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315화
108장 남만야수궁의 쥐새끼(1)
“도광귀와 소공녀를 쫓아라!”
도광귀는 꽤나 많은 전투를 벌였는지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파리한 안색으로 옆의 소공녀를 끌며 나아갔다.
하지만 그 거리는 점차 좁혀지고 있는 중이었다.
‘소공녀라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짧은 머리 가죽 같은 옷은 남만 야수궁 소속인 묘족의 특징이었다.
진백천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것은 모래사장을 뛰어가던 소공녀도 마찬가지였다.
“왕왕아! 어서 이리와!”
‘진짜 이름이 왕왕이었나?’
그녀가 눈앞의 개를 향해 소리쳤지만 왕왕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진백천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제서야 진백천을 발견한 소공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진백천은 누가 봐도 정상인 모습은 아니었다.
머리를 비롯한 온몸에 얹어진 푸른 미역과 함께 바닷물에 절어 멍한 눈으로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꺄아아악! 물, 물귀신!”
“물귀신?”
도광귀는 갑작스러운 소공녀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가 숨을 크게 집어삼켰다.
물귀신이라서가 아니라 이곳에서 도저히 볼 수 없는 자가 미역을 뒤집은 채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너무나 당황해서 십대악인이라고 불리는 자가 스스로의 발에 걸려 몸을 휘청였다.
“어억! 이놈들 좀 부탁하마!”
도광귀는 곧바로 소공녀를 들고 진백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 도 삼촌! 왜 물귀신한테 말을 걸어요!”
“물귀신이 아니다!”
진백천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도광귀와 소공녀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에 높인 미역이 찰싹이며 얼굴에 붙었지만 가볍게 쓸어내렸다.
“……흐음.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인데.”
진백천은 상황에 맞지 않게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봤다.
북해나 요녕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넓은 잎의 식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날도 제법 따듯한 것이 남쪽으로 밀려 내려온 듯싶었다.
“……그 물살에 휩쓸리고도 죽지 않은 게 다행인가?”
소공녀는 도광귀와 함께 진백천의 뒤편에 섰지만 여전히 못 미더웠다.
진백천이 멍청이 같은 표정으로 뭐라 중얼거렸기 때문이었다.
“회주! 저놈들 야수궁의 정예들이다! 제법 강한 놈들이야!”
“아아. 남만 야수궁. 역시 날이 좋다 했어요.”
진백천은 몸에 묻은 미역을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내력을 일으켜 가슴팍을 툭 치자 전신에 묻어 있던 물기가 단번에 털어져 나갔다.
그뿐만 아니라 옷이 뽀송뽀송하게 말랐다.
‘화기? 확실히 내기의 기운이 강해졌어. 몸속에 남아 있던 화옥(火玉)이라도 흡수된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태허무극진결에 타고 흐르는 화기가 이해되지 않았다.
“천하의 도광귀가 줄행랑이나 치고 한심하기 그지없군!”
이윽고 진백천 앞에 도달한 뱀 가면을 쓴 남자가 이죽였다.
야수궁의 무인들이 그 뒤에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가 이들의 대장인 듯 보였다.
“겨우 몸을 피한 곳이 이딴 비루한 놈의 뒤라 이건가? 크큭”
진백천은 놈이 뭐라 떠들든 간에 도광귀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거 십이지괴 맞아요?”
“맞다. 뱀 자리를 맡고 있는 놈이지. 심독(心毒)을 사용하는 놈이니 조심해야 한다.”
심독은 일반적인 독과 달리 정신을 오염시켰다.
도광귀도 부지불식간에 저놈의 심독에 당해서 지금처럼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진백천은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였다.
‘심독이든 뭔 독이든 나한테는 안 될 테니까.’
뱀 가면은 시간을 끌기 싫은 듯 야수궁의 무인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짧은 단창을 들고 순식간에 진백천을 포위했다.
“흐음. 지금 내가 표류했다가 살아남아서 기분이 좋은 상태거든? 그러니까 웬만해서는 그냥 가지?”
“건방진 놈!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차라리 물속에서 죽던 게 더 나았음을 후회하게 해주마!”
야수궁의 무인들의 단창이 사방에서 진백천을 향해 뻗어왔다.
하지만 바로 몸에 닿기 전까지 그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그가 발을 움직인 것은 모든 무인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을 때였다.
‘단번에 처리하는 편이 낫겠지.’
쿠우웅!
