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97화
99장 황금마전(黃金魔殿)(6)
순간 기묘한 침묵으로 주변이 조용해졌다.
단 한 초식으로 벌어진 것이라 생각하기에는 황실의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 참사를 일으킨 당사자인 진백천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전부 튕겨내지 못했다.’
몇 개의 강기는 검로를 따라오지 않고 그의 몸에 틀어박혔다.
호연보의(護燃保衣)가 아니었다면 치명상이었을 공격이었다.
대신 보호하지 못한 얼굴과 허벅지에 기다란 상처가 생겨났다.
그나마 광인들이 심장을 노렸기에 이 정도의 상처로 끝낼 수 있었다.
‘……아직 부족해.’
진백천은 이를 악다물면서 얼굴의 상처를 손으로 쓸었다.
피가 번지며 얼굴 한쪽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반대 손으로 종마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그 검은…… 종마검(從魔劒)?”
금노산은 진백천이 뽑아 드는 검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봤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을 직접 만들어 마뇌에게 보이고 구룡성(九龍姓)으로 보낸 것이 바로 그였다.
“무광(武狂) 사자혁(獅茨奕)에게 보낸 것이 왜 네놈에게 있는 것이지? 과연 평범치 않은 놈이라 생각했지만 마검을 들고서도 그렇게 멀쩡하다니. 대체 네놈의 정체가 뭐냐?”
“나에 대해서 궁금해?”
“당장 말해라!”
진백천은 입술을 끌어올리며 웃었다.
“그럼 너도 나처럼 값을 치르면서 물어 새끼야!”
“뭐, 뭐라?”
“아주 돈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새끼. 네놈만 돈 좋아하는 줄 아냐? 나도 돈 좋아한다! 그 대답을 들으려면 적어도 10만 냥, 아니, 100만 냥은 줘야 할 거다!”
금노산은 진백천에게서 터져 나온 일갈에 금붕어처럼 입을 벙긋거렸다.
근 30년간 그 누구도 자신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자는 없었다.
“네, 네놈이……!”
“아니다. 그러면 나도 뭐 하나만 물어보자. 대답해 주면 나도 속 시원하게 대답해 줄게. 어때?”
금노산이 화를 못 이기고 재차 화를 쏟아내려는데 진백천이 먼저 선수를 치며 말했다.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이었기에 그도 순간 뭐라 대답할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진백천은 종마검으로 금노산을 콕 집어 가리켰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궁금했던 건데. 다 큰 어른이 왜 이렇게 징징대?”
“뭐, 뭐라?”
“돈 달라고 징징대. 알려달라고 징징대. 같은 편 먹자고 징징대. 무슨 애새끼야?”
진백천의 격장지계(激將之計)는 아주 제대로 통했다.
금노산이 뜨거운 물에 덴 듯 길길이 날뛰어댔다.
반면에 진백천은 그 짧은 순간 시간 동안 흔들렸던 내력을 다시 안정시켰다.
그것뿐만 아니라 대놓고 욕설을 내뱉으니 꽉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겨우 한 수 보여주었다고 기세가 등등한 모양인데 크게 착각하는 모양이구나. 광인들은 여전히 많고…… 십이금천각의 진법은 더더욱 네놈을 짓누를 것이다. 과연 언제까지나 이렇게…….”
“쯧쯧. 봐봐. 또 징징거리잖아.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직접 덤비라고.”
“……저놈을 찢어 죽여라! 생포할 필요 없다!”
금노산은 광인들에게 명령을 바꾸며 소리쳤다.
광인들은 방금까지 자신들의 동료였던 자의 피와 살점을 밟으며 달려들었다.
-아직이야?
-거의 다 됐습니다! 한 번만 더 버티세요!
도홍경은 이제 대놓고 모습을 드러낸 채 성령목부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일반적인 검기와 다른 기이한 기운이 목검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진백천은 일부로 파륜식과 같은 큰 기술을 아끼며 내력을 아꼈다.
대신 독장을 뿌리며 광인들을 최대한 중독시켰다.
천지만독수(天支萬毒手).
아무리 고통을 모르고 달려든다고 해도 중독으로 몸이 망가지는 것은 별개였다.
주변에 검녹색의 독 연무가 흩날리며 광인들이 주춤거렸다.
“폭사공까지 익혀놓았으면서 독에 대해서는 대비가 안 된 모양이지?”
금노산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설마 진백천이 독공까지 사용하리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곧 뭔가를 떠올렸는지 눈을 부릅뜨며 진백천을 노려봤다.
“……독공에 심검과도 같은 검술, 어린 나이에 대단한 내력까지! 거기에 종마검을 가질 수 있는 자라면……!”
