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339화
116장 압도적 무위(2)
금마왕은 갑작스레 뻗어온 비수에 기겁했다.
아무런 준비 동작도 없이 날아들 줄은 생각도 못 한 것이다.
그는 재빨리 심장과 혈도의 위치를 옆으로 움직이며 몸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크윽!”
금마왕의 몸이 거칠게 떨리며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호무살의 비수는 심장을 비롯해 주변의 기혈을 난도질했다.
입가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여전히 그를 죽일 수는 없었다.
진백천의 호무살이 강해진 만큼 금마왕도 더 경계한 탓이었다.
“역시…… 위험하군. 네놈은 위험하다.”
핏발선 눈이 진백천을 노려보며 살의를 피웠다.
그의 상처 난 가슴과 망가진 심장은 그 순간에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금마왕을 노린다면 지금이 최선이겠지만 진백천은 유유히 서서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
‘마지막을 장식할 사람은 내가 아니야.’
암천혈룡비(暗天血龍匕).
금마왕이 빈틈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리던 암왕의 마지막 수였다.
아까 전의 것은 불완전했다는 말이 사실인 듯 검은색의 비수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사뭇 달랐다.
츠즈즈즉-
주변의 공기마저 찢을 듯 출렁이며 뻗어가는 비수는 당염의 독기뿐만 아니라 전심전력이 담겨 있었다.
금마왕이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가슴팍에 공격이 꽂히며 몸이 출렁였다.
“어…… 림 없다!”
그의 외침과 다르게 상처에서부터 시작된 독기는 주변을 빠르게 검게 물들이며 번져갔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이미 그의 몸속은 진백천의 호무살에 이어 퍼져 나가는 암천혈룡비의 기운으로 갈가리 찢겨 나갔다.
투두둑-
간헐적으로 흔들리는 그의 몸만이 그러한 변화를 알려줄 뿐이었다.
금마왕의 코에서 썩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전신의 오공에서 피가 쏟아졌다.
“이렇게…… 허무하게…….”
그의 무릎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쿠웅-
“……끝낼 수는…….”
금마왕은 결국 마지막 말도 다 끝마치지 못하고 절명했다.
독으로 검게 물든 눈동자는 여전히 허공을 응시했다.
“금마왕이 쓰러졌다!”
“암왕의 한 수에 피를 토하며 죽었다고!”
금마왕이 쓰러지자 마인들의 공세는 눈에 띄게 약해졌다.
놈들은 눈치를 살피더니 전투에서 탈주했다.
금마왕까지 죽은 이상 그곳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은 의미 없는 싸움이었다.
“놈들을 놓치지 마라! 한 놈이라도 더 베어내라!”
강량호는 때를 놓치지 않고 마인들을 몰아붙였다.
지쳐 쓰러져 있던 아미파의 여승들과 당가의 무인들 또한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젖먹던 힘까지 내며 달려들었다.
전의를 상실한 마인들은 계속해서 뒤를 내어주며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그리고 마침내 남겨진 이들은 그들의 시체 위에서 승리의 함성을 내뱉었다.
“이겼다아아!”
“마인들을 전부 몰아냈어! 우리들의 승리라고!”
거친 함성은 사천성과 성도 주변 전부에 울려 퍼질 정도로 컸다.
숨어 있던 자들이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 하나둘씩 나타났다.
“저, 정말이야! 그 많던 마인들이 전부 죽었어!”
“금마왕의 시체다!”
이제 남은 것은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이들은 흥분을 참지 못했다.
다름 아닌 마교의 살아 있는 공포였던 5마 중 2인을 죽이는 데 성공하고 멸문 직전에 서 있던 당가가 살아남았다.
이것만으로도 마교와의 전쟁에서 누가 우위를 잡을 수 있을지는 명확했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은 살아남은 자들과 전서구를 통해 빠르게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진백천이 일개 무력대대를 이끌고 당가를 직접 찾아가 화마왕(火魔王)의 목을 단 일격에 베어내었다! 그 뒤를 이어 암왕(暗王)의 암천혈룡비가 금마왕(金魔王)의 심장을 꿰뚫었다! 수천여 명의 마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죽어갔다!]
