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305화
103장 팔한지옥(八寒地獄)(2)
“팔한지옥?”
그 이름에서부터 벌써 얼마나 끔찍할지 절로 느껴졌다.
팔한지옥은 특이하게도 연꽃지옥이라고도 불렀다.
그 이름만 들으면 무척이나 이쁠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너무 춥다 보니 살이 붉게 물들다 피가 얼어 터지게 되는데 그 모양이 꼭 연꽃 같아서 연꽃지옥이었다.
“빙궁의 무인들조차도 너무 추워서 내려가지 않는 곳이지. 그래서 그곳에는 간수조차 존재하지 않아.”
“간수가 없으면 그냥 탈출하면 되지 않아요?”
도홍경의 물음에 장씨가 고개를 저음.
“그렇게 쉽다면 팔한지옥이라는 이름이 붙었겠나?”
큰 술병 모양의 감옥은 천장에 뚫린 통로가 유일한 출입구이자 탈출구였다.
그곳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드나들 수 없었다.
“한기를 이겨내며 몇 장이나 되는 기다란 통로를 거꾸로 올라올 자는 없다고 봐야지.”
“태상장로와 개방의 무인들이 그 팔한지옥에 떨어진 지 얼마나 됐어요?”
“원래는 평범한 감옥에 있다가 그곳에 옮겨간 지는…… 이제 막 일주일 정도 되었을 거야.”
일주일이란 말에 진백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처음부터 그런 곳에 갇혔더라면 지금까지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터였다.
“그곳으로 안내 좀 해주시죠.”
“설마…… 자네 그곳에 들어가려는 건가? 내 말이 믿기지 않나 본대 팔한지옥에 들어가서 살아나온 자들은 없어. 추위에 강한 빙궁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야.”
“그거야 해보지 않고선 모르는 거죠. 그리고 워낙 첫 번째인 경우가 많아서요.”
진백천이 여유로운 태도에 장씨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곧 안내를 해주겠다고 했다.
다행히도 장 씨는 그 감옥의 입구를 지키는 자와 친분이 있었다.
“빼내는 건 마음대로 못해도 들어가는 것 정도는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전에 자네들 옷부터 갈아입어야겠군.”
빙궁에서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깔끔한 옷이었다.
잠깐 밖에 나갔다 온 장씨가 품속에서 빙궁의 무인들이 입는 옷을 꺼냈다.
어깨에 여우의 털이 두툼하게 올려진 차림이었다.
장 씨는 자신이 꾸민 세 명을 보고 무척이나 흡족해했다.
“좋군. 어딜 가면 백청빙대(白靑氷隊) 소속 무인이라고 말하게. 그럼 대부분은 그냥 넘어갈 테니.”
백청빙대는 북해를 순찰하는 무력대대의 이름이었다.
워낙 숫자가 많아서 일일이 확인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장 씨는 창고에서 나가며 그들을 안내했다.
“그럼…… 조심해서 따라오게. 괜히 눈들 돌리지 말고.”
빙궁의 안은 의외로 훈기가 맴돌았다.
북해의 마을과 다르게 화로가 아직 가동되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진백천을 비롯해 도홍경과 중혁은 화려한 빙궁의 모습에 내심 놀라면서도 표정을 유지했다.
‘전부 평범한 돌들이 아니야.’
조각한 듯 물결치는 듯한 무늬는 만년한석이 분명했다.
중원에서는 보물처럼 여겨지는 돌이었지만 빙궁에서는 그저 석자재일 뿐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높이 올려다봐야 하는 천장은 마치 눈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북해빙궁을 한번 다녀온 이는 그 추위에도 또다시 가게 된다고 하는 거였나?’
그러한 아름다운 성 안에는 빙궁의 무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보였다.
어깨에 하얀색 털가죽을 두른 빙궁의 차림을 한 빙궁의 무인들과 온통 검은 옷차림의 마인들이었다.
둘은 섞인 듯 아닌 듯 서로를 경계하며 아슬아슬한 경계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 가운데 냉혈한의 얼굴을 한 남자가 보였다.
‘저자가 소궁주?’
진백천은 슬쩍 얼굴을 확인하고 장 씨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거대한 공동을 지나 점점 구석진 길로 향했다.
