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340화
117장 기묘한 아이 그리고 악인들과의 대담
감숙성은 황하강의 상류부를 차지하는 내몽고 고원과 황토고원에 맞닿아 있으며 가장 낮은 서쪽 분지조차도 해발고도 1,000m를 넘었다.
그 아래쪽으로는 산맥들이 줄지어 있고 그나마 산맥이 아닌 지역은 대부분 사막지대를 이뤘다.
그런데도 이 감숙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서역과의 주요 교통로였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통해야만 서장과 청해로 가는 길이 열렸다.
‘그러니까 반역을 일으킨 연왕부가 감숙을 가장 먼저 차지하고 물러나지 못하는 걸 테지.’
현재 황군은 연왕부의 반역군이 차지 하고 있는 난주성(蘭州省)에 결집한 상태였다.
뒤에 적을 남겨두고 십만대산으로 넘어갈 수 없으니 무리를 해서라도 그들을 토벌할 셈이었다.
‘너무 급해.’
이미 지금도 의미 없는 소모전으로 하루에서 수천 명씩 죽어 나가는 중이었다.
진백천은 하루라도 빨리 그곳으로 넘어가려 했지만 사막에 들어서면서 속도는 턱없이 느려진 상태였다.
푹푹 빠지는 모래와 사막의 열기에 말들조차 속도를 내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바람도 강하게 불어왔다.
후우우우우-
기막을 만들어 바람을 막지 않으면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다.
“이 정도 속도면 며칠이나 걸릴지 모르겠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물과 음식은 충분했다.
“회주님. 지금이라도 발 빠른 자들을 나누겠습니다.”
“아니야. 이런 날씨라면 황군과 반역군도 발이 묶여 있을 테니까 굳이 서두를 필요 없어.”
사막의 안내자가 없는 지금 진백천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것은 다름 아닌 통통이였다.
청서생인 통통이는 후각이 뛰어났기에 멀리서부터 전해지는 피와 금속 냄새를 정확히 짚어냈다.
그뿐만 아니라 물이 있는 오아시스 또한 금방 찾아냈다.
-저기야! 저기!
통통이는 코를 킁킁거리며 오아시스를 찾아냈다.
일반적인 인간의 시야로는 도저히 분간할 수 없는 모래바람 속이었다.
통통이가 말한 방향으로 가자 불과 몇 그루지만 나무도 심어지고 바람도 피할 수 있는 언덕도 존재했다.
“여기서 잠깐 쉬다 가지.”
어차피 이제 곧 밤이 찾아오니 잠을 잘 곳이 필요했다.
진백천은 말부터 목을 축이게 하고 식사를 준비했다.
사막의 밤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그리고 태양이 사라지면서 온기가 급격히 없어지며 주변은 차가워졌다.
수라검대는 모닥불을 여러 군데 피워놓고 체온을 관리했다.
후우우우우-
밤이 되어도 휘몰아치는 모래바람은 잦아들지 않았다.
진백천은 잠시 눈을 감고 서서히 내면 깊숙이 가라앉았다.
서서히 그의 정신이 흐려지고 잠에 빠져들 때쯤.
미약한 위화감이 그의 뇌리를 자극했다.
진백천의 상단전은 그러한 티끌 같은 자극도 놓치지 않았고 곧바로 눈을 떴다.
“뭐지?”
그러자 눈앞에 들어온 광경은 따스한 햇빛이 감싸 안는 모래사막이었다.
방금까지 난리 치던 모래바람은 어디로 갔는지 잠잠해진 상태였다.
빠르게 주변을 살핀 진백천은 지금 눈앞의 광경이 현실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심상 세계와 비슷한 곳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진백천의 뒤편에서 들려왔다.
“맞아! 역시 회주가 보통이 아니라 하더니 상단전을 이렇게까지 확장시키다니. 대단한걸?”
몸이 작은 남자였다.
아니, 단순히 남자라기에는 어린아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해 보였다.
진백천은 아이를 보고 본능적으로 그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소악마(小惡魔)?”
“나에 대해서 알아? 히히.”
동월루를 무너뜨릴 때 저계춘이 말한 적 있던 인물이었다.
악인회(惡人會)라는 쓸데없는 조직을 만든 악인들을 위한 악인.
또한 악인곡에서 태어나 식괴가 천마의 심장으로 만든 만두를 먹은 아이.
