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303화 (303/346)

무림회귀백서 303화

102장 북해의 꺼지지 않는 불길(4)

철관표의 놀람과 달리 진백천은 죽을 맛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화로에서 전해지는 음기가 생각보다 더욱 강했다.

‘흐음! 주변의 한기를 머금으면서 더 지독해졌어.’

화로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지만 바닥에서 전해지는 음기로 인해 몸이 덜덜 떨렸다.

위는 뜨겁고 아래는 차가운 기이한 상황이었다.

진백천은 일부로 더 내력을 쏟아부으며 불길을 키웠다.

철괴를 녹이고 자시고 할 게 아니라 먼저 남아 있는 음기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화아아아아악-

불길이 맹렬히 솟은 만큼 내력이 빠르게 소모되었다.

마찬가지로 철괴가 녹으며 붉은 쇳물로 변해 흘러내렸다.

쇳물이 떨어지며 사방으로 튀었지만 아무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철괴가 녹다니! 이렇게 된 이상 단숨에 밀어붙인다!”

“알겠습니다!”

철관표의 외침에 북해의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도 다 같이 모여 내력을 쏟아부었다.

진백천보다 덜하지만 모인 내력은 불길에 더해졌다.

주르르륵-

흘러내리는 쇳물이 화로를 덮으며 서서히 모양을 갖추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과정이 이루어져서 그런지 문제가 생겼다.

아직 화로 아래쪽의 온도가 달궈지지 않아서 흐른 쇳물이 빠르게 굳으며 떨어져 나가려 했다.

“……안 된다!”

철괴의 양은 정확히 화로를 만들 정도만 있었다.

만약 저것이 떨어져 나간다면 화로는 완성될 수가 없었다.

철관표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양손에 가죽을 두른 채로 화로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거침없이 철판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치이이이이익-

“허억! 촌장님! 위험합니다!”

“이거 놔라! 어서 연료나 더 넣어!”

살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났는지 말리려 다가오는 자를 밀쳐내며 더욱 철판을 밀어붙였다.

“크흐윽! 북해의 불길은 결코 꺼져서는 안 돼애애!”

얼핏 광기마저 느껴지는 외침이었다.

하지만 그 혼자로는 무리였다.

곧 철판이 들썩이며 떨어져 나갈 듯 흔들렸다.

그때 그 옆에 누군가 철관표와 마찬가지로 철판을 밀어붙였다.

치이이이익!

“끄아아아악!”

아까까지만 해도 화금석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남자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마을 사람들이 연달아 달라붙었다.

그들이라고 이곳을 떠나고 싶어서 화금석을 달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화로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멍하니 지켜볼 이들은 없었다.

“……촌장님 말씀대로……! 화로는 꼭 만들어져야……!”

그들의 바람 때문이었을까.

떨어져 나가던 철판은 곧 화로 안이 뜨거워지며 다시 달라붙었다.

그리고 화로 전체에 열기가 돌면서 붉게 달아오름과 동시에 주변으로 열기가 퍼져 나갔다.

“……됐다! 화로가 완성되었어!”

“으하하하하! 정말로 되다니!”

사람들이 화상 입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직이야! 다들 마음 놓지 마! 지금이라도 불이 꺼지면 끝이야!”

철관표는 이번에도 사람들을 단속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준비해놓은 나무와 연료를 화로 안으로 던져넣었다.

손이 검게 타들어 가서 불편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화금석은 충분해. 문제는 숯과 연료야. 불길을 유지하려면 그것들이 필요해!”

그의 외침이 허공을 멤돌았다.

지금 이대로면 진백천이 내력을 불어넣는 것을 빼내면 불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름.

그때 무너진 담벼락으로 진백천 때와 마찬가지로 누군가 고개를 내밀었다.

“험험. 혹시…… 숯과 연료가 필요하다 하셨습니까?”

이마에 표협(慓俠)이라고 적힌 두건을 이마에 두르고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표협 표국의 표청이었다.

* * *

표협 표국의 표두인 표청은 요녕에서 진백천과 헤어진 뒤 쉬지 않고 북해로 향했다.

이미 오고 다닌 경험이 있기에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막상 북해의 교역소까지 온 표협 표국은 커다란 문제에 맞닥뜨렸다.

