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336화 (336/346)

무림회귀백서 336화

115장 대격돌(2)

진백천의 이러한 결정은 나름 최대한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하갈후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당가에 있는 것은 금마왕과 화마왕이야. 회주가 아무리 일당백이라고 하나 그들을 혼자서 상대할 수는 없어.”

“제가 왜 혼자예요?”

진백천이 뒤편에 서 있는 강량호를 비롯해 수라검대를 쳐다봤다.

그들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수라검대 대주 강량호! 회주님이 가시는 길이라면 지옥이라도 따라가겠습니다!”

그들의 묵직한 목소리는 울림이 되어 진백천의 가슴에 눅눅히 내려앉았다.

“쯧. 누가 보면 죽으러 가는 줄 알겠네. 걱정 마. 다 승산이 있어서 가는 거니까.”

그의 자신만만한 태도에도 하갈후의 인상은 펴질 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의 걱정 따위는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서신을 암호문으로 바꿔 전서구에 매달았다.

세 마리의 전서구는 빠르게 하늘을 날아갔다.

“아무리 늦어도 4일이면 정도회에 도달할 거다.”

“그 정도면 충분해요.”

급한 건 감숙보다 사천이었으니까.

광동에서 사천까지 꽤나 거리가 있었지만 쉬지 않고 달린다면 그 전에도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려면 마차를 타는 것은 어림도 없고 계속해서 말을 바꿔가며 타야 했다.

“우리가 한시라도 빨리 가야 한사람이라도 더 살아. 그러니 다들 단단히 각오해. 그만큼 강행군이 될 테니까. 뒤처지면 그대로 버리고 갈 거야.”

“문제없습니다!”

“절대 뒤처지지 않겠습니다!”

진백천은 곧바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말을 전부 구했다.

다행히 수라검대 전원이 탈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도홍경과 중혁에게는 하오문의 무인들과 함께 정도회로 향하라 말했다.

아쉽지만 그들은 사천당가에서 벌어질 전투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잘 아는 둘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부디 몸조심하세요.”

“걱정 마.”

“정도회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진백천은 둘의 어깨를 꽉 잡았다 놓아주며 적혈마(赤血馬)인 춘득에 올랐다.

그리고 곧바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데 그들을 막아서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오합지졸처럼 보였지만 그 인원이 꽤나 많았다.

가장 앞에선 염소 수염의 노인이 손에 든 도로 진백천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진백천 회주! 비동에서 얻은 게 있다면 당장……!”

“뭔 개소리야?”

혹시나 중요한 정보라도 가져온 줄 알고 이야기를 들어보려던 스스로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개소리라니!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건가!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그건 내가 할 소린데?”

진백천은 참지 않고 곧바로 안장에서 박차고 나서며 염소 수염을 향해 달려나갔다.

다급한 만큼 자연스레 그의 손속은 거칠었다.

염소 수염이 숨을 들이쉬며 도를 휘둘렀지만 이미 진백천의 주먹은 그의 얼굴을 우그러뜨린 후였다.

콰아앙!

그것으로 충격은 상쇄되지 않았다.

염소 수염은 한참이나 땅바닥을 구르자 멈춰섰다.

이미 숨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수라검대 전원. 사천으로 향하기 전에 날파리부터 제거한다.”

“존명!(尊命)”

남아 있던 자들을 수라검대의 대원들이 덮쳤다.

겁에 질린 놈들은 제대로 맞서 싸우지도 못하고 줄행랑을 쳤다.

마기자의 비동이 열렸을 때는 들어오지도 못하고 뺏으려고나 하는 버러지다운 태도였다.

“쯧. 별것도 아닌 것들이.”

진백천이 재차 출발하려고 하는데 일단의 무리가 다시 한번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관복을 입은 관리들과 관군이었다.

내시로 보이는 자가 진백천을 확인한 후에 황금 두루마리 서신을 펼치며 소리쳤다.

“표기장군(驃騎將軍)은 황명(皇命)을 받으시오!”

“황명?”

* * *

황궁의 태화전(太和殿).

