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333화 (333/346)

무림회귀백서 333화

114장 살아 있는 마기자(2)

마기자의 상태는 어딘가 기이했다.

머리만 효수되어 창끝에 걸려 있는 지영반과는 생기가 돌았고 겉모습만 보면 절대 죽은 자라 생각하기 힘들었다.

“흐읍!”

진백천은 기막을 펼쳐 끌어들이는 힘을 잘라냈다.

그와 동시에 흡입력은 진백천 하나에게만 집중되었다.

가공할 흡기는 그가 서 있는 땅마저 들썩이며 잡아당겼다.

‘단숨에 베어낸다!’

진백천은 오히려 검을 뽑아 들며 빠르게 마기자를 향해 달려갔다.

검은 한줄기 섬전처럼 마기자의 가슴을 노렸다.

하지만 곧 울려 퍼진 건 피륙을 가르는 소리가 아닌 묵직한 금속음이었다.

카앙!

진백천은 독고구검이 살을 뚫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그 이후가 더 충격이었다.

마기자가 검신을 붙잡자 손바닥으로부터 기묘한 감각이 흐르더니 빠르게 내력이 빨려 나가기 시작했다.

‘흡성대법(吸星大法)!’

온몸이 점혈이라도 눌린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전신이 찢기는 고통은 덤이었다.

다행이라면 그가 가진 내력이 10갑자가 넘었기에 악랄한 흡성대법에도 어느 정도 버티는 게 가능했다.

‘그렇다고 해도 내력을 빼앗기는 건 마찬가지야!’

그의 내력을 흡수할수록 마기자의 혼탁한 눈빛이 서서히 색을 찾고 피부도 윤기가 돌아왔다.

‘젠장. 누구 내력으로 몸보신이냐!’

진백천은 순간적으로 내력을 쏟아내며 호무살의 비수를 날렸다.

콰드드득-

두 자루의 비수는 거칠게 마기자의 몸을 베어냈지만 뒤로 밀려나는 것을 제외하면 딱히 타격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흡성대법에서 벗어난 진백천은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다행히도 마기자는 숨을 크게 몰아쉴 뿐 그 자리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못 움직이는 건가?’

광기 어린 눈은 8개의 효수된 머리를 보며 거칠게 이를 갈았다.

으드드득-

“회주님! 괜찮으십니까?”

“혹시 모르니까 하 문주님 모시고 움직이지 마.”

“네. 알겠습니다!”

진백천은 일행을 뒤에 밀어두고 마기자를 경계했다.

혹시 몰라 기막을 펼쳐 일행이 서 있는 곳과 이곳을 차단했다.

백면신투만이 유일하게 그의 옆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마기자를 올려다보는 그의 눈이 어딘가 아련했다.

“……강시군.”

“강시요?”

마기자가 내뿜는 살의만큼은 확실히 인간의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광기는 잠잠해지며 마기자는 침착해진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진백천이 그동안 봐왔던 강시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모습이었다.

“……방문자들인가?”

어딘가 백면신투를 닮은 외모에 말투였다.

그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지영반이었다.

그는 독기에 찬 눈으로 마기자를 노려봤다.

“깨어났군. 마기자. 죽음이…… 두려워 강시가 되어버린 겁쟁이…… 놈!”

“영반. 언제까지 그렇게 나를 원망하려고 하는 거지? 자네가 그렇게 된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위대하신 천마의 뜻이야.”

“닥쳐라……! 네놈의…… 술법만 아니었어도……!”

마기자는 고소가 가득한 눈으로 지영반을 내려다봤다.

“내 술법은 완벽했다. 천마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모두가 영생을 얻었으며…….”

지영반은 그 말에 살점을 출렁이며 격하게 분노했다.

“나는……! 머리만 남아…… 네놈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진법에 이용될 뿐이었다! 그게 영생이라고?! 차라리 다른 천살대 마인처럼…… 깨어나지 못했더라면!”

“누구 한 명은 찾아온 손님을 상대해야 하지 않겠나?”

마기자는 지영반을 무감정한 눈으로 내려보다 고개를 돌렸다.

가장 앞서 있는 진백천과 백면신투를 유심히 살폈다.

“기이한 놈과…….”

마기자는 백면신투의 정체를 알았는지 입을 다물었다.