“대체 왜 교역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그건 우리도 자세히 말할 수 없으니 그냥 돌아가시오!”

북해의 무인들이 그들을 가멸차게 밀어내며 문조차 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중원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잔뜩 쌓고 온 물건들은 썩거나 무용지물이 될 지경이었다.

“표두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 빙궁이 물건을 받지 않는다면 북해의 마을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보자.”

“네. 표두님!”

원래대로라면 마을에 들릴 것도 없이 빙궁의 교역소에서 모든 거래가 이루어졌다.

지금은 그러지 못하니 차선책으로 마을로 향했다.

하지만 곧 들어선 마을에는 그 흔한 인기척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흐음. 분명 여기가 맞을 텐데. 그사이에 다른 곳으로 이동한 건가?”

“앗. 표두님. 저 안쪽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표사 중 하나가 말한 대로 마을 중앙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불꽃이 일렁이며 피어올랐다.

“흐음. 축제라도 열고 있는 건가?”

그들은 수레를 끌고 그곳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곧 마주한 것은 하늘 높이 피어오르는 열기였다.

밤하늘을 수놓는 불똥은 마치 쏟아지는 별처럼 환상적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표청은 혹시 모르니 그들을 두고 표사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마을 중앙에 다다랐을 때 본 것은 붉게 달아오른 화로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저기 말씀 좀…….”

“바쁘니까 잡지 마시오!”

“어서 날라! 부족하면 가까운 집이라도 부수라고!”

그들은 외부인이 왔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땔감을 날랐다.

몇몇 사람들은 부상을 당한 듯 몸 여기저기가 까맣게 탄 상태였다.

표청은 머쓱하게 그들을 따라갔다.

무너진 담벼락에 가까워지자 노인의 쇳소리 같은 탄식이 들려왔다.

“화금석은 충분해. 문제는 숯과 연료야. 불길을 유지하려면 그것들이 필요해!”

누군가에게는 통탄이었지만 표청에게는 손님이 부르는 종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는 다급하게 안쪽으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험험. 혹시…… 숯과 연료가 필요하다 하셨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리고 이내 시선은 이마에 메인 두건으로 이어졌다.

“……표국?”

“맞습니다. 음식부터 땔감과 자재까지 없는 게…….”

철관표는 그 말에 미친 사람처럼 다가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표청은 그의 화상 입은 손에 놀라면서도 입은 멈추지 않았다.

“……약재와 연고약도 있으니…….”

“그런 거 말고! 숯과 기름도 있나?”

“험험. 물론입니다. 얼마나 필요하신지 말씀하시면…….”

“전부 필요하네! 전부! 지금 당장 여기로 가져오게!”

표청은 자기도 모르게 활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물론입니다. 손님!”

그리고 곧 물건을 실은 수레가 중앙에 당도했다.

하지만 가장 큰 난관이 하나 남아 있었다.

“……물건값은 선불입니다.”

표청의 말에 철관표는 풍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덜덜 떨었다.

보통이라면 북해에서밖에 못 구하는 동물의 가죽을 많이 거래했겠지만, 그마저도 먹을거리가 없어 삶아 먹은 후였다.

돈으로 거래하려 해도 턱없이 부족했다.

“……외상은…….”

“절대 불가입니다.”

표청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들도 이곳까지 어떻게 왔는데 물건값을 일부도 아니고 전부를 외상으로 줄 수는 없었다.

표국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 오묘한 신경전이 벌어지려는 찰나.

누군가 표청을 보며 인사를 해왔다.

“어어? 표청 표두 아니십니까?”

그에게 아는 척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도홍경이었다.

표청은 도홍경과 그 옆에 서있는 중혁의 얼굴을 알아봤다.

“아니? 두 소협께서 여기는 무슨 일로……?”

동시에 화로 앞에 앉아 있는 진백천을 발견하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협!”

진백천을 알아본 표청은 그가 마을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흔쾌히 외상으로 물건을 풀었다.

그로 인해 한번 목숨을 구했을뿐더러 그의 정체를 악살신괴로 알고 있는 이상 외상을 받아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곧 화로에는 숯과 땔감이 가득 차서 불꽃이 여유롭게 타올랐다.

