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342화 (342/346)

무림회귀백서 342화

118장 표기장군(驃騎將軍)(2)

천마신교 장로(長老) 염라혈소(閻羅血笑) 철용.

붉은 머릿결의 멧돼지 같은 인상의 그는 요즘 들어 최악의 기분이었다.

‘흐음.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반역도당과 한편이 되었지?’

이유는 연왕부의 연춘왕과 그의 아들인 연자전의 후안무치한 행동 때문이었다.

그자들은 자신의 군사들이 힘겹게 성문을 틀어막고 싸우는 와중에도 성내에 기생들을 불러들여 매일같이 잔치를 벌여댔다.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가끔은 잘 싸우는 연왕부의 군사들을 향해 패악질을 하기도 했다.

왜 아직도 밖에 있는 황군을 몰아내지 못했냐는 철없는 소리와 함께였다.

‘저런 자들을 찢어 죽이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교주께서도 다 깊으신 뜻이 있으신 거겠지.’

그렇게 애써 못 본 척 못 들은 척 무시하고 있는 어느 날.

성 밖에서 유난히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까지처럼 사람이 죽어가는 신음이나 비명 소리가 아니었다.

“장로님. 지금 당장 밖을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철용이 성벽 위로 올라가자 멀리 설치된 황군의 막사와 관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지는 어제까지와 다르지 않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성문 바로 근처에서 지글거리며 맛있는 냄새가 올라왔다.

“으음? 저것들 지금 뭐 하는 거냐?”

“그게…… 잔치라도 여는 것 같습니다.”

“내가 그걸 몰라서 묻는 줄 아느냐? 무슨 이유로 잔치를 여느냐 이 말이야!”

황군은 대놓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즐기는 모습이었다.

연왕부의 군사들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성문을 못 뚫으니 단체로 미쳤나?”

“차라리 보급품으로 먹고 즐기다 물러날 생각인가 보군.”

그들은 애써 그렇게 말하며 썩 꺼지라며 소리쳤지만 두 눈 만큼은 기름진 고기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황실상단으로부터 끊임없이 보급을 받는 황군과 달리 그들은 바싹 말라 딱딱해진 주먹밥 따위가 전부였다.

요즘에는 그마저도 부족해서 항시 배가 고팠다.

“먹을거리로 도발이라도 할 셈인가? 일차원적이군!”

철용은 그렇게 말했지만 연왕부의 군사들의 목울대는 연신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배고픔은 참으려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십만대산으로 향해야 하는 황군은 언제까지 이곳에 발이 묶여 있을 수는 없었다.

연왕부의 군간들은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오히려 비웃어주며 부러움 대신 화살비를 쏘아 보내라 지시했다.

“쏴라! 전부 다 구멍을 내줘라!”

멍청한 황군은 화살이 닿을 사정거리에 떡하니 서 있었다.

곧 비명을 질러내며 쓰러질 거라 예상했지만 상황은 기이하게 흘러갔다.

고기를 굽고 있던 자가 화살비를 맞이하며 허공에 떠올랐다.

“미친! 죽으려고 작정했군!”

군관의 비웃음과 다르게 전신에서 뿜어지는 기세는 마인들조차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벼락같이 빛나는 것을 부드럽게 휘젓자 하늘을 가득 메웠던 화살비가 어미 새를 쫓듯 방향을 틀었다.

“마, 말도 안 돼!”

남자는 허공을 크게 한 바퀴 돌더니 성문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그러자 방금까지 그들이 쏘아 보냈던 화살이 한 줄기 빛처럼 되돌아왔다.

“허억! 다들 숙여!”

“벽 뒤로 숨어!”

하지만 그 어떤 외침도 되돌아오는 화살보다 더 빠를 순 없었다.

콰드드득-

궁수들은 미처 몸을 숙이기 전에 자신을 스치고 지나간 화살에 기겁하며 놀랐다.

“멍, 멍청한! 활만 부수고 지나갔어!”

“……나도야!”

살아남은 자들이 기뻐하며 서로를 쳐다봤지만 이내 사색이 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화살은 그들의 활만을 정확히 부서뜨렸다.

그것도 단순히 한두 개가 아닌 수천 개의 활 전부.

