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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300화 (300/346)

무림회귀백서 300화

102장 북해의 꺼지지 않는 불길(1)

진백천의 일행이 처음부터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 쓰레기라 외친 것은 아니었다.

중원에서 내리는 것과 달리 뽀송뽀송한 눈송이는 밟을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

두 마리의 말은 거침없이 마차를 끌고 나아갔고 생각보다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대로면 너무 쉽겠는데?”

진백천은 상인에게서 산 육포를 질겅이며 여유를 즐겼다.

하지만 그러한 여유도 눈발이 심해지자 삽시간에 사라졌다.

살랑살랑 내리던 눈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날카로운 얼음조각은 피부에 닿으면 베일 듯 날카로워졌다.

거기에 태풍처럼 바람이 불어닥치자 체감온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날씨가 갑자기 왜 이래? 다들 마차 안으로 들어와.”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바람이겠거니 생각한 진백천은 화금석을 가운데 두고 물을 따듯하게 끓였다.

증기가 피어오르며 마차 안이 금세 훈훈해졌다.

하지만 바람은 한 시진이 지나도 하루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미쳤네.”

가만히 서 있던 마차는 눈에 휩싸여서 서서히 거대한 얼음덩이가 되어갔다.

그때부터 하늘에서 내리는 눈에 대한 환상이 깨지며 서서히 쓰레기로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말이 선 채로 딱딱히 얼어서 죽어버렸다.

거기에 마차까지 커다란 얼음덩이가 되어버리니 어쩔 수 없이 눈발을 뚫고 걸어야 했다.

“젠장. 지도상으로 보면 하루만 걸으면 되니까 고생 좀 하자.”

“네. 알겠습니다.”

하루 걷는 것쯤이야 뭐 대수겠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또 채 일다경이 지나지 않아 바뀌었다.

“……으으.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겠죠?”

“계속 일직선으로 걸어왔으니까 맞을 거야.”

중혁과 도홍경은 입술을 덜덜 떨어댔다.

처음엔 덥다 못해 쪄 죽을지도 모를 것 같다는 두꺼운 가죽옷도 이 날카로운 한기를 막아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으으. 혀, 형님. 저 얼어 죽을 거…… 같은데요.”

“잠깐 쉬고 가자.”

진백천은 눈을 단단하게 뭉쳐 벽을 쌓고 그 안에 공간을 만들었다.

중혁과 도홍경은 눈으로 집을 만든다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자 생각보다 포근하고 따듯했다.

그 안에 들어가자마자 화금석을 놓고 그 위에 냄비를 올렸다.

눈이 녹은 후에는 돌멩이처럼 언 육포를 넣어서 죽처럼 끓였다.

“후우.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북해를 무서워하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러게. 우리가 처음 왔던 날이 제일 날씨가 좋았지?”

놀랍게도 그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멈추지 않고 눈이 휘몰아쳤다.

그나마 화금석을 이용해 육포로 죽을 끓여 먹는 게 유일한 쉬는 시간이었다.

후르륵-

한번 단단하게 얼었다가 끓인 육포는 의외로 살점이 더 흐트러지며 부드러웠다.

소금간으로 짭짤해진 맛과 합쳐지니 한 끼로 때우기에는 괜찮았다.

따뜻한 것으로 배를 채우자 모두의 얼굴에 훈훈함이 맴돌았다.

“형님. 얼마나 더 가야 할까요?”

애초에 하루를 잡고 걸었던 것이 벌써 3일째였다.

하지만 사람은커녕 무너진 집터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눈길로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아. 그래도 꽤 왔으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진백천은 지도를 펼쳐서 확인했다.

나름 해가 뜨는 곳으로 방향을 유추해 걷고 있지만 그조차 어디쯤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행히 육포는 넘쳐나니까.’

진백천의 퉁퉁한 가죽옷 안은 대부분이 육포로 가득 차 있었다.

이대로 칠주야는 더 눈길을 헤매도 될 만한 양이었다.

“몸 좀 풀렸으면 이동하자. 밤이 되기 전에 최대한 걸어야 돼.”

“네. 알겠습니다!”

