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320화 (320/346)

무림회귀백서 320화

109장 지하궁(3)

쿠구구궁-

기둥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은 거짓이 아닌 듯 거칠게 떨렸다.

그뿐만 아니라 기둥이 받치고 있는 천장이 흔들리며 모래 먼지가 흩날렸다.

도광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가자 백서왕이 그제야 동작을 멈췄다.

“이제야 내 말을 믿겠느냐? 네놈들을 이 자리에 유인한 것은 바로 나다!”

백서왕은 자신의 작전이 성공했음을 자랑하고 싶었는지 계속해서 으스댔다.

하지만 진백천이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깊숙이까지 따라 들어온 것은 그만한 상황에도 대처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통통아. 혹시 밖으로 향하는 또 다른 비밀통로가 있는지 살펴봐.’

-저놈의 뒤편으로 바깥으로 나가는 길이 있어.

진백천은 바로 상단전에 내력을 불어넣으며 뒤편의 길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러자 통통의 말대로 좁은 계단길이 보였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리 지둔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땅을 파는 것과 무너지는 낙하물을 견디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수십 년 동안 파낸 지하궁을 겨우 몇몇 죽이기 위해 무너뜨리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하지만 백서왕은 아무런 말이 없는 도광귀와 진백천을 보며 자신의 협박이 통했다고 생각했다.

금세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이제야 내 말귀를 알아들은 모양이군! 당장 저쪽에 내가 준비한 의자에 앉아라!”

백서왕이 가리키는 곳은 벽면에 설치된 의자였다.

한눈에 봐도 일반적인 의자는 아니었지만, 우선은 저자의 말을 따라주기로 했다.

지상에서 위협적인 무공을 펼치던 진백천이 순순히 의자로 향하자 백서왕의 웃음이 짙어졌다.

-정말 놈의 말을 따라줄 생각이냐? 분명 평범한 의자가 아닐 거다.

-어떻게 나오나 우선 지켜보려고요. 어르신은 놈이 모아놓은 십이용천공을 어디에 두었는지 알아 봐주세요.

-알았다.

도광귀는 일부러 그의 말을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 한숨 놓았다.

진백천이라면 역시나 뭔 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었다.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자리에 앉아!”

둘이 자리에 앉자 백서왕이 서둘러 기관진식을 작동했다.

그러자 팔과 다리 받침대와 허리 부분에서 둥근 고리가 나오며 몸을 억제했다.

철컥-

“크큭. 멍청한 놈들. 그게 평범한 나무의자처럼 보여도 무려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구속구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평범하게 빠져나오지는 못한다!”

백서왕은 궁주를 쓰러뜨리기 위해 수십 년간 조심스레 중독시켜 왔다.

그런데도 궁주가 버텨내자 이러한 기관진식까지 만들어내 포획했다.

독과 기관진식.

직접 손을 쓸 용기가 없는 백서왕 같은 쥐새끼다운 방식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지.’

사람이라면 먹고 쉬어야만 살 수 있었다.

이것만큼 확실하게 인간을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은 드물었다.

놈은 이제야 마침내 그들을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눈에 띄게 안도하며 말했다.

“내가 왜 야수궁을 집어삼키려는지 아느냐?”

도광귀가 아무 말 없자 그는 오히려 더욱 비릿하게 웃었다.

“십이지괴가 이곳에 자리 잡은 지 벌써 수십 년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방인이지! 아니, 오히려 쥐새끼니 뭐니 무시하기 일쑤였어!”

백서왕은 지하에 땅을 파기 시작하면서 언젠가 그러한 수모를 되갚을 생각을 가졌다.

야수들이든 뭐든 결국 자신의 발아래 무릎 꿇게 만들고 싶었다.

“자격지심 한번 대단하군. 그래서 야수궁을 이런 지하궁처럼 만들겠다고?”

“당연하다. 남만은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나 백서왕의 의지로 말이다!”

진백천은 의지에 가득 찬 백서왕을 보며 비웃었다.

말만 그럴듯하지 결국 쥐굴에 숨은 쥐새끼의 말뿐이었다.

“대머리라 그런가 말도 제법 번지르르하네.”

백서왕은 잊고 있었는지 자신의 맨들맨들해진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간 눈매가 날카로웠지만 잠시뿐이었다.

“크크큭. 그런 식의 격장지계(激將之計)는 통하지 않는다. 내가 가까이 가면 나를 제압하거나 공격할 수단이 있는 거겠지? 도광귀의 호무살처럼 말이야. 아니면 묵린흑망의 독을 잘 버티던데 독공이라도 익힌 건가? 날 중독시키려고?”

백서왕의 두 눈이 광기로 물들며 번들거렸다.

평범한 자가 수십 년 동안 땅만 파고 지낼 리 없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이러한 집요하고 편집증적인 구석이 존재했다.

