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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321화 (321/346)

무림회귀백서 321화

110장 야수궁의 주인

비밀통로에 들어선 진백천과 도광귀는 곧바로 계단을 빠르게 올라갔다.

절벽에 가까운 경사였지만 이곳에 그 누구도 겨우 이 정도에 힘들어할 자는 없었다.

“서둘러!”

그리고 중간쯤 도착했을 때 아래쪽의 벽이 터져나가며 잔해가 밀려 들어왔다.

주변에 함께 흐르던 지하수가 터졌는지 흙더미는 빠르게 차올랐다.

설상가상으로 가장 앞서서 달리던 진백천의 몸이 순간 휘청였다.

‘끄으윽. 조금 전의 호무살은 나한테도 무리였나?’

아주 잠깐이었다고는 하나 무너지던 천장과 기둥을 받들었다.

단순히 비수를 날리는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눈앞이 서서히 흐려지며 자신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도광귀의 모습이 보였다.

‘……젠장. 설마 버리고 가지는 않겠지.’

진백천은 반사적으로 도광귀의 옷을 꽉 움켜쥐며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시선에 들어온 것은 천장의 격자무늬였다.

깨질 것 같은 두통은 덤이었다.

‘하아. 죽진 않았나 보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보니 침대맡에 앉아 있는 왕왕이가 보였다.

방금까지 고기를 먹고 있었는지 입 주변이 붉었다.

“왕왕!”

-하암. 주인이 안 죽어서 다행이란다.

자고 있던 통통이가 일어나며 품속에서 고개를 쏙 내밀었다.

“그래. 살아 있다. 살아 있어.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냐?”

-주인이 갑자기 쓰러지고 나서 덩치 큰 인간이 업고 뛰어 올라갔다. 중간에 길이 막혀서 다 죽을 뻔했는데 저 개와 무인들이 땅을 파고 들어왔다.

통통이의 말만 들어도 얼마나 다급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야수궁으로 돌아와서 진백천은 이곳에 눕혀지고 꼬박 하루가 지나갔다고 했다.

하지만 그간 고생해서 그런지 푹신한 침대와 이불 속에 있자 움직이기가 싫어졌다.

‘마음 같아선 며칠 동안 잠만 자고 싶은데.’

하지만 곧 방으로 들어선 예림과 눈을 마주쳤다.

“일어났어? 왕왕이가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어.”

그녀는 많이 먹어야 낫는다며 쟁반에 음식을 가득 담아왔다.

역시 야수궁답게 기본 주식은 고기였다.

몸을 일으키자 전신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슬슬 일어나야지. 다른 사람들은?”

“전부 괜찮아. 아버지도 정신을 차리셨어.”

예림의 말에 따르면 독으로 인해 몸이 약해지긴 했지만 움직이는데 지장은 없다고 했다.

자신감에 찼던 백서왕의 말과 다르게 그는 궁주를 잠재우는 것이 최선일 뿐이었다.

‘끝까지 쥐새끼였군.’

“아버지가 얼굴을 보고 싶다고 했는데 괜찮아?”

“물론이지.”

그것은 진백천도 바라는 바였다.

이곳까지 온 김에 마교와의 단절을 받아내고 정도회와 관계를 공고히 하면 일석이조였다.

특히나 남만에서만 자라는 식생물들은 야수궁의 허락이 없으면 교류조차 불가했다.

이번에 동맹을 맺으며 그런 것들이나 요구해 볼 생각이었다.

‘목숨 걸고 구했으니 그 정도는 양보해 주겠지.’

하지만 그런 진백천의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쉽게 들어주기는 힘들겠군.”

궁주는 어딘가 예림을 닮았지만 굳게 다문 입과 거친 눈매에서 불같은 성질이 느껴졌다.

오죽하면 지켜보고 있던 도광귀가 나서서 진백천을 두둔했지만 그럼에도 궁주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백서왕에게 당해 아픈 몸임에도 불구하고 권좌를 손을 거듭 내리치며 소리쳤다.

“나를 구해준 것은 개인적으로 고맙지만 야수궁은 야수궁의 입장이 있는 거다! 공과 사는 구별해야지.”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정도회와의 교류라면 야수궁에도 나쁜 조건이 아닐 텐데요?”