연왕부의 궁수들은 실수가 아닌 의도적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떨리는 시선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그는 백색으로 일렁이는 눈으로 성벽 위를 올려다봤다.

느껴지는 기세로는 그들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하군!”

철용은 혀를 차며 남자를 유심히 살폈다.

자신이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방금과 같은 신기를 부릴 순 없었다.

하지만 곧 어딘가 익숙한 얼굴에 철용의 얼굴에 반가움이 어렸다.

“허허. 진 아우였군!”

진백천 또한 철용을 확인했는지 씨익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곧 그에게서 전음이 전해졌다.

-형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

-물론이지! 동생은 더더욱 강해졌군! 이제 나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겠어!

-형제 사이에 싸움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고기도 많은데 이따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지!

진백천은 그 전음을 끝으로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황군측에서는 이미 우뢰와 같은 환호를 쏟아내는 중이었다.

철용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연왕부도 이제 끝이군.”

* * *

철용과 전음을 나누고 돌아선 진백천은 자신을 보며 주먹을 흔드는 황군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환호는 더더욱 거칠게 터져 나왔다.

처음 화살이 닿는 사정거리에서 고기를 구워 먹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자살행위라고 무시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진백천을 보는 눈빛에 더는 그러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천 개의 화살이 놈들에게 되돌아가는 것을 봤나? 어떻게 한 사람이 그러한 일을 벌일 수 있는 거지?”

“표기장군이니까 가능한 거겠지! 무인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자니까 말이야!”

유일하게 용호대장군과 그를 따르는 무관들만이 똥 씹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백천과 눈이 마주치자 감히 적의를 내비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날 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친 진백천은 어둠이 세상을 감추자 고기와 술을 싸 들고 성벽을 올랐다.

그 뒤를 걱정 어린 기색의 황대원과 강량호가 따랐다.

“정말 저희끼리만으로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싸우는 건 무리여도 도망치는 건 문제없잖아.”

진백천이 철용을 만나려 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황대원은 더 걱정이었다.

그는 철용을 신뢰하지 못했다.

아무리 진백천과 의형제를 맺었다 하지만 그는 마교의 장로였다.

언제든 배신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와 강량호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무기에서 절대 손을 떼지 않았다.

“저긴가?”

진백천이 성벽에 오르자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철용이 보였다.

마찬가지로 마인 몇 명만을 대동한 채였다.

“아우! 정말로 나타났군!”

“형님을 뵙는데 못 나타날 이유가 있겠어요?”

친근함이 느껴지는 진백천의 인사에 철용이 이것 보라는 듯 뒤편의 마인들을 노려봤다.

그들조차도 이것이 함정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마인들도 황대원과 마찬가지로 긴장을 풀지 않고 노려봤다.

“여기는 조금 그렇고 안에 들어가지.”

철용이 안내한 곳은 성 내 구석진 방이었다.

진백천은 탁자에 앉아서 음식을 꺼내놓았다.

노릇노릇 잘 익은 고기를 비롯해 사막에서 보기 힘든 소채볶음과 술까지 함께 있었다.

철용의 얼굴에 절로 웃음이 맺혔다.

“잔부터 받으세요.”

진백천이 술 한잔 따르자 그가 의심의 기색도 없이 받아마셨다.

“크으윽! 좋군! 이게 얼마만의 술인지. 아우도 받지!”

둘은 연거푸 술을 나눠마셨다.

“연왕부의 작자들이 형님한테 술 한잔도 주지 않았어요? 듣기론 매일같이 퍼마신다던데.”

“그놈들 이야기는 하지도 마라. 머리가 다 아프니까! 연춘왕과 연자전은 원래부터 허파에 바람만 든 놈들이었다! 그러니 지 손자와 자식이 황궁에 잡혀가도 눈 하나 꿈뻑하지 않지!”

말이 연왕부의 반역군이지 실제로는 마교에 포섭된 군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실정이었다.

“아우는 아무래도…… 표기장군인지 뭔지로 토벌하기 위해서 왔겠지?”

“네. 그렇죠. 3일 이내로 연왕부의 군사들을 전부 밀어내고 성을 탈환할 거예요.”

“3일 이내라.”

철용의 낯빛이 처음으로 어두워졌다.

이제야 아무렇지 않게 술을 마시기에는 둘 사이의 입장에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진백천은 철용의 표정 변화를 느끼며 피식 웃었다.

