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331화 (331/346)

무림회귀백서 331화

113장 마기자의 비동(秘洞)(6)

도홍경이 첫 번째로 발견한 곳은 진백천도 이미 알고 있던 천장이었다.

철산이 움직이면서 그 진동에 따라 천장이 갈라지며 그 통로가 드러났다.

과거에는 여유가 없었기에 무작정 저곳으로 탈출하는 것만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꽤나 인위적이었다.

“두 번째는?”

“철산 뒤 편에 벽이요. 그곳에 이 비동에 펼쳐진 진법의 기운이 흘러나오는 중이에요.”

그렇다면 진백천이 찾던 공간은 뒤편의 벽임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뒤의 보물상자를 건들면 방 전체가 내려앉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이곳에서 탈출도 하지 못하고 괜한 곳에 갇힐지도 몰랐다.

‘선택을 해야 하는 건가.’

천장의 탈출구로 나가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더 다칠 것도 없이 마기자의 비동은 마교의 의도와 다르게 별다른 혼란거리도 안 되고 해결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진백천이 애초에 목적했던 마기자가 남긴 것들을 살펴볼 수가 없었다.

‘위험하더라도 살펴볼 가치가 있어.’

진백천은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천장으로 올려보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곳을 살피기 위해서 모두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잠시라도 저 철산의 가동을 멈출 수 있나?”

지금껏 도홍경의 옆에서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백황과 고두랑이 자신감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미 처음 기관진식이 발동될 때부터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저 거대한 철산을 움직이는 동력이 저 안에 있을 겁니다. 제 예상으로는 미리 말아놓은 태엽일 것 같은데 그것의 줄을 끊으면 멈출 수 있습니다.”

진백천은 안력을 집중해서 철산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자 그들이 말한 대로 뒤틀리는 철 조각 사이로 복잡하게 맞불러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보였다.

그 틈이 워낙 미세해서 진백천이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괜히 달라붙어 있다가는 철산에 깔리고 말 거야.’

지금도 철산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흑지림의 무인들을 곤죽으로 만드는 중이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계속해서 철산을 기어올랐다.

“저 뒤편의 보물상자가 보이지 않느냐! 저걸 가져오는 자는 십분지 일을, 아니! 이를 주겠다!”

물론 보물 따위 아무리 더 준다고 해도 목숨보다 귀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철산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것은 핏발선 소혈랑의 눈과 그만큼 피에 젖은 낭인도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겁을 먹고 주춤하거나 뒤로 물러나면 거침없이 낭인도를 휘둘렀다.

철산은 점차 그들의 피로 더 붉게 물들었다.

‘쯧. 천장이라도 무너뜨리고 우선 내보내야 하나?’

진백천이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 자신 있게 나선 것은 다름 아닌 통통이었다.

-주인! 저 안의 끈을 끊어내면 되는 거지?

“할 수 있겠어?”

통통이는 자신을 쳐다보며 코를 킁킁대는 청서생들을 보며 힘차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저딴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곧바로 진백천의 품속에서 뛰어내리더니 철산으로 향했다.

혼란스러운 무인들 틈 속에서 여유롭게 몸을 피하던 통통이는 철산의 겉면에 달라붙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날카로운 이를 사용해 틈을 만들더니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역시 평범치 않은 청서생이야.”

“청서생 자체가 특이하긴 하죠.”

백면신투의 청서생들은 여전히 눈을 꿈뻑이며 통통이가 들어간 틈을 지켜봤다.

곧 그 안에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들려왔다.

통통이는 철끈을 발견하고 인정사정없이 끊어내는 중이었다.

만년한철(萬年寒鐵)마저 흠집 내는 이빨이었기에 철끈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툭툭- 잘려나갔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끼기기긱-

오른쪽에 있는 철산의 움직임이 버벅거리며 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눈치 빠른 강량호가 진백천을 돌아보더니 수라검대를 이끌고 앞으로 나섰다.

“수라검대는 들어라! 괜한 자들이 보물을 건들지 못하도록 막아라! 그리고 곧바로 나갈 수 있도록 탈출구를 확보한다!”

“네. 대주님!”

