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314화 (314/346)

무림회귀백서 314화

107장 불시착

진백천과 살왕이 맞부딪칠 때마다 배가 휘청이며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다른 이들은 함부로 싸움에 끼어들지 못했다.

여전히 용풍의 영향권 안에 들어 있었고, 둘이 내뿜는 기운은 그 누구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았다.

“역시 보통이 아니군.”

살왕은 여러 차례 손을 맞대보고 나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어린 회주는 분명 자신의 위치만큼이나 올라선 강자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네놈에게는 나와 달리 약점이 있거든.”

살왕은 짙은 살소를 내뱉으며 손을 휘둘렀다.

튕겨진 물방울이 하나하나가 비수가 되어 당소예를 비롯한 일행에게 뻗어갔다.

하지만 그가 또다시 착각한 것이 있었다.

‘소예는 짐이 될 정도로 약하지 않아.’

이미 여러 차례 그녀의 무력을 증명해 왔던 터였다.

진백천은 그녀를 믿고 오히려 살왕에게 달려들었다.

“시녀가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거냐!”

“닥쳐. 네놈 따위의 허접한 공격에 당할 소예가 아니니까.”

당소예는 그런 진백천의 믿음처럼 양손에 단검을 뽑아 들며 물방울을 튕겨냈다.

대환단을 먹었던 그녀였기에 내력이 부족한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녀 주변에는 당천기와 중혁도 있었다.

셋이서 함께 나서 살왕의 물방울을 튕겨냈다.

스으윽-

그 사이에 진백천의 검은 살왕의 목덜미를 향해 쇄도했다.

금방이라도 목을 베어낼 것 같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몸을 흐느적거리며 피해냈다.

오히려 손을 뻗어오며 반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진백천은 일부로 몸을 피하지 않고 다시 한번 검을 내리그었다.

호연보의(護燃保衣)라면 살왕의 공격쯤은 막아낼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흐음?”

살왕은 그런 진백천의 동작에 의문을 가지며 뒤로 몸을 빼냈다.

과연 늙은 살수답게 의심도 많고 집요한 자였다.

진백천에게서 멀어지며 재차 손을 휘둘렀다.

수라혈강(修羅血强).

이번에도 그를 향해서는 아니었다.

당소예를 향해 섬전 같은 강기가 쏘아져 나갔지만 이미 경계하고 있던 터라 어렵지 않게 피해냈다.

문제는 강기가 그녀의 뒤편에 있는 갑판을 박살 냈다.

바닥이 아닌 난간만을 부수며 지나갔기에 망정이지 자칫 잘못하면 배에 구멍이 뚫릴 뻔했다.

“다 같이 죽자는 거냐?”

“그래도 나쁠 것 없지.”

살왕은 진심인 듯 바로 자신의 밑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진백천이 다급히 달려들자 예상했다는 듯이 비릿하게 웃으며 반대 손을 뻗었다.

칼날 같은 손끝이 진백천의 목을 노렸다.

“크윽!”

내력을 뿜어내며 살왕을 밀어냈지만 목이 살짝 베이며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렇다고 살왕에게서 멀어질 수도 없었다.

놈은 계속해서 갑판을 향해 강기를 뿌려댔다.

그 모습을 보며 선장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마아아안! 그러다 다 같이 죽는다고오오!”

진백천은 살왕을 향해 호무살을 쏟아냈다.

두 개의 비수가 살왕을 향해 뻗어가지만 놈은 역시나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피해냈다.

쏟아지는 빗줄기로 인해 비수의 위치를 알아챘다.

“끌끌. 모든 상황이 나를 돕는구나!”

살왕은 기껍게 웃으며 발을 굴렀다.

쩌저저적-

바닥이 갈라지며 물이 조금씩 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선장이 다급히 배를 옆으로 돌렸다.

살왕은 몸을 휘청이면서도 주변에 강기를 다발을 쏘아 보냈다.

그중에는 하필이면 당소예가 서 있던 곳도 존재했다.

당소예가 가까스로 강기를 빗겨냈지만 그 충격에 바다로 튕겨 나갔다.

“당 소저!”

당천기가 다급하게 손을 뻗어 그녀를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반쯤 난간에 매달린 상태였다.

“회주. 한번 선택해 보게.”

살왕은 씨익 웃으며 당천기와 바닥을 향해 동시에 강기를 흩뿌렸다.

“미친 새끼!”

“나는 자네 같은 강자를 죽이는 것만큼 흥분되는 일이 없거든!”

