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327화 (327/346)

무림회귀백서 327화

113장 마기자의 비동(秘洞)(2)

‘독 가루인가?’

단순한 독은 아닌 듯 제독제나 물을 뿌려도 타들어 가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빠르게 녹아 들어가며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치이이이익-

“끄아아아악! 살, 살려줘!”

“소, 소혈랑님 제발……!”

흑지림의 무인 중 하나가 지켜보고 있던 소혈랑을 향해 다가갔지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낭인도를 휘둘렀다.

어떻게 베었는지도 모르게 목이 베이며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겁쟁이 놈들! 어마어마한 보물이 있으니 함정은 당연한 거다! 이깟 독 가루 따위 두려워하는 놈들은 차라리 내가 죽여 버리겠다!”

그는 독 가루가 날리지 않을 때까지 흑지림의 무인들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어차피 사혈방의 흑도방파를 흡수하면서 널리고 널린 것이 사람들이었다.

그런 식으로 몇 번 반복하자 독 가루가 더는 뿜어지지 않았다.

“크하하하! 어서 안으로 들어가라! 보물은 우리 차지다!”

기뻐하던 흑지림의 삼 형제는 곧 거칠게 분노를 터뜨렸다.

며칠을 걸려 겨우 문을 뚫고 들어갔지만 그 안을 막아선 것은 비슷한 크기의 문이었다.

“이런 니X랄! 또 그 짓을 해야 한다고?”

“대형. 너무 안 좋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렇게까지 꽁꽁 싸놓은 것을 보면 그 보물도 분명 대단하다는 거 아니겠소?”

언월도를 든 중철랑의 말에 대묵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놈들은 감히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라! 아니, 들어오려 하면 죄다 죽여버려!”

“네! 알겠습니다!”

흑지림의 무인들은 입구 앞을 철통같이 막아서며 서슬 퍼런 눈을 빛냈다.

진백천은 그런 이들을 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멍청한 놈들.’

그들이 문이라고 생각하는 곳은 뒤쪽으로 길도 없는 가짜였다.

진짜 길은 그들이 밟고 있는 바닥이었다.

원래는 독 가루가 가득 차 있던 곳이 위로 뿜어지면서 길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도 모르는 놈들은 그저 눈앞에 보이는 가짜 문에 달라붙어서 열심히 나무를 휘둘렀다.

“쯧. 그러면 우리도 움직일까?”

“저들이 저렇게 막고 있는데 괜찮습니까?”

“걱정 마 우리는 그길로 가지 않으니까.”

진백천은 말과 다르게 천천히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흑지림의 무인들이 무기를 치켜들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다가오지 마라! 베어버리겠다!”

“감히 누굴 베어낸다고?”

단순한 협박이었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격렬했다.

뒤편에서 따라오던 강량호를 비롯한 수라검대가 동시에 무기를 뽑아내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장내는 순식간에 싸늘한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그런 침묵을 깨뜨린 건 흑지림의 삼 형제였다.

“언제 나서나 했더니 이렇게 문을 부수고 나서야 끼어들겠다? 그동안 정도회가 보이던 정명과 호협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 아닌가?”

“맞습니다. 결국 정도회도 이득 앞에선 어쩔 수 없는 이익집단일 뿐입니다.”

“본인들도 양심이 있으면 감히 우리가 부순 문을 밀고 들어오지 못하겠지 않습니까?”

서로 대화를 하는 듯하지만 그 목소리는 전부 진백천을 향했다.

그는 잠시 자신을 향하는 눈길을 즐기며 입구에서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멈춰섰다.

“아아. 그 입구로는 갈 생각이 없는데?”

한발 물러선 모습에 삼 형제는 눈에 띄게 안도했다.

하지만 소혈랑은 이죽임을 감추지 않으며 진백천을 대놓고 비웃었다.

“정도회의 회주가 수치스러움이 뭔지는 아는 자라 다행이군! 우리가 저 문을 열고 다 챙겨서 나올 때쯤 특별히 비켜줄 테니 너무 걱정 마라! 크하하하!”

도발적인 말투에도 진백천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름은 늑대 새낀데 하는 행동은 강아지 새끼네.”

“뭐라?”

“우리는 다른 길로 갈 테니까 네놈들은 철문이나 열심히 내리쳐.”

“멍청하긴. 다른 길 따위는…….”