“외부와 교류를 시작하면 결국 좋은 꼴을 본 적이 없다. 쥐새끼만 봐도 마교와 결탁해서 쓸데없는 마음이 생긴 거지.”

‘이거 무슨 쇄국정책도 아니고.’

한편으로는 이런 쇠줄 같은 고집이니 그나마 야수궁을 이 정도로 오래 지켰던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궁주의 그런 단호한 태도에는 은근한 눈빛도 존재했다.

“후우. 그러지 말고 원하는 것을 말씀해 보시죠.”

“흐음.”

궁주가 굳게 입을 다물자 도광귀와 야율마저 그를 설득했다.

“야수궁을 집어삼키려는 자들을 몰아내는 데 큰 도움을 줬으니 마땅한 상을 줘야 하지 않겠나?”

“궁주님. 야수궁의 무인들도 많은 도움을 받은 은인이십니다.”

“크흠!”

그들이 한참이나 설득한 뒤에야 궁주는 못 이기는 척 진백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대신 조건이 있다. 교류는 정도회만으로 한정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정기적으로 사절단을 보냈으면 좋겠군.”

그제야 진백천은 그가 말하는 사절단의 의미를 깨달았다.

소공녀인 예림을 사절단의 이름으로 정도회로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정도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자야.’

그 날 저녁.

야수궁에서 성대한 잔치가 이뤄졌다.

적을 없애고 정도회와의 동맹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다른 곳과 차이점이라면 야외에서 벌어진 만찬의 음식은 대부분이 고기였고, 야수들과 함께한다는 점이었다.

궁주는 자신의 반려야수인 적웅(赤熊)과 술을 나눠마시는 기예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술이 들어가자 까다로웠던 모습이 사라지고 호방한 태도가 드러났다.

“하하하! 회주의 반려야수가 검은 쥐라니! 특이하군!”

하지만 그 웃음은 곧 통통이가 기세를 드러내자 더더욱 커졌다.

묵린흑망(墨鱗黑蟒)의 비늘까지 꿰뚫고 죽이는 통통이의 기세였다.

왕왕이를 제외한 야수들이 흠칫 놀랐다.

“호오. 과연 평범한 쥐는 아니구나! 대단하다!”

궁주는 통통이를 탐냈지만 진백천의 품에서 빠져나오려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과 섞여 한참이나 술을 마셔댔다.

이곳에서 직접 담근다는 과실주는 무척이나 달았다.

“크흠. 잠깐 나와봐라.”

제법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도광귀가 슬쩍 그를 불러냈다.

그가 건넨 것은 지하궁에서 그가 챙겼던 십이용천공의 비급이었다.

총 4권으로 백서왕의 [서왕둔술(鼠王遁術)]까지 함께 있었다.

“이거 전부 줘도 괜찮겠어요?”

“어차피 십이지괴는 이제 끝났다. 야수궁에 남은 자는 나뿐인데 그 누가 뭐라 하겠느냐? 혹시라도 마음에 걸린다면 나중에 익히고 알려주면 된다.”

“그거야 제가 익힐 수 있어야 말이죠.”

도광귀는 고개를 저었다.

진백천의 가공할 호무살, 아니, 이제 그것을 단순히 호무살로 봐야 할지도 모를 무위를 봤으니 그런 말은 엄살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너라면 왠지 십이용천공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야수궁에 있던 십이지괴들은 진백천이 이미 후반부 6초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더구나 이것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도 퇴색된 지 오래였다.

‘거기까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원래의 십이용천공(十二龍天功)은 전 황조의 1000년 역사를 이끌 무공을 만들기 위해 당시의 모든 것이 집대성된 것이었다.

상단전을 비롯해 하단전을 포함하는 무공이었고 이것을 완벽히 익히면 그것만으로도 천하제일인에 가까워진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정작 무공을 익힌 진백천은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후반부까지 익히면 어떻게 될지 몰라도 아직까지는 다소 특이한 무공 정도에 불과하지.’

진백천은 품속에 비급을 챙겨 넣었다.

추후 시간이 되면 후반부와 합쳐서 읽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도광귀가 돌아가자 이번에는 야율이 그를 찾아왔다.

한 손에는 진백천이 날려 보냈던 전서구가 들려 있었다.

