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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326화 (326/346)

무림회귀백서 326화

113장 마기자의 비동(秘洞)(1)

좀처럼 놀라지 않는 진백천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진심으로 유석경의 만남이 성공하길 바라왔었던 터라 더더욱 그랬다.

“두 달? 식은 대체 언제 올린 거야?”

“아이가 먼저 들어서는 바람에 다급하게 올렸지.”

유석경은 자연스럽게 언해원의 옆에 서서 어깨를 감쌌다.

두 달 전이라면 한창 진백천과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식을 올릴 때 그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지만 정도회의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가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말을 하지. 그렇다면 화환이라도 보냈을 텐데.”

진백천은 언해원 뱃속에 있는 아이의 태동이 정확히 느껴졌다.

지금 그가 느끼는 기분은 무척이나 생소한 것이었다.

회귀 전에는 없던 생명이자 아이였다.

뭔가 지독하게 반복되던 자신의 삶에 새로운 변환점이 찾아온 감정이었다.

잠시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던 진백천은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뭐 필요한 게 있어? 말만 해. 다 해줄 테니까.”

“그래? 그렇지않아도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언해원과 유석경은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살짝 떨리는 듯한 언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주께서 우리 아이의 대부가 되어주세요.”

“대부?”

진백천으로써는 생각지도 못한 요청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민할 것도 없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부탁인데 그 정도야 당연히 들어줄 수 있지.”

진백천이 대부가 되겠다고 하자 유석경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태명은 정했어?”

“아직이요. 대부를 맡아주실 회주께서도 오셨으니 지어주세요.”

“내가?”

진백천은 잠시 고민하다 좋은 태명을 떠올렸다.

“태양(太陽).”

사람들을 비추는 따듯하고 큰 볕이 되라는 의미였다.

둘은 그 태명이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대부로써 선물을 줘야겠지.”

진백천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언해원의 배에 닿기 전 손바닥을 멈췄다.

‘이 아이에게 모든 이를 덮일 수 있는 따듯한 기운을.’

진백천의 의지는 곧 힘이 되어 내력으로 표출되었다.

그의 전신과 내력에 녹아들었던 화옥(火玉)의 기운이 뿜어지며 배속으로 스며들었다.

명문정파에서 하는 벌모세수(伐毛洗髓)와 비슷하지만, 아직 두 달밖에 안 되었으니 그저 기운을 전해주는 것뿐이었다.

기운은 곧 아이의 전신을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아이가 클수록 점점 흡수될 테지.’

“평생 잔병치레는 걱정 없을 거야.”

“고맙다. 혹시 나중에 아이가 커서 무공을 익히고 싶다고 하면…….”

“당연히 내가 알려줘야지. 둘만 상관없다면 말이야.”

아이의 대부까지 되었는데 그 정도도 못 해줄 이유는 없었다.

조금 전 진백천이 한 행동의 의미를 잘 모르는 유석경은 으레 무인이라면 해주는 것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신에서 느껴지는 따듯한 기운에 언해원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감사해요. 회주님.”

“별말을.”

그 후로 셋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만찬을 즐겼다.

복잡한 일은 임산부인 언해원이 있는 자리에서는 굳이 하지 않았다.

식사를 끝마치고 언해원은 자리에서 먼저 물러났다.

그제서야 다시금 마기자의 비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주변을 통제 좀 해줬으면 해.”

“어려울 것 없지. 이미 주변 마을에 있던 사람들은 대피시킨 지 오래야.”

“혹시 무인들도 더 접근 못 하게 막을 수 있나?”

“흐음.”

무인들의 집요함을 잘 아는 유석경이기에 잠시 고민하던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야 있겠지. 대신 그 반발이 꽤나 심할 거야. 관에서 무림을 통제하는 듯한 모습이 될 테니까.”

“그거야 내 이름을 팔면 될 거야. 표기장군 이전에 정도회 회주니까.”

가장 앞에 나서서 사람들을 막는 것은 정도회의 무사들이고 관군들은 그저 보조하는 역할만 해도 충분했다.

“그나저나 그 안에 뭐가 있길래 다들 그렇게 안달이지? 그래 봤자 한낱 도둑이 모아놓은 것 아닌가? 살아 있을 때도 쫓지 않던 이를 죽으니까 몰려드는 꼴이 우스워.”