그는 곧 결론을 냈는지 환하게 웃으며 진백천을 노려봤다.
“정도회 회주, 운룡심검(雲龍心劍) 진백천이 네놈이로구나! 폐관해 있다고 하는 놈이 왜 여기 와 있는지는 몰라도 이 사실이 마교에 알려지면 꽤나 곤란하겠지?”
금노산은 큰 약점이라도 잡은 양 으스대며 물었다.
정작 진백천은 독장을 뿌려대는 손을 멈추지 않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서? 마교에 알리기라도 하겠다고?”
“멍청한 놈! 황금마전이 곧 마교임을 모르다니!”
“네놈이 마교를 배신하고 딴 노선을 가고 있는 것 정도는 잘 알지. 그래서 내 무력만 보고 끌어들이려 한 거 아니야? 차라리 그딴 멍청한 협박보다 정도회와 손을 잡겠다 말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겠는데?”
금노산은 진백천이 황금마전과 마교가 척을 진 사실을 알고 있자 제법 놀란 모습이었다.
현재 그에게는 서장 너머의 바쁜 마교보다 중원에 자리 잡은 진백천이 더 무서운 적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끝장을 봐야겠군. 십이금천각의 진정한 무서움을 알려주마.”
금노산은 진심인 듯 권좌에서 일어나 진법에 모이는 모든 힘을 진백천을 향해 쏟아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두 눈이 그를 노려보자 지금까지와 다른 어마어마한 중압감이 그를 짓눌렀다.
“벌레처럼 짓이겨져라!”
드드득-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두 발이 땅으로 점점 파고들어 갔다.
하지만 그러한 중압감을 받는 것은 진백천만인지 다른 광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달려들었다.
“크윽!”
진백천은 억지로 몸을 땅에서 빼내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전력을 다했지만 겨우 머리 높이까지밖에 오르지 못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과 광인들의 폭사에 진백천은 재빨리 호무살로 전신을 방어했다.
드드드득-
‘이대로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십이금천각의 기운은 진백천의 호무살마저도 짓이기며 사그라뜨렸다.
폭사에 휘말림과 동시에 온몸 여기저기 마검에 베이며 상처가 생겨났다.
이미 몸은 무릎까지 땅속으로 파묻힌 상태였다.
금노산은 망가져 가는 진백천을 보며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결국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었구나! 마교를 괴롭히던 천하의 진백천도 내 광인들과 십이금천각 앞에서는 버러지일 뿐이야!”
그는 하나 남은 손으로 용혼금제(龍魂禁制)의 힘을 내뿜으며 진백천을 가리켰다.
권좌 위에서 바라본 그는 단지 광인들 사이에서 무릎을 꿇듯 바닥에 처박혀 있을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내 용혼금제를 받아들이거라! 그리고 나의 광인들과 함께 강호를 집어삼키는 거다!”
진백천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금노산은 그것이 뭔가를 말하려는 대답이라 생각했는지 광인들을 잠시 뒤로 물렀다.
그리고 곧 진백천이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올리며 금노산을 노려봤다.
“……권좌에서 내려오지도 못하는 겁쟁이 새끼가 뭐래?”
그리고 마침내 도홍경의 전음이 들려왔다.
-형님! 준비 끝났습니다!
“당장 무너뜨려!”
진백천의 외침과 동시에 도홍경은 성령목부를 휘둘렀다.
순간 세상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기시감과 함께 십이금천각의 진법이 찢겨 나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진백천을 억누르던 압박감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금노산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 정도도 충분했다.
백면섬보(百面閃步).
백면신투는 그 초식을 두고 일보(一步)를 빛처럼 걷는 방법이라 말했다.
그리고 지금의 진백천은 한 줄기 빛처럼 황금 계단 위로 올라섰다.
“어림없다!”
우우우웅-
잠시 찢겼던 진법이 돌아오며 진백천의 몸을 짓눌렀다.
“겨우 이 정도로?”
그는 오히려 금노산을 비웃으며 계단을 뛰어올랐다.
하지만 다음 걸음을 걸었을 때에는 황금 계단이 움푹 파였다.
두 번째, 세 번째 걸음까지 나아가자 몸을 짓누르던 압박감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겨우 한 계단 차이로 금노산의 모습이 보였다.
“무릎을…… 꿇어라!”
진백천은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똑똑히 올려다봤다.
그의 주름진 얼굴은 방금까지의 오만함과 승리감 대신 당혹감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천하의 황금마전의 주인이 이렇게 겁에 떨다니.”
“……겁이라니! 무슨…… 소리냐!”
