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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95화 (295/346)

무림회귀백서 295화

99장 황금마전(黃金魔殿)(4)

진백천은 몸을 덮고 있던 은형비단을 벗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도광귀는 재차 들려오는 인기척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얼굴에 눈을 부릅떴다.

눈동자에 든 감정은 놀람에서 의문, 의문에서 빠르게 허탈함으로 바뀌어 갔다.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왜 이래요?”

“지금 이곳에서 네놈을 보는 거라면 둘 중 하나겠지. 정말 귀신이거나 그게 아니면 내가 미쳤거나.”

아무래도 지하에 새겨진 진법이 자신에게도 조금씩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진짜일 거라고는 생각 안 해봤어요?”

“여기는 흑룡강이다. 호북에 있어야 할 놈이 여기 있을 리 없지. 쯧. 머릿속이 이상해지는 걸 보면 이제 정말 죽을 때가 다 되었군. 이런 헛된 환상을 보고 있으니 말이야.”

허탈한 말과 달리 도광귀는 환상이라도 진백천을 보니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지금까지 홀로 이곳에 묶여 사람들의 비명과 어둠만을 지켜봤다.

금노산을 제외하고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없었다.

저 광인 놈들은 금노산의 명령을 듣는 것 외에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니까.

“네놈이 만약 진짜라면 더더욱 지하 감옥에 들어올 리 없지. 이곳은 흑룡강성이야. 금노산이 아무리 개 같은 마교 잡종이라 해도 겉으로는 성주거든.”

“뭐.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죠.”

진백천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가 별말을 하지 않아도 도광귀는 계속해서 그가 가짜인 이유에 대해 중얼거렸다.

사실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며 이것이 현실이 아님을 설득하는 중이었다.

진백천은 이제 그만 이야기를 듣고 감옥 문을 막고 있던 쇠창살을 베어냈다.

그 틈으로 들어가자 도광귀의 호안이 더더욱 커졌다.

“……정말 현실적인 환상이군. 이것이 십이금천각(十二金天閣)의 힘인가.”

“헛소리 그만하고 정신 차려요.”

그를 금제하고 있던 구금쇄(拘禁鎖)를 풀어내기 위해 손을 뻗을 때 감옥 저편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광인들이다! 어서 몸을 숨겨라!”

그는 진백천이 환상이라 생각하던 것도 있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진백천은 걱정 말라는 듯이 그저 구금쇄를 잘라낼 뿐이었다.

어찌나 근골 깊숙이 박혀 있었는지 뼈가 부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뽑아내야 했다.

“크윽! 어서 몸을 숨기라니까.”

그리고 마침내 감옥 안을 확인한 광인은 다급히 품속의 손을 집어넣었다.

정해진 대로 피리를 불어 비상사태를 알리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자세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뒤편에서 도홍경이 그들의 혈도를 짚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혼자 왔을 것 같아요? 이곳에 오래 있다 보니 정말 판단력이 흐려졌나 봐요.”

“……그, 그렇다면 정말로……!”

“네. 정말이라고 그랬잖아요.”

진백천은 마지막 남은 구금쇄를 뽑아내며 떨어지는 그의 몸을 붙들었다.

거구의 몸이었던 그는 이제 한 손으로도 가뿐히 들 정도로 가벼워진 상태였다.

“어떻게 여기 있는 거냐?”

“그건 천천히 이야기하고 우선 몸부터 추스르시죠.”

그래도 십대악인 중 하나였던 터라 구금쇄를 뽑은 것만으로도 내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다만 바싹 마른 논에 졸졸졸 오줌을 싸는 격이니 회복이 되려면 무척이나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제가 도와줄 테니까 뒤돌아서요.”

도광귀는 멈칫하다 곧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진백천은 그의 명문혈(命门穴)에 양손을 가져다 대고 천천히 내력을 불어넣었다.

다른 내력을 가진 타인의 몸에 함부로 진기도인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태허무극진결만큼은 그런 위험이 덜했다.

모든 기운을 휘감고 포용하기에 도광귀의 얼마 안 되는 내력 또한 감싸 안았다.

“흐읍!”

도광귀는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풍족함에 신음을 터뜨렸다.