진백천이 강하게 진각을 밟자 주변의 모래가 순식간에 솟구치며 무인들이 허공에 띄어 올랐다.
동시에 양손을 가볍게 휘젓자 양손에서 뻗어 나간 장이 무인들을 후려쳤다.
흑웅오성장(黑熊五星掌).
분명 전과 똑같이 사용했지만 위력은 전혀 달랐다.
가볍게 밀쳐내려고만 했지만 곰 발바닥 같은 장기(掌氣)에 맞은 야수궁의 무인들을 하나같이 뼈가 으스러지며 모래에 처박혔다.
‘흐음. 바닷속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내력이 전보다 월등히 늘었어.’
본인조차 놀랐지만 진백천은 아무런 내색도 안 하고 뱀 가면을 쳐다봤다.
“이래도 계속하려고?”
“네놈은 대체 뭐냐!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 야수궁의 일을 방해하느냐!”
그 말에 대답한 것은 진백천이 아니었다.
뒤편에 서 있던 소공녀가 도광귀의 손을 뿌리치며 뱀 가면을 향해 소리쳤다.
“야수궁의 일이라니! 아버지를 감금하고 마음대로 하려는 것은 네놈들이잖아!”
“허허. 아직 현실 파악 못 하는 철부지 같으니라고.”
“철부지는 그 안 어울리는 뱀 가면이나 눌러쓴 더러운 네놈이야!”
소공녀는 과연 야수궁의 사람처럼 성깔이 대단했다.
바닥을 모래를 움켜쥐더니 뱀 가면을 향해 집어 던졌다.
“그냥 죽어버려라! 이 더러운 뱀 가면아!”
“……그만! 아무리 소공녀라고 해도……!”
“뭘 그만이야! 나는 네놈이 죽고 운 좋게 무덤에 묻혀도 그곳까지 찾아가서 침을 뱉어줄 거다!”
뱀 가면은 도저히 말로는 안 될 것 같은지 울그락불그락해진 얼굴로 손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놈은 땅을 박차며 진백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흐느적거리는 두 손은 마치 뱀처럼 뻗어왔다.
“놈의 이빨을 조심해!”
뒤편에서 도광귀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지금까지의 움직임만 봐서는 그다지 위험할 것도 없어 보였다.
금나수의 수법으로 손목을 잡으려 하자 놀랍게도 머리가 쑤욱- 하고 늘어나는 것 같더니 그대로 진백천의 팔을 물어버렸다.
“크하하하! 나에게 물렸으니 이제 네놈도 곧 도광귀처럼 흐느적거리게 될 것이다!”
진백천은 놈이 문 곳을 유심히 살폈다.
뱀 가면에게는 안타깝게도 피부에는 조금의 상처도 생기지 않았다.
단지 더러운 침 자국만 남았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네놈의 이빨이 내 피부를 못 뚫은 것 같은데?”
“멍청한 놈! 내 독니는 현철로 만들어졌다! 네놈의 피부가 아무리 단단해 봤자…….”
놈은 자신의 이빨을 확인하다 문득 그 끝이 뭉툭해진 것을 알고 당황했다.
갑옷도 입지 않은 단순한 피부였을 뿐인데도 우그러진 것은 자신의 독니였다.
“……외공을 익힌 놈이었나?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내력이 약하……! 커헉!”
뱀 가면은 있는 힘껏 내력을 끌어올린 뒤 진백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달려들던 것보다 더 빠르게 튕겨 나가며 모랫바닥을 나뒹굴었다.
진백천의 몸에서 자연스레 생성된 반탄지기(反彈之氣)에 양쪽 손이 으스러져 버렸다.
‘10갑자가 넘으니 이런 효능도 있었나?’
이 정도면 딱히 갑옷을 입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력했다.
“네, 네놈은 대체 누구냐?!”
진백천은 뱀 가면의 물음에도 무시하며 도광귀를 쳐다봤다.
“흐음. 조금 망가졌는데 상관없죠?”
“물론이다. 어차피 죽어 마땅한 놈이었으니.”
도광귀도 진백천의 달라진 무위에 놀란 듯 보였다.
뱀 가면이 십이지괴 중 약한 축에 속한다지만 그것은 다른 이들에 비해 그런 것이지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질 자는 아니었다.
특히나 그의 심독은 제법 지독했다.
“금노산에 비하면 애기들 장난 수준인데요. 그나저나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설명 좀 해주세요.”