‘후우. 이제 슬슬 내력이 없어도 화금석만으로 불길이 유지된다.’

지독하게 방해하던 음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제서야 진백천은 마음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이럴 때 표국이 오다니. 천운이야.’

내력을 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표청이 반가운 얼굴로 포권을 취했다.

“대협! 여기에서 또 뵙다니 인연인가 봅니다!”

“그렇군. 이런 우연이라니.”

그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화로가 가동되면서 연결된 집집 마다 따스한 온풍이 흘렀고 따스한 물이 흘렀다.

거기에 표국이 가져온 먹을거리로 인해 사람들이 배불리 먹으니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은인! 촌장님께서 집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곧 백풍이 진백천에게 다가와 촌장의 집으로 안내했다.

그는 화로를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전부 지켜봐서인지 진백천을 올려다보는 눈빛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 자리에는 표청도 함께였다.

집으로 들어가자 은은한 훈풍이 불어왔다.

화로와 연결된 통로에서 뿜어지는 열기 덕분이었다.

“차 한잔하겠나?”

“차보다는 술이 좋죠.”

촌장은 별말 없이 싸구려 백주를 꺼냈다.

그가 유일하게 가진 술이었다.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도저히 가능하지 못했을 일이야.”

“다 돕고 돕는 거죠.”

촌장의 양손은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아마 회복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듯 보였다.

진백천의 말에 담긴 속뜻을 느낀 그는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빙궁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도와주시죠.”

“……끄응. 빙궁이라.”

촌장은 어느 정도 예상은 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왜냐하면 태상궁주도 자신의 마을에서 안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전혀 달랐다.

“빙궁이 완전히 외부와의 출입을 틀어막았네. 괜히 들어가려 하다가는 크게 다치는 수가 있어.”

“맞습니다. 대협. 저희 표국도 교역소에 들어가려 했지만 불가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몰래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거잖아요. 촌장님이라면 아실 거 같은데.”

철관표는 아무 말 없이 침음성을 흘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빙궁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 오가며 연락하고 물건을 주고받는 비밀통로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마저 제대로 통하지 못한 것이 몇 달째였다.

“위험할 수도 있어.”

“몰래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우선은 살펴보는 게 목적이라서요.”

우선은 그랬다.

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부탁 아닌 부탁을 받아들였다.

화로를 그가 고쳐준 이상 어차피 거절할 권리도 자신에게는 없었으니까.

“오늘 새벽 가장 어두울 때 움직이도록 하지. 그편이 자네에게도 좋겠지?”

“물론입니다.”

진백천은 중혁과 도홍경을 쳐다봤다.

그들은 추위로 불그스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앞에 놓인 술잔을 비우며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향도 없고 도수가 쓸데없이 높은 싸구려였다.

하지만 진백천은 그 무엇보다 더 달콤한 술을 마셨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거참. 기가 막힌 술이네요.”

“응? 그냥 싸구려 백주인데…….”

“지금의 저한테는 그렇지 않아요. 남은 술은 제가 가져가도 되죠?”

촌장은 의아한 기색으로 술병을 건넸다.

진백천은 품속을 뒤져 1천 냥짜리 전표를 몇 장 꺼내놓았다.

“명주니. 이 정도 값은 하겠죠.”

멍한 표정의 철관표를 남겨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값이란 명목으로 표국에 갚을 돈을 건네준 것이다.

저 돈이면 이번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다시 예전의 활기를 찾는데 충분히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그가 나오자 도홍경이 혀를 차며 감탄했다

“크으. 옛말에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고 하더니 역시 형님이십니다.”

“내가 그렇게 개처럼 벌었냐?”

“돈 버는 모습만 보면 개보다는 늑대에 가깝긴 하죠.”

도홍경의 장난에 중혁마저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들이 올 때까지만 해도 귀신이 사는 곳 같던 마을은 어느덧 활기가 돌았다.

“쯧. 돈 따위보다 얼마나 훈훈하고 좋냐.”

“맞습니다.”

“우리도 고생했는데 푹 쉬자.”

그들은 뛸 듯이 촌장이 미리 배정해 준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새벽이 될 때까지 온기를 느끼며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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