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337화
115장 대격돌(3)
‘마뇌는 역시 다시 그 저주받을 술법을 하려는 모양이군.’
진백천의 예상대로라면 그들뿐만 아니라 전투를 벌이는 황군들마저도 십만대산으로 끌어들일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피가 땅을 적시고 시체가 산을 쌓았을 때 그 대가로 마기자의 술법이 펼쳐질 터였다.
‘회귀 전의 대화를 떠올리면 마교주인 마천영은 그것이 천마를 부활하게 만드는 술법이라 알고 있었어.’
진백천은 이제서야 비로소 흘러가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뇌는 모종의 이유로 영생을 없애려 했고 단지 그 술법을 다시 펼쳐야 했을 뿐이었다.
천마의 부활은 그것과 상관없었다.
마뇌에게 있어서 마교주인 마천영조차 그의 장기판 위의 말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후우. 그렇다면 천마의 부활만 막으면 되는 건가?’
문제는 아직 거기까지는 진백천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나마 그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천마의 심장을 가진 자신이 그 열쇠가 될 거라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도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지만.’
몸 안에 있는 천마신공의 마기 또한 진백천의 완벽한 통제하에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진백천의 태허무극진결(太墟無極進結)은 완성에 가까워져 갔다.
48가지 동작을 전부 익혔고 이제는 4초식인 파천식(破天式)이 눈앞에 보였다.
마뇌가 어떤 수를 쓴다고 해도 10갑에 가까운 태허무극진결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를 노리는 게 맞다면 오히려 그걸 기회로 삼아서 박살 내주면 그만이야.’
화르르르륵-
그때 성벽 안쪽에서 거대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 반대편에서 희뿌연 한기가 화염을 막아냈지만 그 위력이 그만큼 강하지 못했다.
열기와 한기가 만나 수증기로 변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아마도 조혜사태의 구음진경(九陰眞經)으로 보였지만 생각대로 아직 완벽하지 못했다.
“저 불꽃은 화마왕(火魔王)입니다! 저것으로 보이는 족족 무인들을 불태우고 잿더미로 만드는 중입니다.”
“당가에서는?”
“암왕과 당가의 무인들이 분투 중이지만…….”
거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화마왕 혼자라면 몰라도 금마왕이 있는 이상 단단한 그의 몸에 암기가 통하지 않았다.
물론 당가의 가주인 당염이 전력을 다한다면 상처를 낼 수 있겠지만 죽이지는 못했다.
‘더구나 화마왕이 있는 이상 독을 활용하는 것도 어렵겠지.’
“고맙군. 우리는 먼저 이동한다.”
가능한 기다렸다 함께 움직이려 했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상황이 촉박해 보였다.
진백천은 싸움이 일어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회주님! 조심하십시오! 당가에서 마인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뿌려놓은 독이 한가득입니다!”
“독? 그렇다면 더더욱 나를 위한 곳이네.”
‘당가의 독은 독정에게 있어서 좋은 영양제일 뿐이니까.’
진백천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거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곧 주변의 독이 그의 몸으로 흡수되는 것을 보고 놀라며 두 눈만 꿈뻑거렸다.
* * *
아미파의 현 장문인 조혜사태와 당가의 가주인 당염은 눈앞에 서 있는 상대에게서 잠시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화염을 몸에 갑옷처럼 두른 화마왕과 금빛으로 전신이 물든 금마왕.
화마왕의 화염은 모든 것을 불태웠고 금마왕의 기운은 어떤 것으로도 뚫지 못했다.
암왕의 암기라 해도 화염에 독 기운이 사그라들고 약해진 후에는 더더욱이었다.
‘과연 마교의 5마란 건가.’
그들의 강함에 대해서는 잘 알았지만 구음진경을 익힌 조혜사태는 자신이 이토록 허무하게 밀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방금도 전력을 다했지만 화마왕의 화염도 가까스로 상쇄시키기만 했을 뿐 그자의 털끝만큼도 얼리지 못했다.
얼음처럼 싸늘한 그녀의 시선이 힐끔 뒤편을 향했다.
“당 가주. 괜찮으십니까?”
“문제없어.”
그것은 단순히 조혜사태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뿐이었다.
그녀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당염은 조금 더 암기를 던지고 내력을 쏟아내야 했다.
떨리는 손끝은 이미 그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려주었다.