하나 남은 손이 목소리와 달리 덜덜 떨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시선은 머리 높이 올린 진백천의 검으로 향해 있었다.
“이번에도 피할 수 있을까?”
“……잠깐! 내가 가지고 있는 황금을 나눠주마!”
“필요 없어.”
“그렇다면 광인들도 주겠다! 아니, 황금마전을 통째로……!”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금노산이 입술마저 덜덜 떨며 진백천을 쳐다봤다.
그만큼 독고구검에서 뻗어 나오는 살기는 참기 힘들 만큼 두려웠다.
그는 이미 자신을 포위하듯 빙글빙글 맴도는 호무살의 비수를 똑똑히 확인했다.
“……그러면 대체 뭐를 원하는 거냐?”
“목숨.”
“뭐?”
“네놈이 뿌린 마검으로 인해 죽어간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 그리고 광인이 되어 영혼이 부서져 나간 사람들의 목숨. 그에 대한 값은…….”
스걱-
태허무극진결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진백천의 눈이 백색으로 빛났다.
그리고 벼락처럼 그어 내린 독고구검이 금노산을 정확히 두 동강 내었다.
“죽음으로 사죄해.”
쿠구구구궁!
금노산을 베어낸 검은 그 힘을 잃지 않고 그대로 놈의 권좌와 수많은 이들을 으깨 죽였던 황금 계단마저 박살 냈다.
동시에 금노산에게 몰렸던 진법의 힘이 역류하며 황금 기둥들도 하나둘씩 갈라지며 무너졌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형님 조심하세요!”
금노산은 자신이 죽으면 살아남은 광인들이 자동으로 폭사하게 명령을 내려놨는지 여기저기서 폭발이 이어졌다.
그들은 부서진 권좌 위에서 모든 폭발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모든 것이 잠잠해졌을 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황금 기둥도 먼지 하나 없던 황금 바닥도 남아 있지 않았다.
후우우우-
먼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곳에 남은 것은 흉측하게 파괴된 잔해들뿐이었다.
“이런 걸 보면 영원한 것 따위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맞아. 금노산의 욕망이야말로 정말 헛된 것이었지.”
몸이 반으로 갈리면서도 욕망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광인들의 폭발과 함께 한 줌의 핏덩이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폐허가 된 성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자들이었다.
도광귀는 말했던 대로 위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광인들을 없애고 빠져나온 것이다.
“……허허. 잠깐 사이에 아주…… 피바다가 되어버렸군.”
도광귀는 무너진 계단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놈 마지막은 어땠냐?”
“겁에 질려서 빌다 죽었어요.”
“쯧. 그놈이 유난히 가진 욕심에 비해 속이 좁았지. 그렇다고 다른 십이지괴들도 그런 건 아니다. 나처럼 담대한 놈들이 더 많다.”
도광귀를 한차례 봤던 도홍경과 달리 중혁은 그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진백천과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하는 자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도광귀 또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중혁을 살폈다.
“회주. 너는 저번에도 그러더니 참으로 특이한 놈들만 데리고 다니는구나. 도사야 그렇다 쳐도 이 어린놈은 대체 뭐냐?”
“중혁아. 이상한 사람이니까 마음에 안 들면 패버려.”
“호오. 저놈이 나를 팰 수 있는지 내기라도 할까?”
또 못 참고 내기를 하려는 모습에 진백천이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요? 차라리 제가 패드릴까요?”
“…….”
가볍게 도광귀를 제압한 진백천은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십이금천각이 내뿜는 압박감은 그에게도 제법 무리였다.
두 다리가 후들거리며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곧 아래를 내려다본 진백천은 허탈함에 혀를 찼다.
“내 황금이야! 가만히 두라고!”
“아니야! 내가 먼저 발견했어!”
지하 감옥에서 살아남았던 이들을 비롯해 소란을 듣고 몰려온 도시 사람들은 성에 있던 황금을 뜯어갔다.
모두가 충분히 나눠 가질 수 있는 양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를 향해 욕망을 표출하며 싸워댔다.
“쯧. 저깟 황금이 저렇게 좋을까?”
진백천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채로 향했다.
“형님? 어디 가십니까?”
“어디 가긴. 진짜 보물은 금노산의 방에 있을 거잖아. 괜한 놈들이 채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챙겨야지. 안 그래?”
“……방금까지 욕망이 헛되다고 하시더니…….”
“죽은 놈한테나 그렇지. 우리는 아직 살날이 많잖아.”
진백천은 분명 황금에 미친 자이니 어마어마한 보물이 있을 거라며 잔뜩 기대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그리고 그것은 진백천의 기대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