 못한 전무후무한 비약이었다.
“어서 회주님을 일으켜!”
다행히 화산신검의 선천진기는 아직까지 그의 생명을 유지했다.
약왕당주는 강제로 진백천의 입을 열고 탕약을 들이부었다.
진득한 황금빛의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꿀꺽꿀꺽-
탕약의 효과는 즉발적이었다.
위장으로 들어간 순간 온몸으로 퍼지며 말라붙었던 기경팔맥(奇經八脈)과 혈도를 축축이 적셨다.
메말라 붙었던 진백천과 정신과 몸이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득-
거기에 화산신검의 선천진기가 합쳐지자 내공은 노도와 같은 기세로 전신을 휘저었다.
몇 번이나 환골탈태를 했던 뛰어난 육체와 정신은 스스로 태허무극진결의 구결대로 내력을 이끌었다.
진백천의 뻣뻣했던 몸이 부드러워지며 어느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우르르르-
마치 용트림과 같은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지며 그의 백회혈에서 황금빛이 솟아났다.
그 빛은 하늘에 맞닿으며 하나로 이어졌다.
천화일로(天和一路)의 경지로 등선을 하는 자가 하늘에 입신을 고하는 빛줄기였다.
그리고 곧 진백천의 전신이 모든 것을 밀어내며 허공에 떠올랐다.
“표기장군!”
“회주님!”
곳곳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진백천은 여전히 반개한 얼굴로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등선(登仙)이라도 하게 될 터.
마치 마중이라도 나오듯 구름이 꼬리 지어 진백천을 향해 길게 내려왔다.
“……미쳤군.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등선이라.”
“보통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대단해.”
유일환을 비롯해 사자혁은 하나같이 혀를 차며 그를 축복했다.
이대로면 정말 진백천은 하늘로 떠나는 듯했다.
하지만 그랬던 몸이 어느 순간 덜컥하고 멈춰섰다.
힘 겨루기를 하듯 어느 정도 유지되던 것이 진백천이 눈을 뜨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누구 마음대로 등선이냐!”
진백천의 거친 손짓에 따라 빛줄기가 뚝 하고 끊겼다.
그야말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모두 앞에서 등선을 거부한 무인으로 남게 된 역사적 현장이었다.
* * *
마교는 멸문 아닌 멸문을 당했다.
어중간한 표현을 쓰는 것은 마교주가 죽고 마뇌는 실종되었으며, 그들을 따르면 5마와 장로들도 대부분 죽었지만.
그곳에 사는 평범한 자들은 여전히 살아가기 때문이었다.
진백천은 철용에게 약속했던 대로 그런 이들까지 죽이지 않았다.
물론 그런 생각에 모든 이들이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용호대장군과 그를 따르는 이들이 몰래 남아 그들을 전부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오히려 진백천에게 걸려 뼈마디가 시큰할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
“피는 충분히 흘렸어. 이제 그만하지?”
정작 그런 말을 하는 진백천의 주먹에는 용호대장군의 피로 흥건했다.
그들은 겁에 질려서 고개만 끄덕였다.
황군은 승리를 만끽하며 바로 황도로 향했다.
황제는 반기며 기뻐했지만 정작 진백천은 고유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눈치를 보던 사례감이 슬쩍 고개를 숙이며 황제에게 속삭였다.
“……축하드리옵니다.”
“축하는 무슨.”
둘 사이는 단순히 호감을 주고받는 것만이 아니었다.
공으로 무엇을 받고 싶냐는 황제의 물음에 진백천은 당당히 고유빈과의 혼약을 말했다.
고유빈조차 그토록 당당히 말할지 몰랐는지 홍시처럼 붉어진 얼굴이었다.
“유빈이 너는?”
“……저는…….”
고유빈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살짝 돌리며 끄덕였다.
묵직한 분위기의 태화전(太和殿)에 어울리지 않는 애틋함이 풍겨 왔다.
둘은 얼마 뒤 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당대 최고의 무인이라는 진백천과 공주의 만남답게 그 참여자들만으로도 어마어마했다.
화산신검을 비롯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문주들이 한자리를 차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 보기 어려운 새외세력의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중에는 남만야수궁과 북해빙궁의 궁주도 포함이었다.
“아, 이런 날이 오다니. 너무 기뻐요.”
당소예는 붉어진 눈시울로 펑펑 울었고 황대원은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황대원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유일하게 당가의 가주인 당염만이 아쉬운 듯 둘을 쳐다봤다.
