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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322화 (322/346)

무림회귀백서 322화

111장 탐관오리(1)

축제가 끝나고 밤새 뜨겁던 야수궁의 열기마저 식은 아침.

진백천은 떠날 준비를 끝마쳤다.

함께 술을 나눠마시며 돈독해졌는지 궁주는 떠나는 그에게 특별한 말을 선물했다.

“그래도 야수궁의 친구이니 평범한 말을 줄 수야 없지.”

적혈마(赤血馬) 또는 천리를 달린다고 해서 천리마(千里馬)라고도 하는 말이었다.

특이한 점은 땀이 옅은 붉은색이라 빠르게 달리면 피를 흘리는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적혈마는 첫인상에서부터 명마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아마 친해지는데 꽤나 시간이 걸릴 거다.”

궁주의 말대로 진백천을 경계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태허무극진결을 내비치며 손을 뻗자 놈이 그 기운이 좋은지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그가 내비치는 기운이 특별함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좋은가 보구나?”

마음에 든 것은 진백천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예림이 재빨리 말했다.

“이름을 지어줘.”

“이름? 원래 있지 않았어?”

“지금까지는 주인이 없었거든.”

진백천은 잠시 생각하다 춘득이라 정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춘득이다. 알았지?”

“춘득이?”

가볍게 투레질을 하는 녀석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예림에게는 촌스럽게 들렸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진백천은 일부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

이름이 촌스러워야 오래 산다는 전쟁터의 미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진백천은 춘득의 안장 위로 올라타며 남은 이들을 쳐다봤다.

“또 볼 일이 있으면 보겠죠.”

“그래. 회주 건강해라.”

“또 봐!”

그답게 가벼운 인사를 남기며 멀어졌다.

확실히 명마라 그런지 땅을 박찰 때마다 앞을 쭉쭉 나아갔다.

말을 자주 타지 않던 진백천이었지만 춘득은 마치 그와 교감하듯 몸을 움직였다.

숨이 뜨겁게 달궈지기도 전에 이미 성의 경계에 가까워져 갔다.

“멈추십시오!”

성문 가까이 다가가자 병사들이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다가왔다.

관도를 내달리는 말은 한눈에도 보통 말이 아니었고 진백천도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역용술을 사용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진백천은 그들을 향해 품속에서 금패를 꺼내 보였다.

굳이 여기서 말을 나누며 시간을 소비할 생각 따위 없었다.

“표기장군이다. 길을 열어라!”

무명악인(無名惡人) 권진으로 다닐 때와 다르게 호쾌하게 외쳤다.

그러자 병사들이 기겁하며 길을 비켜섰다.

장군이라는 이름에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행한 움직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위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헐레벌떡 뛰어나왔지만 진백천은 이미 멀어지는 중이었다.

“표, 표기장군!”

한눈에도 어떻게든 진백천에게 잘 보일 생각으로 나타난 것이 보였다.

하지만 상대하기 귀찮았던 진백천은 그대로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저, 저 드릴 선물이이이……!”

‘선물은 개뿔!’

그를 잡지 못한 수위대장은 옆에 서 있던 수하의 정강이를 차며 괜한 분풀이를 해댔다.

‘쯧. 시간만 충분하면 한껏 털어 먹어줬을 텐데 아쉽군.’

진백천은 그대로 길을 달리다 작은 마을에 도착하며 잠시 숨을 돌렸다.

춘득이는 쉴 때면 알아서 풀을 뜯어 먹거나 진백천이 주는 물을 받아마셨다.

“후우. 이대로라면 광서성을 지나는 데도 오래 걸리지 않겠어.”

진백천은 마을의 객잔에 들러 음식을 시켰다.

객잔이라고 할 것도 없이 아주 작은 마을의 한 가게였다.

노파는 곱게 끓인 국밥에 만두를 가지고 왔다.

여기서 파는 유일한 음식이었다.

“총각. 혼자 다니는 거야? 아무리 시골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다니면 위험해.”

“산적 하나 안 보이던데요?”

“위험한 게 산적이겠나? 그놈의 관리들이 문제지! 삼 일을 고아 삶아도 모자랄 놈들이야!”

노파는 진백천이 들어주기 시작하자 노쇠한 몸으로 관리들의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관리들에게 당한 게 상당한 듯 보였다.

“나뿐만 아니라 인근의 마을 사람들 전부 다 당했어. 강제 노역은 기본이고 세금도 몇 배나 가져가고 말이야! 저번에는 내 아들놈이 맞아왔다니까! 나쁜 놈들!”

노파의 비난이 도를 넘자 객잔 안에 있던 며느리로 보이는 여자가 나와 그녀를 말렸다.

“아이고. 어머니. 그만 하세요. 저번에도 그렇게 말씀하시다 혼쭐나시곤.”

“혼쭐은 무슨! 나는 어차피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았어! 할 말은 해야지!”