‘내가 부족해서 이렇게 된 거야. 조금만 더 내 내력이 뛰어났다면……!’
으득-
조혜사태가 자신의 입술을 깨물며 자학했지만 그렇다고 변하는 것 따위는 없었다.
아무리 전력을 다해 맞부딪쳐도 3일째인 오늘 화마왕과 금마왕의 약점이라곤 전혀 찾아내지 못했다.
3일 동안 저 둘에게 쫓기며 아미파와 당가의 무인들만 계속해서 죽어갈 뿐이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그놈이 올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 마.”
당염은 조혜사태의 얼굴이 어두워질 때마다 계속해서 저 말만 반복했다.
그녀도 당염이 말하는 그놈이 누구인지는 잘 알았다.
3일 전만 해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당가와 정도회는 둘로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혈맹(血盟)이었으니까.
하지만 3일째 되는 지금.
조혜사태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투가 벌어지는 곳은 이곳뿐만이 아니야. 정도회가 이곳까지 신경 쓸 여력이 될까?’
그러한 의문에 대답하듯 금마왕이 혀를 차며 암왕을 비웃었다.
“암왕. 또 헛된 희망을 꾸는군. 정도회는 이곳으로 오지 못한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 마교주와 마인들이 황군을 몰아붙이는 중이야. 그곳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이곳으로 전력을 나눌 리가 없지!”
“끌끌. 그거야 네놈들 생각이고. 내가 아는 진백천은 이해타산만으로 움직이는 놈이 아니다.”
단순히 희망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믿는 확신 어린 모습에 금마왕이 그를 큰소리로 비웃었다.
“크하하하! 만약 그렇다면 더더욱 안타깝군. 기껏 찾아왔는데 아미파와 당가의 시체만 잔뜩 쌓여 있으니 얼마나 분노하겠나?”
그것은 단순히 말만이 아닌 듯 창을 들어 올리는 그의 전신에서 금마금신공(金魔錦身功)의 기운이 폭사하듯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바로 옆에 서 있던 화마왕조차 조혜사태를 노려보며 염형태혈공(炎型太穴功)의 화기를 피어 올렸다.
“아무래도 오늘이 마지막 놀이가 되겠군.”
이미 마인들은 주변을 모두 포위한 상태였다.
무차별적으로 독기를 뿌려대며 반항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존재했다.
화마왕의 불꽃은 독기마저 싸그리 불태웠다.
“조혜사태. 잠시 시간을 끌어줄 수 있겠나?”
“……네.”
그녀는 한쪽 팔에 구음진결의 내력을 끌어모았다.
손끝을 시작으로 서리가 맺히며 순백의 기운을 내뿜었다.
주변이 순식간에 겨울의 칼바람이 부는 것처럼 싸늘해졌다.
“참으로 허접한 한기로다. 아니, 이따위 것을 한기라 부를 수 있겠는가?”
화마왕은 불꽃처럼 일렁이는 눈을 가늘게 뜨며 조혜사태를 비웃었다.
애초에 그녀보다 3배 이상 산 노괴 주제에 퍽이나 건방진 태도였다.
그는 가볍게 땅을 박차며 화염이 일렁이는 주먹을 그대로 휘둘렀다.
구음신장(九陰神掌).
조혜사태가 앞으로 나서며 팔을 뻗었지만 화마왕의 일격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대로 팔이 으스러지며 뒤편으로 나뒹굴었다.
“아악!”
그뿐만 아니라 가까스로 버티던 내력이 꼬이며 피를 토해냈다.
화마왕은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두르며 그녀의 머리를 으깨버리려 했다.
“장문인!”
아미파의 무인들이 다급히 다가오려 했지만 주변 마인들의 검에 찔리며 상처만 더 입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당염은 준비하던 마지막 한 수를 쏘아냈다.
암천혈룡비(暗天血龍匕).
손에서 뻗어 나간 것은 검은색의 비수였다.
마치 그림자처럼 쏘아져 나간 비수는 물결처럼 출렁였다.
화마왕은 어림없다는 듯이 비수를 향해 화염을 뿜어냈다.
“녹아버려라!”
하지만 암청혈룡비는 금속으로 된 비수가 아니었다.
순수한 암왕의 피와 독으로만 이루어진 것으로 그 어떤 방어도 빗겨나가며 화마왕을 노리며 뻗어 나갔다.