“그렇지. 결국에는 마음속의 욕심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야.”

그렇기에 무덤 안에는 강시와 죽음을 불러오는 기관진식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백천과 동맹을 맺은 곳에서는 아무도 마기자의 비동을 찾지 않았다.

그가 오래전부터 경고를 해왔고 마교가 준비한 함정이라는 것은 누누이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진백천에 대한 믿음은 있는지 대부분은 그저 다가올 싸움에만 집중했다.

“그러고 보니 너는 그 안에 들어가서 뭘 하려고? 목숨 걸고 들어갈 이유도 없지 않나?”

“글쎄. 굳이 뽑자면 나만이 들어갈 이유가 있다고 해야 할까?”

유석경이 그 이유를 궁금해했지만 진백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 예상대로라면 마기자의 비동 그 안에 천마의 분묘(憤苗)가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바로 얼마 전 흑룡강에서 금노산이 마뇌에 대해 조사했던 서신을 읽으면서였다.

그곳에는 마뇌가 원래는 천살대의 마인이었으며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얻어 천마를 극도로 저주한다는 것이 적혀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주문처럼 쏟아내던 말에 마기자도 섞여 있다고 하니 분명 이 거대한 무덤에는 또 다른 비밀이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회귀 전에는 살아남기 급급했기에 제대로 훑어보지도 못했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야.’

아직은 그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추측일뿐이었다.

* * *

유석경과의 만남은 아쉽게도 빠르게 끝이 났다.

비동을 감시하던 관군들로부터 곧 문이 뚫릴 것 같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진백천 그대로 작별인사를 하고 비동이 있는 렴강(廉江)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일대를 통제 중인 관군과 그 안에 모여 있는 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흐음. 생각보다 많은데?’

명문정파가 끼어들지 않아서 그 수가 적을 줄 알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수를 차지하는 흑지림(黑地林)의 무인들은 몇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실력이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

‘오합지졸들이라면 오히려 통제하기 쉽겠지.’

“회주님!”

그때 진백천을 알아본 이들이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수라검대와 대주 강량호였다.

“별일 없었지?”

“아직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문이 곧 뚫릴 것 같습니다.”

“그래?”

흑지림의 무인들은 문을 무식하게 뚫으려 했다.

큼지막한 통나무를 가지고 와서 끊임없이 부딪쳐댔다.

설마 저런 걸로 문이 뚫리겠나 싶었지만 며칠을 밤낮 교대로 치더니 문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다들 뭘 봐?! 이 문은 우리가 뚫었으니 넘볼 생각하지 마라!”

낭인도를 들고 거칠게 위협하는 자는 흑지림의 소혈랑(小血狼)이었다.

그 위로 대묵랑(大墨狼), 중철랑(中鐵狼)을 포함해 그 세 명의 의형제가 지금의 흑지림을 이끌었다.

“회주님. 당장 명령만 내려주시면 저들을 밀어버리겠습니다.”

“아니야. 잠시만 더 지켜봐.”

어차피 저 문이 열린다고 해서 곧바로 비동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진백천은 여유롭게 하오문의 사람들을 기다렸다.

그가 이곳으로 향한다는 소식 정도는 들었으니 지금쯤이면 모습을 드러낼 때도 되었다.

‘하용추가 오려나?’

사패천에 있을 때 의뢰를 했으니 생각해 보면 꽤나 오래전이었다.

그리고 곧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백발의 키 작은 노인이었다.

그를 쳐다보는 진백천의 눈에 반가움이 일렁였다.

“이놈아! 왜 이렇게 늦었냐!”

“뭐가 늦었다고 그럽니까. 딱 적당할 때 왔구만.”

“문이 바로 열리기 직전인데도?”

진백천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하오문 문주 하갈후였다.

전보다 조금 더 주름진 얼굴이었지만 오히려 목소리는 더 커졌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잘 지내긴. 여기저기 사건이 끊임없이 터져서 그것 때문에 바빠 죽을 지경이다. 여교에게 다 넘기고 금분세수(金盆洗手)라도 하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있어야지.”