옥좌에 앉은 황제는 그 어느 때보다 침통한 얼굴로 보고를 받는 중이었다.

얼추 마교를 견제하고 있다 생각한 황군이 처참하게 패배하며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는 중이었다.

단순히 관군만 포함되어 있다면 마인들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변명이라도 하겠지만 황군에는 금의위와 동창이 다수 포함된 상태였다.

“……사망자 4만 2,493명, 부상 6만 5,932명으로 지금도 늘어나는 중입니다.”

“용호대장군(龍虎大將軍)은 어찌했길래 이 모양이지?”

“마인들이 기괴한 수법을 사용하여 기습을 해왔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기존의 전법과 다른 점이 있어서…….”

황제는 혀를 차며 팔걸이를 내리쳤다.

“전법조차 통하지 않았기에 연전연패를 거듭 중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오라…….”

불똥 같은 날카로운 시선에 관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런 것이 표기장군을 용호대장군과 함께 군을 지휘하게 하려던 것을 막으려던 자가 눈앞의 관리였기 때문이었다.

진백천의 출신이 무림인이라는 것에 대한 반감일 테지만 이런 상황에서조차 변명을 하는 모습에 기가 찼다.

“사례감. 표기장군의 위치는 파악됐지?”

“네이. 현재 광동성에 있습니다.”

“당장 황명을 보내 용호대장군과 함께 황군을 이끌도록 하라. 무공을 익힌 자들은 표기장군이 맡으면 되겠지!”

눈앞의 관리는 그 말에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례감은 그를 힐끔 내려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전에 미리 말씀하셨던 대로 황명을 작성해 놓았습니다아.”

황제는 사례감의 일 처리에 만족해하며 옥새를 찍어 황명을 마무리했다.

그의 손에 들린 옥새 또한 진백천이 찾아다 준 것이었다.

“황명은 최대한 빠르게 전하도록 하라. 그리고…….”

황제는 눈앞의 관리를 내려다보며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서늘함에 관리가 목을 움츠렸다.

“이 능력 없는 자는 관직을 파하고 황궁에서 쫓아내.”

“화, 황상! 부디 한 번만……!”

“네놈 같이 쓸모없는 놈은 내 황궁에 필요 없다! 당장 끌어내라.”

금의위들은 관리를 짐짝처럼 끌고 밖으로 향했다.

황제는 칼날 같은 눈으로 그자의 뒤를 끝까지 지켜봤다.

“쯧. 용호대장군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주변에 저런 자들밖에 없으니 걱정이군.”

“황상. 너무 걱정 마시지요. 황명을 받은 표기장군에게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습니까아.”

“사례감. 내가 설마 표기장군을 걱정하는 거 같아? 외골수인 용호대장군이 괜히 고집 피우다 두들겨 맞아 죽을까 봐 그러는 거야. 진백천은 아무리 자기보다 높은 관직이라고 해도 묻어버리는 게 낫다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을 자이니까.”

왠지 걱정 어린 황제의 표정 한 켠에는 뿌듯함이 섞여 있었다.

순간 사례감은 그에 대한 대답을 뭐라 할지 모르고 눈을 꿈뻑였다.

“……그…… 다 잘 될 것이옵니다아.”

“그래. 잘 되어야지.”

황제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답답한 듯 팔걸이를 툭툭 내리쳤다.

이럴 때면 힘없는 자신이 퍽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표기장군, 아니, 진백천. 너만 믿는다.’

* * *

황명을 받은 진백천에게는 두루마리와 함께 황금검이 수여되었다.

전쟁터에서 황제의 권한을 대리한다는 보검이었다.

“그 밖에 다른 명은 없었나?”

“네이. 그렇사옵니다.”

진백천은 그들에게 최대한 빨리 갈 테니 걱정 말라고 황제에게 전하라 말했다.

물론 말을 올라탄 그가 향하는 방향은 당연히 사천당가였다.

광동에서 사천까지는 호남과 귀주를 지나야 하는 꽤나 먼 거리였다.

진백천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최소한으로 휴식하며 말을 타고 질주했다.

