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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301화 (301/346)

무림회귀백서 301화

102장 북해의 꺼지지 않는 불길(2)

빙정.

또 다른 말로 만년빙정(萬年氷精)이라고도 불리며 북해빙궁의 보물이었다.

극음(極陰)에 해당하는 무공을 익힌 자가 섭취하게 되면 일반적인 영단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난 성취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북해빙궁에서는 빙정을 모아두는 빙정고(氷精庫)을 만들어 그것은 철저하게 관리했다.

‘그런 빙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었지.’

단순히 극음의 기운이 뭉치는 곳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백엽이 하는 말은 그 빙정의 생성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마인들은 화로를 무너뜨리고 그 밑을 한참이나 파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곳에서 나온 것은 다량의 빙정들이었습니다.”

‘흐음. 그랬던 건가?’

극양과 극음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다.

화로가 쉬지 않고 양기를 뱉어내는 동안 그 아래에서는 음기가 계속해서 축적된 것이다.

마인들은 그렇게 발견된 빙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아 빙궁으로 돌아갔다.

당연히 남겨진 것은 파괴된 화로와 마을 사람들뿐이었다.

“그래서 외곽으로 온 거예요?”

“그나마 물고기를 잡기도 이곳이 덜 추운 편입니다. 제 두 딸이 몸이 안 좋기도 하고 말입니다.”

두 딸을 향한 백엽의 시선에 온기가 담겼다.

하지만 도홍경이 놀란 것은 그나마 이곳이 덜 춥다는 말이었다.

“……그러면 저 안은 얼마나 춥다는 겁니까?”

백엽은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 이내 좋은 말을 떠올렸다.

“북해빙궁 근처에는 동물들이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마인들 때문에요?”

“그곳을 돌아다니면 전부 얼어 죽으니까요.”

“…….”

그것만큼 적절한 설명이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는데 우리끼리 가는 건 무리겠지.’

그렇다면 백엽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혹시 마을까지 우리를 안내해 줄 수 있나요?”

“죄송합니다. 아픈 딸아이들을 두고 떠날 수는 없습니다.”

진백천은 충분히 그의 결정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끼리만 마을로 갈 생각도 없었다.

“아이들 때문이라면 제가 잠깐 아이들을 살펴보죠.”

“……의원이십니까?”

“남들보다야 조금은 더 잘 알죠.”

백엽은 기대 어린 표정으로 딸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진백천은 아이를 차례대로 진맥하며 상태를 살폈다.

아이 둘 다 지쳐 있는 것을 제외하면 내부에는 딱히 문제는 없었다.

다만 코의 점막에 피가 맺혀 있고 손끝이 지나칠 정도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단순히 추워서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진백천이 아이들의 증상에 대해 묻자 백엽은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이 설명했다.

“갑자기 증상이 나타난 것은 이곳에 이사 온 직후부터입니다. 처음에는 몸에 기운이 없이 자꾸 힘들어하길래 감기라도 걸린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코피를 흘렸습니다.”

“코피는 잘 멈추지 않았죠?”

“……맞습니다! 혹시 왜 그런지 아십니까?”

증상을 듣자 그제서야 두 아이의 병명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혹시나 해서 입을 벌려 안쪽을 확인하니 이가 약하게 흔들리면서 잇몸에서 피가 흘렀다.

“괴혈병(怪血甁)이에요.”

“괴, 괴혈병? 그게 뭡니까?”

중혁과 도홍경도 처음 들어보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이름만 듣기에는 무척이나 무서운 병명이었다.

하지만 그런 병명과 다르게 드물지만 어렵지 않게 고칠 수 있는 병이었다.

“말 그대로 피가 멈추지 않는 병인데 보통은 잘 걸리지 않아요.”

신선한 야채를 조금만 섭취해도 괴혈병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북해에 그런 것이 있을 리 없고 대신 생선이나 동물의 신선한 피와 장기에서 영양분을 대체했다.

이러한 설명에 백엽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구석에서 잡아놨던 물고기를 꺼내왔다.

잡아 온 즉시 한기에 꽁꽁 언 상태였다.

“혹시 이거라도 괜찮겠습니까?”

“익히지 않은 생살이라면 괜찮을 거예요.”