그는 정신을 잃은 궁주의 뒤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허허. 십이용천공을 벌써 4개나 익힌 거 아니었어? 그런데 왜 그렇게 겁쟁이냐?”

“도광귀가 십이용천공에 대해 말해주었나 보군.”

백서왕이 슬금슬금 다가오며 도광귀를 노려봤다.

어딘가 비실거리는 도광귀의 상태에도 결코 그의 사정거리에는 다가오지 않았다.

“심독에 당해 죽어가면서 새로운 제자라도 들인 것이냐?”

백서왕은 뱀을 비롯해 개, 돼지의 십이용천공을 익혔지만 딱히 그에게 도움되는 것은 없었다.

그가 제일 탐내던 것은 도광귀의 호무살과 금노산의 용혼금제였다.

그동안은 실력이 되지 못하니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도광귀도 비실비실하고 제압까지 된 상태이니 조금씩 욕심이 차올랐다.

“도광귀. 나와 내기를 하는 건 어떠냐?”

“내기?”

“그래. 네놈이 목숨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내기 아니냐?”

“흐음. 우선 들어보도록 하지.”

백서왕은 자신의 작전이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히죽거리며 말했다.

“저 기둥의 위를 봐라.”

놈이 가리키는 것은 방금 자신이 무너뜨리려던 기둥이었다.

안력에 힘을 주자 기둥 가장 위쪽에 보일 듯 말듯 홈이 파여 있었다.

“저 안에 십이용천공의 비급이 담겨 있다. 뱀, 돼지, 개의 것들이지!”

“……그래서?”

“내가 너를 풀어줄 테니 내 기관진식을 뚫고 저곳까지 올라가라. 만약 떨어지지 않고 성공하면 네놈이 이긴 것이다. 만약 도달하지 못하면 내가 이긴 거고 말이다.”

도광귀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기둥과 백서왕을 번갈아 봤다.

“네놈의 기관진식 따위로 내가 못 올라갈 것 같으냐?”

“그거야 모르는 것이지.”

도광귀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며 진백천을 쳐다봤다.

백서왕이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보면 기둥에 있는 기관진식이 제법 대단한 것일 터였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둥이 부서지면 이곳이 무너질 텐데 저곳에 있는 기관진식을 작동한다고?’

만약 그 기관진식에 기둥을 무너뜨리려던 그것도 포함된다면 애초에 내기가 될 수 없었다.

저곳까지 올라가기 전에 천장이 무너져내리며 깔려 죽을 테니까.

그제서야 진백천은 백서왕의 의도를 눈치챘다.

‘하긴. 애초에 저런 쥐새끼가 그런 내기를 겁 없이 할 리가 없지.’

“백서왕. 저 위에 있는 게 십이용천공의 비급인지 가짜인지 내가 어떻게 믿지?”

“보여주면 믿겠나? 응?”

백서왕은 그대로 벽면에 달라붙더니 성큼성큼 기어올랐다.

그리고 기둥 위에 놓여 있던 비급을 가지고 내려왔다.

[견우살(犬羽殺)]

[사심독(蛇心毒)]

[금철피(金鐵皮)]

각각 전부 십이용천공의 비급이 맞았다.

“이제 믿겠느냐?”

단순히 표지뿐만이 아니라는 듯 펼쳐서 안의 내용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도광귀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흐음. 하지만 네놈의 무공은 없지 않느냐.”

“크크큭. 천하의 도광귀가 땅을 파고 다니려고? 좋다! 네놈이 내 앞에서 비급을 써주면 나도 똑같이 써서 이것들과 섞어서 저 위에 올려놓지.”

동시에 백서왕까지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진백천은 내심 웃음을 감추며 도광귀에게 받아들이라고 전음을 보냈다.

-저놈 분명히 또 다른 수가 있을 거다. 내가 올라가기 전에 기둥을 무너뜨리겠지.

-그건 걱정 마세요.

도광귀가 고개를 끄덕이자 백서왕은 그의 한쪽 팔만 풀어주었다.

둘은 서로를 감시하며 동시에 비급을 작성했다.

“네 권의 비급을 기둥 위에 올려놔라. 그럼 이것을 내려놓으마.”

“물론이지.”

백서왕은 혹시나 도광귀가 비급을 바꾸거나 숨길까 거꾸로 매달려서 기둥 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 위에 올려놓고 내려왔다.

“천하의 도광귀가 내기를 하면서 딴짓거리를 하지 않겠지?”

“당연하다!”

“그럼 믿어보지.”

믿어보겠다는 말과 달리 백서왕은 기절해 있는 궁주의 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놈이 장치를 조작하자 도광귀의 구속구만 풀렸다.

철컥-

“비급은 앞에 내려놓고 기둥에 올라라.”

도광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둥 앞으로 걸어갔다.

그 와중에 진백천을 힐끔거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좋아좋아. 어서 올라!”