어느 정도 과장이 섞인 소문이었다.
하지만 죽었다는 것은 사실이기에 이 같은 소문은 침체된 강호를 다시 일으켜 세우며 활기를 더했다.
“과연 운룡심검(雲龍心劍) 진백천이로군! 어떻게 일개 대대만 이끌고 당가로 갈 생각을 다 한 거지?”
“그만큼 자신이 있었던 거겠지! 그러니 마교의 책사라던 마뇌조차 진백천의 작전에 당한 것 아니겠나!”
“허허. 그렇다면 이제 감숙에 몰려 있다는 마교의 교주만 처리하면 정마대전은 끝나는 건가?”
그들의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어렸다.
진백천과 속속들이 모여드는 강호의 고수들과 함께라면 단숨에 마교주 마천영을 베어내고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이 가시기도 전에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용호대장군(龍虎大將軍)이 이끄는 황군이 마교의 군대에 연전연패하며 뒤로 밀려났다.
전부 마교주 한 명의 압도적인 무력에 의해서였다.
수만의 관군이 피와 살점으로 변해 흩뿌려진 광경은 입소문을 타고 강호에 퍼져 나갔다.
“황군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무인들만으로는 군대를 막아낼 수 없지 않나?”
“그렇겠지. 하지만 운룡심검이 황군에 합류하면 달라지지 않겠나? 그자는 표기장군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그나마 다행이라면 화산신검을 비롯해 정도회의 무력대대와 무림인들이 모이자 마교의 공세는 어느 정도 멈추었다.
마교주라고 해도 화산신검은 확실히 경계 되는 요소였다.
강호의 전력이라고 칭해도 무리가 아닐 인원이 모이자 마교는 의외의 선택을 했다.
마교주를 포함해 절반 이상의 마인들이 전부 십만대산으로 물러났다.
남은 것은 연왕부를 비롯한 그들의 반역군이었다.
‘그들을 미끼로 던지고 십만대산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야.’
진백천은 한눈에 그들의 작전을 알아봤다.
짜증이 나는 것은 그런 것들이 한눈에 보임에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언제든 자유자재로 모이고 흩어지는 마인들과 달리 무림군은 각기 다른 문파였기에 그것이 쉽지 않았다.
기치를 걸고 모인 이상 이번이 전력을 다할 최선의 기회였다.
‘흩어지고 모이고를 여러 번 반복할수록 다른 생각을 품은 자들이 나올 테니까.’
상황은 복잡하게 흘러갔지만 진백천은 굳이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마교가 물러난 전장에 그가 나타난다 해도 상황이 바뀌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사천의 일을 느긋하게 마무리하며 양쪽 진영 모두에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것이 더 좋았다.
지금의 진백천은 그 무력보다 지지 않는다는 상징성이 더 짙었다.
그러한 생각을 눈치챈 듯 당염을 비롯해 서신을 끊임없이 보내는 하갈후 또한 그에게 잠시 동안은 사천에 머물기를 권고했다.
‘예상한 대로 마교와 황군은 감숙에서 대치한 채로 시간을 보내고 있군.’
물론 전투는 계속해서 일어났지만 그다지 유의미한 결과는 없었다.
진백천은 당가의 심처에서 당염을 비롯해 조혜사태와 다른 무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눴다.
주로 마인들이 빠져나간 사천의 뒷정리에 관해서였다.
“사천에 피해가 막심하지만 대피를 갔던 이들이 돌아오면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남은 것은 곳곳에 숨어 있는 마인들뿐이다. 이런 놈들이야 우리끼리도 충분하다.”
당염이 말하는 우리란 사천에 속해 있는 문파인 당가와 아미파, 청성파를 말했다.
