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307화 (307/346)

무림회귀백서 307화

104장 대환장 통수전(1)

설궁한의 사람은 그의 시녀 중 하나였다.

오죽 사람이 없으면 시녀를 보낼까 했지만 진백천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태상장로와 적의단 무인들의 뒤편에서 서서 그녀를 날카롭게 살폈다.

“……설궁한 공자님께서 무척이나 기뻐하셨습니다. 별궁으로 모시겠습니다.”

‘거짓말.’

진백천이 이렇게 확신하는 것은 상단전을 활짝 열어놨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태상장로와 무인들을 보고 크게 당황했다.

-……팔한지옥에서 떨어졌다고 하는데 살아 있다니. 대체 누가 이들을 도운 거지?

단순한 시녀는 아닌지 철저히 속내를 감추며 그들을 안내했다.

그러면서 눈을 낮게 뜨고 빠르게 창고 안을 살폈다.

하지만 도홍경과 중혁은 그녀가 오기 전에 몸을 숨긴지 오래였다.

“……가시죠.”

‘역시 뭔가 있다.’

진백천은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원래부터 적의단의 무인이었던 척 뒤를 따랐다.

동시에 창고에 남아 있는 도홍경에게 전음을 남겼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빙궁을 살펴봐. 이상한 점이 있어도 나서지 말고.

-저만 믿으세요. 싹 다 털어버리겠습니다.

진백천은 자신 넘치는 그의 대답에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는 몰라도 도홍경이 작정하면 그를 찾아낼 이는 드물었다.

이내 그들이 도착한 곳은 본궁에서 떨어진 별궁이었다.

본궁에 비해 무인들도 없고 어딘가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진백천은 별궁에서 전해지는 미약한 마기에 방금까지 이곳에 마인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꽤나 상당한 놈이야.’

별궁에 들어서자 설궁한으로 보이는 자가 격한 얼굴로 뛰어나왔다.

본궁에서 봤던 1공자의 얼굴과 똑같았지만 병약한 기색이 역력했다.

“태상장로님! 살아계셨습니까?!”

눈시울까지 붉어진 두 눈은 진심으로 그들의 생환을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진백천의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속마음이 들리지 않아. 약하다는 것은 연기군.’

그는 일일이 적의단의 무인들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했다.

진백천의 차례가 오자 그의 눈동자가 살짝 이채를 띄었다.

“이분은 처음 뵙는 분 같습니다만……?”

“네. 저희를 도와준 자입니다.”

태상장로가 딱히 정체를 밝히지 않고 대답했다.

설궁한은 계속해서 대답을 원하는 듯 시선을 떼지 않았다.

대체 정체가 뭐냐는 속마음이 들리는 것만 같아서 진백천은 미리 준비한 신분을 털어놨다.

“동창의 권진이라고 합니다.”

“……동창이라면? 황궁의?”

“네. 맞습니다.”

진백천은 당연히 안 믿을 줄 알았기에 품속에서 황제의 패를 꺼냈다.

실제로 동창의 무사가 가지고 다니는 패는 이렇듯 화려하지 않았지만 설궁한이 그것을 알아볼 리 없었다.

단순히 높은 직급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그의 태연스러운 거짓말에 태상장로와 적의단의 무인들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동창의 무인이 도와주신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별말씀을.”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동창 같았지만 빙궁의 입장에서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황궁에서 온 서신에 의하면 오래전에 잠입한 동창이 있다고 했고 빙궁에서 또한 모를 리 없었다.

‘원래 있었다는 동창이 지금까지 나서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 죽었다는 걸 테지.”

진백천은 그와의 인사를 나누고 일행의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태상장로는 이곳에 왔던 목적대로 설궁한에게 함께 중원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보다 그편이 낫지 않겠나?”

“……그렇다고 해도 제 한 명의 안위를 위해 아버지를 두고 떠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태상장로님이 감옥에 간 사이에 새로운 작전을 세운 상태입니다. 성공만 한다면 마교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저를 마지막으로 도와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흐음.”