“쯧. 아쉽구나 아쉬워.”
하지만 정작 당천아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녀의 옆에는 이미 다른 이가 굳건히 서 있었다.
다름 아닌 수라검대 대주인 강량호였다.
‘언제 저렇게 친해졌지?
한 켠에서는 너무 빨리 결혼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진백천이 서두른 것은 당연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듯하지만 고유빈의 뱃속에 또 다른 생명이 잉태했다.
그것도 무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셋이었다.
인간을 초월한 그의 기감이기에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었다.
‘……역시 나라고 해야 하나? 한 번에 3명이라니.’
진백천은 시선을 떼고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곧 입덧하고 그러면 힘들어할 테니 서둘러 결혼하고 쉬어야지.’
이제 정말 회주 따위 집어치워 버리고 유람이나 하며 쉴 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진백천은 그녀에게 구경을 시켜준다는 이유로 함께 정도회로 향했다.
하지만 세쌍둥이라 그런지 예상보다 빠르게 그녀의 입덧이 시작되었다.
임신한 사실을 알자 고유빈은 크게 기뻐했다.
“둘만의 시간을 오래 가지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지금은 단둘이니까 괜찮아.”
팔두마차에 탄 둘은 서로의 시간을 만끽하며 꽁냥거렸다.
“백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 당장에 정도회 회주 때려치우고 당신이랑 놀러 다녀야지.”
나름 당당한 포부에 고유빈의 얼굴이 굳었다.
항상 사랑스럽던 얼굴이 아닌 순간적이지만 상후(商后) 고유빈의 분위기를 풍겼다.
진백천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움찔했다.
“세쌍둥이라면서?”
“……그렇지?”
“그런데 회주를 때려치우겠다고? 그럼 애들은 커가면서 놀고먹는 아버지를 보고 자라라는 거야?”
“아니, 굳이 유람한다고 노는 건…… 아닌…… 데…….”
진백천의 성격을 이미 잘 파악한 고유빈이었다.
회주 자리를 내팽개치면 분명 한량처럼 놀기만 할 게 뻔했다.
이미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졌으니 굳이 일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안 돼. 절대 안 돼! 자고로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란다고 했어! 애들 다 클 때까지만이라도 그만두지 마!”
“…….”
회주를 때려치우려는 진백천의 계획은 이렇게 또다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름 충실히 일하던 진백천은 꼬박 20년이 지나서야 회주 자리에서 물러났다.
차기 회주는 그의 제자이자 모든 이들에게 칭송받는 상장이었다.
항상 진백천을 본받고 싶다던 그는 이날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이었다.
* * *
마교가 강호에서 모습을 감췄지만 생각보다 변화는 없었다.
투쟁과 싸움이 무림인의 본능인 양 다툼은 계속 일어났고 편을 두고 대립하는 것은 여전했다.
오히려 눌려 살던 이들이 고개를 드니 그것을 통제하느라 바쁜 것은 정도회와 진백천이었다.
“……애들하고 놀고 싶은데. 하아. 그러지도 못하는 내 신세가 처량하구만.”
아이가 태어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결혼을 하고 1년 동안은 신혼이라는 핑계로 황대원에게 업무를 미뤄왔는데 이제 그런 것도 통하지 않았다.
고유빈이 아이를 낳자마자 황대원과 당소예가 결혼식을 올려 버렸다.
황대원은 신혼이라는 이유로 업무에서 손을 놔버리고 유람을 떠나 버렸다.
“저희도 이제 즐겨야죠!”
차마 자신이 그랬으니 진백천은 당소예의 그 말에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보내주었다.
지루한 업무에 복귀한 지도 2년째.
진백천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듯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정식 총관이 된 춘식이 그의 마음을 잘 안다는 듯이 살며시 웃으며 분류해놓은 업무를 보고했다
역시나처럼 방대한 양의 서신들이었다.
“하아. 오늘도 그놈들이지?”
“맞습니다.”
악인회는 최근 들어 세력을 펼쳐가며 여기저기서 문제가 되었다.
그 중심에 소악마가 있음을 잘 알기에 여러 차례 토벌을 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놈은 기가 막히게 모습을 감추었다.
“쯧. 도망치는 건 기가막히단 말이지.”
얼굴이라도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진백천이라는 존재가 떴다 하면 호랑이를 본 쥐새끼처럼 도망쳤다.