진백천은 손가락으로 뱀 가면과 그를 두들겨 패고 있는 소공녀를 가리켰다.
소공녀는 뱀 가면의 독니가 부러지고 양손을 못 쓰게 되자 단숨에 달려들어서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이 걸개구타권을 시전할 때와 비슷했다.
“커헉! 그, 그만!”
“닥쳐! 네놈 같은 쓰레기는 그대로 모래에 파묻혀 죽어버려야 돼! 왕왕아 파묻어!”
“왕왕!”
개는 뒷발로 열심히 모래를 파헤치며 뱀 가면 위로 뿌려댔다.
역시나 단순한 개는 아닌 듯 모래는 금세 몸을 수북이 덮을 정도가 되었다.
“크흠. 소공녀는 야수궁 궁주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나를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곤 했지. 다른 십이지괴와도 친분이 있지만 최근 들어서 바뀌었어.”
십이지괴는 오래전부터 야수궁의 손님처럼 머물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단순히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야수궁의 무인들에 비해 십이지괴의 실력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중에 특히 쥐 자리를 맡고 있는 백서왕(白鼠王)은 호시탐탐 야수궁의 궁주 자리를 노렸다.
“백서왕은 실력이 무척이나 뛰어난 자이지만 권력욕도 많고 속이 지저분한 자야. 궁주는 그런 자를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은 거지.”
“대체 어떤 능력을 가졌길래요?”
“기관진식(機關陣式).”
백서왕은 쥐 자리를 맡아서 그런지 외형적으로도 무척이나 왜소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했다.
야수궁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하에 땅을 파더니 자신만의 거대한 궁전을 만들었다.
한 걸음 걷기 무섭게 주변에서 수없이 쏟아지는 암기과 설치된 함정은 모두가 두려워할 만했다.
“궁주는 그러한 백서왕의 능력이 마음에 든 거다. 자신의 야수궁도 그렇게 기관진식으로 덮어버리면 그 누구도 쳐들어오지 못할 거라 생각한 거지.”
하지만 오히려 백서왕은 그런 궁주를 함정에 빠트려 야수궁을 통째로 집어삼키려 들었다.
꽤나 오랜 시간 야수궁에 머물렀던 터라 그를 따르는 자들도 제법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십이지괴가 놈을 따르기로 했다. 그 때문에 보다시피 쫓기게 된 거고. 그나저나 너는 어떻게 된 거냐? 북해빙궁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느냐?”
“갔다 왔죠.”
도광귀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순히 북해빙궁에 얼굴을 비추고 바로 내려왔다고 해도 도저히 시간상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진백천의 설명에 입을 떡 벌렸다.
“……폭풍우에 휩쓸려서 기절했다 깨어나 보니 여기라고?”
“네. 어처구니가 없죠? 하하.”
“……어처구니가 없는 걸 떠나서 죽지 않은 게 다행인 거 아니냐! 조상님을 비롯해 천계의 신들께 감사해 해라!”
“네네. 나중에 시간 나면요.”
그 와중에도 소공녀는 뱀 가면을 흠씬 두들겨 패는 중이었다.
어찌나 쌓인 게 많았는지 피투성이가 되어 양손을 휘젓는 와중에도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나를 죽이겠다며? 죽여보시지? 죽여보라고!”
“……소공녀가 거칠게 자라서 조금 씩씩한 편이다.”
단순히 씩씩하다는 것 정도로는 과하게 힘이 넘쳤다.
“회주. 혹시 괜찮다면 야수궁의 일을 도와줄 수 있겠냐? 너도 따지고 보면 십이지괴 중 하나이기도 하고…… 일을 도와주면 궁주가 절대 잊지 않고 보답할 거다.”
“흐음. 지금은 제가 조금 바쁜데요. 정도회에서는 제가 죽은 줄 알고 있을 게 분명하고요.”
“그건 마을로 돌아가면 곧바로 서신을 보낼 수 있도록 조치해 주마. 더구나 이번 일은 따지고 보면 너와도 관계없는 일도 아니다.”
진백천이 그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 쳐다보자 그가 다급히 말했다.
“마교! 백서왕과 손을 잡은 것들이 바로 그놈들이다!”
“……젠장.”
만약 놈들이 벌레였다면 바퀴벌레였을 게 분명했다.
어딜 가든 더러운 냄새가 나면 마교가 안 끼는 곳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