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329화 (329/346)

무림회귀백서 329화

113장 마기자의 비동(秘洞)(4)

토막 난 사체를 쳐다보는 진백천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죽은 황충이 한쪽 팔을 잃은 것이 바로 이곳이었다.

한 발자국 걷기 무섭게 불규칙적으로 뻗어오는 철 톱과 칼날이 몸을 사정없이 베어냈다.

그것이 단순한 기관진식이라고 하기에는 진법과 합쳐져서 극악으로 변했다.

‘이곳을 통과하기 위해서 수많은 자가 목숨을 바쳐야 했지.’

서슬 퍼런 칼날이 더는 사체를 토막 내지 못할 만큼 무디고 사방이 죽은 자들의 잔해로 가득 차고 나서였다.

하지만 진백천은 많은 이들이 피 흘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비록 마기자의 비동 안으로 들어온 자들 중 태반이 욕심에 물든 이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다들 여기 있어.”

“회주님 위험합니다!”

강량호가 그 뒤를 따라붙으려 했지만 진백천이 고개를 저었다.

뒤돌아본 그의 눈이 백색으로 물들며 검신에서도 비슷한 강기가 피어올랐다.

“진법의 환상을 꿰뚫어 보면서 기관진식을 파훼할 자는 나밖에 없을 거야. 그리고 위험하다고 말하기에는…….”

진백천 스스로가 너무 강해진 후였다.

그의 전신에서 피어오른 반탄지기(反彈之氣)를 보며 하갈후와 백면신투가 옅게 침음성을 내비쳤다.

“반탄지기라니. 더 강해졌군!”

단순히 겉으로만 보이는 것은 아닌지 발밑에서 솟구친 칼날이 발목을 잘려내려다 오히려 날이 부러져나갔다.

카앙!

하지만 그것을 시작으로 주변에서 불길한 핏빛 안개가 휘몰아쳤다.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닐 테고 진법이 만들어내는 실제 같은 환상이었다.

환상 속에서 붉은 옷을 입은 자들이 야차와 같이 눈을 빛내며 검을 휘둘렀다.

보통이라면 그것에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거나 무기를 휘둘렀을 테지만 진백천은 아니었다.

‘나한테 환상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호무살의 기운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사방으로 뻗어갔다.

환상은 밀물에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바스라지며 사라졌다.

그 짧은 틈에 진백천의 주변에는 날아드는 철 톱과 칼날로 가득했다.

“흐읍!”

콰아앙-

진백천은 땅을 박차며 칼날 속으로 뛰쳐들어갔다.

어느샌가 양손에 들린 종마검(從魔劒)과 독고구검(獨孤求劍)이 유려하게 허공을 가르며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잘라냈다.

뒤편에서 그를 노리고 뻗어오는 것들은 전부 반탄지기에 닿으며 부러졌다.

카가가강!

넓은 방 안에서는 진백천이 박살 내는 무기들의 날카로운 금속음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기관진식은 한걸음 내디디기도 전에 또 다른 칼날을 쉬지 않고 뿜어냈다.

잠깐 들이쉰 숨을 내뱉을 새도 없이 진백천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문 앞에서 떨어지는 마지막 공격을 조심해야 돼.’

문 앞에 섰을 때 안도하게 되는 틈을 노리며 보이지 않는 얇은 철실이 사방을 갈랐다.

황충의 팔을 자른 것도 그 마지막 공격이었다.

‘반탄지기가 철실을 막아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은 질문에 대한 답은 가능하다였다.

하지만 굳이 스스로를 과신하며 무턱대고 몸을 들이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파류식(破流式).

두 자루의 검이 각기 강한 흡입력을 만들어내며 사방에서 뻗어오는 무기를 끌어당겼다.

진백천은 모든 공격을 잡아당기며 벼락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펼쳐지는 백면섬보(百面閃步)였다.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백면신투의 얼굴에 의미 모를 씰룩임이 생겨났다.

“비켜라!”

진백천은 문가에 서 있는 흑지림의 삼 형제에게 강하게 소리쳤다.

그들은 감히 진백천을 막아설 생각을 못 하고 용수철처럼 옆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문 앞으로의 마지막 1보를 강하게 내딛자 그의 주변이 희미하게 일렁였다.

스스스스슥-

얇게 꼬여진 수백 가닥의 철사가 오로지 진백천 혼자만을 노리며 조여왔다.

대부분은 그러한 철사가 존재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은밀했다.

진백천은 파류식으로 끌고 온 수백 개의 칼날과 철 톱을 사방으로 튕겨냈다.