진백천과 같은 심장이 저 아이의 가슴에서 열렬히 뛰는 게 전해졌다.
‘단순히 아이라고 보기에는…… 보통이 아니야.’
서늘하게 풍기는 눈빛은 칼날 같았고, 익살스러운 미소에 섞인 광기는 충동적인 그의 성격을 잘 드러냈다.
진백천은 소악마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꿈속인 건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지! 내가 위치한 곳에서 특별한 대법으로 당신의 꿈속에 들어선 거야. 물론 극악의 난이도지만 우리는 하나로 통하는 게 있으니까.”
소악마자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외관상의 나이에 맞지 않은 능글맞음이었다.
혹시나 상단전을 열고 속마음을 들어보려 했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보통은 넘는다는 거네.’
“왜 직접 찾아오지는 않고?”
“크큭. 그랬다가는 퍽이나 멀쩡히 보내주고? 당신 성격에 악인들을 이끄는 나를 가만히 둘리 없을 테니까. 물론 나도 쉽게 당할 만큼 약하진 않지만 지금의 당신은 도저히 무리거든.”
소악마는 사막의 모래를 집어 들더니 허공에 흩날리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이렇게까지 실제처럼 구현되는 심상세계라니…… 쯧, 괴물이 아니고서야. 아니, 이 정도로 완성된 상단전이라면 등선(登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는 혼잣말로 역시 만나러 오지 않길 잘했다며 중얼거렸다.
“군소리는 말고 나를 이렇게까지 찾아온 이유가 뭐지?”
“뭐. 별건 아니고. 혹시라도 마교에 쳐들어갈 때 천마의 부활 때문에 걱정이라면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별로 신경 안 쓰는데?”
자신의 말에 나름 당황할 거라 생각했는지 그의 담담한 모습에 소악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마의 심장에 천마신공, 거기에 마뇌가 십만대산에 설치해놓은 진법이면 스스로가 천마에게 영혼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안 해본 거야?”
“마기 정도야 이제 이겨낼 정도로 충분하니까.”
진백천이 가볍게 태허무극진결의 기운을 내뿜자 소악마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신형이 순간이지만 안개처럼 흐려졌다 다시 돌아왔다.
심상세계지만 경악한 얼굴에는 진백천에 대한 경계심이 진해졌다.
‘흐음. 꿈속이라고 하지만 영향을 받지 않는 건 아닌 모양이지?’
진백천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속으로 자신 또한 유심히 관찰 중이었다.
소악마가 굳이 자신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의심 없이 받아들일 생각 따윈 없었다.
“……강한 건 잘 알았으니까 가능한 내력은 조심하지? 아무리 꿈속이라고 해도 무리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눈치를 보던 소악마는 가능한 멀찍이 떨어지며 말했다.
“여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당신이 천마가 될 리는 없다는 거야! 이미 천마의 영혼은 몸을 찾았고 본질인 파천(破天)과 역천(逆天)을 이룬 신체, 천마지체(天魔之體)는 완성이 된 후니까!”
“천마가 부활했다고?”
진백천도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이야기에 미간이 좁혀지자 소악마가 괜스레 실실 웃었다.
무표정의 진백천을 당황시키는 게 꽤나 재밌는 듯했다.
“그러니 마뇌의 술수로 마기가 당신의 몸을 적셔도 천마가 될 리는 없어. 적어도 미친 광인이나 마인이면 몰라도.”
“어떻게 그런 걸 그렇게까지 자세히 알고 있지?”
“뭘 자꾸 물어. 한눈에 딱 보면 몰라?”
소악마는 손끝을 자신을 척하고 가리켰다.
“천마의 영혼은 진즉에 이 몸에 안착한 상태니까. 내가 둘이 아닌 이상에야 그쪽으로 갈 리 없잖아?”
“네가 천마라고?”
“정확히 말하자면 천마라기보다 천마였다고 봐야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았지만 무공을 제외한 기억과 경험까지 전부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고집 센 어린애 같은 모습에 진백천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소악마가 몸속 깊숙이 숨겨둔 기운을 드러냈다.
자연스레 신형이 떠오르며 천마신공(天魔神功)의 마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진백천이 가지고 있는 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진하고 끈적한 마기였다.
‘흐음!’
