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334화 (334/346)

무림회귀백서 334화

114장 살아 있는 마기자(3)

‘마뇌가 또 다른 천강시이고 죽으려 한다고?’

진백천의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서로에게 집중한 백면신투와 마기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제 내 대답은 전부 끝났다. 아들아. 이제 나를 도와 저 창을 뽑고 나를 이곳에서 풀어다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마기자의 눈동자에 지금껏 감춰왔던 흉포함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곧 유형화된 기운으로 뿜어져 진백천과 백면신투를 위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뒤쪽으로 물러선 일행들에게까지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나는 순순히 아는 것을 전부 말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죽지 않는 힘을 주려고까지 했다.”

“전부 본인을 위해서였습니다. 아버지를 풀어드리면 분명 또 다른 목표를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실험하며 피를 몰고 다니겠죠. 전처럼 말입니다.”

“인간이란 향상심을 가져야 하는 법이다. 무인이 더 강해지기 위한 것과 똑같은 거야. 나는 단지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에 올라가 보고 싶을 뿐이다.”

백면신투는 그 대답에 오히려 더욱 결심을 내렸는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게 아버지이지만…… 당신은 그저 괴물입니다. 이대로 평생 갇혀 사는 것이 맞습니다.”

“허허. 끝끝내 천륜을 저버린단 말이냐? 과연 피는 못 속이는 내 자식답구나! 크크큭.”

이해 못 할 광소에 백면신투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뭔가를 떠올린 듯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방의 이름이 무간지옥임을 까먹은 것이냐? 또 다른 이름은 아비지옥(阿鼻地獄). 바로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죄를 지은 자가 떨어지는 곳이다.”

마기자는 이미 오래전에 술법의 대가로 자신의 부모까지 바쳤다.

만약 백면신투가 진즉에 그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 또한 그렇게 희생되었을 게 분명했다.

끔찍한 사실을 고백하는 것 치고는 마기자의 표정은 너무 편안했다.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조금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야말로 진정한 악인입니다.”

“그렇다. 나는 악인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혼세에는 악인이 되지 못하는 자야말로 부족한 자다. 그렇지 않으냐?”

“지금이라도 죄를 뉘우치시길 바랍니다.”

마기자는 더는 백면신투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대화가 통하지 않음을 느낀 것이다.

“돌아가라. 부자의 정을 보아서 살려서 보내주도록 하겠다.”

“부자의 정을 생각한다면 천강시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크하하하하! 지금 네가 나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묻는 것이냐?”

마기자는 거칠게 광소를 터뜨렸다.

동굴 전체가 크게 흔들리며 8개의 효수된 머리가 부르르 떨렸다.

그들의 머리가 마기자의 기운을 흡수하자 서서히 떨림이 잦아들었다.

“어리석은 아들아. 천강시이자 영생의 힘을 얻은 나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오로지 천마의 심장을 가진 자의 천마신공(天魔神功)만이 나의 피륙을 찢고 숨을 끊어놓을 수 있다. 하지만 천하의 철중악마저 못하는 것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네가 할 수 있겠느냐?”

“후우.”

그에 대한 반응은 바로 옆에서 터져 나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진백천은 그에게 쏠리는 마기자의 시선을 느끼며 씨익 웃었다.

“천마신공이면 된다고? 그럼 됐네.”

진백천은 기막으로 통로를 차단한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며 백면신투를 쳐다봤다.

“어르신. 부자간의 상봉을 충분히 나누셨으면 잠시 저한테 차례를 넘겨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만?”

백면신투는 진백천의 갑작스럽게 자신감 채워진 태도가 의아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서둘러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마저 뒤로 물러나자 진백천이 목을 양옆으로 꺾으며 뚜둑 소리를 내었다.

마기자는 살짝 분노 어린 시선으로 그를 살폈다.

“아해야.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제법 실력이 있어 보이지만 주제 파악을 못 하는 모양이구나.”

“주제 파악을 못 하는 건 다 늙어서 죽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사는 당신이지. 진즉에 헛짓거리 안 하고 죽었으면 이 사달이 안 났을 거잖아?”

“내가 여기에 이렇게 갇혀 있다고 우습게 보는 것이냐?”

