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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312화 (312/346)

무림회귀백서 312화

106장 태풍 속으로(1)

당소예는 안 본 사이에 얼굴이 수척해졌다.

그것은 바로 옆에 서 있는 당천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들의 여행은 진백천과 달리 무척이나 고됐다.

진백천의 뒤를 따라 곧바로 북해빙궁으로 따라가려 했지만, 화금석(火金石)이나 안내인도 없어 그 추위를 뚫고 지나갈 수 없었다.

결국 몇 번의 시도 끝에 실패하고 입구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회주님!”

당소예는 그를 보면 왜 말도 없이 갔느냐고 화를 내려 했지만, 막상 얼굴을 보자 그러지 못했다.

뺀질거리며 놀러만 다닐 것 같았던 진백천의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가는 족족 십대악인을 마주쳤을 뿐만 아니라 천살대 무인 두 명까지도 상대했었다.

“……왜 이렇게 살이 빠지셨어요!”

제 딴에는 걱정하는 말이었지만 진백천은 별 감흥이 없었다.

“어휴. 그래도 너희보다 낫지. 대체 어디를 돌아다녔길래 이렇게 꾀죄죄해?”

“……다 회주님 때문이잖아요! 혹시라도 혼자 돌아다니시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도홍경하고 중혁이 있으니까 괜찮아.”

도홍경은 슬쩍 눈치를 살피며 뒤로 빠졌다.

당소예의 성격을 아는 그는 애초에 그녀와 맞부딪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남아 있던 중혁이 목표가 되어 당소예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았다.

“……죄송합니다.”

중혁도 눈치가 있는지라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쯧. 됐고 얼른 정도회로 돌아가요. 지금 황 무사님이 얼마나 고생하시는 줄 아세요?”

“그거 다 내가 하던 거거든?”

“흥. 다 떠넘기기만 하셨으면서.”

진백천은 다른 이들도 살펴봤다.

당천기와 당가의 무사들은 그렇다 치는데, 못 보던 자들도 보였다.

‘으음?’

각기 다른 일행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와 두 명이었는데 풍기는 기운이 평범하지 않았다.

당소예가 그의 시선을 느끼고 그들을 소개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방향이 같아서 같이 이곳에 머물던 분들이세요.”

“임가라고 하오.”

“저는 연룡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저희 가문의 황노입니다.”

진백천은 소개를 들으며 흠칫 놀랐다.

자신을 임가라고 소개한 중년의 남자는 다름 아닌 살왕(殺王)이었다.

얼핏 보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중년 남자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진백천은 더더욱 뇌리에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유난히 하얀 저 손만 봐도 확실해.’

그리고 연룡과 황노라는 자들도 어딘가 수상했다.

특히 황노는 자신을 보고 무엇을 그렇게 놀랐는지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이런 자들이 왜 소예 옆에 붙어 있던 거지?’

진백천은 속내를 감추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정도회 회주. 진백천입니다.”

“흐음. 반갑소이다.”

살왕은 먼저 도포를 휘적이며 다가와 손을 뻗었다.

유난히 새하얀 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손으로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을 죽였을 거라 생각하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놈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 의문이네.’

살왕은 진백천의 손을 잡자 가볍게 힘을 줬다.

작은 바늘 같은 내력이 손끝을 타고 뻗어왔다.

‘살혈침(殺血針)?’

살혈침은 말 그대로 피로 만들어진 아주 작은 침이었다.

상대의 몸으로 들어가면 피를 타고 흐르다 살왕의 의지에 따라 작게 폭발을 일으켰다.

밖에서라면 살짝 상처가 나는 정도였지만 그것이 뇌나 심장혈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보통은 살혈침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지도 모르지만, 전신의 사지백해에 내력으로 가득 찬 진백천은 아니었다.

‘어쭈 처음부터 살수를 쓴다 이거지? 그렇다면 나도 돌려줘야지.’

진백천의 눈이 번뜩이며 이채를 띄었다.

호무살(虎武殺).

살왕이 기세를 끌어올리며 대처할 새도 없이 무형의 기운이 그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더구나 용혼금제(龍魂禁制)를 배우며 호무살은 더욱 강해진 상태였다.