하지만 그런 것과 별개로 진백천이 생각해 왔던 천마에 대한 상식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만마(萬魔)의 종주답지 않은 가벼운 말투와 껄렁거림은 도저히 천마라는 무거운 이름과 어울리지 않았다.
마기가 가라앉으며 소악마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뭐. 아직까지 완벽히 기억을 되찾진 못했지만 그거야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해결될 문제고. 마기자의 비동을 다녀왔으면 다 들었을 거 아니야? 괜히 쓸데없는 설명으로 피차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소악마는 진백천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음에도 자신이 아는 마교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댔다.
그중에는 마뇌가 십만대산에 펼쳐 놓을 진법에 대한 것도 있었다.
그의 말이 정확하다면 마뇌를 잡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네가 천마라면 나한테 굳이 이런 것들을 말해줄 필요가 있나?”
“왜? 마교는 내 새끼니까 끝까지 지켜줘야 돼? 그건 조금 착각인 것 같은데?”
진백천의 물음에 소악마는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아직까지는 마교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 이 몸에서 새로운 시대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거든.”
진백천은 그가 슬슬 떠나려는 모습이 보이자 이대로 놓아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만에 하나 전부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천마신공을 익힌 마인을 그대로 둘 순 없어.’
더구나 악인회라는 지저분한 놈들의 머리 위에 선 놈이었다.
그가 살의를 품자 평화롭던 세상에 변화가 찾아왔다.
서서히 하늘이 흐려지고 소악마를 중심으로 서서히 지옥도가 펼쳐졌다.
“이럴 줄 알았지! 각다귀! 대법을 끊어!”
소악마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외치며 하늘로 뛰어올랐다.
진백천은 태허무극진결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며 그를 뒤쫓았다.
하지만 검이 채 닿기 전에 소악마의 신형은 서서히 하늘에 물들 듯 흐려졌다.
‘이대로 놓칠 순 없지!’
호무살(虎武殺).
백색으로 일렁이는 비수가 공간을 찢으며 소악마를 향해 뻗어갔다.
뒤늦게 천마신공의 마기가 두껍게 뭉치며 막으려 했지만 종잇장처럼 찢겼다.
“……괴물……!”
소악마는 혀를 차며 비명처럼 그 말만 남긴 채 사라졌다.
* * *
악인회(惡人會) 심처.
“허억!”
소악마는 눈을 뜨자마자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의 전신에서 천마신공의 마기가 호흡에 따라 거칠게 일렁였다.
진백천이 쏘아 보낸 호무살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마지막 대법이 끊기는 순간에 심장을 파고들었다.
겨우 그 일부의 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신이 찢기는 고통이 전해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했어!’
진백천의 심상세계는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곳이었다.
현실에서는 몰라도 그곳에는 아무리 소악마라고 해도 감히 그를 상대할 수 없었다.
“……소악마님! 괜찮으십니까?!”
유난히 팔다리가 긴 각다귀(角多鬼)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다가왔다.
“내가 끊으라고 할 때 바로 끊었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두 눈을 데구르르 굴리는 게 바로 끊었는데 잔소리한다 생각하는 게 똑똑히 보였다.
주변에는 그뿐만 아니라 비천귀(飛天鬼)를 비롯한 악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소악마의 전신에서 넘실거리는 마기를 보며 두려운 듯 몸을 움츠렸다.
굳이 그가 말하지 않아도 그것이 어떤 기운이라는 것쯤은 눈치챈 후였다.
“……만나본 진백천이라는 자는 어떠셨습니까?”
호기심이 많은 음양노귀(淫羊老鬼)가 은근슬쩍 대법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소악마는 화를 내던 것도 잊고 혀를 차며 말했다.
“쯧. 한마디로 괴물! 당금 강호에 그만한 자가 어디 있을까 생각할 정도였지! 단일로면 5년, 아니 10년 뒤에는 어떻게든 상대해 볼 만할 텐데 지금으로는 절대적으로 무리야!”
그가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칭찬한 적이 없었기에 악인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악마는 진백천에 대해 생각하다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며 상을 내리쳤다.
콰앙!
“내가 부족하면 수하들이라도 뛰어나면 좋잖아! 다들 약해 빠져서는! 정도회의 충부대군(忠斧大軍)이나 쌍수미랑(雙手美狼)의 반이라도 하란 말이야!”
또다시 시작된 잔소리에 악인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이럴 때는 그저 끝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