“회주님. 정도회에서 답변이 왔다고 합니다.”

“벌써?”

진백천은 유난히 기운이 넘쳐 보이는 전서구의 발목에 묶인 서신을 풀었다.

얼마나 할 말이 많은지 보통의 서신보다 유난히 두껍고 기다랬다.

[회주님. 황충입니다.]

첫 문장은 간결하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곧 황충의 글은 숨 가쁘게 이어졌다.

[서신을 받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수련동에 직접 찾아갔습니다. 회주님만 들어갈 수 있는 그곳을 무단으로 들어간 저를 부디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렇게 했기에 회주님의 서신이 가짜가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말도 없이 정도회를 빠져나가셨는지, 북해에 이어 남만궁에까지 왜 가셨는지 납득하기 어렵지만……! 무탈하심을 다행으로 알겠습니다…….]

“허허. 단단히 삐졌나 보네.”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보였지만 곳곳에 왜 나를 이런 지옥에 두고 혼자 갔냐는 책망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서신은 곧 책망에서 사무적인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만큼 황대원 혼자서 처리하기 힘든 문제들이 속속히 표면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최근 청해와 서장 부근에서 오마(魔)의 모습이 출몰 중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마인들이 황군과 직접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짐에 따라 황실에서 회주님의 복귀를 바라는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오마라. 슬슬 쳐들어올 때가 되었지.”

지금까지 마교가 유도하던 강호의 혼란은 대부분 진백천과 정도회에 의해 저지되었다.

더구나 정도회를 중심으로 동맹이 굳건하다 보니 마교가 강호를 크게 흔들어보려 해도 어려워져만 갔다.

그나마 북해빙궁과 남만야수궁이 그들이 몰래 다루던 비수였을 테지만 그것마저도 전부 막혀 버렸다.

아무리 참을성 많은 마뇌라 해도 이제는 전면전이 전부라는 것쯤은 잘 알 터였다.

진백천은 계속해서 서신을 읽었다.

[……회주님께서 폐관, 아니, 북해로 떠나시기 전 말씀하셨던 마기자의 비동(秘洞)의 입구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정도회와 동맹을 맺은 대부분의 문파는 그것이 마교의 계략임을 받아들였지만 아닌 문파에서 상당히 열을 올리는 중입니다. 많은 이들이 광동성에 몰려들고 있으며 정도회에서는 미리 말씀하셨던 것에 따라 수라검대와 강량호 대주가 미리 그곳으로 이동했습니다.]

꽤나 오래 기다렸던 마기자의 비동이었다.

회귀 전과 달리 많은 문파에서 손을 뗐지만 반대로 많은 흑도방파에서 더욱 욕심을 드러냈다.

그중에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흑지림(黑地林)이라는 곳도 존재했다.

‘멍청한 놈들이 지들 무덤인 줄도 모르고 나서는 꼴이네.’

흑지림은 단순히 말해 낭인들의 모임이었다.

전쟁에 참여하던 낭인들이 자체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돈을 받고 대신 싸워주던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싸움에는 이골이 난 자들이라 부딪치기에는 성가셨다.

이후의 서신 내용은 지극히 평범한 보고 내용이었다.

진백천이 슬쩍 밀어 넘겼던 황실상단과 금맥에 대한 일부터 정도회에서 처리한 업무들이었다.

‘허허. 황대원이 꽤나 고생했긴 했겠어.’

[……당 소저와 당 공자를 비롯해 당가의 무인들은 안전히 정도회로 복귀 중입니다.]

서신의 마지막은 당소예와 일행에 관한 이야기로 끝이었다.

진백천이라면 그들을 계속해서 걱정하리란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행이야.’

“지금 바로 답장 가능하지?”

“네. 물론입니다.”

진백천은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자신은 곧바로 광동성에 나타났다는 마기자의 비동으로 향하겠다고 작성했다.

그곳에서 강량호와 일행을 만나 비동으로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 무덤 따위겠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죽는 건 막아야 할 테니까.’

더구나 이번에는 하오문에 의뢰했던 기관진식의 전문가들과 함께일 테니 딱히 걱정되지도 않았다.

그 안에 가득 차 있을 적조녀의 강시들 또한 도홍경이 있으니 문제없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준비했으니 과거와는 전혀 다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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