콰드드드득!

무기들은 전부 삶은 무처럼 아무렇지 않게 잘려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몇 개뿐이었지, 철사도 이내 내구도를 잃고 끓어졌다.

마지막 남은 것은 유난히 두껍고 날카로워 보이는 하나의 철사였다.

‘황충이 끝끝내 베어내지 못하고 팔이 잘렸던 것이 이놈이었지.’

진백천은 짧게 호흡을 들이쉬며 독고구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들이쉰 숨을 내뱉으며 강하게 1보를 내디뎠다.

쿠우웅-

‘베어져라!’

강한 의지가 담긴 진백천의 검에는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레 호무살의 기운이 실렸다.

백색의 강기는 그대로 철사를 파쇄하며 문으로 쏘아져 나갔다.

흑지림의 놈들이 며칠 동안 부수기 위해 안달하던 것보다 훨씬 두꺼워 보이는 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진백천이 진심으로 휘두른 칼날에는 버티지 못했다.

콰아앙!

강한 충격파와 함께 그대로 문이 박살 나며 다음 방으로 향하는 공간이 드러났다.

거칠게 피어오르는 흙먼지와는 다르게 방 안에는 지독할 정도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진백천이 발을 내디디고 겨우 한 호흡을 길게 들이쉬었다 내뱉을 만한 시간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진백천은 모든 칼날을 베어내고 두꺼운 문마저 박살을 내버렸다.

“……대단하군.”

가까스로 첫 말을 내뱉은 것은 하갈후였다.

그리고 뒤이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와 경악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특히나 백면신투는 자신의 놀람을 숨기지 않으며 진백천을 칭찬했다.

“강호의 소문이 회주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군.”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무슨 소리! 그 철사를 갈라낸 건 마지막 수는 그렇다 쳐도 유령신법만큼은 나와 비교해도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었어.”

“하하. 살아남으려고 꽤나 노력했죠.”

진백천은 경탄에 물든 눈빛을 묵묵히 받아내며 잠시 그 자리에서 쉬기로 결정했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력을 삼분지 일이나 사용해야 할 만큼 꽤나 힘이 들었다.

잠시 숨을 돌리며 이후의 방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했다.

‘그다음부터는 강시가 쏟아져나오니까.’

적조녀가 저주와 주술로 만들어낸 흑강시(黑疆尸)였다.

마기자의 비동 안에서 계속해서 음기를 흡수하며 더더욱 강해졌을 터였다.

더구나 다음 방은 서둘러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려면 최대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비축해야 되었다.

웃긴 건 이러한 진백천의 휴식에 흑지림의 삼 형제도 똑같이 멈춰섰다.

“저것들 회주님 실력을 보니 기가 죽었나 봅니다.”

“아무래도 자기들끼리 가서는 답이 없다는 것을 안 거겠지.”

“하긴. 여기 있는 사체도 대부분 흑지림의 무인들이니까.”

강량호와 수라검대가 호법을 서는 진백천은 운기조식을 끝마쳤다.

그리고 다음 방으로 나아가기 전에 일행에게 강시에 대해 말했다.

이것에 대해 말하면서 자연스레 적조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렇지 않으면 진백천이 마기자의 비동과 강시의 존재유무를 알고 있는 것이 의아해지기 때문이었다.

“적조녀라면 혈화궁의 궁주 아니냐?”

“맞아요.”

“허허. 적조녀를 한참 전에 죽이고 마기자의 비동에 대해 알아낸 게 정도회를 막 떠났을 때란 말이지? 어쩐지 갑자기 혈화궁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게 이상하긴 했지.”

하용추는 역시나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주께서는 마교의 계략으로 이곳이 공개될 것이라는 걸 미리 알고 그동안 차근차근 준비하신 거군요. 그래서 진법에 대한 전문가들을 고용하신 거고요.”

“뭐. 그런 셈이지?”

“……오늘도 다시 한번 천외천(天外天)의 경지가 있음을 느낍니다. 대단하십니다.”

하갈후는 더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그저 강시에 대해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저 안에 있는 게 흑강시란 말이지?”

“네. 놈들은 야차처럼 달려들 거예요.”

흑강시는 살아 있는 대상이면 그 무엇이든 증오했다.

그 이유는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있었다.

“살아 있는 이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가해 죽는 순간까지 삶을 갈구하게 만들고 마지막 순간에 목을 베어 죽이고 꿰매어 주술로 생을 불어넣는다라. 과연 마교다운 수법이군.”

