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98화
100장 용혼금제(龍魂禁制)
금노산이 머물던 안채는 이미 전투의 여파로 박살이 난 지 오래였다.
덕분에 들어가자마자 여기저기 뒤질 새도 없이 그가 숨겨놓은 금고가 발견되었다.
반 토막 난 침상 아래 숨겨진 철제 금고였다.
“크기가 별로 크지 않은데요?”
“보석이려나?”
진백천은 검을 휘둘러 금고의 한 면을 잘라냈다.
그러자 나온 것은 1권의 비급과 몇 장의 서신이었다.
‘뭐지?’
비급은 다름 아닌 십이용천공(十二龍天功)의 초반부 중 하나인 용의 무공인 용혼금제(龍魂禁制)였다.
진백천이 비급을 들고 도광귀를 쳐다보자 그는 상관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찾은 것이니 마음대로 해라. 나는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정말 그래도 되겠어요? 명색이 십이지괴 중 하나시잖아요.”
“어차피 과거의 망령이고 빛이 바랜 역사일 뿐이야. 너같이 힘 있는 자가 이어주는 편이 더 나을지도. 그리고 호무살 또한 이제 나보다 네놈이 더 잘 쓰지 않느냐.”
그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진백천은 우선 비급을 품속에 넣고 서신을 살폈다.
금노산이 황금보다도 더 중요시해 깊숙이 숨겨놓았던 것은 전부 단 한 사람에 관한 정보들이었다.
그 서신을 읽는 진백천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뇌(魔腦)’
금노산은 마교에서 벗어났음에도 그 공포와 정신적 지배에서까지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막대한 돈을 뿌리며 마뇌에 대한 조사를 계속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광인이 죽었지만 돌아온 결과물은 그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마뇌에 대한 보고서.]
[마뇌는 십만대산에서 지난 30년간 책사 역할을 하며 마교주를 대신에 이런저런 일을 처리함. 하지만 놀랍게도 외모는 20대의 그것을 유지 중. 그의 실제 나이는 불분명. 다만 최근 입수한 그에 대한 자료에 따르면 천마의 실존 얼굴을 봤을 정도로 그를 지근거리에서 모시던 자임이 분명함.]
이것만으로도 무척이나 믿기 힘든 내용임이 틀림없었다.
천마가 실존하던 때라면 무려 수백 년 전이다.
그렇다면 마괴 또한 나이가 그러하다는 뜻이었다.
‘그건 말이 안 되지.’
하지만 서신에서는 계속해서 마뇌에 대해서 추적했다.
[마뇌의 본명은 철중악. 그 전에는 마교의 천살대 마인으로 활동했으며 그 후로 마뇌라는 가명으로 책사가 되었음. 술을 마시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그 이유는 천살대 마인으로 활동하던 중 한 차례 술에 취해 내뱉었던 말 때문임.]
‘말이라고?’
금노산은 이 말을 알아내기 위해 수년 동안 노력을 쏟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자리에 있던 자의 말을 들었다는 이에게 비싼 값을 치르고 들을 수 있었다.
[천마를 극도로 저주한다는 것. 그로 인해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자신이 죽기 위해서는 천마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함. 주문처럼 쏟아내는 말에는 마기자와 무척이나 오래전의 이름이 계속해서 흘러나옴. 그 말뜻이 정말로 순수한 부활인지 모르겠으나 마뇌가 천마에 대해 다분히 집착하는 것은 확실함.]
저주와 죽지 못해 사는 삶.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금노산은 마뇌의 진정한 목적을 알자 그것을 방해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 유일하게 그에게 대항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광인들을 늘리고 가지고 있던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내며 마검을 만들었다.
“결국 다 쓸데없는 짓이었지만.”
진백천은 서신을 품속에 챙겼다.
서신만으로 정확히 알기 힘들었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마뇌도 그 혼자만의 깊은 사정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게 뭔지 알면 마뇌를 더 손쉽게 상대할 수 있을 텐데 아쉽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얻은 정보가 작지 않았다.
“금왕이라 불리던 자인데 막상 금고 안에는 돈 한 푼 없다니. 뭔가 허무하네.”
진백천은 마지막 남은 종이 다발을 꺼내 살폈다.
이번에도 서신이라고 생각했지만 뭔가 어지럽게 숫자와 수결이 적혀 있었다.
“……땅문서?”