태상장로는 그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했다.

그들이 보기에는 빙궁은 이미 가능성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 정도는 들어볼 생각인지 그것에 대해 물었다.

설궁한은 마치 태상장로가 작전을 받아들이기라도 한 것처럼 기쁘게 웃으며 말했다.

“마인들을 이끄는 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그자만 제거한다면 빙궁에 대한 간섭도 약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자의 이름을 아나?”

“물론입니다. 삼천영(三天影)이라는 자로 겨우 사술이나 부리는 악랄한 자입니다.”

‘삼천영? 천살대의 무인이 이곳에 와 있다고?’

진백천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악다물었다.

수라혈마공과 완성에 가까운 구촉비전을 익힌 사천영만으로도 죽다 살아났던 진백천이었다.

하지만 태상장로와 적의단은 그가 얼마나 위험한 자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자를 어떻게 제거할 생각이지?”

“두 형을 별궁으로 초대할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그자도 올 테고 그때를 노릴 생각입니다.”

“남은 두 공자가 가만히 있겠나?”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어지는 설궁한의 말에 진백천의 자신의 의심이 완성됨을 느꼈다.

“두 형은 이미 제 작전에 함께하기로 했으니까 말입니다.”

* * *

‘두 형이 같이하기로 했다고?’

그렇다는 것은 단 하나를 의미했다.

세 공자는 이미 처음부터 한마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

그것이 빙궁의 무인이 죽어가든 마교가 잠식을 하든 그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한 이유였다.

‘문제는 지난 몇 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서야 움직이냐는 거겠지.’

단순히 무공의 성취나 그런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겨우 그딴 것을 기다리기에는 그들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분명 뭔가가 있을 게 분명하지만 거기까지는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다른 두 공자가 함께하기로 했다는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여러 차례 만나 설득을 한 것이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두 형도 우선 빙궁을 갉아먹는 마교를 몰아내고 차후의 일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허허. 그렇단 말이지.”

허탈한 심정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진백천은 설궁한을 살피며 그가 하는 말이 준비한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아마도 태상장로가 팔한지옥에서 빠져나올 거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대로 그를 보내기에는 아쉽고 적당한 말로 사용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태상장로 어르신도 그 정도쯤은 눈치…….’

“도와주지.”

‘……못 챘군.’

진백천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태상장로의 성미를 탓하지 않았다.

도림곡에서 목숨을 걸고 생면부지의 아이들을 돕던 모습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감사합니다! 태상장로님이 도와주신다면 아무리 그자가 강하다 하더라도 결코 버티지 못할 겁니다!”

‘버티지 못하긴 개뿔. 전부 몰살당하겠지.’

삼천영이 아닌 사천영이었다고 해도 이들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더구나 한 계단 위인 삼천영은 더더욱 위험했다.

“작전은 언제 시행할 계획인가?”

“오늘 저녁입니다.”

“빠르군. 그렇다면 그 전까지 몸 상태를 최상으로 만들어놓겠네.”

그새 준비한 듯 시녀는 각종 음식과 요상단이 담긴 보따리를 가지고 왔다.

“고맙네. 그럼 오늘 저녁에 다시 보지.”

“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설궁한은 멀어지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깊게 숙이며 인사했다.

하지만 곧 들어 올린 얼굴에는 비틀린 미소가 가득했다.

* * *

다시 창고로 돌아온 진백천은 조금 전의 만남을 토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만약 삼 형제가 한편이고 마교를 축출하길 원한다면 외부인의 도움이 필요할까?’

답은 아니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얼어붙은 이 추위에 빙공을 사용하는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가지는 이점은 대단했다.

아무리 많은 마인들이 이곳에 왔다고 해도 빙궁에서 작정하고 칼을 휘두른다면 놈들을 쳐내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분명 설궁한은 삼천영을 없앨 기회를 노리고 있었겠지. 그러다 태상장로의 일행이 탈출하자 그들을 발판으로 삼아 마인들을 쳐내려는 거야.’