화염에 일부 피가 증발했지만 일부는 놈의 근처에 도달했다.
“어림없다!”
금마왕은 당당히 소리치며 화마왕 앞을 막아섰다.
콰아아앙-
암청혈룡비는 정확히 그의 가슴팍에 닿으며 커다란 충격파가 일어났다.
동시에 금색으로 물들었던 살결이 검게 녹아 들어가며 금방이라도 안으로 파고들려 했다.
츠즈즈즉-
“하아아아압!!”
금마왕은 거칠게 함성을 토해내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독에 썩어들어가던 살점은 다시금 금빛으로 물들며 암청혈룡비를 밀어냈다.
남아 있던 독 기운은 화마왕의 불에 의해 싹 타버렸다.
결국 암왕의 마지막 한 수도 둘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암왕이 겨우 이 정도라니. 한심하군.”
“……둘이서 함께 덤빈 것 치곤 너무 당당한 것 아니냐? 쿨럭.”
피를 쏟아내 만든 비수였기에 당염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그들은 오만하게 조혜사태와 당염을 내려다봤다.
“그동안 귀찮게 군 것을 생각해서라도 결코 쉽게 죽일 수 없지.”
“적어도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전부 토해내게 만들어야지. 당가라면 제법 가진 것도 많을 테니.”
“그거야 몇 놈 살려놓으면 알아서 내놓을 테지!”
화마왕은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전에 뒤편에 서 있던 마인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쓸모없는 아미파의 여승들부터 모조리 죽이고 마지막으로 그녀를 태워죽일 셈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을 받은 마인은 웬일인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뭐 하는 것이냐?”
“……꺼헉.”
마인은 이해 못 할 소리를 내뱉으며 숨을 헐떡였다.
그제서야 이상한 점을 눈치챈 화마왕이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마인들은 하나같이 심장을 움켜쥐고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검은 복면 아래로 피가 주르륵- 흘렀다.
놈들은 하나같이 죽을 피를 토해내며 몸을 비틀거리다 옆으로 쓰러졌다.
“……드디어…… 드디어 왔구나! 너무 늦었어!”
당염은 그 모습을 보고 주먹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광동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와서 겨우 지금 도착한 거예요.”
나지막한 목소리는 바로 뒤편에서 들려왔다.
금마왕과 화마왕은 자신들조차 눈치채지 못했단 사실에 경악하며 새로운 상대를 노려봤다.
“네놈은 누구지?”
“후우. 누구긴 누구야. 네놈들 데려갈 저승사자지.”
씨익 웃는 얼굴과 달리 두 눈동자는 서슬 퍼런 칼날을 머금은 듯했다.
* * *
진백천이 나타나고 분위기는 급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을 끊임없이 쫓고 포위하던 마인들이 한순간에 죽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제대로 된 외상조차 보이지 않는 채였다.
“독인가? 도대체 언제?”
금마왕의 짐작은 정확했다.
진백천은 여기까지 오면서 주변에 흩뿌려져 있던 독 기운을 전부 흡수했다.
얼마나 뿌려댔는지 이곳에 도착할 때쯤에는 한쪽 팔이 독 기운만으로 검게 물든 상태였다.
‘이 정도면 웬만한 놈들은 쓰러뜨릴 수 있겠어.’
그리고 곧바로 천지만독수(天支萬毒手)를 시전하며 은밀히 마인들을 중독시켰다.
놈들은 중독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무섭게 기혈이 뒤틀리며 심장이 터져 죽었다.
“강량호. 저 두 분을 모시고 뒤로 물러나 있어.”
“네. 회주님!”
강량호와 수라검대는 조혜사태와 당염을 부축했다.
남아 있던 무인들은 혼자서 당당히 맞서는 진백천의 모습에 걱정이 앞섰다.
지난 3일 동안 놈들에게 어지간히 당했던 당염은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이놈아! 너 혼자서 상대하려고 그러냐!”
“네.”
진백천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막상 소리쳤던 당염은 할 말을 잃었다.
“……너 그놈들이 5마 중 금마왕과 화마왕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이냐?”
“알죠. 그래서 제가 미친 듯이 달려온 거잖아요.”
진백천은 손을 우득- 소리를 내며 풀었다.
서서히 백색의 광채로 물들어가는 그의 눈동자가 둘을 향했다.
“전부 박살 낼 자신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