첫눈에 자신을 닮은 외모에 익숙한 눈빛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늙었구나.”

“아버지께서 늙지 않으신 겁니다.”

“늙지 못했지.”

“그렇게 평생을 죽음으로부터 도망가시더니 결국 되신 것이 강시입니까?”

마기자는 회환이 가득한 눈으로 백면신투를 내려다봤다.

“맞다. 지금의 나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할 천강시(天疆尸)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내 의지는 아니었지.”

‘천강시!’

흡성대법과 백면신투의 강시라는 말에 어느 정도 짐작은 했었다.

강시의 왕.

닿는 것만으로도 생기를 흡수하는 흡성대법을 펼치고 생전의 모든 무공을 사용했다.

천강시가 되는 것만으로도 금강불괴에 다다르며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으니 언뜻 보면 일반인과 다를 바 없었다.

‘적조녀가 그토록 만들고자 하던 것이 천강시였으니까.’

다만 사람과 다른 점은 천강시는 만든 자에게 종속이 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죽지 못하고 평생을 따라야 하는 노예였다.

천강시가 된 마기자의 주인이 누구일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아버지…… 대체 그 술법이 펼쳐진 날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그날이라.”

마기자는 본능적으로 백면신투에게 다가오려다 강력한 진법의 기운에 밀려 다시 관에 처박혔다.

천강시가 된 그는 8개의 효수된 머리가 있는 이상 관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마기자는 답답한 듯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대답했다.

“술법은 성공했다. 다만 갑자기 나타난 강호의 개들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 천살대의 마인 중에 정파에서 심어놓은 개 한 마리가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 게 큰 실수였어. 다만 그들에게는 천마를 제외하더라도 처치 곤란의 문제가 남아 있었다.”

다름 아닌 죽지도 못하는 기이한 상태에 빠져든 백여 명의 가까운 천살대의 마인들이었다.

팔이 잘리고 머리만 남아도 죽지 못하고 고통에 울부짖었다.

“강호의 개들은 어찌하면 그들을 죽일 수 있는지 나에게 물었다. 그들이 얻은 것은 불완전한 영생이었기에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나마저 죽어야 했기에 나는 그들에게 다른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까지 죽기 싫었다는 그 대답에 백면신투는 어딘가 질린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야 했기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강시로 만들어달라는 제안이었습니까?”

“그렇다. 불완전한 영생이라도 이 힘이라면 천강시가 되는데 충분하다 여겼으니까.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성공했다! 천강시가 되어 모든 무공을 사용하며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천강시가 되었지!”

“그래 봤자 누군가에게 종속되는 노예 아닙니까?”

“아들아. 이 아버지를 그렇게 오래 봐놓고서 모르겠느냐?”

그는 그 상황에서도 한가지 꾀를 내었다.

마교에 침투했던 강호의 개마저 불완전한 영생을 얻은 것은 마찬가지.

“그자를 똑같이 천강시로 만들어 주는 대신 서로에게 종속이 되는 것을 제안했지. 놈은 추후 되살아날 천마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제안을 받아들였다. 후후.”

그렇기에 서로 종속이 되면서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움직일 수 있는 천강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자는 마기자를 속이고 깊은 동굴에 그를 처넣었다.

끊임없이 고통받으라고 이 지옥의 형상을 띈 비동이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한 발자국 움직이지 못하는 이곳에서 나는 다시 세상에 나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숨겨진 이곳을 찾아 들어온 자가 다름 아닌 내 아들이라니.”

그는 양팔을 벌리며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아들아. 나는 이제 힘이 있으니 너의 그 추레한 노인의 모습을 없애주마. 그리고 나와 같은 영생의 삶을 살자구나.”

마기자가 바라는 것은 자신을 막고 있는 진법의 제거였다.

하지만 백면신투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대답을 충분히 듣지 못했습니다. 간자였다는 또 다른 천강시가 누구인지 대답해 주십시오.”

“그거야 어렵지 않다. 그자의 이름은 철중악. 나와 달리 불사에서 벗어나 죽기 위해 발버둥 치는 어리석은 놈이지.”

‘철중악!’

마뇌(魔腦)의 본명이었다.

* * *

십만대산(十萬大山).

천마신교가 위치한 가장 깊은 심처.

빛 한점 없는 공간에서 마뇌는 감았던 눈을 떴다.