그런 고강도의 일정에도 춘득은 잘 버텼지만 다른 일반 말들은 아니었다.

푸르륵-

하나같이 하얀 거품을 물고 힘들어했다.

큰 마을에 들릴 때마다 말을 바꾸고 달렸기에 그나마 쓰러지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수십 명의 무인이 말을 타고 달리자 관군들이 시도 때도 막아 세웠지만 곧 그가 내비치는 금검과 금패를 보고 고개를 조아렸다.

‘확실히 이런 점이 편하긴 하지만 날파리들이 안 꼬이는 건 아니지.’

어떻게든 연줄을 대보려는 자들을 비롯해 마교의 마인들이 기습을 해왔다.

하지만 곧 진백천의 자비 없는 손길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렇게 강행군을 나아간 덕분에 3일이 넘어가는 날 비로소 사천의 끝자락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때부터 산맥의 시작 지점이라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강을 타고 이동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산맥을 넘는 것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립니다.”

“얼마나?”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반나절 정도 차이 난다고 합니다.”

일반인들의 움직임으로 반나절이면 무인들에게는 적어도 하루는 더 차이가 났다.

“어쩔 수 없지. 여기서 반으로 갈라져서 움직인다.”

상대적으로 경공에 자신 있는 자들은 진백천을 따라 산맥을 오르고 아닌 자들은 배를 탔다.

산맥을 가까스로 넘어도 마인과 싸울 체력이 부족하면 안 되는 불가피하게 한 결정이었다.

강량호를 비롯해 몇몇이 진백천과 함께 말에서 내렸다.

푸르르륵-

춘득이 작게 소리를 내며 진백천에게 다가와 머리를 비볐다.

그의 몸은 피 같은 붉은 땀으로 축축했다.

그간 힘들었을 텐데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따라준 것이 과연 영물인 적혈마다웠다.

진백천은 춘득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수고했다. 이제 쉬고 있어.”

배로 향하는 수라검대의 대원들과는 사천성 근처에 모일 장소를 미리 정했다.

“아마도 그 주변 일대는 마인들과의 싸움으로 아수라장일 거야. 가능한 정체는 숨기고 성도 주변에 있는 문수원(文殊院)에서 보도록 하지.”

문수원은 사천성 내부에 있는 오래된 절이었다.

그 규모가 무척이나 크고 구조가 복잡해서 숨어 있기에는 적절했다.

전에 사천에 방문했을 때 얼핏 스치듯 보고 지나갔던 기억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회주님.”

진백천은 강량호를 비롯해 일부와 함께 험한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람의 발길은 거의 닿지 않는지 길 위에서 늘어진 덩굴과 뻗어온 가지가 가득했다.

산맥의 초입구부터 이랬으니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면 얼마나 고될지 불 보듯 뻔했다.

“후우. 밤에는 조심해야겠어.”

진백천은 덩굴을 잘라내며 말했다.

산에서 밤중에 이동하는 것은 위험했지만 지금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잠깐 운기조식을 취할 시간을 제외하면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런 노력의 대가인지 새벽 해가 뜨기 전에는 멀리 마을과 사천성의 모습이 드러났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진백천의 예상대로 마을에는 인기척 따윈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대부분 몸을 숨기거나 대피를 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 중에도 남아 있던 자가 있었는지 눈치를 살피며 모습을 드러냈다.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개방의 거지였다.

“혹시…… 진백천 회주님이십니까?”

이미 여러 차례 전투를 치렀는지 이곳저곳이 상처였고 눌어붙은 핏자국도 보였다.

그의 뒤로 경계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거지들이 보였다.

“맞아. 여기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나?”

진백천이 금검과 금패를 보이고 나서야 거지는 안도해 하며 표정을 풀었다.

“마인들이 기습적으로 쳐들어왔습니다. 무인이든 아니든 닥치는 대로 죽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끌고 갔습니다.”

“대피한 게 아니라 잡혀간 거라고?”

“맞습니다. 붙잡은 마인에게 물어보니 목적지는 십만대산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진백천의 뇌리에는 사특한 마기자의 술법이 스치듯 떠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