진백천은 그를 비웃으며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땅속으로 깊이 찔러넣었다.

파강식(破彊式).

드드드득-

진백천의 내력은 검신을 타고 여러 줄기의 강기를 쏟아냈다.

퇴적물로 쌓인 땅은 손쉽게 갈라지며 양옆으로 밀려났다.

“허억! 물러나!”

강기는 단순히 구덩이를 만드는 것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곧 검을 꼽았던 앞으로 강기가 스치고 지나간 기다란 통로가 만들었다.

그 끝은 마기자의 비동으로 향하는 입구였다.

후우우우-

안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백천은 황망한 표정의 흑지림 삼 형제를 비웃어주며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놈들과 달리 제일 앞장선 것은 당연히 그였다.

그 뒤를 정도회 무사들이 줄지어 따랐다.

“들어가자. 내 뒤만 쫓아와.”

“네. 회주님!”

진백천이 새로운 입구를 만들어내자 흑지림의 무인들뿐만 아니라 지켜보던 다른 이들도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이내 재빨리 정도회의 뒤를 따라붙었다.

멍하니 있던 흑지림의 삼 형제는 재빨리 무인들에게 소리치며 구덩이로 향했다.

혹시라도 저곳이 비동의 진짜 입구라면 지금까지 자신들이 한 짓은 전부 헛수고가 되어버렸다.

“뭣들 하냐! 어서 따라붙어! 정도회 놈들이 다 가져가게 놔둘 셈이냐!”

구덩이를 지나가니 안쪽에서 커다란 공간이 나왔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곳은 절대 아닌 듯 사방은 자로 잰듯한 벽돌로 막혀 있었다.

정도회 무사들과 서 있던 진백천은 뒤따라 들어오는 흑지림의 무인들을 보며 혀를 찼다.

“어쭈? 수치스러움 어쩌고저쩌고하더니 잘도 따라오네?”

“회주님. 원래 얼굴이 뻔뻔한 자들 같습니다. 양심이 있는 자라면 창피해서 감히 못 따라올 텐데 말입니다.”

“뭐 어쩌겠어. 관대한 우리가 용서해야지.”

흑지림의 무인들과 소혈랑은 그 말을 들었음에도 애써 무시하며 주변을 살폈다.

커다란 직사각형의 공간에는 진백천이 강기로 뚫은 벽을 제외하고는 어떤 입구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아는 자는 진백천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떨어지는 거지만.’

바닥에 촘촘히 채워진 벽돌을 하나라도 부수거나 떨어뜨리면 바닥이 무너지며 그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때부터가 진정한 비동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자칫 잘못하다간 적조녀(赤爪女)가 말한 비동을 감싼 진법에 갇혀 헤매다 많은 이들이 죽을 게 분명했다.

‘적조녀의 말에 따르면 정확히 만월(滿月)이 뜨는 밤이면 진법이 열린다고 했지.’

도홍경과 진법의 대가들이 함께 있으니 뚫고 나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을 아닐 테지만 굳이 희생을 늘릴 필요는 없었다.

그가 미리 확인한 바에 따르면 오늘이 정확히 만월이 뜨는 날이었다.

어차피 해가 질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대로 혹시 모르니까.’

“도홍경 혹시 주변에 펼쳐진 진법이나 기관진식이 있나 알아봐.”

“그렇지 않아도 아까 전부터 거슬리는 기운이 있었어요.”

도홍경이 움직이자 말하지 않아도 백황과 고두랑이 그 옆에 따라붙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여기저기를 살폈다.

때때로 탄성을 내지르는 것을 보면 분명 뭔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안을 살피기 시작한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흑지림의 무인들과 따라 들어온 이들도 여기저기를 살피거나 괜히 툭툭 찔러봤다.

하지만 1시진이 지나도 별다른 입구를 찾지 못하자 여기가 입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진짜 입구는 위쪽이 아닐까?”

“그렇다면 여기는?”

“그냥 가짜인 거지.”

“가짜 입구를 왜 지하에 보이지도 않게 만들어?”

몇몇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흑지림의 무인들은 정도회의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나 해서 기감을 열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나 진백천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저자가 괜히 이곳에 남아 있을 리가 없습니다. 저 여유로운 모습을 보면 분명 사람들이 참다못해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는 게 분명합니다.”

“그때 혼자 입구를 열어 들어가려고?”

“맞습니다. 혼자 독차지할 생각인 겁니다.”

