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회귀백서-302화 (302/346)

무림회귀백서 302화

102장 북해의 꺼지지 않는 불길(3)

눈만 꿈뻑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쓰러지듯 앉아 있던 촌장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물론이지! 불만 피워줄 수만 있다면야 뭐든 내줄 수 있네!”

“……잠깐 촌장님! 처음 보는 자를 어떻게 믿고 화로를 맡깁니까?!”

“위험합니다! 화로의 화금석을 노리는 걸 수도 있습니다!”

그를 제외한 모두가 진백천을 믿을 수 없다고 말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난데없이 나타나 신원도 확인 못 한 자였다.

하지만 뒤이어 나타난 백풍이 나서서 그들을 설득했다.

마을 사람들은 사냥꾼인 백엽과 그의 아들인 백풍을 잘 알았다.

“저분은 정도회에서 오신 분이라고 하셨어요. 제 동생들을 구해주시기도 하셨고요.”

“정도회라고?”

“네! 저번에 오셨던 태상장로분들 하고도 아는 사이시고요.”

맞냐는 듯이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진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처음 보는 사람의 백 마디 말보다 아는 사람의 한 마디 증언이 더 효과적이었다.

‘확실히 태상장로께서 잘하고 가셨나 보네.’

그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목줄에 핏발을 세우던 자들도 잠잠해졌다.

철관표는 그제서야 희망에 찬 얼굴로 진백천에게 다가왔다.

“화로를 어떻게 고칠 수 있다는 건가? 자네가 기술자로는 보이지 않는데…….”

“화로를 다시 쌓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해주세요. 저는 불길을 피워 올릴 테니.”

철관표에게 화로를 다시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지금까지 불을 피우지 못한 것은 그 안에 남아 있는 극음의 기운 때문이었다.

“화로를 부순 자가 그 안에 극음의 기운을 뿜어냈지. 분명 화로를 다시 가동하지 못하게 만들 셈이었을 거야.”

그때를 떠올리며 철관표는 이를 악다물었다.

극음의 기운은 북해의 영하의 기온과 합쳐져 불을 피우려 해도 다시 사그라들게 만들었다.

“자네가 그 기운을 이겨내고 불을 피울 수 있겠나?”

철관표는 그러한 질문에 진백천은 어깨를 으쓱이며 오른팔을 덮고 있던 물표범 가죽을 벗겨냈다.

그리고 손바닥을 펼치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화르르르르르륵-

“허억! 부, 불이다!”

그의 손바닥에서 피어오른 것은 삼매진화(三昧眞火)의 수를 이용해 내력을 불태워 만든 불길이었다.

불길은 마을 사람들이 올려다볼 수 있을 만큼, 1장 높이까지 활활 타올랐다.

‘흐음. 금혈화린어 내단 탓인가? 의외로 불길이 더 거센데?’

순간적으로나마 주변이 열기로 훈훈해질 정도였다.

“저렇게 어려 보이는 자가 이만한 내력이라니?”

진백천은 서서히 불길을 꺼드리며 주변을 살폈다.

지금까지 못 미더워하던 이들의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다.

“이 정도면 살펴봐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어서 비켜드려!”

모두 슬금슬금 비켜서며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진백천은 성큼성큼 화로 앞까지 걸어가 그 안쪽을 살폈다.

철관표의 말대로 극음의 기운이 땅속 깊숙이까지 침범한 상태였다.

단순히 살펴본 것만으로도 인상을 절로 찌푸려졌다.

‘후우. 지독할 정도로 강한 음기야. 이 정도면 단순한 북해빙궁의 무인이나 마인이 아니겠는데?’

만약 그 대상이 사람이었다면 맞는 즉시 얼음조각이 되어 산산조각이 되었을 터였다.

진백천은 화로에서 떨어지며 옆에 서 있는 철관표를 향해 물었다.

“혹시 화로를 이렇게 만든 자가 누군지 아세요?”

철관표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사실이야. 비밀을 지켜준다면…….”

“물론이죠. 말씀해 주세요.”

그는 마을 사람들도 듣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빙궁의…… 소궁주였네.”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 * *

“소궁주? 그가 왜 화로를 꺼뜨려요?”

“그거야 나도 잘 모르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얼굴을 가리고 마인들과 함께 왔고 화로를 이렇게 만들어놨다는 것뿐이야.”