지금까지 지켜보기만 하던 수라검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주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숫자만 채운 흑지림의 무인들과 달리 마교와의 수차례 실전을 겪으면서 실력을 키운 진짜들이었다.

순식간에 철산에 올라 통로를 확보하고 뒤편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그러한 모습에 중철랑과 소혈랑이 눈에 불똥을 튀며 달려들었다.

“네놈들이 뭔데 우리를 가로막느냐!”

“가만두지 않겠다!”

중철랑이 자신의 언월도를 거칠게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과연 낭인 생활을 오래 했던 자로 살수를 뿌리는데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수라검대와 강량호였다.

그깟 살수에 놀라 당황할 만큼 약하지도 경험이 부족하지도 않았다.

“어리석은!”

강량호가 철산을 박차며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지금껏 그들의 악행을 봐왔던 그의 검에는 일말의 자비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일검은 단숨에 언월도를 튕겨내는 것뿐만 아니라 중철랑의 한쪽 팔을 잘라냈다.

“허억!”

살의에 넘쳐 움직이던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한쪽 팔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지금부터 나서는 자가 있으면 팔이 아닌 목을 베어주겠다!”

형형한 강량호의 눈길이 사방을 훑자 흑지림의 무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제서야 정도회의 무사들이 지금껏 가만히 있던 이유가 그들을 경계하거나 경쟁자로 생각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단지 진백천의 말대로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막상 칼을 뽑자 개개인이 전부 흑지림의 무인들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실력이었다.

‘쯧. 일반 무사들까지 전부 영단을 먹였는데 비슷하면 말이 안 되지.’

괜히 정도회에서 1개의 무력대대만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수라검대가 실력을 드러내는 사이 통통이는 반대편의 철산의 철끈도 끊어놓았다.

사람들을 무참히 찍어 죽이던 철산의 움직임은 그제서야 비로소 완전히 멈추게 되었다.

통통이는 반대쪽 철산의 틈에서 빠져나와 당당히 진백천의 품으로 돌아왔다.

“수고했어.”

-이 정도야 기본이지! 기본!

으스대는 말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청서생을 향해 있었다.

새끼들 앞에서 잘난척하는 모습이 왠지 어린아이 같았다.

“그렇다면 슬슬 정리해 볼까?”

진백천은 철산에 오르며 천장에 난 통로를 열었다.

바깥과 연결되어 있는지 위에서부터 시원한 공기가 불어왔다.

“이곳이 탈출구 같으니 나갈 사람들은 먼저 나가.”

진백천의 담담한 말투에도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눈치만 살필 뿐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함정이라도 있을까 나서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그들 태반의 시선은 방 한 켠에 있는 보물상자로 향해 있었다.

“쯧. 저깟 보물이 뭐라고.”

하지만 그들의 눈에도 진백천과 정도회는 그저 그들을 내보내고 보물을 독차지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특히나 소혈랑은 소태라도 씹어 먹은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조금의 기회라도 엿보다 틈이라도 생기면 기습을 할지도 몰랐다.

“쯧. 한심한 놈들. 도홍경. 저기에 설치된 진법인지 뭔지 풀 수 있겠어?”

도홍경은 다른 두 명과 함께 살펴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오래돼서 풀어낼 수 없겠는데요. 진법과 기관진식의 발동을 각오해야 할 것 같아요.”

“흐음. 그래?”

진백천은 안력에 집중해서 그 뒤편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안개가 흩뿌려진 것처럼 뿌옇게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있는 건 확실하단 말이지?’

그가 보물상자 앞에서 고민하는 사이 하갈후가 다가왔다.

“회주. 어떻게 할 거냐? 지금까지로 봐서는 저것도 분명 함정인데 그냥 나가는 게 맞지 않겠냐?”

“그렇죠. 기관이 작동된다면 분명 대부분은 죽을 테니까요.”

“그런데도 여기 있는 건 뭔가 더 남아 있다는 뜻이겠지?”

역시 눈치가 빠른 하갈후였다.

그는 지금의 분위기를 깨뜨리기 위해서라도 하용추를 비롯해 하오문의 무인들을 먼저 바깥으로 내보냈다.

함정 따위 없이 그들은 안전히 밖으로 나갔다.

