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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332화 (332/346)

무림회귀백서 332화

114장 살아 있는 마기자(1)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지옥이 아니면 어디가 지옥이랴.]

진백천이 문을 뚫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인 문구였다.

그것은 이곳에 들어선 자가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피처럼 붉은 글씨로 벽면에 새겨져 있었다.

그를 따라 뒤이어 들어선 백면신투와 일행들도 문가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지옥이라니. 끔찍한 말이군.”

“절대 평범한 곳은 아니란 뜻이겠죠.”

진백천은 인원들을 살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무사했다.

하지만 벽이 완전히 내려앉기 전에 누군가 그 틈으로 구르며 빠져나왔다.

다름 아닌 온몸을 보물로 가득 채운 소혈랑이었다.

“허억허억!”

목숨보다 보물이 더 중요한지 서둘러 몸을 뒤적이며 보물부터 확인했다.

이내 진백천과 일행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이건 내 거다! 내가 목숨을 걸고……!”

놈은 당당히 소리치려 했지만 그전에 진백천의 주먹이 더 빨랐다.

퍼억!

잘게 쪼개진 이빨이 피에 섞여 입에서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깟 보물 따위 상관없고. 어디서 목소리를 높여?”

“크윽! 회, 회주가 이래도…….”

“되냐고? 된다. 이 새끼야.”

진백천은 오히려 본격적으로 소매를 걷어붙이며 소혈랑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한방 한방이 얼마나 강한지 놈은 감히 낭인도를 뽑아 들 생각도 못 했다.

옷 속에 두툼이 넣은 보석이 살을 파고들며 고통이 배가 되었다.

‘어차피 이런 놈은 살려둔다고 해도 강호에 패악만 끼칠 놈이지.’

의형제라는 자마저도 보물에 눈이 멀어 집어 던졌던 놈이었다.

진백천은 그대로 소혈랑의 단전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커억!”

단전이 부서지며 그동안 모아놨던 소혈랑의 내력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진백천의 손으로 직접 처리하기보다 내력을 잃고 고생하다 이곳에서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게 할 셈이었다.

진백천은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는 놈을 내버려 둔 채 뒤돌아섰다.

하갈후가 못마땅한 듯이 그를 쳐다봤다.

“너무 잔인했어요?”

“잔인하긴! 목숨을 살려둘 거면 손발의 근맥이라도 잘랐어야지!”

“…….”

“회주는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그런 생각은 하갈후뿐만이 아닌 듯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진백천은 일행과 함께 통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간(無間)이라는 말에서 이 방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을 알아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도홍경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딱히 기관진식이나 진법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제일 안쪽에서 새로운 기운이 심장박동처럼 전해질 뿐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진백천은 의외의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만큼은 자연 동굴인 것 같은데요?”

길게 늘어선 종유석과 바닥에 뿌려져 있는 것은 박쥐의 오물이었다.

그런 종유석에는 보일 듯 말 듯 낙서 같은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흐음. 야차들인가?”

불을 두른 야차들이 사람들을 죽이는 모습이었다.

그 밖에도 거대한 철산에 깔려 피를 토하며 죽거나 화염에 불타는 문양도 보였다.

아마도 지금껏 지나왔던 방들을 형상화하는 듯했다.

그런 것들을 살펴보며 백면신투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렇군. 이제야 알 거 같군.”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자 백면신투는 잠시 자리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듯 진백천을 보며 물었다.

“규환(叫喚), 흑승(黑繩), 초열(焦熱), 중합(衆合) 마지막으로 무간(無間). 전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지 않나?”

“글쎄요?”

백면신투는 슬쩍 도홍경을 쳐다봤다.

그러자 도홍경은 뭔가를 깨달았는지 손바닥을 치며 대답했다.

“……지옥?”

“맞아. 전부 불경에서 말하는 팔대 지옥의 이름이야. 하나같이 끔찍한 죄를 저지른 자들이 떨어져 고통받는 곳이지. 규환은 살생을 한 자들이 떨어지는 곳으로 죄인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끊지 않는 아비규환의 지옥을, 흑승은 살생을 범한 자가 끊임없이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흑승지옥, 초열은 삿된 지식으로 남들을 속이려 들거나 살생을 저지른 자가 끊임없이 살이 타는 고통을 받는 초열지옥, 중합지옥은 살생을 저지른 자가 떨어져 죗값만큼 짓이겨지지.”