두둑-

그의 기경팔맥을 노도와 같은 내력이 휘저으며 그동안 쌓인 불순물을 씻겨 내렸다.

동시에 뒤틀렸던 근골도 다시 펴지며 제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굽었던 허리가 펴지고 머리가 다시 검어지며 수축했던 근육이 부풀었다.

그제서야 진백천이 기억하던 도광귀의 모습에 조금은 가까워졌다.

진백천은 그로부터 여러 차례 소주천을 돕고 나서야 손을 뗐다.

‘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겠지.’

그런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도광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시릴듯한 안광이 터져 나오며 일시적이지만 지하 감옥을 밝게 비추었다.

“후우. 이제야 살 것 같군.”

도광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진백천을 내려다봤다.

그 뜨거운 시선에 진백천이 먼저 선수 쳐 고개를 저었다.

“고맙다는 말은 사양할게요. 저번의 은혜를 갚은 것뿐이니까요.”

“크흠. 정 그렇다면야.”

“이제 몸은 어떠세요? 나갈 수 있으시겠어요?”

몸 상태를 다시 점검하던 도광귀가 웬일인지 몸을 휘청였다.

그리고 들려온 것은 거대한 뱃고동 소리였다.

꾸르르르륵-

“……너 혹시 먹을 거 좀 있냐?”

아무리 도광귀라도 배고픔에는 장사가 없었다.

* * *

진백천은 품속에 가지고 있던 육포 전부 도광귀에게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도홍경이 가지고 있던 간식거리도 전부였다.

도광귀는 무엇인지 확인조차 안 하고 일단 입으로 밀어 넣었다.

“벽면에 맺힌 물과 벌레 따위를 먹으며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더구나!”

그들이 꺼낸 음식의 양이 적지는 않았지만 도광귀에게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전부 먹어치우고도 아쉬운 눈으로 남은 잔해를 쳐다봤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된 건지 말이나 해주시죠?”

“내가 여기 갇혀 있는 것 말이냐?”

“네.”

황강에서 진백천과 헤어질 때만 해도 다시 남만으로 돌아간 도광귀였다.

비록 혼자 돌아다니는 그였지만 단신으로 누군가에게 붙잡힐 실력도 아니었다.

“남만으로 돌아가려 했지. 그곳에서 십이용천공의 호무살을 네놈에게 전수했다는 것을 알려야 했으니까. 하지만 오랜만에 찾아가 본 남만은 이미 마교의 소굴이나 다름없었다. 각자 뿔뿔이 흩어지고 그나마 와해된 상태였지.”

하지만 이미 오래전 찢긴 십이지괴(十二支怪)가 지금까지 유지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들이 얼굴을 보는 것은 평생의 채 몇 번 되지 않았으니.

그나마 그들의 유대감을 이어주던 십이용천공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만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나도 굳이 전수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남만을 빠져나왔다. 그때 금노산이 서로의 십이용천공을 대가로 내게 내기를 제안했지.”

그 내용은 아까 들었던 것과 같았다.

금노산이 자신의 용혼금제(龍魂禁制)로 만든 광인 20명을 상대로 도광귀가 이기면 승리였다.

도광귀는 금노산의 실력을 잘 알았기에 당연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놈의 광인들은 어딘가 전과 달랐다.

“원래는 무공을 쓰는 자들은 금제하지 못하던 놈이었다. 하지만 이 광인들은 달랐지.”

무공도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도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도광귀는 당황했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고 곧 놈들을 전부 으깨 버렸다.

아무리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광인이라도 그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금노산은 그것에 크게 분노했다.

“그 멍청한 놈은 정말로 그깟 광인들이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모양이었다. 곧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광인들이 나를 덮쳤지.”

20명에서 500명으로 늘어난 광인들은 도광귀라고 해도 전부 이겨낼 수 없었다.

“더구나 십이금천각의 진법이 나를 끊임없이 짓눌렀다.”

“그 황금 기둥을 말하는 거죠?”

“너도 봤구나. 맞다. 금노산은 자신의 재산 중 대부분을 털어 그 거대한 기둥을 세워 진법을 만들었다. 그 안에 있는 동안에는 놈은 가히 무적이나 다름없지. 놈을 상대할 거면 어떻게든 그 진법에서 빠져나오게 만들어라.”