“바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자들을 보며 진백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이 보물이 탐이 나? 겨우 보석 꾸러미뿐인데?”

“그러는 회주야말로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는 뭐지?”

소혈랑이 이죽이며 물었다.

어느새 그의 옆에는 보물을 노리는 자들이 한편이 되어 줄지어 섰다.

강릉오제를 제외한 남은 이들 전부였다.

하지만 이어진 진백천의 태도는 그들로서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쯧. 그래. 그렇게 죽고 싶다면 마음대로 가져가 봐.”

단순히 말뿐이 아닌지 강량호와 수라검대를 뒤쪽으로 물렀다.

이왕 기관진식을 해체하지 못한다면 저놈들이 발동하게 만든 뒤에 다른 통로를 살펴볼 생각이었다.

소혈랑은 그 기회를 사양치 않고 받아들였다.

“기껏 기관진식이라고 해봤자 독을 내뿜거나 그런 것일 테지. 그러면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된다.”

소혈랑은 핏발선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한쪽 팔이 잘려 서 있는 중철랑에서 멈췄다.

“아우.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저 보물을 가장 원하던 게 둘째 형이었으니 먼저 만질 수 있는 기회를 드리려는 것뿐입니다.”

“잠, 잠깐! 나는 괜찮다. 보물 따위 없어도…… 허억!”

소혈랑은 그의 대답 따위 듣기 싫은지 남은 팔을 잡아 냅다 보물상자가 있는 곳으로 집어 던졌다.

그 위에 엎어지듯 떨어진 중철랑이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런 모습에도 별다른 함정이 발동되지 않자 소혈랑은 기뻐하며 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모두 저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라! 어서!”

경계하던 이들은 보물에 눈이 멀며 우르르 몰려들었다.

“형님. 기관진식이 발동되었어요.”

“강량호. 하 문주님 모시고 위로 올라가.”

“아니다! 뭔지 몰라도 끝까지 옆에 있을 테니 쫓아내지 마라.”

“위험할지도 몰라요.”

“괜찮다. 어차피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하갈후는 진백천이 이곳에서 무엇을 찾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셈이었다.

위험을 느끼는 공포보다 더 강한 호기심 탓이었다.

“흐음. 그럼 제 옆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그러지 말라고 해도 그럴 거다!”

진백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진이라도 온 듯 방안이 떨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던 철산이 움직이며 천장이 내려앉았다.

드드득-

“허억! 조, 조심해!”

“모두 빠져나가!”

눈치를 보던 강릉오제는 본격적으로 철산이 움직이기 전에 재빨리 천장을 통해 빠져나갔다.

보물을 품속에 쑤셔 넣던 이들도 그제서야 위협을 느끼며 서둘러 천장으로 향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맞부딪치는 철산에 으깨지며 죽어갔다.

몸에 쑤셔 넣은 보물로 몸이 무거워진 탓이었다.

뒤늦게 보물을 집어 던졌지만 소혈랑이 그것을 두고 볼 리 없었다.

“멍청한 놈들아! 보물을 두고 떠나려는 셈이냐! 당장 다시 주워!”

“히이익! 주, 죽기 싫다고!”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 진백천은 보물 뒤편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아까는 보지 못했던 문구가 벽면에 적혀 있었다.

[무간(無間)]

풀이하자면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혹은 그렇기에 ‘끊임없이 이어진다’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문구 옆에는 둥근 원형의 문이 숨겨져 있었다.

흑지림의 무인들이 며칠간 부쉈던 것과 똑같은 재질이었다.

‘기관진식이 발동되고 드러났다는 것은 분명 의도적이겠지.’

그 짧은 사이에 이것을 뚫고 올 실력이 안 되면 철산이나 천장에 짓눌려 죽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막상 문을 부수려니 조금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여기까지는 그도 들어선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당당히 움직일 수는 없었다.

“회주 뭐 하나! 서둘러!”

그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천장은 어느새인가 철산에 닿을 정도로 내려와 있었다.

‘그래. 고민해 봤자 뭐 하겠어. 이 뒤에 뭐가 있든 박살 내고 나아가면 그뿐이다.’

진백천은 고민을 그만두고 독고구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문을 갈라냄과 동시에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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