힘찬 대답과 달리 눈바람을 마주하자 자연스레 표정이 일그러졌다.

“……으으! 다시는 북해 따위에 발을 들이나 봐라!”

하지만 그런 고통 속에서도 걷는 보람이 있었는지 해가 지기 전에 작은 나무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북해로 넘어와 최초로 발견한 인가였다.

“……연기가 나고 있어요! 사람이 있습니다!”

중혁의 말대로 작은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쉬지 않고 뿜어졌다.

진백천과 일행은 그것을 보자마자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궁이에 끓고 있는 거대한 솥이었다.

그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던 가족은 화들짝 놀라며 진백천을 쳐다봤다.

그런데 그 표정이 어딘가 곰이라도 본 듯한 표정…….

“고, 곰이다!”

……이 아니라 실제로 곰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모습은 몇 겹이나 둘러 입은 곰 가죽에 눈까지 맞은 상태였다.

가족 중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다급히 일어나 창을 휘둘렀다.

“풍아! 동생들을 챙기고 물러서!”

단순히 사냥꾼이라 생각하기에는 창끝에는 서늘한 한기가 물씬 풍겼다.

진백천은 그 내력에 이채를 띄며 검날을 움켜쥐었다.

남자는 곰이 창을 끌어당기자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드러난 진백천의 얼굴을 보며 우뚝 멈춰섰다.

“……몸 좀 녹일게요.”

“사, 사람?!”

진백천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경악한 듯 두 눈만 꿈뻑였다.

* * *

집에 살고 있는 것은 스스로를 백엽이라 소개한 남자와 세 명의 아이였다.

백엽은 불시에 집에 쳐들어온 이들을 위해 친히 아궁이 옆을 비켜주었다.

물론 단순한 호의는 아니었고 진백천의 몸에서 떨어진 수많은 육포 값이었다.

“와아아! 고기다 고기!”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는 백풍과 달리 두 여자 아이들은 육포를 보며 기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같은 겨울에는 동물은커녕 물고기 한 마리도 제대로 잡기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상단까지 끊기자 비축해 둔 음식으로 하루하루 연명하던 중이었다.

“나 이제 말린 생선 싫어! 고기 먹을 거야!”

“나도 나도!”

두 아이의 순수한 모습을 보자 진백천은 자기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두 아이는 쾌활한 음성과 달리 얼굴이 무척이나 창백하고 몸에도 힘이 없어 보였다.

백지장같이 하얀 얼굴은 단순히 햇빛을 보지 못해 그런 것만은 아닌 듯 보였다.

“아저씨는 상인이에요?”

“어떻게 눈길을 뚫고 왔어요?”

아이들은 궁금한 게 많은지 끓어가는 육포를 보며 쉬지 않고 물음을 던졌다.

궁금한 것은 백엽도 마찬가지인지 힐끔힐끔 쳐다봤다.

“상인은 아니고 북해빙궁에 친구가 있어서 왔지.”

“친구요? 거기 이제 못 들어가는데.”

“아빠가 그랬는데 빙궁은 이제 산사람들의 무덤이라고…… 으읍!”

“헛소리 마!”

백풍은 동생의 입을 틀어막으며 끓은 육포죽을 건넸다.

아이들은 배고팠는지 해맑게 웃으며 먹어댔다.

배부르게 먹은 아이들은 금세 잠이 들었다.

하지만 할 이야기 있는 진백천은 백엽이라는 남자와 따로 앉아서 차를 나눠마셨다.

약간 시큼한 향이 나는 차는 몸에 있는 한기를 몰아내 준다고 했다.

후르르륵-

“이곳이 북해의 마을인가요?”

“아닙니다. 저는 따로 외곽 쪽에서 가족들과 나와 살고 있는 중입니다.”

그 말을 하는 백엽은 어딘가 극도로 조심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진백천은 곧바로 상단전을 열고 그의 속마음을 엿듣기 시작했다.

-……겉으로 봐서는 놈들과 풍기는 분위기가 다르지만 혹시 모르니 경계해야 한다. 지금 이 시기에 빙궁을 방문하는 자가 평범한 자들일 리 없으니.

이러한 의심을 하게 된 것은 진백천이 창날을 움켜잡을 때부터 계속되었다.

