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319화
109장 지하궁(2)
진백천이 뛰어내린 통로의 옆에서 수십 개의 독침(毒針)이 쏘아졌다.
그 모습을 보고 도광귀가 화들짝 놀랐지만 독침 따위는 반탄지기를 뚫을 수 없었다.
피부에 닿지도 못하며 우그러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기관진식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슈우우욱-
“조심해라!”
벽의 구멍에서 화살이 발사됨과 동시에 살과 폐를 단숨에 녹이는 독연무가 뿜어졌다.
진백천은 화살을 쳐내는 동시에 검풍을 일으켜 독연무를 흩뜨렸다.
굴러오는 쇠구슬과 발목으로 뻗어오는 줄톱은 발을 휘젓는 것만으로 끊어냈다.
걱정했던 도광귀가 뻘쭘해질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잠시만요.”
진백천은 통통이의 말을 들으며 기관진식이 있는 곳으로 일부러 걸어갔다.
콰아아앙!
쿠르르르-
기관진식의 종류는 무척이나 많았지만 그의 몸에 상처를 줄 만한 것은 단 한 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위협적이었던 건 이게 전부인가?’
바닥을 밟으면 솟구치는 창이었다.
기관진식이 강하다기보다는 설치되어 있던 창날이 무척이나 예리했다.
평범한 창은 아닌 듯 예기를 날카롭게 빛냈다.
-이제 이곳에 있는 건 다 없어졌어!
통통이가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도광귀도 내려올 수 있었다.
지하궁은 커다란 공동에 여러 개의 복도가 이어진 공간이었다.
“이만한 곳을 혼자서 전부 파냈다는 거죠? 그것만으로 집요한 놈이긴 하네요.”
“그러니 지둔술이 그렇게까지 늘었겠지!”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지대는 단순히 흙이 아니었고 단단한 화강암이었다.
수백이 모여 곡괭이로 파낸다 해도 힘든 일을 백서왕은 혼자서 수십 년간 해낸 것이다.
“궁주는 어디에 있어?”
퉁퉁은 잠시 주변을 살펴보더니 이내 한곳을 코끝으로 가리켰다.
“백서왕이 궁주와 함께 있는 모양이에요.”
“흐음. 그렇다면 함정일 가능성이 높겠군.”
“혹시 모르니까 저만 가볼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도광귀는 절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 들어오기 전의 왕왕이의 말대로라면 거대한 뱀이 버티고 서 있다고 했다.
“비록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해도 나는 도광귀다! 내가 네놈에게 준 호무살의 주인이라는 것을 잊지마라! 백서왕의 죽음을 봐야 하는 것은 십이지괴 중 하나로의 의무나 다름없다!”
“네. 물론 잘 알죠. 그러니까 놈에게 도착할 때까지 몸조심하라고요.”
진백천의 말에 도광귀가 못마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십대악인에 들 만큼 그는 결코 약한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의 일들을 보면 마인들에게 쫓기거나 금노산에게 붙잡히는 등 갖은 고난과 수난을 당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백서왕을 잡는데 손을 더하고 싶었다.
진백천은 그런 마음을 잘 알았기에 별말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 * *
지하궁의 통로는 무척이나 길었다.
진백천과 일행은 길을 따라 계속해서 걸어갔다.
“어떻게 이런 지하에서 살 수가 있죠? 사람이라면 햇빛을 받아야 할 텐데 말이에요.”
“놈은 인간보다 쥐에 가까워서 그럴 거다. 젊을 때부터 그랬지.”
혹시 모를 기관진식을 대비해 천천히 걸었지만 간혹가다 지하수가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런 것도 덩그러니 놓인 문 하나를 두고 끝이 났다.
-저 뒤편에서 누린내가 난다!
짐승의 냄새였다.
아무래도 왕왕이 말한 거대한 뱀인지 뭔지가 틀림없었다.
문 앞에 멈춰 선 진백천은 도광귀에게 주의하라고 신호하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끼이익-
철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어둠 속에 일렁이는 두 개의 불덩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불덩이처럼 붉은 두 개의 눈이었다.
“흐음!”
야수궁의 무인들이 데리고 다니는 야수는 아니었다.
그 크기만 해도 이미 방안을 가득 채울 정도였고 광기를 흘리는 눈으로 침입자를 노려봤다.
온몸을 감싼 검은 비늘은 강철처럼 단단한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까득-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흐흐흐. 도광귀. 잘도 여기까지 왔구나! 네놈들은 전부 묵린흑망(墨鱗黑蟒)의 먹이가 될 것이다.”