그 지옥들의 공통점은 전부 살생을 한 자들이 죄를 받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무간지옥은 어떤 자들이 벌 받는 곳이에요?”

“무간지옥의 또 다른 이름은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불리지.”

풀이하자면 전혀 구제받을 수 없는 자들을 위한 곳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이었다.

“아비지옥에 떨어지는 자의 죄는 바로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죄. 이곳은…… 마기자의 비동 따위가 아니라 단지 그를 벌하기 위해 만든 지옥이었어.”

백면신투의 담담한 말을 끝으로 통로의 안쪽에서 거대한 숨결 같은 바람이 불어왔다.

지독하리만큼 차가운 바람은 단지 닿는 것만으로 몸이 움츠러들게 하고 오한이 돌았다.

‘평범한 바람이 아니야.’

아무래도 백면신투는 진백천에게 아는 전부를 털어놓지 않은 모양이었다.

왜 마기자가 굳이 이런 비동을 만들어 스스로를 벌하려 하는지, 부모를 죽였다는 말이 왜 나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더 묻고 싶어도 백면신투는 굳은 얼굴로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끝까지 가보면 모든 게 밝혀지겠지.’

진백천은 몸 안에 파고드는 한기를 털어내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동시에 호무살의 기운을 펼치며 한기를 모조리 밀어냈다.

덕분에 한기로 몸을 떨던 일행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지옥인지 뭔지는 몰라도 전부 정신 똑바로 차려. 아무래도 이 끝에 뭔가 있는 것 같으니까.”

“네. 회주님!”

그리고 그것은 진백천의 예상대로였다.

통로의 끝에는 관이 세로로 새워져 있고 그 안에 마기자로 보이는 자의 시체가 눕혀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 주변을 감싼 것은 북해빙궁에서도 본 적 있는 만년한석(萬年寒石)이었다.

바람은 곳곳에 뚫린 미세한 구멍에서 불어오는 중이었다.

“만년한석이라. 이래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거였군.”

하지만 이곳에 있는 것이 만년한석뿐만이 아니었다.

마기자의 시체를 주변으로 8개의 효수(梟首)된 머리가 창에 끼워져 있었다.

끔찍한 광경에 그것을 유심히 살피던 강량호는 곧 무언가를 깨닫고 다급히 진백천을 불렀다.

“회주님! 저것 좀 보십시오!”

강량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가장 오른쪽의 머리였다.

머리밖에 안 남은 시체는 눈을 꿈뻑이며 힘겹게 눈을 떴다.

단순히 시체에게서 일어나는 경련 따위는 결코 아니었다.

탁한 백색의 눈동자는 명확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일행을 살폈다.

그리고 시선이 멈춘 곳은 바로 백면신투에게서였다.

“……아는…… 얼굴…… 이로고……!”

놀랍게도 잘린 머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 * *

잘린 머리가 무공을 사용하거나 위협적으로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 경악스러웠다.

왜냐하면 창에 찔려 바싹 마른 살점 덩어리 같은 머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건다는 것에서 오는 원초적인 거부감이었다.

“마기자의…… 어린 아들이로고.”

“맞지만 누구시오?”

“나는 대천마신교…… 천살대 소속 지영반이다. 나를…… 기억하느냐?”

그는 말을 할수록 점점 목이 풀리는지 말소리가 선명해졌다.

백면신투는 그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주 어린 시절 아버지인 마기자와 함께 있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아버지를 찾아…… 이곳에 온 것이더냐?”

그가 아무 말이 없자 지영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그의 머리를 꿰뚫은 창날이 얼핏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것인지 도홍경은 몇 번이나 성령목부를 흔들었지만 환각을 일으키는 진법 따위는 아니었다.

“걱정마…… 라. 너의 아버지는 눈을 뜨지 못할 테니.”

“……그게 무슨 뜻이오? 눈을 뜬다니? 설마 마기자도 당신처럼 죽지 않은 것이오?”

“…….”

지영반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이곳에 왔음을 알게 되었다.

“답을 구하기 위해서 온 것…… 이구나. 그렇지?”

“그런 셈이오.”

“……그렇다면 하나만 약속…… 하거라. 내 대답이 끝나면…… 나를 죽여주기로.”

진백천은 머리만 남아 있는데 살아 있는 그를 어떻게 죽일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쯤은 이미 짐작했는지 친절히 본인이 죽는 방법에 대해 말해주었다.