철관표는 오랜 시간 화로의 화금석을 담당하면서 빙궁에도 여러 차례 방문한 적 있었다.

화로는 북해의 마을뿐만 아니라 빙궁 안에도 존재했으니까.

그러면서 여러 차례 소궁주들을 봤고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첫째 아니면 둘째요?”

“그건 나도 모르지. 그들은 전부 쌍둥이니까.”

“쌍둥이요?”

“몰랐나 보군. 막내까지 전부 세쌍둥이야. 얼굴과 키 생김새가 전부 같지.”

‘흐음. 쌍둥이란 말이지.’

그렇다면 철관표의 말대로 단순히 얼굴만 보고는 그들을 분간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같은 소궁주들이니 무공도 비슷하게 익혔을 테니까.

하지만 그동안 보고 받았던 것만으로 예상해 보자면 갇혀 있다는 셋째는 당연히 아니고, 아마도 1공자나 2공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빙정을 노렸다고 하니 더 강해지기 위해서였을 게 분명했다.

‘이건 빙궁에 들어가면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지.’

“화금석과 숯은 비축해 둔 것이 있어서 일단 불만 피우기만 한다면 불길을 유지할 수 있어. 만약 자네가 저 극음만 지워낼 수만 있다면 말이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철관표의 얼굴은 회의적이었다.

왜냐하면 단순히 불을 붙였다고 끝이 아니라 그것을 유지해야 했다.

화로 안에 적정 온도가 되고 한기를 버텨낼 수 있으려면 적어도 일주야는 쉬지 않고 불길을 쏟아내야 했다.

문제는 지금의 연료가 그렇게 하기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었다.

“연료가 부족한 거 아니에요?”

진백천의 물음에 철관표가 고개를 저었다.

“내 집이라도 부숴서 넣을 테니 걱정 말게. 그게 부족하다면…….”

-그 이후는 내 몸을 불태워서라도 유지할 테니.

그 뒷말은 철관표의 속마음이었다.

진백천의 그의 강한 의지를 읽으며 괜히 더 묻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말한 대로 불을 강하게 지피면 될 뿐이었다.

‘그 후에는 차차 생각하자고.’

“제가 내력을 살피는 동안 화로를 최대한 복구해 주세요.”

“그러지. 나만 믿게!”

방금까지 다 쓰러져가던 노인이었던 철관표는 눈에 힘을 주며 움직였다.

그에 따라 마을 주민들도 모처럼 만에 한마음으로 움직였다.

가장 먼저 주춧돌을 쌓아 화로에서 불길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겉은 뚫린 구멍은 눈을 단단히 뭉쳐서 막았다.

불이 강해질수록 눈이 녹으며 바람구멍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괴를 모아 화로 위쪽에 차곡차곡 쌓았다.

“저 철괴가 불길에 흘러내리며 주변을 덮으면 화로가 다시 완성되겠지.”

북해라 그런지 과연 화로를 만드는 방법도 특이했다.

철관표는 그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화로 옆에 연료를 잔뜩 쌓아놨다.

역시나 그 양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각자 집에서 남은 기름이 있으면 가져오게.”

“……알겠습니다.”

마음 사람들은 먹을 것이 부족했지만 화로가 우선임을 알기에 가져왔다.

화로만 가동된다면 추워서 얼어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게만 되면 물고기든 뭐든 사냥해서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때쯤 되자 운기조식을 하던 진백천도 준비를 끝내고 눈을 떴다.

“후우.”

온몸에 충만함이 느껴지며 금방이라도 포효를 하며 용솟음칠 듯 내력이 들끓었다.

어느새 주변은 서서히 어둠이 찾아왔다.

‘좋았어. 몸 상태는 최상이야.’

“가자.”

“네. 형님.”

“내력을 불어넣는 동안 옆에 서 있겠습니다.”

“부탁할게.”

호법을 서고 있던 도홍경과 중혁이 옆에서 같이 걸어갔다.

혹시라도 그가 내력을 쏟아내는 중에 공격을 당하면 큰일이었다.

그렇기에 중혁과 도홍경은 싸늘한 얼굴로 그 뒤에 서서 주변을 노려봤다.

날카로운 분위기에 마을 사람들은 움찔거리며 다가가지 못했다.