그도 그럴 것이 하오문은 개방과 더불어 현 강호의 정보단체 중 양대산맥이었다.

마교의 집중 공격을 받아 무너질뻔한 적이 바로 얼마 전이었지만 정도회와 동맹 문파들의 도움을 받아 지금은 더더욱 견고해진 상태였다.

덕분에 하여교는 물론이고 하갈후 또한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마교와의 전쟁만 끝나면 금분세수는 물론이고 정도회 오셔서 여생을 편히 보내게 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어쭈. 나보고 정도회에서 장승 역할이나 하면서 지내란 거냐?”

“장승은 무슨. 또래인 검왕 어르신도 있고 얼마나 좋아요? 원래 그 나이 되면 외로운 법이에요.”

“어린놈이 말은 청산유수로다.”

그 말과 다르게 서로의 말투에는 걱정과 애정이 담겨 있었다.

하갈후는 뒤편으로 자신과 함께 온 이들을 소개했다.

위험한 곳이다 보니 하여교는 오지 않았고 하오문의 무인들과 그가 예전에 의뢰했던 진법과 기관진식의 전문가들이었다.

하나같이 두꺼운 책을 들고 서생 같은 복장이었다.

“회주님. 저는 백황이라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호남의 고씨 세가에서 온 고두랑입니다.”

전부 처음 듣는 자들이었지만 하오문에서 고르고 고른 자이니 믿음이 갔다.

그리고 무인들을 이끄는 자도 제법 낯이 익었다.

사패천의 경매장에서 봤던 하갈후의 조카인 하용추였다.

“그간 격조하셨는지요.”

이제 사패천의 분타주에서 물러나 하갈후를 모시고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저는 아무래도 머리를 쓰는 것보다 몸을 쓰는 게 더 체질인 것 같습니다. 하하.”

“웃기는. 네놈이 회주를 만나고 질겁해서 그런 걸 모를 줄 아냐?”

하갈후의 말대로였다.

사패천에서 제멋대로 오해해 버린 하용추는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음을 알고 머리를 쓰는 일은 전부 하여교와 하갈후에게 맡겨 버렸다.

진백천이 둘의 투닥거림을 보는 사이 마침내 문이 박살 나며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드러났다.

그리고 동시에 그가 기다리던 마지막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니이이이임!”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린 것은 도홍경이었다.

그는 배에서 진백천을 놓치고 나서 한참이나 우울해했다.

진백천이 살아 있다는 서신을 받고 나서야 안심하고 뛸 듯이 좋아하며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눈시울이 붉어진 중혁도 서 있었다.

진백천은 하갈후와 강량호를 비롯해 일행들에게 둘을 소개했다.

“제 동생들입니다.”

“반갑습니다. 대모산파(大茅山派) 23대 장문인 도홍경이라고 합니다.”

“모산파? 그렇다면 네가 회주의 옆을 쫄쫄 따라다닌다는 그자로구나!”

웃으며 말하는 하갈후와 달리 진법 전문가인 백황과 고두랑은 입마저 쩌억 벌리며 경악했다.

“모, 모산파!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니!”

“나를 아나?”

“진법을 공부하는 자로서 모산파를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영, 영광입니다!”

그들은 손마저 덜덜 떨면서 놀라워했다.

도홍경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진백천을 힐끔 쳐다봤다.

마치 내가 원래 이런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후로 자신을 소개한 것은 중혁이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중혁입니다.”

간단한 소개였지만 강량호와 수라검대의 무인들은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

지금은 제법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무림대회에서 사혈방 소속으로 출전했던 구촉무인이었다.

짐승 같은 모습으로 싸우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진백천은 경계 어린 그들의 시선에 중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더했다.

“내 동생이니까 편하게 대해. 이래 봬도 실력은 제법 있으니까.”

“네. 회주님.”

진백천의 보증 같은 말에 강량호가 눈에 깃든 경계를 지워 버리며 대답했다.

대충 소개를 끝낸 진백천이 뚫린 마기자의 비동을 살폈다.

흑지림의 무인들은 그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는 중이었다.

“흐음. 슬슬 시작될 때가 됐는데?”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흑지림의 무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진녹색의 가루에 뒤덮여 온몸이 타들어 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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