“하지만 문제는 흑강시뿐만이 아니에요. 어차피 놈들이야 도홍경이 잠깐은 막아낼 수 있으니까요.”

놈들은 단지 시간 끌기였고 진짜 함정은 따로 있었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자 모두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흐음. 확실히 빠르게 움직여야겠군. 전부 죽지 않으려면 말이야.”

모두에게 확실히 말한 진백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로 향했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흑지림을 비롯해 강릉오제(江陵五弟)가 정도회의 뒤를 따랐다.

진백천은 그들을 무시하며 도홍경을 쳐다봤다.

“내가 준 거 잘 가지고 있지?”

“물론이죠.”

그가 품속에서 꺼낸 것은 향혼령(響魂鈴)이었다.

적조녀의 신물이었던 그것은 이제 도홍경도 제법 잘 다뤘다.

“최대한 빠르게 길을 뚫어야 돼. 모두 집중해.”

“네. 알겠습니다!”

강량호와 수람검대는 눈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진백천은 다음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멈춰섰다.

그 옆에는 붉은 글씨로 초열(焦熱)이라 적혀 있었다.

‘모든 것을 불태우는 화염.’

전의 흑승(黑繩)보다 확실히 직감적으로 다가오는 단어였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진한 유황 냄새가 풍겨오니 그 안에서 벌어질 일을 모를 리가 없었다.

“조심히 따라와.”

“네. 회주님.”

진백천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가장 앞서서 걸어나갔다.

이전 방과 달리 이곳은 지독한 어둠이었다.

하지만 그런 어둠보다 더 성가신 것은 코끝을 찌르는 냄새였다.

“유황과 기름 냄새!”

얼마나 주변에 뿌려놨는지 그 냄새가 찌든 수준이었다.

혹시라도 무심결에 불을 피우려다가는 모두가 벽에 적혀 있던 단어 그대로 초열(焦熱)에 휩싸이게 될 터였다.

다행히도 뒤따라오는 흑지림과 강릉오제들도 전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숨을 죽였다.

“젠장.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나아가기라도 하란 뜻인가?”

누군가의 불평불만과 달리 이곳에 있는 대부분은 상당한 수준이 다다른 무인들이었다.

아주 조금의 빛만 있더라도 이 정도의 어둠을 꿰뚫어 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곧 암순응이 끝난 정도회 무인들부터 진한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강시……!”

진백천에게 미리 들었음에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살기였다.

흑강시들은 어둠에 섞여서 검은 동자를 꿈뻑이지도 않고 이쪽을 노려봤다.

금방이라도 흉성을 터뜨릴 듯 이를 보였다가도 도홍경의 향혼령 소리를 듣고 얌전해졌다.

딸랑-

도홍경은 한 손에는 향혼령, 반대편에는 성령목부를 들고 허공을 갈랐다.

단순히 휘젓는 것만은 아닌지 그의 얼굴이 땀으로 축축이 젖어 들었다.

하지만 일행이 방 가운데 정도 도달하자 한가지 변수가 생겨났다.

방 안에 설치되어 있던 진법이 발동되며 흑강시들이 점점 더 포악해졌다.

가까스로 통제하고 있던 도홍경으로도 더는 버티기 힘든 수준이었다.

“강량호. 빠르게 입구까지 달려.”

강량호와 수라검대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갈후와 백면신투를 보호하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걸리는 놈들은 죄다 거침없이 옆으로 밀쳐냈다.

괜히 검이라도 사용하다가 불똥이라도 튀며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허억! 정도회 놈들이 먼저 앞서간다! 빨리 따라붙어!”

“우리를 버려놓을 생각이다!”

소혈랑은 다급하게 수하들에게 명령하며 뒤를 따라붙었다.

하지만 단순히 따라붙는 것만도 무척이나 힘들었다.

지금껏 비교적 얌전했던 강시들이 하나둘 흉성을 터뜨리며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악!

가장 바깥쪽에 서 있던 자가 그대로 몸통을 붙잡혔다.

한눈에 봐도 날카로워 보이는 손톱은 그대로 옆구리에 파고들었다.

동시에 날카로운 이가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제, 젠장! 저놈들을 죽여 버려!”

바로 앞에서 일어난 끔찍한 광경에 바로 옆에 있던 자가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누가 말릴 새도 없이 흑강시를 향해 휘둘렀다.

칼날은 허무하게 흑강시의 손에 붙잡히며 단단한 손톱과 맞부딪쳤다.

카앙-

그리고 작게 일어난 불똥은 삽시간에 그 몸집을 불렸다.

“허억! 미, 미친!”

진정한 초열(焦熱)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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