지상에서 봤던 백서왕은 묵린흑망의 뒤편에 서서 여유를 부렸다.
그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지하궁을 짓기 시작한 것도 전부 묵린흑망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직접 먹이를 주며 길을 들이려 했지만 너무 포악해 실패했다.
하지만 그만큼 믿을 만한 문지기였다.
“이곳으로 넘어올 수 있으면 넘어와 봐라! 그렇다면 내가 친히 상대해 주마. 크하하하하!”
백서왕은 비웃음을 남기며 뒤편의 문으로 사라졌다.
궁주가 갇혀 있는 공간이었다.
휘이이이익-
묵린흑망은 꽤나 굶었는지 기다란 혀를 내밀며 진백천과 도광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검붉은 눈동자는 살의로 가득 찼다.
“묵린흑망이라니. 저런 놈이 왜 이곳에 처박혀 있는 거지?”
단순히 조금 커다란 뱀이라 생각했는데 무려 역사 속에서나 나올법한 영물이었다.
단단한 비늘은 웬만한 강기도 튕겨내고 뿜어내는 독은 단순히 스치는 것만으로도 전신을 녹여 버렸다.
죽이는 것은 어찌어찌 가능하다 해도 놈이 발버둥 치면 동굴이 무너져내릴 게 분명했다.
이래저래 다루기 까다로운 놈이었다.
‘역시 방법은 호무살뿐인가?’
하지만 묵린흑망이 내뿜는 살기도 결코 평범치 않았다.
마치 호무살과 비슷한 기세를 흘리며 일행을 노려봤다.
만약 일반적인 무인이었다면 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미 몸이 굳어서 옴짝달싹 못 했을 터였다.
‘기운이 민감한 영물이라 호무살을 피할지도 몰라. 단번에 없애야 된다.’
진백천이 기세를 끌어올리려는 사이 품속에서 통통이가 꾸물거리며 빠져나왔다.
-저 뱀 새끼 마음에 안 들어!
그리고 겁도 없이 묵린흑망을 향해 다가갔다.
통통이가 쥐치고는 크다고 하나 본질적으로 쥐였다.
묵린흑망은 조금 특이하게 생긴 쥐를 경계조차 하지 않았다.
“저 쥐는 네놈의 야수 아니더냐?”
“야수랄 것까지는 없죠.”
진백천은 통통이가 무엇을 하려는지 몰라도 우선 지켜봤다.
묵린흑망은 그대로 입을 쩌억- 벌리며 통통이가 있는 땅을 한입에 집어삼켰다.
콰아아앙!
이빨이라곤 독니밖에 없는 묵린흑망이었지만 단순히 잇몸으로도 돌을 으적으적 삼켰다.
그 거친 움직임에 동굴이 잘게 떨렸다.
통통이가 단숨에 집어삼켜졌지만 진백천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입안으로 삼켜지기 직전에 통통이가 마기를 내뿜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변화는 곧 일어났다.
꾸르르르륵-
묵린흑망의 배가 꿈틀거리며 기이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곧 놈도 그 변화를 느꼈는지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대체 뭐하는 거지?”
까득-
놈이 왜 이렇게 몸을 베베 꼬는지는 곧 알 수 있었다.
배가 꿈틀거리며 곧 뭔가가 툭하고 튀어나왔다.
다름 아닌 통통이의 날카로운 이빨이었다.
흑마패마처 씹어먹던 통통이는 놈의 안쪽에서부터 파고들어 가며 비늘까지 뜯고 나왔다.
그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내장을 완전히 헤집어 놓은 것은 덤이었다.
아무리 비늘이 두껍고 강하다 해도 내장까지 강철로 되었을 리는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쉽게 끝낼 수도 있겠는데?’
키이이이익-
굉장히 고통스러운지 놈이 발버둥 치며 자신의 배마저 물어뜯으려 했다.
묵린흑망이 격하게 움직일수록 땅이 흔들리며 모래가 떨어져 내렸다.
“조심해! 뒤로 물러나!”
하지만 통통이는 재차 몸속으로 파고들며 근육과 살점을 갈가리 찢어냈다.
그것도 잠시 근육이 잘려나가자 힘이 부족한지 점점 잠잠해졌다.
‘그렇다고 저대로 둘 순 없겠지.’
혹시라도 무너진다면 지둔술이 뛰어난 백서왕이라면 몰라도 진백천과 도광귀는 살아남기 힘들었다.
‘저대로 두면 안 되겠어. 머리부터 잘라낸다.’
다행히 놈은 몸을 갉아먹는 통통이 덕에 이쪽에 관심이 없었다.