“악인회가 최근 산적 행세를 하며 상단을 털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아니, 삼류 흑도방파도 아니고 얘네는 왜 이런 짓까지 하는 거야?”
소악마는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재밌어 보인다 싶으면 별의별 짓을 다 했다.
그것이 마교처럼 비인외도(非人外道)와 사마외도(邪魔外道)가 아니기에 그나마 지켜봐 주는 정도였다.
“주변 분타에 도움 요청하고 처리해. 어차피 그래 봤자 꼬리 자르듯 도망칠 테지만.”
진백천은 이미 결과는 뻔히 안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다음 서신을 무려 황궁에서 온 것이었다.
황제는 혼자 있게 되자 심심한지 시도 때도 없이 황명이니 뭐니로 서신을 보내왔다.
매번 시작은 달랐지만 그 끝은 내 조카들을 보고 싶으니 황궁으로 오라- 라는 내용이었다.
매일같이 딱딱한 표정으로 앉아만 있던 황제라도 조카들을 보고 바보 같은 웃음을 짓는 것은 피하지 못했다.
“가고 싶어도 일이 바쁘니 갈 수가 있어야지. 알고 보면 황제가 제일 편한 직업이야. 시키면 알아서 하겠다고 나서는 인간이 수두룩하니.”
그밖에도 당가의 가주인 당염부터 북해빙궁 궁주인 설류운의 서신도 있었다.
동맹을 맺은 이들과는 정기적으로 서신을 주고받으며 교류를 하는 중이었다.
얼마 전에도 중혁과 도홍경은 북해빙궁을 다시 다녀왔는데 전에 고생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심지어 도홍경은 온갖 호사를 노렸는지 포동포동해진 얼굴로 북해빙궁에 다시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댔다.
“형님도 가셨으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요. 흐흐흐.”
“쯧. 가긴 뭘 가. 바빠죽겠는데.”
중혁의 우울했던 성격은 많이 변했다.
도홍경과 항상 붙어 다녀서 그런지 몰라도 정도회에서 사람도 많이 사귀고 웃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또래다 보니 아영, 상장과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듯했는데 그것까지는 진백천이 신경 쓰지 않았다.
“사고만 일으키지 마라. 사고만.”
스승을 닮아서인지 아영은 밥 먹듯이 정도회를 빠져나갔다.
전부 여협이 되기 위한 강호행이라며 산적 무리를 소탕하거나 진백천이 유람했던 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다 언제 친해졌는지 남만야수궁의 소공녀와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나마 옆에 상장과 중혁이 붙어 있기에 망정이었지 아니었다면 진즉에 어디로 튀었을지 모를 아영이었다.
“나도 그랬으니 차마 뭐라 그럴 수도 없고. 으휴.”
한숨을 습관처럼 푹푹 내쉬는 진백천을 보며 춘식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가 옆에서 보기에도 강호에서 정도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하게 높긴 했다.
하다못해 운룡상단조차 황실상단과 함께 천하3대 상단으로 올라섰으니 이리저리 손이 많이 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강량호와 결혼식을 올리고 아이를 낳은 당천아가 얼마 전에 다시 상단 일에 복귀했다는 점이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또 무림대회지?”
무슨 시간이 그렇게 빠르지 벌써 지난번 무림대회로부터 4년이나 지났다.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은 무림대회를 슬슬 준비해야 했다.
“마교도 없어졌겠다. 다들 몸이 달아올랐을 텐데 더 준비해서 나오겠지.”
귀찮음이 가득하던 진백천의 눈에 호승심이 일었다.
무림대회는 전과 마찬가지로 20세 미만만 참여 가능한 약관전(弱冠戰), 20세부터 30세 미만만 참여 가능한 이립전(而立戰), 나이 상관없이 아무나 참여 가능한 연륜전(年輪戰)으로 나눌 셈이었다.
물론 그 규모는 전보다 2배는 더 키워서였다.
전의 무림대회도 워낙 대단했다 보니 이번에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도회의 무림대회를 등용문처럼 생각하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하긴. 당금 강호에서 이곳만큼 이름을 날리기에 좋은 무대는 없을 테니까.”
진백천은 자금을 아끼지 않고 무림대회에 투자했다.
정작 자신도 참가하려 했지만 장로들과 대주들의 반대에 나가지 못했다.
진백천을 걱정하기보다 늑대들 사이에 호랑이가 끼는 격이니 모두가 욕을 할거라는 의미에서였다.