흑요석처럼 빛나는 눈이 어둠을 뚫고 저 멀리 어딘가를 응시했다.

“이제 이것도 조금만 더 있으면 끝이야.”

불사(不死)의 저주를 벗어나기 위해 그 오랜 기간 발버둥 쳤다.

수 없이 긴 세월 홀로 마교에 남아 연구한 결과 그 방법은 오로지 딱 하나였다.

‘천마의 부활.’

그리고 그 불사의 결정체인 천마를 중심으로 역천(逆天)을 되돌리는 새로운 술법을 행하는 것.

그렇게 하는 것만이 천마와 마뇌 본인의 불사를 빼앗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우선 천마를 부활시켜야 했다.

단순히 그의 심장을 지닌 조금 강한 마인이 아니라 완벽한 천마가 필요했다.

“그의 몸과 심장과 무공까지 전부 다 갖춘 자여야만 해.”

오랜 세월 동안 천마를 부활하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수없이 좌절되었다.

심장을 감당하지 못해 미치거나 천마신공(天魔神功)의 마기에 미쳐 광인이 되기 일수였다.

최근 들어 그나마 마뇌가 주목한 후보자는 마화린이었다.

심장 조각을 그에게 집어넣었고 지켜보았다.

천마신공마저 쥐여주려 했지만 아쉽게도 놈은 그것을 익힐 자격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내 오산이었지.”

이번에는 다를 거라 생각했지만 마화린은 단지 심장을 운반하는 정도의 쓰레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망에 가득 찬 철중악 앞에 진백천이 나타났다.

“전혀 예상치 못했어.”

진백천은 천마의 심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천마신공 또한 익혔다.

그것뿐만 아니라 마뇌가 감히 예측하기도 힘들 정도로 강한 무위였다.

그 후로 천살대 마인들을 먹이처럼 내던져주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죽은 천살대의 마인은 두 명.

전부 진백천이 죽였음을 그녀는 잘 알았다.

“마기는 충분히 쌓였을 터. 이제 남은 것은 진법을 펼치기 위한 피와 살점. 그것으로 천마를 깨운다.”

마뇌는 자리에서 일어나 흑의를 걸치며 밖으로 나섰다.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지 않아 유난히 하얀 그녀의 얼굴에 달빛이 반사됐다.

걸어가는 그녀의 뒤로 마인들이 속속히 따라붙었다.

그리고 이내 도착한 곳은 교주전이었다.

“마뇌인가?”

“맞습니다.”

“들어오라.”

마뇌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교주전에 들어섰다.

그러자 불완전한 마기가 폭풍우 치듯 휘몰아치는 것이 전해졌다.

교주 마천영.

천마신공을 익혔지만 그것을 완벽히 통제하지 못해 하루 중 대부분을 그것을 다루는 데 힘을 쏟아부어야 했다.

“이제 때가 된 건가?”

“그렇습니다. 괜찮으시겠는지요?”

“물론이다. 이때를 위해 천마신공을 익혀두었으니!”

그는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마뇌는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작전에 대해 설명했었다.

진정한 천마의 부활이라는 목표만을 위해 그는 맞지도 않는 천마신공을 익히며 때를 기다려왔다.

물론 마뇌의 궁극적인 목적인 죽음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지금껏 잠들어 있던 십만대산을 깨운다. 오마는 마인들을 이끌고 나와 함께 중원으로 향하리라!”

“모든 것은 교주님의 뜻대로!”

드디어 은거를 깨고 나타난 마교 교주의 명령을 전 강호를 질주했다.

그의 목적은 십만대산에서 강과 산이 될 피와 살을 뿌리고 쌓는 것.

죽음만이 유일한 그들의 목표였다

마인들은 그동안 잘 갈아둔 무기를 들고 십만대산을 빠져나갔다.

마뇌는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이 부디 마지막이 되기를.”

그리고 고개를 돌린 그녀의 시선이 멀리 떨어진 마기자의 비동으로 향했다.

그곳에 진백천이 들어갔음을 이미 보고 들어 알고 있는 마뇌였다.

“진백천 회주. 모든 진실을 듣고 할 너의 선택이 무엇일지 궁금하네. 마기자처럼 살려고 발버둥 칠지 아니면 나처럼…….”

그녀의 말끝은 한숨과 바람 소리에 섞여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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