자세히 살펴보니 흑룡강성을 제외한 주변의 도시와 일대 전부였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곳에 위치한 건물들도 전부 표기되어 있었다.
“……허허. 돈 대신 땅하고 건물을 가지고 있었다 이거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성내에 이렇게 황금을 처바르고 기둥까지 세우는데도 돈이 남아돌 리가 없었다.
그나마 남은 것이 처분하기 어려운 땅문서였다.
진백천은 스리슬쩍 그것마저 품속에 집어넣고 밖으로 나왔다.
황폐화된 성내는 노을의 자줏빛으로 물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광인놈들이 사용하던 마검도 전부 회수해야지.”
혹시라도 황금을 떼어내려던 자가 잘못해서 쥐었다가 이지라도 상실하면 큰일이었다.
“우선 마검들을 전부 한자리에 모아.”
광인들은 대부분 진백천과 결전을 벌인 십이금천각 주변에 몰려 있었다.
덕분에 마검을 회수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더구나 광인들이 휘두르던 마검은 청성파 무인들이 사용하던 복마검(伏魔劍)에 비해서도 무척이나 질이 떨어졌다.
“전부 이게 다입니다. 나머지는 잔해에 깔려서 부서지거나 망가진 게 대부분입니다.”
마검 수십 자루가 모이자 그곳에서 전해지는 마기가 제법 진득했다.
진백천이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서자 도광귀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도광귀는 중혁과 도홍경이 안 들리는 곳으로 가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저 마검들. 정말 그냥 부숴 버릴 생각이냐?”
“당연하죠. 살의만 가득 들어 있는 마검이에요. 괜히 아무것도 모르는 자의 손에 들어갔다가는 살인마로 변한다고요.”
황금마전이 뿌려댄 마검으로 인해 아직까지 고생하는 정도회를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하지만 도광귀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네가 가진 용혼금제를 생각해라. 호무살을 대성한 너라면 금노산을 뛰어넘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
“그래서 저보고 광인들을 만들어 저 무기를 쥐여주라고요?”
도광귀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금노산 같은 놈마저 그만한 군대를 만들어냈다. 하물며 너라면? 족히 마교를 상대할 힘을 갖는 것은 시간문제야. 안 그러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단 한 명의 무인이 부족해 고생하던 과거를 떠올리면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진백천은 이미 그에 대해 대답하기도 전에 고개를 저었다.
“옳지 못한 방법이잖아요. 그러면 제가 마교와 금노산과 다를 바가 뭡니까?”
도광귀는 진백천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와 인연이 있다고 하나 그는 어디까지나 십대악인(十大惡人)에 속할 만큼 평범한 이는 아니었다.
도광귀에게는 오히려 자신이 하는 말이 선의에서 나오는 배려 정도로 여겨질 터였다.
‘애초에 생각하는 게 다른 거겠지.’
도광귀가 재차 뭐라 말하려 했지만 진백천은 먼저 선수 치며 말했다.
“그리고 저딴 거 없이도 충분히 마교 따위 박살 낼 수 있어요.”
진백천은 그 말을 끝으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검에서 터져 나온 강기로 인해 마검들은 전부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쩝. 네가 자신 있다면야 그런 거겠지만…….”
“저딴 거 아쉬워하지 마시고 술이나 한잔하시죠?”
“있냐?”
“제가 누군데 술이 없겠어요?”
술이라 하자 도광귀는 금세 헤죽 웃으며 그를 따라왔다.
“혹시 내가 줬던 모탁주냐?”
“그건 정도회에 고이 모셔놨죠.”
“쩝. 그거 진짜 아껴 마셔라. 보물과도 같은 술이니까.”
진백천과 일행은 성의 폐허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객잔에서 사놨던 황주(黄酒)를 꺼냈다.
마개를 따자 특유의 달콤쌉싸름한 향이 훅하고 퍼졌다.
“언제 이런 풍경을 보면서 술 한잔하겠어요.”
“맞는 말이다.”
“다신 겪고 싶지는 않아요.”
“…….”
4명은 각자 술을 한 병씩 들고 바로 입가로 가져갔다.
동시에 술병을 내려놓으며 거칠게 소리를 내뱉었다.
“크으. 안주는 없냐?”
“어제 다 드려서 없어요.”
품속을 뒤적거리던 도홍경은 간식으로 챙겨놓았던 다과 몇 개를 꺼냈다.