좁은 통로가 가까워지자 그곳을 앞을 빙궁의 무인이 막아섰다.
하지만 장 씨와 아는 사이인지 슬쩍 뒤를 쳐다보고는 물었다.
“저자들이 안으로 들어가겠다던 그 미친 자들이야?”
“맞아.”
“쯧쯧.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자살 방법은 잘못 골랐군. 조용히 들어가”
그는 문을 열며 서둘러 그들을 들여보냈다.
후우우우우-
단지 문 하나 차이였지만 뼈가 아릴 것 같은 추위가 몰려왔다.
그렇게 몇 개의 문을 더 지나고 나서야 감옥으로 향하는 통로의 방이 드러났다.
바닥이 둥글게 뚫린 통로에는 창살로 막힌 상태였다.
“세 명 다 내려가려는 건 아니지?”
진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려가는 건 나 혼자만이야. 둘은 여기 있어.”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아니야. 저 아래서 올라오려면 어차피 둘의 도움이 필요해. 도홍경 혼자서 사람들 끌어올리기에는 힘들 거야.”
일리가 있었기에 중혁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딱 하루 뒤에 다시 오지. 그 뒤에는 저 아래의 사람들을 빼냈든 아니든 무조건 다시 나가야 해.”
하루 뒤를 강조하는 것은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일주일마다 감옥에서 한풍(寒風)이 불어닥쳤는데 그것이 불 때면 통로와 연결된 이곳과 문조차 전부 얼어붙을 정도였다.
문밖에 서 있는 무인들마저도 자칫 잘못하면 몸이 얼어버리니 감옥에 있는 자들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 아래는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울 정도로 추운 곳이라네. 부디 조심하게.”
장 씨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오들오들 떨며 밖으로 향했다.
진백천은 그가 나가자 독고구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가로막고 있는 창살을 전부 잘라내며 등 뒤에 챙겼다.
‘이 정도 한기면 밧줄도 얼마 못 버티고 얼어서 부서질 거야.’
그러니 창살을 얼음벽에 박아서 그것을 밟고 올라올 생각이었다.
“갔다 올게.”
“형님. 조심하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진백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거침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벽면은 얼음처럼 미끄러워서 제대로 밟을 수조차 없었다.
콰드드득-
대신 쇠창살을 일정 간격으로 박으며 천천히 내려갔다.
그 깊이가 제법 되는 듯 3장 가까이 내려왔음에도 그 아래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얼음벽 때문인지 어딘가의 빛이 번지며 감옥 내부의 시야가 확보되었다.
“후우. 여기부터가 본격적인 감옥인 건가 보군.”
기다란 통로를 지나자 아래로 둥근 공간이 보였다.
감옥이라지만 딱히 사람들을 가둬두는 곳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바로 아래에 기이한 자세로 굳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방금까지 있던 방에서 떨어뜨린 죄인들은 그대로 고통스러워하다 저 상태로 얼어버린 것이다.
스스슥-
한기가 유형화되어 바닥에 안개처럼 넘실거렸다.
‘쯧. 끔찍하네.’
진백천은 마지막 남은 쇠창살을 얼음벽에 박아 고정하고는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투욱-
공동에 내려서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온몸으로 파고드는 한기였다.
한기가 일렁이며 그의 발목을 휘감았다.
그러자 겨울철 얼음물에 들어온 것처럼 손끝이 굳고 절로 눈이 뻑뻑해졌다.
단순히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얼어갔다.
우우우우웅-
진백천은 곧바로 내력을 끌어올리며 사지백해로 기운을 뻗었다.
내력이 한기를 밀어내며 그나마 몸의 떨림이 멈췄다.
단순히 버티는 것만으로도 이 지경인데 한풍이라는 게 불 때는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아무래도 가장 한기가 덜한 곳이겠지.’
진백천은 주변을 둘러보다 가장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한눈에 봐도 인위적으로 구멍이 뚫린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향하자 여러 개의 눈덩이가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설마?’
진백천은 다급하게 가장 가까이 있는 눈덩이를 부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드러난 것은 꼬질꼬질하면서도 익숙한 장개의 얼굴이었다.
“장개! 정신 차려!”
“……으으음? 누, 누구?”
장개는 푸르게 변한 얼굴로 힘겹게 진백천을 올려다봤다.