그러는 편이 변명을 맞추기도 쉽고 마인들의 이목을 흐리기 좋았다.

여기서 진백천의 의문을 자아내게 만드는 것은 북해빙궁이 무엇을 이유로 마교와 손을 잡았냐는 것이었다.

그것도 삼 형제의 반목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내면서까지 말이다.

‘창고에 있는 자원을 퍼주고 눈치를 보면서까지 얻으려던 것이 뭘까?’

삼천영을 쳐내려고 하니 그 목적은 달성되었음이 분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던 이유는 밖으로 나갔던 도홍경이 돌아오고 나서 어이없이 풀렸다.

-형님. 술법을 사용하는 마인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어딘가 전에 봤던 놈과 비슷했어요.

-비슷하다니?

-산적으로 위장했던 마인 놈이 쓰던것과 비슷한 광대가면을 쓰고 있었어요.

‘삼천영!’

-그놈에 대해 말해봐.

도홍경이 놈을 발견한 곳은 빙정고(氷精庫)였다.

가장 비밀스러운 곳이었고 그의 기감을 자극하는 뭔가가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빙정고에 커다란 관이 있었는데 광대가면을 쓴 마인은 그곳에서 소궁주와 대화 중이었다.

-소궁주 누구?

-……그거야 저도 모르죠. 다 똑같이 생겼다면서요. 그나저나 지 아버지를 강시로 부리려는 천하의 패륜아던데요?

-강시?

빙정이 보관된 관에는 북해빙궁의 궁주인 설류운이 누워 있었다.

하지만 그를 살펴본 도홍경은 단번에 정상이 아님을 알아보았다.

-각종 술법으로 잠을 재우고 정신을 세뇌하는 중이었어요. 그놈들 말로는 빙마를 만드는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빙마(氷魔)라.’

진백천이 기억하는 회귀 전에는 그런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실패한다든지 북해빙궁 밖으로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곳에서 삼천영은 빙마의 몸에 빙정의 기운이 전부 실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깨어나는 대법을 치루기만 하면 언제고 움직일 거라 장담했다

-소궁주라는 자가 당장 대법을 시행하라고 했는데 의외로 광대가면이 싫다고 하더라고요.

-왜? 다른 조건을 걸었어?

-네. 중원 침공에 빙마를 선두로 북해빙궁도 참전하라는 조건이었어요.

소궁주는 그 자리에서 바로 동의를 하지 않았다.

마교와 비밀리에 손을 잡은 것과 동맹을 맺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일이었다.

자신의 무대가 아닌 중원으로 굳이 기어들어 가서 소모성 전투를 치르고 싶지 않았다.

소궁주가 대답을 꺼리자 광대가면은 천천히 생각하라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반전은 그 이후였다.

-놀랍게도 소궁주라는 자가 곧바로 빙마를 깨우는 데 성공했어요.

삼천영에게는 끌려다니는 연기를 하면서도 뒤로는 자신도 빙마를 깨울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완성되었다는 말만 기다리던 그는 광대가면이 사라지자 곧바로 빙마를 깨웠다.

-그 빙마라는 건 어땠어?

-무척이나 불안정해 보였어요. 몸에 스며든 빙정의 음기를 제대로 제어하지도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수고했어. 우선 쉬고 있어.

진백천은 도홍경과의 그 전음을 끝으로 빙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전부 파악했다.

‘북해빙궁의 삼 형제는 쓰러진 궁주를 가지고서 강시를 만들었군.’

그 과정에서 마교의 도움을 받았고 완성에 가까워지자 마교를 쳐내려는 속셈이었다.

그렇다면 궁주의 쓰러진 이유에 삼 형제가 끼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태상장로 어르신. 저랑 잠깐 이야기 좀 하시죠.”

“무슨 일인가?”

“빙궁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진백천은 자신이 알아낸 것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놨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태상장로를 비롯해 장개와 적의단 무인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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