도광귀가 이 정도로 말한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새겨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이후로 지하 감옥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도광귀는 완전히 몸이 회복될 때까지 이곳에 남아 있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오늘 금노산이 자신을 보고 간 이상 앞으로 며칠간은 나타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동안 이곳에서 몸을 추스르며 때를 기다리마.”

“때라뇨?”

“네놈이 여기 와 있는 것을 보면 내가 모르겠느냐? 마교라고 하면 우선 때려잡고 보는 너이니 분명 금노산을 노린 걸 테지. 지상에서 소란이 나면 나도 그에 맞춰서 움직여주마.”

진백천에게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도광귀 정도의 무인이 자신들을 도와준다고 하면 그것만큼 힘이 되는 것도 없었다.

“대신 부탁이 있다.”

“무슨 부탁이요?”

“그동안 익힌 호무살을 보여다오.”

그는 진심이었다.

진백천에게 호무살을 전수해 주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궁금증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어린 나이에 그 실력을 이룬 너라면 분명 나보다 더 뛰어난 경지를 이룩할 수 있겠지. 나는 내가 익힌 것 이상의 호무살을 확인해 보고 싶을 뿐이다.”

“어렵진 않죠.”

진백천은 벽면을 향해 호무살을 내뿜었다.

보이지 않는 그의 비수가 빠르게 벽면을 훑고 지나갔다.

스스슥-

그리고 문신처럼 남은 것은 호무살(虎武殺)이라는 글씨였다.

스스로가 봐도 일필휘지의 명필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글씨를 새기는 것을 보며 도광귀는 두 눈을 부릅떴다.

몇십 년을 연마한 자신도 이렇게 자유자재로 글씨를 남기는 것은 무리였다.

“크흠. 예상은 했지만 대단하군.”

“저처럼만 노력하시면 언젠간 똑같이 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건방진 놈.”

말투와 달리 도광귀의 음성에는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같은 무공을 공유하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동지애였다.

“너도 내 무공을 익힌 이상 십이지괴(十二支怪)의 일원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다른 짐승 놈들을 보면 절대 물러서지 마라.”

“금노산을 말하는 거죠?”

“척하면 척이니 말하기 좋구나.”

“걱정하지 마세요. 놈은 어떻게든 끝장낼 테니까.”

진백천은 지하 감옥에 그를 남겨두고 다시 머무는 전각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중혁이 그들을 반기다가도 얼굴을 찌푸렸다.

몸에 밴 지하 감옥의 역한 냄새 때문이었다.

“그렇게 심하냐?”

둘은 옷을 벗어 최대한 냄새를 털어냈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우선 금노산과 이야기를 나눠봐야지. 광인이 된 자들을 풀어낼 수 있다면 어떻게든 그들을 구해야 하니까.”

도광귀의 말에 따르면 이미 그와 싸울 때부터 500여 명의 광인이 있다고 했다.

그것도 무려 무공을 익힌 자들이니, 일반인들까지 합치면 그 수가 몇 배는 더 많을 터였다.

“이대로 가다간 흑룡강 전체가 광인 소굴로 변해 버릴지 몰라. 그 전에 놈을 막아야 돼.”

진백천은 내일 금노산과 대화를 나누며 그 방법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동안 십이금천각인지 뭔지 진법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

“네. 그건 걱정 마세요. 대모산파(大茅山派) 23대 장문인에게 못 풀어헤칠 진법 따위는 없으니까요.”

도홍경은 자신만 믿으라는 듯이 가슴을 툭툭 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진백천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광인들의 안내를 받아 어제의 그 안채로 이동했다.

탁상 위에는 차 한 잔이 올려져 있고 광인들은 노골적으로 주변을 에워싼 형태였다.

‘어제 도광귀와의 대화로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군.’

진백천이 자리에 앉자 금노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 황금마전을 위해 일해보겠냐는 나의 제안에 대해 잘 생각해 봤나?”

광인들은 그의 대답 여부에 따라 금방이라도 검을 휘두를 듯 손잡이에 손을 올린 상태였다.

진백천은 그들을 한차례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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