진백천의 주변이 그의 영역이 되면서 살왕을 덮쳤다.

드드드득-

살왕은 세상이 일렁이며 땅과 하늘이 뒤집히는 듯한 기시감에 몸을 휘청였다.

동시에 의념으로 만들어진 2자루의 비수가 그의 머리를 꿰뚫을 듯 떨어져 내렸다.

살왕은 본능적으로 벗어나려 했지만, 꽉 잡힌 손 때문에 움직이지 못했다.

“흐음!”

그는 발악하듯 반대 손으로 허공을 갈랐다.

수라혈선(修羅血線).

작정하면 그 누구도 피하지 못하는 살왕의 손이었다.

언뜻 진백천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기대했던 가르는 느낌이 없었다.

진백천이 물러선 것이 아니라 손을 놓자마자 그가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몸이 안 좋으신가 봐요. 혼자 휘청이시다니.”

살왕이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 누구도 방금의 기세를 느끼지 못했다

‘우습게 볼 놈이 아니구나!’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하지만 살왕보다 더 기겁한 자가 있었다.

황노.

그의 두 눈은 경악으로 일렁였다.

“그나저나 두 분도 북해빙궁으로 가시려는 겁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한 사람을 추적 중이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알아보니 그자가 이 근처에 있던 것 같아서요. 그러고 보니 회주께서 최근에 북해에 간 걸로 아는데 혹시 그자를 보셨소이까?”

연룡의 이어지는 말에 진백천이 눈을 꿈뻑거렸다.

그들이 찾는 것은 다름 아닌 무명악인(無名惡人) 권진이었다.

“권진이라. 흐음. 무림대회에서 꽤나 유명했던 자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다. 별호에 악인이 들어갈 정도로 아주 잔악한 놈입니다.”

살왕도 웬일인지 권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허어. 이자들은 또 뭔데 권진을 쫓아?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 이름에 귀신이라도 씌었나?’

진백천은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다고 잡아뗐다.

“흐음.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떨어졌는지 모를 일이군.”

그 사이 태상장로와 적의단은 당소예와 살갑게 인사를 나눴다.

당천기도 도림곡에서 그들을 봤기에 어색함은 조금도 없었다.

“당 소저. 회주를 찾아 여기까지 오다니 역시 당찬 구석이 있군! 아니 이제 쌍수미랑(雙手美狼)이라 불러야 하나?”

“아이. 부끄럽네요.”

“아니지. 회주 옆에서 보필하는 것만으로 이미 그것보다 더 뛰어난 별호가 붙었어야지! 하하하!”

진백천은 웃어대는 장개를 보아하니 왠지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그때 마찬가지로 웃고 있던 당천기와 눈이 마주쳤다.

“야. 너는 왜 왔냐?”

“크흠. 당 소저 혼자 오기에는 위험하니까 우리도 함께했지.”

“위험하긴 무슨. 강호 유람하러 나온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당천기는 흠칫 놀라면서 시선을 피했다.

“어쨌거나 수고했다. 북해빙궁의 일도 끝났으니까 여유롭게 돌아가도 되겠지.”

“크흠. 그럴까나?”

역시나 대충 눈치가 맞는 둘이었다.

돌아가는 마차는 총 3대였다.

태상장로를 비롯해 개방, 진백천과 당소예,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룡이 탄 마차였다.

일행이 순식간에 수십 명으로 늘자 상대적으로 여행은 편해졌다.

“회주님. 식사하세요.”

손이 꼼꼼한 당소예는 진백천과 달리 음식은 물론이고 여러 면에서도 잘 챙겼다.

평소 육포죽이나 끓여 먹던 진백천은 고깃국에 밥을 먹으니 절로 탄성이 새어 나왔다.

“흐음. 역시 소예가 최고야!”

거기에 당천기가 가지고 다니던 술까지 한잔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게 대체 얼마 만에 마시는 술이냐.”

“에이. 회주님이 술을 안 마셨다고요?”

“북해에 있는 동안에는 입에도 못 댔지.”

“항상 가지고 다니시면서. 지금도 허리춤에 있잖아요.”