이미 몸은 얼음장처럼 변해서 죽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시 스르륵- 잠들려고 하는 모습에 진백천은 다급히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짜악-
“지금 다시 잠들면 정말 죽는다고.”
“졸…… 려어어.”
진백천은 눈 속에서 강제로 장개를 빼내며 여러 차례 뺨을 후려쳤다.
하지만 고통마저 잘 느끼지 못하는 듯 인형처럼 몸이 흔들렸다.
감긴 눈은 다시 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쯧. 이대로는 안 되겠어.”
진백천은 한 손으로는 그의 명문혈에 대고 기운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다른 손으로 삼매진화를 일으켜 그를 휘감았다.
화르르르륵-
한기에 의해 불길이 급격히 사그라들었지만 장개를 감싸는 것 정도는 충분했다.
차가워졌던 몸이 금세 따듯해지며 혈기가 돌았다.
“……따듯…… 아니…….”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장개는 어느 순간 눈을 부릅뜨더니 비명처럼 소리를 내지르며 펄쩍 뛰었다.
“허억! 뜨, 뜨거워!”
그의 치렁치렁한 머리가 불에 타오르면서 순식간에 머리가 곱슬로 변해 버렸다.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냄새와 함께 연기는 덤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기운을 차렸는지 놀란 얼굴로 진백천을 쳐다봤다.
“……이놈아! 하마터면 타 죽을 뻔했잖아!”
“얼어 죽는 것보다 낫지 않아?”
그는 정신이 드는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금 자신이 있던 곳이 팔한지옥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젠장…… 그건 그렇지.”
“그나저나 눈 속에는 왜 들어가 있던 거야?”
“한풍에 버티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불어오기 전에 눈 속에 파묻혀서 귀식대법(龜息大法)을 사용했지만. 뭐. 네가 안 왔으면 이래저래 죽었겠지.”
귀식대법은 호흡을 멈추고 신진대사를 극도로 낮춰서 심장의 박동까지 멈추고 인위적으로 체온을 하강시키는 수법이었다.
태상장로를 비롯해 개방의 무인들은 추위를 버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곧 장개는 진백천을 쳐다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여기에 와있는 거냐? 설마 우리를 구하려고?”
“자세한 건 다른 사람들부터 꺼내고 이야기해.”
“알았다!”
그는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서인지 활기차게 움직였다.
차례대로 눈 속에서 사람을 꺼내 진백천이 기운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삼매진화로 몸을 녹여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허억! 타, 타들어 간다!”
하나같이 안락한 표정을 짓다가 기겁하며 깨어나는 것은 똑같았다.
다행히도 적의단 무인들까지 죽은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마지막은 태상장로님뿐인가?”
진백천은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마지막 남은 눈덩이를 깨뜨렸다.
주름진 태상장로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의 상태가 다른 이들에 비해 유난히 심각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내부까지 얼어붙었다. 이대로면 삼매진화도 소용없겠어.’
진백천은 서둘러 그를 앉히고 뒤편에 앉아서 내력을 불어넣었다.
노도와 같은 기세의 내력이 혈도를 타고 언 장기를 녹이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으로 뜨거운 열기가 아지랑이치며 피어올랐다.
“커헉!”
태상장로는 검게 죽은 피를 토하며 몸을 거칠게 떨었다.
얼었던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고통이 전신을 휘감았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곧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회주인가?”
허연 수염에 묻은 피는 그 짧은 사이에 얼어 부러지듯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서 전해지는 현기는 가려지지 않았다.
“네. 맞습니다. 잘 지내셨죠?”
“……잘 지내긴. 죽지 못해 버티는 중이었지!”
말과 달리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백천이 아니었으면 진즉에 요단강 건너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도 소식이 없어서 제가 먼저 찾아왔습니다. 이제 나가셔야죠.”
밖으로 나가는 곳에 쇠창살을 박아 놨으니 그들을 올려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몸을 회복한 지금이야말로 가장 탈출하기 좋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태상장로는 무엇 때문인지 고개를 저으며 진백천의 팔을 잡았다.
“그 전에 자네에게 보여줄 것이 있네!”
그가 안내한 곳은 진백천조차 발견하지 못한 작은 틈새였다.
그리고 그 안에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화옥(火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