“저 철괴가 전부 녹아 흘러내려 굳게 되면 완성이라 이거죠?”

진백천은 철관표에게 다시 한번 과정을 들었다.

“맞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이어받아서 내력을 불어넣겠네.”

마을 사람들 중에서도 무인은 존재했다.

진백천이 아무리 강자라 해도 혼자서 화로를 유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쯤은 그들도 잘 알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하죠.”

화로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진백천은 뭔가를 생각해내고 품속에서 화금석을 꺼냈다.

화로 안에 들어 있는 것들 보다 몇배는 더더욱 컸다.

철관표는 한눈에 화금석의 정체를 알아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도광귀가 갖고 있던 화금석 아닌가? 그걸 자네가 어찌?”

“선물로 받아서요.”

진백천은 그것을 화로 앞에 던져 넣음과 동시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내력을 머금은 화금석들이 점점 붉게 달아오르며 열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처음 시작은 화로 안의 눈이 증발하듯 증기로 변해가는 것부터였다.

뒤이어 화금석 위로 옅은 진노랑색의 불길이 일렁이며 피어올랐다.

화르르르륵-

불길이 일자 철관표와 마을 사람들이 바빠졌다.

적어도 한시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진백천의 내력과 화금석들이 극음의 기운을 이겨내며 단숨에 불이 붙은 것이다.

“다들 연료를 집어넣어! 불길을 죽이지 마!”

“서둘러!”

기름과 숯을 쏟아 넣자 불길이 몇 배는 더 커졌다.

화로 주변으로 불길이 일렁이며 어두워진 주변이 환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겉보기뿐.

땅속과 주변에 깃든 극음의 기운은 여전히 불길을 향해 뻗어왔다.

‘이거 꽤나 시간이 걸리겠는데?’

진백천이 더욱 본격적으로 내력을 끌어올리자 두 눈과 마찬가지로 불길마저 백색으로 타올랐다.

드드드드득-

주변에 덮인 눈이 급속도로 녹으며 바람구멍이 생겨났다.

그 틈으로 불길이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며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불길은 화로 속에서 어지럽게 휘적이며 본능대로 하늘로 솟구쳤다.

철괴들로 단단히 막혀 있는 곳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철괴가 녹기 시작한다!”

“정말…… 화로를 고칠 수 있겠어!”

화르르르르륵-

사람들은 연료를 만들기 위해 안 쓰는 창고라도 부숴서 땔감으로 만들어왔다.

끊임없이 집어넣는 연료는 넣자마자 연소하며 사라졌다.

진백천의 7갑자 가까운 내력이 만들어내는 화기를 연료들이 보조하지 못했다.

“이익! 안 되겠다! 전부 집어넣어라! 쏟아 넣어!”

철관표는 직접 삽을 들어 화로 안으로 연료를 퍼 넣었다.

튀는 불똥으로 살이 타들어 갔지만 불길에 철괴가 녹는 것이 보이는 지금 이깟 고통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괴물이구나! 괴물이야!’

철관표는 이를 악다물며 삽질을 해댔다.

하지만 이내 지쳐 널브러지듯 옆으로 쓰러졌다.

뒤이어 다른 이가 삽을 이어받아 움직였다.

그는 바닥에서 숨을 헐떡이며 화로와 진백천을 지켜봤다.

‘괴물이다! 괴물이야!’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꽤나 많은 강자를 봐왔다.

북해빙궁의 궁주도 그 안에 포함되었고, 화금석을 얻으러 돌아다니며 봐온 수많은 중원의 무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가 봐온 이들 중에서 단연코 진백천과 같이 강한 내력을 소유한 이는 없었다.

‘쓰러진 궁주도 저 정도는 아니었어!’

그도 그럴 것이 진백천이 내뿜는 내력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강해졌다.

처음에 그 위력만 보고 전력을 다했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력을 조절하며 내뿜고 있는 거야.’

다른 말로 하자면 여전히 여력이 남아 있다는 소리.

‘이런 자가…… 북해에 나타나다니!’

철관표의 시선이 화로뿐만 아니라 저 멀리 외로이 서 있을 빙궁으로 향했다.

그의 가슴에 북해의 찾아온 추위가 어쩌면 저자로 인해 조만간 사라지지 않을까란 기대감으로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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