얼굴만으로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생긴 것답지 않게 과연 순수하다니까.’

그는 뒤편의 마인들이 듣지 못하게 기막을 펼치며 목소리를 차단하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형님. 제가 아무 생각 없이 왔을까 봐요.”

“으음? 그게 무슨 말이냐?”

“형님도 무작정 이 성을 내줄 수 없는 노릇이고 저 또한 지켜볼 수는 없으니 부딪칠 수밖에 없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별것 아니죠.”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인지 말해보라니까.”

철용은 애가 타는 듯 재차 술을 들이켜며 물었다.

“연왕부만 넘겨주시죠. 연춘왕과 연자전만 있으면 군사들이야 알아서 무너질 테고 형님과 저도 싸울 리 없잖아요.”

“그건 안 된다.”

의외로 간단한 해결책이지만 철용은 고개를 저었다.

“연왕부가 무너지면 저 황군은 당연히 십만대산으로 향하겠지. 그러면 무인들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생활하는 이들도 죽어 나갈 게 분명해!”

이것 또한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진백천이 이런 것도 생각 안 하고 말했을 리 없었다.

“황군은 십만대산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

십만대산은 마뇌의 함정이 가득한 쩍 벌어진 호랑이 아가리였다.

그곳에 피를 더해주기 위해 군사를 밀어 넣는 바보 같은 짓은 할 리 없었다.

의아하게 쳐다보는 철용을 보며 진백천은 추가적으로 대답했다.

“십만대산 앞까지 가서 견제만 하고 들어가는 건 저를 포함해 몇몇뿐이에요.”

철용은 진백천의 목적이 단지 정마대전을 일으킨 마뇌와 마교주에 있음을 알고 적잖이 안도했다.

진백천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비록 마교의 장로라 하더라도 천마신교에 대한 믿음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지 삶의 터전이 그곳이었을 뿐 마교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마음을 먹으면 연왕부 따위 무너뜨리는 거 일도 아닌 거 아시잖아요.”

“흐으음.”

철용은 길게 탄식을 내뱉으며 생각에 빠졌다.

오늘 낮에 보인 진백천의 무위를 생각하면 단순히 큰소리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가 괜히 그러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전부 철용의 선택을 강요하기 위해 준비된 수였다.

“어차피 내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군.”

진백천은 가볍게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염라대의 대부분은 나와 같은 자들이라 하지만 그중에는 맹목적으로 마교주를 따르는 자들이 있어. 그런 이들까지 내가 통제하지는 못해.”

“어쩔 수 없죠. 그런 자들까지 신경 쓸 수는 없으니까요.”

철용은 무거운 얼굴로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재차 잔을 나누며 쭉 들이켰다.

방금까지만 해도 달게 느껴졌던 술이 왠지 쓰게만 느껴졌다.

아마도 곧 성내에 뿌려질 피비린내가 맡아지는 것 같아서였다.

“그럼 연왕부의 저 두 놈은 언제 잡아갈 생각인가?”

“해가 뜨기 전에 곧바로 움직일게요. 그편이 기습해서 잡아들였다고 하기에는 적절하잖아요.”

철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왕부의 두 놈이 머무는 숙소를 알려주었다.

쥐새끼들처럼 역시나 감숙성 깊은 곳이었다.

위치를 몰랐다면 꽤나 헤맸을 터였다.

그가 움직이는 사이 철용은 마인들을 단속하기로 했다.

“십만대산의 평범한 이들에게는 자비를 베풀 거란 아우의 말을 믿으니까 함께하는 거야.”

“걱정 마세요. 전 한 번 뱉은 말은 꼭 지키거든요.”

해가 뜨기 전.

진백천은 직접 황대원, 강량호를 비롯해 최소의 인원을 이끌고 연왕부의 두 놈을 잡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 와중에 방해하는 마인들과 반역군들은 거침없이 베어 넘겼다.

두 놈들은 역시나 술에 취해 기생들 품에 깔려 있었다.

“허어억! 누, 누구냐!”

전에 봤던 연기백이 늙었다면 딱 이런 모습일 것 같은 두 명이었다.

“누구긴. 네놈 데려갈 저승사자지.”

진백천의 대답에도 연춘왕은 술에 취한 눈동자로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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