“과연 혈랑 아우의 말이 맞는 것 같군.”

뭐 눈에 뭐밖에 안 보인다고 그 말이 딱이었다.

진백천은 육포로 심심한 입을 달래며 기다렸다.

그때 도홍경이 뭔가를 찾아냈는지 흥분한 기색으로 다가왔다.

“형님. 이 아래로 커다란 진법이 깔려 있어요.”

“그래? 어떤 종류인지는 알아냈어?”

“흐음. 지금은 사라진 고대의 기문둔갑(奇門遁甲)의 술수이에요.”

“파훼할 수 있겠어?”

“만들어진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약해졌지만 쉽게 파훼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에요. 괜히 건드렸다가는 어떻게 뒤틀릴지 몰라서요. 대신 언제 약해지는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도홍경의 말대로라면 진법은 강한 음기를 받으면 그 힘이 약해진다고 했다.

그 시간은 진백천이 알고 있는 대로 바로 오늘 만월이 뜨는 밤이었다.

“수고했어. 쉬고 있어.”

“네.”

진백천과 일행은 하릴없이 기다렸다.

서서히 어중이떠중이들은 빠져나가고 제법 실력 있거나 머리 좋은 자들만 남았다.

크게 세 부류였다.

정도회와 흑지림, 그리고 임시로 남은 이들이 뭉쳐 만든 일행이었다.

상황에 따라 흑지림이나 정도회 어느 쪽으로 붙을 자들이었다.

‘저런 자들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저자들은 진백천이 아니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을 이들이었다.

그가 천마의 무덤을 찾는 것을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진백천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자고 있던 통통이가 품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비몽사몽한 얼굴은 고개를 홱홱 돌리며 무언갈 찾는 듯했다.

“왜? 육포 줘?”

-킁킁. 아니! 육포 말고 뭔가 나랑 비슷한 냄새가 난다!

“비슷한 냄새?”

급기야 통통이는 품속에서 쏙 나와서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작은 상자에 걸터앉은 남자가 있었다.

-여기다! 여기라고!

남자는 통통이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휘휘 저었다.

“먼 쥐새끼가 여기 있어? 저리 가라!”

하지만 오히려 그 모습에 진백천은 더 기이함을 느꼈다.

지금의 통통이는 단순히 쥐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크고 특이한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남자는 단번에 쥐라는 걸 알아본 것이다.

“혹시 저자의 냄새를 어디서 맡아본 적 있는 거야?”

통통이는 빠른 움직임으로 상자 가까이 가더니 냄새를 맡았다.

청서생의 후각은 백 리 밖에 떨어진 영초나 영물의 냄새까지도 정확히 구분해 낼 정도로 뛰어났기에 단번에 그자의 정체를 알아냈다.

-있어! 황궁에서 봤던 그 노인이야!

‘노인? 그렇다면 혹시……?’

그리고 그런 의심에 대답하듯 상자의 좁은 문이 열리더니 작은 쥐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통통이를 쏙 닮은 푸른 털의 청서생이었다.

“……허허. 나오지 말라니까.”

남자는 조심스럽게 청서생을 밀어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이군. 회주.”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백면신투(百面神偸)였다.

* * *

백면신투는 진백천에게도 무척이나 특별한 인물이었다.

그에게 유령신법(幽靈身法)의 2초식을 알려주었고 그것으로 수없이 많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청서생의 새끼를 그 대가로 했다지만 고맙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죽지 못해 사는 것뿐이지!”

겉모습은 비록 중년밖에 안 되었지만 그것은 역용술일 뿐이었다.

회백색의 눈빛에서 노회한 연륜이 전해졌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나와본 것인데 역시나 자네의 청서생이 알아봤군.”

백면신투의 상자에서 나온 청서생은 총 세 마리였다.

통통이는 백면신투의 청서생과 서로 냄새를 맡으며 교감 중이었다.

“그나저나…….”

백면신투의 시선이 통통이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분명 황궁에서 봤을 때만 해도 조금 크고 푸른 털의 쥐와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백면신투는 새끼 때부터 영약을 먹여 키웠기에 자신의 청서생이 더 컸을 거라 자부했다.

하지만 지금의 청서생은 얼핏 보면 못 알아볼 정도로 거대해진 상태였다.

“……자네의 청서생은 대체 어떻게 된 건가? 뭘 먹었길래 저렇게 비만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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