그는 꽁꽁 언 생선을 해동하기 위해 맨살로 감싸 안았다.

분명 차가울 텐데도 얼굴에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는 딸 아이들이 징그러운 것을 싫어하기에 생선의 내장과 피는 전부 제거하고 익힌 살코기만 주었었다.

그 나머지 것은 첫째 아들인 백풍과 그의 차지였다.

“제 나름대로 딸아이들을 생각한다고 한 것이 문제였다니. 전부 제 탓입니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진백천은 백엽에게 생선을 받아 간단하게 토막 냈다.

그의 마음은 잘 알지만 생선이 다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건 시간 낭비였다.

한입 크기로 작게 잘라낸 날생선으로 잘게 저며서 아이들에게 먹였다.

자고 있던 아이들은 그제야 퀭한 눈을 뜨며 그를 올려다봤다.

“으음? 이건 뭐예요?”

“약이야.”

“……그러면 안 아플 수 있어요?

“응. 물론이지.”

생선에 핏기가 남아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은 비린 맛에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하나도 남김없이 꼭꼭 씹어 먹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진백천은 조심스레 아이들의 수혈(睡穴)을 짚어 잠을 재웠다.

그리고 자신의 내력을 은은히 불어넣어 몸의 기운을 복돋았다.

백지장처럼 하얗던 얼굴이 금세 불그스름해지며 생기가 돌았다.

“……이제 된 겁니까?”

“그럭저럭이요. 앞으로는 익힌 생선 말고도 날생선도 함께 드세요. 적어도 신선한 채소나 곡물이 다시 들어오기 전까지라도요.”

“감사합니다. 은인.”

백엽의 입에서 진백천을 부르는 호칭은 어느새 은인으로 바뀌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난 아이들은 정말 기적처럼 몸 상태가 호전되었다.

입안에 흐르던 피는 멎은 지 오래였고, 퀭한 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초롱초롱했다.

“와아. 이제 안 아파요!”

“나도나도!”

어제까지 자리에 앉아만 있던 아이들은 벌떡 일어나더니 폴짝폴짝 뛰었다.

그것도 모자라 육포죽을 한 그릇을 비우기도 했다.

백엽은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마을로 들어가신다고 하셨죠?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그의 말을 반대한 것은 첫째 아들인 백풍이었다.

“아버지. 저분들은 제가 안내할게요. 저도 이제 마을까지는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요.”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집에는 어른이 필요했다.

마을이라면 몰라도 이곳에서 날짐승이 나타나면 백풍과 두 동생은 꼼짝없이 위험에 처했다.

그 사실은 아는 백엽도 고민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절대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마라. 내가 알려준 길만 따라가.”

“그럴게요.”

안내인이 정해지자 일행은 곧바로 다시 눈길을 걸어나갈 준비를 했다.

백엽은 진백천이 입은 가죽옷들을 보더니 구석에서 뭔가를 가져왔다.

털은 없었지만 지방이 두툼한 흑색의 가죽이었다.

“북해에서는 그렇게 두꺼운 털가죽은 오히려 방해만 됩니다. 땀이나 물에 얼어서 오히려 더 몸이 차가워지니까 말입니다.”

“어쩐지! 몸만 무거워지고 춥기만 하더라더니!”

도홍경은 두껍게 입은 가죽을 벗었다.

“그건 무슨 가죽이에요?”

“북해에 사는 물표범 가죽입니다. 지방이 많아서 겉에 걸쳐 입기만 해도 훨씬 더 따듯할 겁니다.”

미끄덩거리는 촉감이 좋지 않았지만 그의 말대로 걸쳐 입으니 훨씬 더 체온이 유지가 되었다.

“호오. 좋은데?”

진백천은 물표범 가죽에 만족했다.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날씨만 좋으면 하루가 안 되어서 바로 도착합니다.”

가장 앞에선 백풍이 자신만만하게 그들을 안내했다.

다행히도 날씨는 무척이나 쾌청했다.

계속해서 진백천을 괴롭히던 눈바람도 없었고 간혹가다 햇빛이 비치기도 했다.

“바로 저기입니다.”

그 덕분에 그들은 해가 지기 전에 북해의 마을에 도착했다.

