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94화
99장 황금마전(黃金魔殿)(3)
지상과 달리 도홍경이 끌려간 지하 감옥에는 황금 따위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 흐르는 것은 썩은 물과 어디선가 흘러나온 피뿐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광인들을 만들어왔는지 감옥에는 그들을 제외하고도 꽤나 많은 사람이 보였다.
“단순히 감옥은 아니더라고요. 십이금천각인지 뭔지에 설치된 것과 비슷한 진법이 지하 감옥에도 있었어요.”
그 정도가 강하지는 않았지만 가뜩이나 피폐해진 정신은 술법에 휘말리기 쉬웠다.
“몇 명이나 있었어?”
“꽉 찬 감옥이 5개가 있었으니 적어도 100여 명은 훌쩍 넘을 거예요. 아. 거기다 독방도 있었어요.”
말이 독방이지 단단히 가려진 곳에서는 끊임없이 비명이 흘러나왔다고 했다.
“누군가를 고문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중혁이 말로는 마인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야기를 듣던 중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분명히 들었습니다. 마교에 대해 심문하는 중이었습니다.”
황금마전이 마인을 심문한다?
그 기이한 상황에 진백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은 한편이었고 함께하면 함께했지 굳이 척을 세울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이내 진백천의 머릿속에 하나의 가정이 빠르게 스치듯 지나갔다.
‘혹시 금노산이 마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그는 마교가 아니더라도 흑룡강의 성주였으며 이곳의 소수민족들을 대표하는 자였다.
더구나 그의 황금에 대한 욕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것은 단순히 마교의 명령을 듣는 자로서는 만족감을 채우기 힘들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언제든 마교의 명령으로 갈아 치워져도 상관없는 허수아비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광인들을 만들어내고 마검과 함께 자신의 군대를 만드는 것도 이해가 가지.’
동시에 성주인 신분은 합법적으로 군대를 가질 수 있었다.
금노산은 지금과 같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기회라 보고 움직였을 터였다.
“마인이 하는 말은 들었어?”
“단단히 막혀 있어서 자세히는 듣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내려가서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그가 가보겠다는 말에 도홍경이 나서서 말렸다.
“형님 혼자서는 위험해요. 주변에 광인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나무처럼 수두룩빽빽 하다고요.”
“그러니까 너랑 같이 가야지. 거기까지 안내할 수 있지?”
“애초에 안 가는 건 선택사항에 없는 거죠?”
“물론이지.”
그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진백천은 밤이 되자 움직였다.
다만 지하 감옥으로 향하는 것은 진백천과 도홍경뿐이었다.
그조차도 잘 모르는 진법이 펼쳐져 있는 곳에 중혁마저 데려가기에는 위험했다.
“이곳에 있어. 잠깐이면 다녀올 테니까.”
둘은 은신부와 현혹부마저 몸에 붙이고 은형비단(隱形緋緞)마저 뒤집어썼다.
웬만해서는 둘의 기척을 알아낸 자는 드물었다.
“혹시라도 누가 오면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 현혹진을 만들어놔서 상대는 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
전에 도홍경이 고유빈이 머물렀던 객잔에 설치했던 것과 똑같은 진법이었다.
둘은 천장에 틈을 만들어 그곳으로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놀랍게도 광인은 건물 위에도 존재했다.
다만 둘의 움직임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딱딱한 표정으로 아래만 묵묵히 내려다봤다.
-이쪽입니다.
둘은 한 몸처럼 어둠 속을 가르며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도홍경의 말대로 한걸음 떼기 무섭게 광인들이 보초를 서는 중이었다.
그마저도 감옥에 가까워지자 더욱 많아졌다.
‘전부 마검을 들고 있다.’
저들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보일지는 몰라도 끔찍한 일이었다.
도홍경은 마침내 보이는 감옥의 입구를 가리켰다.
-문이 열려 있어요.
그의 말대로 단단한 철문은 열린 채였다.
바로 방금 누군가 안으로 들어간 듯 보였다.
광인들은 열린 문을 붙들고 미동 없이 서 있었다.
‘금노산이 들어간 건가? 우리 입장에서야 다행이지.’
둘은 시선을 교차하고 조심스럽게 그 아래로 향했다.
가장 먼저 그들을 반긴 것은 도홍경의 말대로 썩은 물과 역겨운 곰팡내였다.
냄새만으로 정신이 흐트러질 만큼 고일 대로 고인 공기였다.
‘이 정도면 독이나 다름없는데?’
도홍경과 진백천은 미리 준비한 물에 적신 천으로 입가를 둘렀다.
-이쪽이에요.
지하 감옥은 미로처럼 복잡했지만 이미 한번 갇혀봤던 도홍경은 익숙하게 그를 안내했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 쇠창살로 막힌 감옥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그 모습이 마치 동월루에서 봤던 것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면 텅텅 비었던 그곳과 달리 이곳에는 정신을 놓은 듯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보였다.
-형님! 저기 좀 보세요!
도홍경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감옥 안으로 들어선 금노산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양손을 펼치고 사람들을 향해 뭔가를 하는 중이었다.
-뭐 하는 걸까요? 세뇌? 술법은 아니에요.
-글쎄. 잠깐 더 지켜보자.