진백천은 호무살로 배의 바닥을 막아내며 당천기를 향해 뻗어가는 강기를 검으로 튕겨냈다.

하지만 그 여파가 난간에 전해지며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설상가상으로 배가 다시 한번 휘청이며 당천기와 당소예가 바다로 떨어졌다.

“……젠장!”

진백천의 다급하게 달려갔지만 살왕은 어느 틈에 그의 뒤를 쫓아왔다.

짧은 사이에 몸 여기저기가 뜨끈한 통증과 함께 베어져 나갔다.

“떨어져!”

어느 정도 상처를 허용하며 살왕을 멀찍이 튕겨냈다.

이대로 그들이 바다에 빠지면 물살로 인해 다시 끄집어내기 힘들었다.

“놓치지 않는다.”

살왕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붉게 물든 눈동자가 마치 물귀신 같아 보였다.

진백천은 그를 무시하며 당소예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살왕이 거머리처럼 뒤에서 달라붙었다.

턱없이 짧은 거리에 진백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짧다!’

물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당소예의 얼굴이 보였다.

그때 진백천의 옆으로 누군가 스쳐 지나가며 손을 뻗었다.

다름 아닌 중혁이었다.

“제 손을 잡으세요!”

그가 당소예와 당천기를 움켜잡자 진백천은 대신 중혁의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빙그르르 뒤돌며 그들을 다시 배로 집어 던졌다.

“허억!”

그 반동으로 진백천은 오히려 튕겨 나갔지만 상관없었다.

“회주니이임!”

그 와중에도 살왕은 오로지 자신의 목숨만을 원하는지 목덜미를 끊어 내려 했다.

“지긋지긋한 놈!”

“너야말로 기생충처럼 달라붙지 말지?”

진백천은 살왕의 어깨를 움켜쥐며 얼굴을 똑똑히 쳐다봤다.

눈이 황금색으로 일렁이며 용혼금제(龍魂禁制)의 기운이 솟구쳤다.

지난 며칠 사이에 진백천은 살왕과 신경전을 벌일 때마다 조금씩 그에게 용혼금제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 잔여물은 충분히 쌓인 상태.

그렇게 한 이유는 지금과 같은 상황의 한 수를 위해서였다.

-가만히 있어라!

그의 금제에 살왕은 순간적이나마 몸이 굳었다.

그리고 그 찰나는 진백천의 호무살이 그의 목을 가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뒈져라.”

호무살(虎武殺).

진백천의 미간에서 생선된 비수가 피할 새도 없이 살왕을 향해 뻗어 나갔다.

스걱-

뒤늦게 몸을 휘적이며 움직였지만 이미 비수가 목을 꿰뚫고 지나간 후였다.

살왕의 목이 잘리며 몸과 머리가 따로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진백천도 바닷물에 처박혔다.

“회주니이이임!”

비명과도 같은 당소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백천은 재빨리 헤엄치며 물속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생각보다 물살이 강해!’

마치 누군가 계속해서 발목을 잡고 끊임없이 아래로 끌어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머리만 겨우 나왔을 때 난간에 매달린 이들이 보였다.

진백천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그들에게 소리쳤다.

“……정도회로…… 가 있어…… 나는 괜찮……!”

“회, 회주니임!”

하지만 말이 끝나기 전에 물살에 뒤덮이며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뒤늦게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거칠게 휘몰아치는 물살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는 그도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커헉! 이대로면 위험하다.’

뭔지 모를 것들이 진백천을 향해 뻗어오며 부딪쳤다.

퍼억!

단순히 숨을 참는 게 문제가 아니라 머리라도 맞고 정신을 잃으면 큰일이었다.

진백천은 수면 위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오히려 바다 깊숙이 내려갔다.

오히려 깊은 수면은 잠잠했다.

슬쩍 위를 쳐다보다 멀어지는 배의 밑바닥이 보였다.

‘어쩔 수 없지.’

진백천은 물속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전신에 내력을 퍼뜨리며 천천히 심장박동을 줄여나갔다.

팔한지옥에서 태상장로 일행이 했던 귀식대법(龜息大法)이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해.’

산소가 없으면 아무리 진백천이라고 해도 죽는다.

아무리 길어봤자 단 하루.

용풍이 최대한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그는 서서히 내면 안으로 깊이 잠들어갔다.

꾸르륵-

진백천이 귀식대법에 빠져들고 얼마 뒤.