* * *

진백천이 본 북해의 마을은 무척이나 싸늘했다.

얼핏 보면 유령 마을처럼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한창 저녁을 준비하느라 연기가 올라야 했지만 수십 채의 집에서 그런 곳은 눈에 띌 정도로 적었다.

“사람이 사는 건 맞지?”

“맞습니다. 지금은 화로가 꺼져서 그렇지 원래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백풍은 익숙하게 마을로 들어서며 그들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사람이 살고 있기는 한지 간헐적으로 집 안쪽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마을 중앙에서 시끄럽게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너진 담벼락 안쪽에는 반쯤 박살이 난 거대한 화로가 존재했고 사람들은 그 앞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고성이 오가는 것이 그 내용과 분위기가 제법 험악했다.

“화로의 화금석을 나누자니! 그것이 말이 되는 소린가?! 그렇게 되면 화로에 다시는 불을 피울 수 없게 돼!”

“어차피 다 죽게 생겼는데 화로 따위 무슨 소용입니까! 살 사람은 살고 봐야죠!”

“맞아요! 어차피 화로를 다시 피운다 해도 빙궁에서 또 꺼뜨리면요?!”

다투고 있는 것은 크게 두 부류였다.

화로를 지켜야 한다는 촌장인 철관표와 이제 다 끝났으니 화금석을 나눠 불이라도 지펴야 한다는 마을 사람들이었다.

하나같이 초췌한 얼굴들이라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해왔는지 역력히 알 수 있었다.

“이제 더는 촌장님 뜻을 따를 수 없습니다! 저희 애가 동상에 걸렸다고요!”

“조금만 참으면 상단이 올 거야! 그때만 되면……!”

“웃긴 소리 좀 그만하십쇼! 저번에 화로를 부쉈던 빙궁의 무인이 하는 소리를 못 들었습니까? 새로운 궁주가 뽑히기 전까지는 절대 상단이 오지 않을 거라잖아요!”

노로한 촌장은 절대로 안 된다는 듯이 무너진 화로 앞에 서서 마을 사람들을 쳐다봤다.

처음의 고집 있던 그의 마음도 박살 난 화로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아. 그렇다고 해도 이 화로는…… 희망이야. 희망마저 없어진다면 우리는 정말 끝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

화로의 유지를 위해 평생을 다 바친 철관표는 그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북해에서 화로를 다시 만드는 것은 단순히 중원에서 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막대한 양의 화금석과 불을 지필 연료가 들어갈뿐더러 관련된 기술자들도 필요로 했다.

지금은 겨우 그 토대를 유지 중이지만 화금석마저 다 써버린다면 화로의 재건은 언제 가능해질지 알 수 없어졌다.

“이제 중원에서조차 화금석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야! 화로가 없으면 우리는 전부 이곳에서 살 수 없어! 자네들도 잘 알지 않은가!”

몇몇이 촌장의 눈물을 머금은 눈동자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그런 것들을 모르지는 않았다.

“……촌장님 말대로 화금석을 구하기가 어려워져서 중원에서 제법 비싸게 사준다고 들었습니다. 그거라도 있으면 새롭게 터를 잡고 살 수 있을 겁니다.”

“어차피 이곳은 끝났습니다. 촌장님도 현실을 직시하세요.”

“북해는 마교 놈들이 들어선 이상 끝난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촌장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이곳의 화금석들은 전부 젊을 적의 그가 중원에서 구해온 것들이었다.

촌장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자리에 주저앉았다.

빙궁에서 찾아온 마인들이 화로를 부술 때만 해도 잃지 않던 희망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나오자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

“……그래. 자네들 마음대로…….”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때였다.

촌장의 말이 끝나기 전에 누군가 무너진 담벼락을 넘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을 물표범 가죽으로 둘둘 감은 진백천이었다.

“……외지인?”

“혹시 상단이 온 건가?!”

“아아. 상단은 아니고 그저 지나가는 사람인데요.”

결코 북해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어지는 진백천의 말에 더더욱 경악했다.

“저 화로 때문에 싸우는 거라면 제가 고칠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뭐?”

“화로를 고칠 수 있다고?”

진백천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번 맡겨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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