‘확 무명악인 권진을 부활시켜?’
그런 생각마저 할 때 춘식이 옆에서 좋은 의견을 제시했다.
“차라리 친선비무를 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친선비무라.”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 * *
무림대회의 개막식은 무려 진백천과 화산신검의 비무로 시작했다.
화산신검은 이제 거동이 힘들 정도로 노쇠했지만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기는 여전했다.
유일환의 부축을 받아 비무대 위에 올랐지만 검을 쥐자 그의 기세가 달라졌다.
“나는 봐주지 않을 걸세. 마지막 일검이 될 테니.”
“물론입니다. 저도 기꺼이 받겠습니다.”
화산신검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내뻗었다.
처음은 매화검무로 시작되었다.
진백천과 화산신검은 한대 어울리며 말 대신 검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마침내 매화검무가 끝나갈 때쯤 화산신검은 자신의 말한 대로 마지막 일검을 뻗었다.
흰빛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나며 진백천을 향해 뻗어왔다.
진백천은 심검(心劍)을 무마하며 하늘에 날려 버렸다.
“……역시.”
화산신검은 그 말을 끝으로 비무대에서 내려갔다.
너무 싱거운 결과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하늘을 올려다본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 하늘이 갈라졌다!”
“정말이야!”
하늘에 드리웠던 구름이 검에 베인 듯 반으로 갈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무림대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산신검은 자신이 머무는 암자에서 입적했다.
진백천은 그 장례에 직접 참여해서 한참을 시간을 보내다 떠났다.
“이제…… 곧 인가?”
그가 이토록 싱숭생숭한 것은 곧 회귀 전의 나이가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최근 들어 진백천의 유일하게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자고 일어났을 때.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 있을까 봐서였다.
하지만 다가오는 시간을 멈출 수 없었고 결국 그날이 찾아왔다.
* * *
“흐음.”
진백천은 빈 가주전에서 홀로 술을 마셨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당소예를 비롯해 다른 이들이 찾아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있고 싶다고 돌려보냈다.
“설마 아니겠지.”
진백천은 습관적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최근 들어 자꾸 위에서 누가 내려다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등선을 거부하고 나서부터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그리고 아주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진백천은 자신의 침실로 돌아갔다.
아내인 고유빈부터 시작해서 토끼 같은 자식들을 일일이 뽀뽀해 줬다.
“으음. 따, 따가워!”
막내가 칭얼거렸지만 그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웠다.
진백천은 이내 침상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두 눈을 쉽사리 뜨지 못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있을까 봐 두려웠다.
‘모두가 사라지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누군가 진백천의 가슴팍 위로 올라왔다.
깜짝 놀라 눈을 뜨자 자신과 고유빈을 닮은 셋째 딸과 눈이 마주쳤다.
“아빠. 일어나!”
진백천은 순간 아무 말도 못 하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배고프지?”
“응! 아 참! 엄마가 아빠 어젯밤에 늦게까지 술 마셔서 혼낼 거래!”
“……그, 그래?”
진백천이 그녀를 어깨에 올리고 침실 밖으로 나서자 둘째인 진서구가 쪼르르 달려와 다리에 달라붙었다.
“아빠아아!”
“진서구 너. 아빠한테 칭얼거리지 말랬지?”
그 옆에 서 있는 첫째인 진서후는 엄마를 닮아서 성격이 칼 같았다.
어리지만 똑부러졌다.
“히잉. 형은 맨날 나보고 뭐라 그래.”
진백천은 셋 다 품에 안아 들었다.
진서후는 제 발로 걸을 수 있다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오늘만큼은 함께 안아주고 싶었다.
얼마 걷지 않아서 멀리 꽃밭에 물을 주고 있는 고유빈이 보였다.
“엄마아아!”
진서구가 고유빈을 향해 달려갔다.
고유빈은 곧 진백천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따스한 눈동자로 고유빈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렇게 봐?”
“아니, 그냥. 오늘따라 이뻐 보여서.”
진백천의 말에 고유빈의 얼굴이 붉어졌다.
“칫. 그런 말로 어제 늦게 들어온 거 때우려고.”
“그런 거 아니야. 진심이야.”
그는 가볍게 고유빈을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도 각자 다리에 달라붙었다.
한 덩어리가 된 채 진백천은 활짝 웃었다.
‘행복하다.’
그저 새롭게 찾아온 이 하루가 영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