그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 변화의 시작은 바로 가슴팍에 있던 화옥 때문이었다.

화옥은 찬물에 닿고 있자 그에 반응하듯 서서히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귀식대법을 운용하는 진백천의 내력에 반응하며 서서히 그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흐읍!’

화옥의 기운은 전신의 혈맥과 경혈을 타고 흐르며 사지백해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천고의 보물이었지만 단순히 대환단이나 영단처럼 기운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

뜨거운 용암처럼 닿는 것이면 모조리 불태우며 지나갔다.

그것은 금혈화린어의 내단이 내뿜는 열기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진백천의 내부에서부터 타들어 갔다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태허무극진결의 내력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잿더미로 변해 버렸을 터였다.

부글부글-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곳은 극도로 차가운 바다의 심해였다.

화옥의 기운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바닷물 전체를 끓게 만들 순 없었다.

진백천 주변의 바닷물이 끓어오르며 거품이 일었다.

해류가 흐를 때마다 진백천의 전신을 차갑게 식었다.

화옥(火玉).

빙지의 음기를 비롯해 바다의 한기를 흡수한 그것은 열양지기를 비롯해 한음지기마저 가지게 되었다.

우우우웅-

그리고 그것은 일회성인 효과를 뛰어넘어 진백천의 전신을 새롭게 바꿔나갔다.

우드드드득-

단전에서 시작된 작은 폭발은 세맥까지 이어져 나갔다.

좁았던 길이 넓어지며 전신이 커다란 단전이 되어나갔다.

본능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태허무극진결은 그런 화옥의 기운을 부드럽게 이끌었다.

쿠구구구궁-

365개의 경혈이 활짝 열리며 진백천의 몸이 서서히 바다 위로 떠올랐다.

촤아아악-

폭풍우 속에서도 그의 전신은 작은 태양처럼 밝게 빛났다.

만약 조금의 정신적 고양이 있었다면 등선마저 가능했겠지만 지금 진백천은 반쯤 무의식에 걸친 상태였다.

전신의 경혈을 뻗어 나가던 기운은 이내 백회혈을 지나 하늘로 치솟았다.

하늘과 하나가 된다는 천아합일(天我合一)의 경지였다.

드드드득-

전설 속에서 이야기로나 등장하는 경지로 10갑자가 넘어야 다다를 수 있었다.

햇수로 따지면 무려 600년 내력이었다.

진백천의 신형이 다시금 천천히 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수화불침(水火不侵)의 경지에 다다랐기에 내력이 전신을 맴도는 한 그의 주변으로 물이 다가오지 못했다.

* * *

그렇게 꼬박 삼 일이 지나고 나서야 진백천은 낯선 해변가에서 정신을 차렸다.

“…….”

할딱-

진백천이 정신을 차린 것은 얼굴에서 전해지는 기묘한 감각 때문이었다.

눈을 뜨니 난생 처음 보는 개인지 늑대인지 모를 동물이 그의 얼굴을 핥는 중이었다.

개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몸집이 컸고, 늑대라고 하기에는 눈이 순둥순둥했다.

“……넌 뭐냐?”

“왕왕!”

“왕왕이라고?”

“왕왕!”

털이 북실북실한 것이 제법 마음에 드는 놈이었다.

그런데 왕왕은 갑자기 뒤로 물러나더니 진백천의 가슴팍을 보고 으르렁댔다.

그리고 품속에서 뭔가가 쏙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포동포동한 얼굴에 푸른색 털을 가진 쥐는 다름 아닌 청서생이었다.

원래 당소예의 품속에 있었어야 할 청서생은 어느 틈인가 진백천의 품속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물속에서 잘도 살아남았네.”

그런데 그 외형이 진백천이 아는 것과 확연히 달랐다.

-저리 안 꺼지지?

청서생이 왕왕이를 보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치자 그의 전신에서 마기를 뭉글거리며 피어올랐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털 색도 푸른색에서 검게 물들며 마기가 일렁였다.

“얜 또 왜 이래?”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진백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꿈이라면 몰라도.’

물속에 빠져서 죽을 뻔했는데 전신의 기운은 넘쳐나고 청서생이 마기를 뿜어대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저건 또 뭐야?”

시끄러운 소리에 고개를 드니 저 멀리서 쫓기고 있는 두 명의 남녀가 보였다.

심지어 그중 한 명은 바로 남만으로 떠났다는 도광귀였다.

그 뒤를 쫓는 것은 뱀 가면을 쓴 남자와 야수궁의 무인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