화마왕에게 당했던 조혜사태는 다행히 별다른 부상 없이 빠르게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는 진백천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저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진백천 회주 덕분입니다. 감숙으로 가지 않고 사천으로 오는 게 어려운 선택이었을 텐데 대단하십니다.”
한쪽 팔에 붕대를 감은 조혜사태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만약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화마왕에게 타죽을 뻔했기에 그에게 표하는 감사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모두 인연이 있는데 당연한 거죠. 제가 아니었어도 전부 똑같이 했을 겁니다.”
당가와의 인연은 독정을 받아먹었으니 당연했고, 아미파에서도 역혈비결을 얻었으니 인연이 없다 할 순 없었다.
유일하게 청성파와는 악연에 가까웠지만 막여해는 이미 잊었는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이제 회주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혹시 모를 상황을 살피면서 황군에 합류해야죠.”
가능한 남아 있는 위험요소는 전부 제거하고 최소한의 인원으로 십만대산을 공략해 볼 생각이었다.
과거와 같이 진백천의 눈앞에 시체의 산이 쌓이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그것이 전부 누군가의 의도라면 더더욱 말이지.’
진백천이 사천을 다시 떠나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하루 뒤였다.
원래는 며칠 더 상황을 보려 했지만 하오문에서 직접 온 전서구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황군과 무림군이 합류. 하지만 용호대장군 측과 그들과의 의견대립이 있는 듯. 무림군은 잠시 상황을 살피자는 입장이라면 용호대장군은 곧바로 반역군을 토벌하고 십만대산으로 나아가자는 입장. 하루빨리 그들과 합류해 의견을 조율해야 할 것으로 보임.]
바로 십만대산으로 나아가자는 생각이 용호대장군의 것인지 그 밑에 있는 자의 의견인지는 몰라도 무척이나 위험하고 멍청했다.
짐작하건대 진백천이 자신들이 고전한 5마 중 2인을 처리하자 전공(戰功)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무리하는 것으로 보였다.
‘쯧. 그런 놈들이 있으니 회귀 전에도 전무 몰살당한 거겠지.’
이번이라고 달라질 리가 없었다.
진백천은 쉬고 있던 수라검대를 이끌고 다시 말에 올랐다.
당염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지만 한눈에 봐도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마인들이 재차 사천을 노릴 수도 있으니 괜히 움직이지 마세요.”
서장과 청해에서 중원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크게 운남, 사천, 감숙을 지나야 했다.
그중에 운남은 야수궁이 지키는 중이었고 길이 무척이나 험했다.
그나마 황군이 있는 감숙을 제외하면 남는 것은 사천뿐이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당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라. 기습에 한 번 당했지만 다음부터는 절대 그럴 리 없을 테니까.”
당염은 춘득 위에 앉은 진백천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특유의 심드렁한 얼굴로 뭔가를 빠르게 건넸다.
“이게 뭐예요?”
“……당가에 남아 있던 귀이단(龜耳丹)이다. 싸우다 보면 분명 필요할 때가 있을 테니 아끼지 말고 먹어라.”
진백천은 다시 돌려주려다 당염의 얼굴을 보고 품속에 넣었다.
쪼잔한 당염이 몸도 성치 않은 상태에서 이것을 건넬 정도면 분명 많은 고민을 했을 터였다.
그런 마음을 모를 정도로 둔감하지는 않았다.
“잘 쓸게요.”
“공짜는 아니니까 나중에 꼭 갚아라!”
……살아서라는 말이 그 뒤에 어렴풋이 들렸지만 진백천은 씨익 웃는 것을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남은 이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하고 말고삐를 세게 움켜쥐었다.
진백천과 적혈마인 춘득을 필두로 수라검대가 줄지어 달려갔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막여해는 오래전부터 느끼던 바를 무심결에 내뱉었다.
“……영웅이로다!”
“부디 감숙에 있는 자들에게도 승리를 안겨주기를.”
“저놈은 약아서 당연히 그럴 거야!”
당염은 투덜거리듯 말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진백천이 갔으니 이제 사천의 주요 세 문파가 이후의 일을 논의할 차례였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