마기자가 내력을 뿜어내자 곧 칼날 같은 기세가 진백천을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진백천에게 그 정도 기운을 버텨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마기자를 샅샅이 살피며 그에 대해 파악했다.

‘흡성대법이 꽤나 무섭긴 했지만 내력의 운용이나 기감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그도 그럴 것이 마기자는 원래부터 뛰어난 무인이 아니었다.

단지 그가 기이하고 악도한 술법에 능통하기에 마뇌조차 그를 경계한 것뿐이었다.

거기에 천마신공의 마기에 취약하다고 하면 진백천이 그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었다.

우득-

진백천은 몸을 가볍게 풀며 마기자에게 다가갔다.

“여기 나가는 문이 어디지?”

“내가 그것을 알려줄 것…….”

“너 말고. 강시 새끼야. 저 머리한테 물었거든?”

지영반은 진백천의 막 나가는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를 쳐다봤다.

“만약 대답해 주면 내가 책임지고 죽여주지.”

“정말…… 이냐?”

“그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거짓말이거든.”

진백천이 씨익 웃자 얼핏 그의 동공에서 검은 기운이 휘몰아쳤다.

천살대 마인이었던 지영반은 그것이 곧 평범한 마기가 아님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천장에 또 다른 굴이 있다.”

“고맙군.”

천장을 살피자 길게 자란 종유석들 사이로 숨겨진 통로가 보였다.

진백천은 종유석을 부수며 통로를 막고 있던 기막을 풀었다.

“아마도 저 통로가 탈출구일 거야.”

눈치 빠른 중혁이 재빨리 뛰어오르며 통로를 확인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통로에서 머리를 쏙 내밀며 소리쳤다.

“바깥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좋았어. 다들 먼저 나가 있어.”

“회주님은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나는 잠깐 깊은 대화 좀 나누다 가려고.”

물론 그 대화는 몸으로 나누는 것이었다.

강량호는 그 뜻을 알아들었는지 포권을 취하며 하갈후를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

백면신투를 마지막으로 일행은 전부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남은 것은 진백천과 그들뿐이었다.

“자. 그러면 바로 본격적으로 해볼까?”

진백천은 먼저 머리만 남은 지영반부터 없애주려 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가 머리를 흔들며 거부했다.

“잠깐……! 나는…… 저 마기자를…… 죽이고 나서다!”

“왜? 아까는 진법이고 뭐고 죽여달라고 빌어댔잖아.”

“그때는 마기자를…… 정말 죽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마기자가 이곳에서 풀러나 강호가 어떻게 되든 우선 자신이 안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백면신투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천강시인 마기자를 죽일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하지만 진백천은 달랐다.

처음 마기자와 맞부딪쳤을 때만 해도 그저 내력이 대단한 천둥벌거숭이 정도였던 것이 이제는 정말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지영반. 이제 뇌 속까지 썩어들어가기 시작하나 보군. 감히 천강시인 나를…….”

“너는 닥치고 가만히 있어. 곧 내 주먹하고 인사를 많이 해야 할 테니까.”

진백천의 뒤 없는 말투에 그는 재차 말이 끊겼다.

“오냐. 그렇게 자신 있으면 한번 덤벼…….”

“아. 말 더럽게 많네. 뭘 주절주절 끊임없이 떠들지?”

진백천은 그동안 감춰두었던 천마신공의 마기를 끓어 올렸다.

강력한 마기가 혈도를 도도히 흐르며 사지백해로 뻗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열감이 전해졌다.

우우우웅-

끈적한 마기가 거미줄을 피듯 공기 중으로 퍼져 올랐다.

마치 뭐든지 파괴하고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한 검은 용의 용트림 같았다.

‘오랜만에 끄집어내니까 제법 몸이 달았다 이거지?’

검게 일렁이는 두 눈이 마기자를 향했다.

어두운 굴이었지만 그것보다 더한 마기가 넘실거리며 진백천의 모습을 지워갔다.

그제서야 놈도 주변에 뒤덮는 비정상적인 어둠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설마 천마신공? 마교의 소교주라도 된다는 거냐?”

“그놈은 이미 내가 죽였지.”