북해의 마을에서 촌장에게 받았던 싸구려 술이었다.

대충 돈을 쥐여줄 용도로 받은 거라 입에 대지도 않았다.

“소예야. 네가 못 믿나 본데 우리 정말 죽을 고생 많이 했거든? 팔한지옥(八寒地獄)이라는 곳도 들어갔었는데. 어후. 말도 마라.”

“에이. 안 믿어요.”

도홍경과 중혁에게 말해보라고 시선을 보냈지만 그들은 음식에 정신이 팔린 지 오래였다.

“쩝. 내가 이렇게 무시를 당하면서 산다. 살아.”

“보기 좋은데 뭘 그러나.”

태상장로가 허허 웃으며 말렸다.

진백천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뒤따라오는 살왕과 연룡이었다.

권진의 추적을 그만하겠다는 말을 동시에 하며 진백천을 따라오는 게 여간 신경 쓰였다.

‘저 두 명은 몰라도 살왕은…… 위험해.’

다른 생각을 품은 거라면 바로 없애버려야 했다.

아무리 살왕이라고 해도 저렇게 드러난 상태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놈이 위험한 건 어둠 속에 숨어들 때뿐이니까.’

혹시 몰라 당천기와 적의단에게도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말해놓았다.

살왕이 눈치채고 숨어들면 그것만으로도 일행은 위험에 빠졌다.

‘적당할 때 떨어뜨려 놔야지.’

진백천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밤은 깊어갔다.

* * *

연룡의 마차 안.

연룡은 오늘 하루 황노의 태도가 의문스러웠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위축되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차마 묻지 못하고 마차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아까의 상황에 대해 입을 열었다.

“황노. 아까는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놀란 거야?”

“죄송합니다. 도련님.”

황노는 그답지 않게 한숨을 내쉬더니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

“진백천 회주. 그자는 괴물입니다.”

“괴물이라고?”

진심인 듯 주억거리는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상단전을 다루는 심법을 연마한 황노는 그 누구보다 기감이 예민한 편이었다.

아주 잠시지만 천리안 비슷하게 먼 곳을 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황노는 진백천을 보자마자 자신과 비슷한 냄새를 맡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저와 비슷한 심법(心法)을 익혔나 했습니다.”

진백천에 대한 소문도 천리통이니 천리안이니 했던 것이 있기에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임가와 악수를 하는 순간 갑자기 그로부터 시작해 주변의 세상이 뒤집혔다.

“……지옥이 펼쳐진 것만 같았습니다.”

“지옥?”

황노가 지금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되는지 주먹을 꾹 쥐었다.

그 누구보다 그것을 더 적나라하게 본 유일한 자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식은땀이 그 사이로 미끌거리며 새어 나왔다.

뒤집힌 세상에서 이내 허공이 일렁이며 만들어진 것은 두 자루의 비수였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비수였습니다. 단순히 살기로 만들어낸 위협은 아닌지 바닥에 박히는 순간 땅이 갈라졌습니다.”

만약 진백천이 마음을 먹었다면 그 비수는 정확히 임가의 몸을 꿰뚫었을 터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모든 것을 진백천이 아무렇지 않게 사라지게 했다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상단전을 사용하면서도 지친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회주의 상단전은 완성이 된 상태입니다.”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야?”

“대대로 상단전을 다루는 이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완극즉선(完極卽仙).

“상단전이 완성에 닿으면 곧 등선하여 신선이 된다는 말입니다.”

“흐음. 그렇다면 회주가 곧 신선이라도 될 거란 말이야?”

“그것은 단순히 상징적인 이야기지만 그만큼 무서운 자라는 뜻입니다.”

연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세상은 넓고 뛰어난 자는 많다더니. 황노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대단한 자가 맞겠지.”

그는 어딘가 패배감 어린 얼굴로 연 가문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왠지 권진을 쫓겠다는 마음도, 악살신괴라는 자신의 숨겨진 별호로 초라하게 느껴졌다.

황노는 그런 그의 마음을 잘 알았지만 진백천의 곁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더 컸다.

등선한 자가 꼭 신선이 되는 것만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고민이 많은 것은 살왕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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