“아이고. 알았어요. 제가 안에서 다 들어드릴게요.”

노파는 며느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진백천은 만두를 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수탈이 제법 심한 지역인가 보네.’

어딜 가나 살기 힘든 세상이었지만 특히나 힘든 곳이 있었다.

황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외곽에 있어서 성주의 권한이 강한 이런 외딴곳은 더더욱 그랬다.

아무리 사람들을 쥐어짜고 고혈을 빼내도 제대로 알리지 못하니 탐관오리의 횡포는 끊이질 않았다.

‘흐음.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지만 지금은 나도 바빠서 어쩔 수 없어.’

진백천은 음식을 다 먹고 돈을 넉넉히 주고 만두를 포장했다.

그리고 춘득을 타고 흙길을 따라 달렸다.

넓게 펄쳐진 논이 그의 시야에 가득 담겼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에 조금 더 큰 마을에 도착했다.

하지만 객잔에 머무는 사람은 역시나 진백천 혼자였다.

말을 마구간에 넣고 오는 진백천을 객잔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이 반겼다.

“식사는 되었고 하룻밤만 묶어 가겠습니다.”

“그러게. 말이 먹을 건초까지 해서 10문일세.”

진백천은 값을 지불하고 방으로 올라왔다.

내력이 10갑자에 달하고 난 뒤에는 하루에 적어도 2시진 이상은 매일같이 운기조식을 해야 했다.

혈도가 타통되면서 내력의 움직임이 빨라졌지만, 그것과 별개로 대주천까지 마치려면 2시진도 빠듯했다.

‘그렇다고 하루도 쉴 수도 없으니.’

진백천은 저녁 내내 운기조식을 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잠시 두 눈동자에 안광이 머물렀다 사라졌다.

운기조식이 끝났지만 진백천은 쉬지 않았다.

대신 낮에 샀던 만두를 먹으며 품속에서 십이용천공(十二龍天功)의 책자들을 꺼냈다.

[견우살(犬羽殺)]

[사심독(蛇心毒)]

[금철피(金鐵皮)]

[서왕둔술(鼠王遁術)]

여기에 호무살과 용혼금제, 그리고 가지고 있던 후반부 책자까지 합치면 12마리 동물이 완성된다.

‘흐음. 이거 뭔가 이상한데?’

진백천은 빠르게 책자를 읽어봤지만, 이상하게 내용은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각각 다른 비급처럼 내용이 뚝뚝 끊겼다.

특히나 후반부의 내용은 단독으로 이어지지도 않으니 더더욱 그랬다.

‘혹시 특별한 순서가 있는 건가?’

잠시 책자를 살펴보던 진백천은 책자를 십이간지의 순서대로 엮었다.

각각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순서로, 처음은 서왕둔술로 시작해서 마지막이 금철피로 끝이 났다.

‘으음?’

그렇게 비급의 첫 자만 따자 놀랍게도 새로운 문장이 만들어졌다.

[모든 동물의 강함을 합하라. 그러면 진정한 십이용천공이 드러날지니!]

진백천은 만들어진 문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게 무슨…….”

하지만 두 번 세 번 읽어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개소리야.”

강함을 합치라니.

혹시나 해서 내력 운용 부분을 합치라는 뜻인가 해서 각기 글을 이어봤지만 딱 주화입마에 들기 좋아 보이는 비급이 만들어졌다.

이대로라면 호무살과 용혼금제 단일에 비해서도 뒤떨어졌다.

‘흐음. 모으기만 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이런 암호 해독이 있었단 말이지.’

진백천은 잠시 더 비급을 내려보다 다시 품속에 넣었다.

아무래도 짧은 기간으로는 완성이 나지 않을 듯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통통이를 쓰다듬었다.

부들부들한 털이 제법 중독성이 있었다.

그리고 슬슬 잠이 들려는데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으하하하하! 이 용대협 님이 오셨다! 당장 기녀를 불러라!”

이미 잔뜩 술에 취한 목소리는 시끄럽게 소리치며 듣기 힘든 말을 내뱉어댔다.

진백천은 창문을 살짝 열어서 바깥을 살폈다.

한눈에 봐도 양아치끼가 다분한 놈이 관복을 입고 소리를 질러댔다.

뒤편에 선 자들은 다름 아닌 관군들이었다.

‘어쭈? 아주 미쳐 돌아가네.’

“……용대협. 저희 마을에는 기녀가 없습니다.”

“뭐? 기녀가 없어? 쯧. 그렇다면 네놈 딸년이라도 앉혀!”

놈은 거침없이 주먹을 휘두르며 나이든 객잔 주인을 두들겨 팼다.

그는 춘득에게 먹이를 주고 있던 중이었는지 건초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힘이 실린 발길질에 몸을 말고 제대로 된 반항조차 못 했다.