안개 같은 어둠은 효수된 머리를 집어삼키면서도 어떠한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영반이 황홀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두 눈을 부르르 떨었다.

곧 몽롱한 얼굴로 진백천을 올려다봤다.

“아아. 천마시여.”

“말도 안 되는 소리! 천마가 부활했을 리 없다! 그럴 만한 피와 희생이 없었어!”

마기자는 이곳에 갇혀 있으면서도 세상을 지켜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나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천마가 부활할까 계속해서 세상을 둘러보았다.

“이놈! 무슨 사술을 쓰는 것이냐! 아까 격돌할 때만 해도 마기 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마기자의 입에서 사술을 논한다니 우스웠지만 진백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끝도 없는 마기를 전신으로 뿜어냈다.

짙은 어둠에 가려질 정도가 되자 그의 몸이 서서히 떠올랐다.

‘이 주변에는 이제 마기로 가득 찼다.’

흩날리는 짙은 회색빛의 머릿발과 검은 안광.

사방으로 번져나가는 날카로운 기운은 마치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아수라(阿修羅)와 같았다.

“이곳이 지옥이니 나는 너를 찢어 죽일 아수라가 되어주마. 어때? 마음에 들어?”

진백천의 안광을 올려다보는 마기자의 얼굴이 점점 균열을 일으키며 잔뜩 일그러졌다.

그리고 자신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공인 흡성대법을 사용하며 주변의 마기를 끌어들였다.

“어차피……! 술법의 힘이 담긴 천마의 심장이 없다면 나를 죽일 수 없다! 나는 천강시이며 영생을 얻은 마기자다!”

밀려드는 두려움을 없애고자 당당히 소리쳤지만 그것은 마기자의 크나큰 실수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몸 안으로 흡수된 마기는 통제되지 않았으며 매우 거칠었다.

그의 전신으로 파고들며 살점을 찢고 뼈를 부쉈다.

콰드드득-

천강시의 금강석 같은 단단한 몸과 회복력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분쇄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마기자는 그런 마기의 한가운데서 꿋꿋이 버텨냈다.

그의 생존에 대한 지독할 정도의 집착이 느껴졌다.

“천마의 심장! 그것이 몸 안에 있구나!”

“마교의 마인들은 한눈에 척하니 알아보던데 네놈은 왜 이렇게 둔하지?”

진백천의 손짓에 마기가 거칠게 흔들리며 마기자의 한쪽 팔이 찢겨나갔다.

천강시의 몸에서는 죽은 자와 같은 검은 피가 튀었지만 이내 마기에 흡수되었다.

“끄아아아아악!”

마기자가 울부짖었지만 천강시인 그가 고통을 느낄 리 없었다.

단지 이대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미지의 공포에서 오는 고통이었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고!”

마기자는 자신이 서 있는 관에서 뛰쳐나오려 했지만 그것 또한 실패했다.

효수된 창은 여전히 그를 압박 중이었다.

“네놈 따위 내 손에 닿는다면……!”

“아직도 나를 흡성대법으로 이길 수 있을 거라 믿는 거냐?”

필사적으로 마기를 뚫고 손을 뻗던 마기자는 바로 앞에서 들리는 진백천의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어느샌가 바로 앞까지 다가온 진백천이 거침없이 그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거친 손아귀가 그의 머리를 꽉 쥐었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마음껏 삼켜봐.”

“……안 돼!”

진백천은 그토록 그가 바라는 마기를 쏟아 부어줬다.

화아아아아아-

마기는 그의 귓구멍부터 콧구멍, 전신의 모공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눈이 파괴되며 신경이 타들어 갔지만 마기는 더더욱 강해졌다.

“끄어어억!”

“고통스럽냐?”

진백천의 물음에도 마기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미 그의 오감은 고통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하지만 진백천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네놈이 그 쓸데없는 술법으로 죽인 이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더 고통스러워해라. 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명령과도 같은 외침에 마기자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말 그대로 마기에 집어삼키며 단단한 천강시의 몸조차 버티지 못하고 분해되어갔다.

“끄어어어어억!”

단말마의 비명을 끝으로 마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마기자란 존재는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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