다급하게 펼친 수라고 하지만 나름 진심을 다한 공격이었다.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움켜잡을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았다.

‘확실히 의심받고 있네. 그럴 만도 하지.’

속마음으로 들리는 것만으로도 북해의 마을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가 전부 빙궁에 마인들이 들어서고 나서부터였다.

‘단순히 상단을 막은 것만이 아닌 건가?’

“현재 북해의 상태가 어떤지 허심탄회하게 말해주시죠.”

“……별일 없습니다.”

“저한테는 다 말하셔도 됩니다.”

진백천은 품속에서 황제가 내려준 패를 꺼냈다.

황제의 직위를 대리하는 패로 관군이라면 보는 즉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패였다.

그리고 진백천을 나타내는 것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백엽은 멀뚱이 패와 진백천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죄송하지만 그게 뭔지……?”

“크흠. 저는 정도회에서 북해빙궁을 도우러 온 겁니다.”

“정도회! 그렇다면 개방의 태상장로님과 적의단 무인들을 아십니까?”

“물론이죠.”

백엽은 그제서야 조금은 경계심이 풀린 얼굴로 진백천을 대했다.

태상장로 일행이 북해에 방문했을 때 그들을 빙궁까지 안내했던 것이 바로 백엽이었다.

“태상장로께서는 호인이셨습니다. 마을에 가지고 왔던 음식도 전부 나눠주시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진백천은 그제서야 백엽에게 북해의 현재 상황에 대해 적나라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제법 심각했다.

북해빙궁은 그가 서신으로 들었던 것처럼 내전 중이었다.

“전부 3년 전에 궁주께서 갑자기 의식을 잃으신 후부터였습니다.”

궁주는 북해의 주민들도 두루두루 챙기고 뛰어난 지도자였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쓰러져 버리자 삼 형제 사이에서 골육상잔(骨肉相殘)이 벌어졌다.

문제는 그들의 뒤에는 공공연하게 마인들이 있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북해의 주민들에게 전해졌다.

“처음 시작은 빙궁의 출입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리고 북해를 오다니는 교역을 강제로 끊어버리다시피 막았습니다.”

전부 북해빙궁 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새로운 궁주가 정해지면 다 해결될 일이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놈들은 가장 먼저 북해의 꺼지지 않는 불길을 꺼뜨려 버렸습니다.”

“북해의 꺼지지 않는 불길?”

어딘가 익숙한 단어에 진백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 이어지는 백엽의 설명에 그는 어렴풋이 알고 있던 지식이 깊은 곳에서 떠올랐다.

‘맞아. 북해에는 꺼지지 않는 불길이 존재한다고 했지.’

그것은 단순히 상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온몸이 얼어버릴 듯한 지독한 추위.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필수로 필요한 것이 바로 불이었다.

그렇기에 북해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거대한 2개의 화로가 존재했다.

각각 빙궁에 하나, 북해의 마을에 하나였다.

“그 화로의 불길은 마을 전역으로 퍼져나가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온도를 제공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또 다른 생명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한 불길을 유지하기 위해서 북해에서는 매년 막대한 양의 화금석(火金石)을 취급했다.

그것들을 화로에 넣어주면 상대적으로 적은 연료에도 불길이 유지가 되었다.

또 어마어마한 양의 동물의 기름을 비롯해 숯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했다.

교역이 끊기면서 연료가 부족해지고 자연스레 불길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단순히 불길이 사그라들기만 했다면 큰 문제도 아니었다.

“간악한 마인 놈들은 마을로 쳐들어와 화로를 부수고 불길을 완전히 꺼뜨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반항했지만 빙궁의 도움 없이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북해는 차갑게 부는 바람만큼이나 서서히 죽어가는 중이었다.

“도대체 놈들이 무슨 목적으로 화로를 꺼뜨린 거죠? 단순히 마을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그런 수고를 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백엽은 진백천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이자에게 화로의 비밀을 이야기해도 될까?

고민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꺼진 불길이었고 북해에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건 아마 빙정(氷晶) 때문일 겁니다.”

“빙정?”

생뚱맞게 나온 빙정에 진백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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