‘저 새끼들이 돌았나?’

진백천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넘어가려는데 용대협인지 뭔지가 춘득을 발견했다.

한눈에 명마임을 알아차렸는지 눈을 희번뜩하며 다가갔다.

“오오. 적혈마다! 이게 왜 여기에?”

놈은 춘득을 이리저리 살피다 관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당장 저 말을 끌고 와라. 기녀 대신 저 말을 데려가지.”

“아이고. 안 됩니다! 이 말은 저희 손님의…….”

“이 늙은이가 진짜 죽고 싶은 거냐!”

양아치는 기어코 칼까지 뽑아 들며 객잔 주인을 베려 했다.

진백천은 더는 참지 못하고 창문을 뛰어넘음과 동시에 놈의 얼굴을 발로 찍어버렸다.

콰드득!

“커헉!”

코뼈가 부러지며 놈의 얼굴이 피투성이 되었다.

“용, 용운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네, 네놈은 대체 누구냐! 이분이 감히 누구신 줄 알고!”

“나? 이 말 주인이다. 쓰레기 새끼들아.”

용운은 한 손으로 코를 움켜쥐고 진백천을 향해 뭐라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방금의 한 수로 이빨이 부러졌는지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저노믈 다앙 중여!”

“……저놈을 죽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용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누굴 죽여? 네놈들이야말로 여기서 제발 성히 돌아갈 생각 마라.”

분명 죽이려는 자들은 관군인데도 앞으로 나서는 건 진백천이었다.

검을 뽑아 들지도 않고 소매를 걷었다.

희끗하며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을 때는 관군들의 사이에 서 있었다.

“허억!”

누군가 숨을 들이켜는 것으로 진백천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단단한 주먹이 틀어박힐 때마다 하나같이 팔다리가 부러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커헉!”

“사, 살려줘!”

정확히 한 놈당 주먹 한 대씩이었다.

그리고 겨우 10초가 지났을 때 유일하게 서 있는 것은 용운과 진백천뿐이었다.

“어어…….”

용운은 현재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덜덜 떨며 진백천과 관군들을 쳐다봤다.

“이, 이바! 이어나! 이어나라오!”

옆에 쓰러진 관군을 발로 툭툭 쳤지만 이미 기절한 지 오래였다.

기절하지 않은 자들이라고 해도 애써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자신들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 고수에게 굳이 또 맞으려 일어날 이유가 없었다.

“뭘 일어나래? 다들 누워 있는데. 네놈도 똑같이 누우면 되잖아.”

“이오오옴! 내가 우운지 아으냐!”

“네놈이 누군데? 황제라도 되냐?”

진백천이 그를 두려워하지 않자 용운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누구든 그의 이름만 들으면 깜짝 놀라며 기가 죽었었다.

지금껏 이랬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네놈은 특별히 두 대, 아니, 세대로 끝내자. 그만큼 더 싸가지 없는 새끼니까.”

“자, 자마아아……!”

진백천은 더는 놈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첫 주먹에 목이 돌아가며 남아 있던 이빨이 우수수 빠져나왔고, 두 번째 주먹에 턱뼈가 으스러졌다.

이쯤 되었을 때 이미 기절한 상태였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마지막 남은 주먹도 휘둘러주었다.

얼굴을 때리면 죽을 것 같아서 대신 양어깨를 으깨 버렸다.

콰드득!

“후우. 이 정도면 평생 죽이나 먹으면서 반성하기에는 충분하겠지.”

진백천은 누워 있던 관군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놈 데리고 꺼져.”

관군들은 그를 데리고 패잔병처럼 떠났다.

그제서야 지켜보고 있던 객잔 주인은 다가왔지만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젊은이 어서 도망치게.”

“저놈들이 대체 누구라고 도망까지 칩니까?”

“……용운이라고. 아주 유명한 고관대작의 아들이야. 이 근처의 땅은 전부 가진 만석지기지.”

“흐음. 한마디로 탐관오리라 이거죠?”

이대로 그냥 두고 가기에는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들어보니 우연히, 아주 우연히도 놈의 집이 광동성으로 가는 길에 존재했다.

가능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상황이 그럴 수가 없었다.

“쯧. 놈하고 그 아버지라는 놈에 대해 더 말해주세요. 얼마나 나쁜 새끼인지 알아야 마땅한 벌을 줄 수 있을 테니.”

“……벌이라니. 그자들을 누가 벌준다고 그러나.”

진백천은 은근슬쩍 금패를 꺼내 보였다.

그것을 본 객잔 주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래 봬도 표기장군이니까. 다 털어놔 보세요.”

“……그…… 마을 사람들 좀 불러도…… 되겠나? 아니, 되겠습니까?”

진백천이 고개를 끄덕이자 곧 객잔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밤이 깊도록 그들의 횡포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낱낱이 고했다.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 혈압이 오르는 악독한 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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