도광귀가 기둥을 올라가기 시작하자 백서왕은 궁주를 내팽개치며 호무살(虎武殺) 비급을 품속에 챙겼다.

“백서왕! 내기를 어길 셈이냐!”

“내기는 무슨! 네놈들은 이곳에서 전부 죽는 거다! 야수궁은 걱정 마라! 내가 전부 독차지해 줄 테니! 네놈의 호무살도 포함해서 말이다! 크하하하하!”

백서왕은 자신의 계략이 전부 통했다고 생각했는지 기쁘게 웃었다.

그리고 기둥의 기관진식을 작동시키며 뒤편의 비밀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곳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그의 발목을 잡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쯧. 한 발자국만 더 움직이면 목 잘린다?”

“……뭐?”

겁이 많은 백서왕은 내력이 잔뜩 담긴 그 협박은 그대로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을 때는 진백천이 구속구를 거칠게 뜯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중이었다.

“허억! 만년한철의 구속구를 어떻게……?”

“아아. 이런 거 좋아하는 반려야수가 있어서.”

진백천의 품속에서 통통이가 얼굴을 쏙 내밀었다.

흑마패를 집어삼키고 마기까지 내뿜기 시작한 통통이는 만년한철마저도 일부 갉아낼 수 있는 강력한 이빨을 가질 수 있었다.

흠집이 난 만년한철 정도야 진백천의 내력으로 끊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미 늦었다!”

백서왕이 비밀문으로 뛰어들어가려 했지만 진백천이 자리에서 일어난 이상 이미 늦은 후였다.

벼락 같은 움직임으로 백서왕의 그나마 남은 머리털을 붙잡고 그대로 바닥에 내리쳤다.

콰아아앙!

백서왕은 아까도 느꼈지만 단 한 순간에서도 이미 실력 차가 명확히 전해졌다.

반사적으로 발목을 노리며 손을 뻗었지만 오히려 밟히며 짓이겨졌다.

“크윽! 기둥이 무너지기 시작했으니 네놈들은 전부 끝이야! 이곳에서 죽는 거다!”

“그 전에 네놈부터 끝장낼 수도 있는데?”

그저 말만 내뱉는 게 아니었다.

그의 한쪽 발목을 재차 뭉개 버렸다.

백서왕은 고통에 익숙하지 않은 듯 몸을 부르르 떨며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악!”

그 와중에도 기둥은 금이 가며 무너지는 중이었다.

도광귀는 내기 때문인지, 비급 때문인지 떨어져 나가는 기둥을 필사적으로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비급을 손에 쥐는 데 성공했다.

“으하하하하! 쥐 새끼야 내가 이겼다!”

“어휴. 저 내기에 대한 집착은 여전하네.”

내기에는 성공했지만 백서왕의 말대로 기둥은 곧 완전히 박살이 나며 천장에도 금이 갔다.

도광귀는 비급을 쥔 채로 무너지는 기둥과 함께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이놈아! 어떻게 좀 해봐라!”

“제가 무슨 신령입니까? 비는 대로 이루어지게?”

상황에 맞지 않는 담담함이었지만 곧 이어지는 상황은 그 누구도 그를 신령이라 의심할 만한 것이었다.

우우우우웅-

진백천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광채는 지하의 어둠을 집어삼키고, 그의 전신에서 뿜어진 내력은 이 넓은 공간을 천천히 채워나갔다.

그가 내뿜는 내력만으로도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이 놀란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기, 기둥이 멈췄어?”

진백천은 호무살의 기운을 이용해 또 다른 거대한 기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떨어지는 기둥뿐만 아니라 무너지는 천장마저 균열을 멈추었다.

도광귀는 이곳을 전부 채운 호무살의 기운에 기겁하며 진백천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중에 가장 놀란 것은 단연코 바로 아래서 지켜본 백서왕이었다

“이, 이건 호무살의 기운?! 말도 안 된다! 어째서 네놈이?!”

“알아서 뭐 하게?”

진백천은 알 것 없다는 듯이 놈의 단전을 짓밟았다.

곧 모아놨던 내력이 흩어지며 백서왕의 얼굴이 쭈글쭈글하게 늙었다.

그리고 마교에게서 받았다는 마공도 사라지며 두 다리에도 힘이 사라졌다.

“네놈이 수십 년 동안 만들었다는 이 지하궁인지 뭔지에서 파묻혀 죽어라. 그게 네놈한테 어울리는 최후일 테니.”

진백천은 그를 내려다보며 담담히 말했지만 이미 무너지는 천장을 받치느라 한계에 도달한 지경이었다.

재빨리 궁주를 챙겨 도광귀와 함께 열려 있는 비밀문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백서왕이 엉금엉금 기어왔지만 떨어지는 기둥이 훨씬 빨랐다.

“아, 안 돼!”

퍼억-

백서왕은 곧 쏟아지는 잔해물에 곧 곤죽이 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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