양이 많지 않아서 조각조각 내서 단맛을 느끼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들이 연거푸 술을 들이켰을 때 도광귀가 회한에 젖은 얼굴로 저녁노을을 쳐다봤다.
“이번에 죽다 살아나다 보니 기분이 묘하구나.”
“어떠신데요? 인생의 무상함이라도 느꼈어요?”
장난스레 물었지만 도광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지. 아마도 늙어서 그런 걸 거야.”
그 후로 그들은 딱히 별말 없이 사색을 즐겼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쳐서 술을 마시며 정신적 피로함을 털어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만큼 거친 싸움이었고 사람들이 죽어 나갔으니까.
‘이 짓거리도 얼마 남지 않았지.’
북해에 들렀다 돌아가면 진백천은 곧바로 마교가 있는 십만대산으로 진격한다.
마교가 사라진 강호.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는 진백천도 겪어본 적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것을 위해 그가 지금까지 개처럼 달려왔다는 것뿐이었다.
진백천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노을에 붉게 물들었던 하늘이 점차 검게 빛무리가 사라져갔다.
“슬슬 추워지네. 오늘은 근처에서 하루 자고 내일 일찍 출발하자.”
“네. 형님.”
빈 전각에 모닥불을 피우고 각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하지만 곧바로 잠든 것은 도광귀과 도홍경, 중혁뿐이었다.
진백천은 금고에서 얻은 용혼금제를 꺼내 읽었다.
호무살과 비슷하게 상단전을 사용하는 무공이었지만 상대의 정신을 금제하는 점에서 다른 무공이었다.
‘호무살이 상대의 베는 날카로운 비수라면 용혼금제는 정신을 억누르는 올가미려나?’
진백천은 주변을 둘러보다 모닥불의 따스함을 찾아 기어온 쥐를 발견했다.
그리고 곧바로 비급에 적힌 대로 내력을 운용했다.
두 눈동자가 서서히 황금빛으로 일렁이며 쥐를 향해 뻗어 나갔다.
쥐는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그를 멍하니 올려다봤다.
-내 손으로 올라와
그의 의지에 쥐는 빠르게 반응하며 몸을 타고 손으로 올라왔다.
그 밖에도 몸을 구르라거나 머리를 숙이라는 것과 같은 작은 동작에도 전부 반응했다.
‘복잡한 명령은 못 들어도 내 의지는 알아듣는 건가?’
진백천은 쥐를 땅에 내려주며 금제를 풀었다.
그러자 언제 그의 손에 올라왔냐는 듯이 깜짝 놀라며 구석으로 도망쳤다.
그런 쥐의 모습을 지켜본 진백천은 한 가지를 확신했다.
자신은 금노산처럼 용혼금제를 사용할 수 없었다.
‘금노산은 상대를 올가미로 억누르지 않고 갈기갈기 찢어놨지.’
그것은 보통의 악독한 마음이 아니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진백천이 용혼금제를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호무살과 함께 더해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잠시 움직이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 이상으로 나아가려면 인간성을 포기해야 돼.’
진백천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금노산에 비해 부족하다 해도 한가지 고무적인 것은 십이용천공의 완성에 한 발자국 다가갔다.
‘호무살과 용혼금제를 얻었으니 남은 동물은 뱀, 개, 돼지, 쥐, 인가?’
그 4마리의 십이용천공 무공을 얻으면 완전한 비급을 얻을 수 있었다.
전대 황조의 무덤에서 그가 후반식의 비급을 얻은 것은 그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전부 완성되었을 때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 설마 신선이 돼서 등선이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그는 가볍게 실소를 터뜨리며 비급을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찾아오는 수마에 의지를 맡기며 천천히 잠속에 빠져들었다.
잠시 후.
진백천을 피해 도망갔던 쥐는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보통의 쥐와는 그 눈동자가 달랐다.
황금빛에 일렁이는 것이 진백천이 행했던 용혼금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쥐는 명령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멀찍이 서서 진백천을 쳐다봤다.
떠나고 싶은 마음과 남아야 한다는 금제가 서로 싸우는 듯했다.
찌익-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디서 나타난 고양이가 멀뚱히 서 있던 쥐를 낚아채며 사라졌다.
시험 삼아 해봤던 용혼금제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다만, 그것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한 진백천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