진백천은 마음을 먹음과 동시에 허공에 뛰어오르며 묵린흑망의 뒤편에서 나타났다.
“흐읍!”
놈이 뒤늦게 입을 벌리며 독연무를 뿜어냈지만 그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아무리 독한 독이라 하더라도 독정이 있는 진백천에게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잘 벨 수 있도록 여린 입안을 보여주다니 생각보다 친절한 놈이구나!”
진백천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여린 입천장을 뚫고 들어갔다.
푸우욱-
키이이이이익-
역한 냄새를 풍기는 검은 피가 흩뿌려졌다.
놈의 거친 반항에도 진백천은 오히려 더 손아귀에 힘을 주며 검을 내리그었다.
스걱-
머리가 반쯤 잘려나가며 놈이 커다란 머리가 반쯤 기우뚱했다.
이쯤 되자 놈도 두려움을 느꼈는지 주춤거리며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대뜸 바닥에 머리를 내리꽂으며 도망치려 했다.
쿠우웅-
진백천은 백색으로 빛나는 눈으로 놈의 머리 뒤로 뛰어올랐다.
방금 만든 상처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정말 베기에 딱 좋은 자세군.”
마치 고개를 숙인 사형수다운 자세였다.
순간 동굴이 번쩍이더니 진백천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백색의 강기가 재차 놈의 목을 쳐냈다.
키이이이이익-
공격은 그것뿐만 아니었다.
“나도 돕겠다!”
도광귀가 만들어낸 호무살의 비수가 연달아 두터운 놈의 목을 갈랐다.
스걱-
잘린 머리가 허공에 튀어 오르며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묵린흑망의 몸은 여전히 꿈틀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흐음. 죽어서도 위험한 놈이네.”
머리가 펄떡이며 도광귀를 향해 뛰어올랐다.
입을 벌리며 기어코 집어삼키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도광귀였다.
그는 콧방귀를 뀌며 대가리를 후려쳤다.
몸통이 잘린 뱀의 대가리 따위 전혀 무섭지 않았다.
쿠우웅-
“크흠!”
하지만 흑룡강에서 당했던 상처에 이어 뱀 가면에게 당했던 심독이 아직 다 낫지 않은 듯 몸을 휘청였다.
그런데도 재차 내력을 끌어올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머리는 이내 묵직한 소리와 함께 으깨져 버렸다.
“괜찮으세요?”
진백천은 서둘러 도광귀의 명문혈에 손을 얹으며 몸에서 독기를 뽑아냈다.
안색이 금세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크윽. 고맙군.”
“몸도 안 좋으신 분이 뭐 이렇게 무리를 해요.”
“그거야 네놈이 확실히 마무리를 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않냐. 뱀 새끼들은 머리통을 박살 내야 된다.”
“어휴. 다음에도 비슷한 놈을 상대할 기회가 있으면 참고할게요.”
묵린흑망의 몸통의 움직임이 멈추자 통통이도 고개를 쏙 내밀었다.
-흥. 별것도 아닌 게!
몸에 피를 털며 다시 진백천의 품속으로 기어들어 왔다.
“이제 백서왕만 처리하면 끝인가?”
백서왕이 지나간 문을 열고 들어가자 놈은 여유롭게 앉아서 그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묵린흑망이 죽은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대신 안색이 좋지 않은 도광귀를 보며 더욱 웃음이 짙어졌다.
말은 그렇게 해도 그만큼은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크크큭. 마침내 여기까지 들어왔군. 멍청한 놈들.”
“멍청한 건 네놈이지. 이제 막다른 길이다! 도망칠 곳은 없다. 쥐새끼!”
도광귀의 외침에 백서왕의 이죽거림이 짙어졌다.
“크크큭. 어리석은 도광귀야. 그거야말로 내가 할 소리 아니더냐?”
그가 권좌에 앉아서 뭔가를 작동하자 뒤편의 문이 거칠게 떨어져 내리며 출구를 막아냈다.
그제서야 공동을 둘러본 진백천은 침음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천장을 받치고 있는 기둥은 작은 충격으로도 쉽게 무너질 만큼 무척이나 아슬아슬해 보였다.
“수십 장 지하인 이곳이 무너져내리면 궁주를 비롯해 어느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짓을 저지르면 네놈도 무사하지 못해.”
그건 백서왕에 대해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지둔술에 극에 달한 그는 무너지는 이곳에서도 여유롭게 굴을 파며 빠져나갈 수 있었다.
“시험해 볼까?”
그의 말에 기둥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