“창을 뽑아…… 내 머리를 박살…… 내면 된다. 어렵지 않아.”

“그전에 먼저 이야기를 해주시오.”

“내게 안식만…… 준다면…… 이야기야 쉽지.”

백면신투는 진백천을 힐끔 쳐다보더니 주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반은 반쯤 썩은 얼굴로 웃었다.

목 아래로 늘어진 살점이 출렁이는 모습에 도홍경이 헛구역질을 해댔다.

지영반은 다른 이들의 반응 따위 무시하며 과거의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의 시작은…… 마기자로부터였다.”

마기자는 영생(永生)을 얻기 위해 평생을 다해 힘을 쏟았다.

그는 시황제의 강력한 황권의 뒤에 숨어 사람들의 선천진기와 천고의 영약을 집대성한 단약을 만들어냈다.

단약의 이름은 연년익수 불로단(延年益壽 不老丹)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단약과 함께 준비한 것은 사람들의 피와 목숨을 대가로 시간을 되돌리는 사특한 술법이었다.

‘전에 백면신투 어르신께 들었던 말이었지.’

마기자는 시황제에게 자신이 만든 술법을 시전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동원된 수만 명의 사람은 전부 생매장해 죽어가며 진법에 이용당했다.

허무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목숨과 달리 시황제는 끔찍한 몰골로 썩어들어갔다.

하지만 이것은 전부 마기자가 불로단 대신 수은으로 만든 독약을 먹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대로 마교로 돌아와 천마에게 그 술법을 시전했다.

“술법은 성공했소이까?”

백면신투의 말에 지영반은 그때를 떠올리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왜냐하면 죽음 이후에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고 시간이 흘렀기에.

그런데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의 기억은 뇌리에 새겨진 듯 사라지지 않았다.

“성공…… 했지. 하지만 모든…… 술법이 끝난 후 그 틈을 노려…… 적들이 쳐들어왔다.”

“적이라니? 천마가 살아 있을 시기에는 적 따위는 없었을 텐데?”

흥분한 듯 백면신투의 터져 나온 반말에도 지영반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있었…… 다. 시황제의 개들과…… 강호에 남아 있던…… 정파의 찌꺼기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늘어졌지. 크크크큭. 단 하루만…… 늦게 왔어도 그놈들 따위에게…… 당할 일은 없었을 텐데……!”

마기자의 술법은 많은 것을 대가로 했다.

시황제로 인해 수만의 생명과 함께 십만대산의 수천 명의 마인을 또 한 번 진법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혹시나 술법의 힘이 부족할까 걱정한 마기자의 우려 탓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술법이 펼쳐지고 그 기운은 천마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백여 명의 천살대 무인과 마기자마저도 덮쳤다.

“……영생(永生)은 곧 불사(不死)라! 마기자는…… 성공했다!”

아무리 도검으로 내리치고 살점을 짓이겨도 천마는 죽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술법으로 흐트러진 영혼을 잠시 끌어모을 시간이 필요했다.

십만대산으로 쳐들어온 정파의 무인들은 자연스레 그것이 완성되면 강호, 아니, 자신들의 미래 따위는 없을 거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만마(萬魔)의 종주…… 그……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정파의 무인들은 죽일 수 없다면 최대한 약하게 만드는 것을 택했다.

천마의 모든 힘이 담기는 심장을 네 조각으로 잘라 각각 네 장소에 봉인했다.

‘심장!’

진백천은 문득 황궁의 황음각(凰陰閣)의 5구역에서 마주쳤던 무덤을 떠올렸다.

천마 제1분묘(天魔 第 一憤苗)

분묘에 보관된 천마의 4개의 심장을 파괴하라.

‘그곳을 지키고 있던 목내이들이 정파의 무인들이었겠군.’

하지만 진백천은 오래 생각할 수 없었다.

지영반의 뒤편에서 강한 흡기가 터져 나오며 모두를 강하게 끌어당겼기 때문이었다.

“모두 물러서!”

흡기의 근원은 다름 아닌 죽은 듯 누워 있던 마기자였다.

그는 어느 순간 검게 물든 눈을 뜨고 진백천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어색한 그의 입 모양이 계속해서 무엇을 말하는 중이었다.

그 뜻을 알아챈 진백천이 얼굴빛을 굳혔다.

‘천…… 마……!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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