금노산은 점점 내력을 끌어올릴수록 가뜩이나 정신이 망가진 이들의 눈이 흐리멍텅해졌다.
곧 그의 손아귀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오며 사람들을 향해 흡수되었다.
용혼금제(龍魂禁制).
그가 그토록이나 좋아하는 황금빛이었다.
금노산의 술수를 본 진백천은 두 눈을 부릅떴다.
이것은 단순히 술법이나 세뇌 따위가 아니었다.
‘호무살과 같은 상단전의 무공!’
더 놀라운 것은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흐리멍텅했던 사람들은 어느 틈인가 깨끗하게 정신이 지워진 이들처럼 금노산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전부가 그렇게 광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 내력이 강하거나 정신력이 뛰어난 자는 그의 금제에 저항했다.
“아무래도 저놈들은 며칠 더 가둬놔야겠구나.”
금노산은 조금의 아쉬움도 보이지 않고 뒤돌아섰다.
지금 안되면 나중에 혹시라도 그전에 죽으면 치우면 그만이었다.
-저 광인이 된 자들을 풀 수 있을까?
-흐음. 자세히 살펴봐야겠지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요. 만약 회복이 가능하더라도 무척이나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고요.
결국 그 해결방법은 금노산밖에 모른다는 말이었다.
진백천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뒤를 쫓았다.
이런 식으로 광인을 만들어대던 그는 마인이 갇혀 있다는 감옥으로 향했다.
“문을 열어라!”
드드드득-
두꺼운 철문이 열리고 드러난 광경은 끔찍했다.
온몸이 분해되듯 잘려나간 마인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묶여 있었다.
“이제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느냐? 지금이라도 마뇌와 마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편한 죽음을 약속하마!”
“……금노산. 네놈은 마뇌님과 본교를 배신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크하하하하하! 여전히 그 말뿐이군. 네놈처럼 말하다 죽어간 마인이 몇이나 되는 줄 아느냐? 황금마전에 숨어들었던 전부였다! 그리고 놈들은 전부 마지막에 살려달라 울부짖다 죽어갔지!”
마인은 그 말에 비릿한 미소를 보였다.
부서지듯 강제로 뽑힌 이빨이 전부 피로 번들거렸다.
“역시 입만 산 늙은이라던 마뇌님의 말이 맞군. 가진 건 욕심뿐이라 마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도 겁을 먹고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지. 크크큭.”
방금까지 웃고 있던 금노산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마인의 무릎을 내리찍었다.
우드득-
무릎이 꺾일 수 없는 각도로 꺾였다.
“끄으으윽!”
“마뇌 따위야말로 오래 산 노괴에 불과하다! 이미 내가 배반한 것을 알면서도 마교가 가만히 있는 것이 왜 그런 거라 생각하느냐? 전부 그럴 여력이 없기 때문이야!”
“그거야…… 네놈…… 생각……!”
우드득-
반대쪽 무릎마저 으깨지며 말이 끊겼다.
금노산은 놈의 비명을 감미로운 음악처럼 들었다.
“북해빙궁의 마인들, 강호에 흐르는 마기자의 비동, 그리고 몰래 숨어들고 있는 5마(魔)들과 천살대 무인들에 대해 내가 모를 줄 아느냐? 이미 마인들이란 마인들을 포획해서 정보를 알아내는 중이다!”
“……그렇다면 곧 네놈의 목숨도 끝이란 것을…… 잘 알 텐데?”
“아니! 마뇌는 잘 알지. 성 안에 설치된 십이금천각의 진법과 마검을 든 광인들. 그리고 나의 무공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면 꽤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것쯤은 말이야! 그러니까 마교가! 마뇌가! 가만히 있는 것이다!”
금노산은 지하가 울릴 정도로 강하게 소리쳤다.
그것은 마인에게 말하는 것 외에도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말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 예로 이미 마인은 그의 기세에 눌려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감히 건방진 놈이 내 명령 없이 죽어버리다니!”
콰드드득!
금노산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마인의 사체를 내리쳤다.
산산조각 난 피와 살점이 벽 여기저기에 튀었다.
‘북해빙궁의 마인들, 마기자의 비동, 5마(魔)들과 천살대 무인들.’
전부 진백천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다만 그때를 정확히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금노산의 말에 따르면 조만간 그것들이 벌어질 일들이라 이거지?’
담담한 진백천과 달리 도홍경은 금노산의 광적인 모습에 질린 듯했다.
마인의 사체가 아예 곤죽이 되어 버리고 나서야 금노산은 숨을 씩씩 내쉬며 황금천으로 몸을 닦아냈다.
“쯧. 나의 용혼금제가 조금만 강했어도 이런 고생 따위 하지 않는 것인데 아쉽군. 그놈은 아직이더냐?”
‘그놈?’
마인을 칭하는 말이 아니었다.
금노산은 마인들이 갇힌 감옥을 지나 훨씬 더 지하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제법 커다란 공간에는 온몸이 쇠사슬에 묶인 거한이 보였다.
얼핏 금노산과 비슷해 보였지만 제법 오래 묶여 있었는지 뼈마디에는 근육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버티는 것이냐?”
겨우 숨만 붙어 있던 그자는 인기척이 들리자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거칠게 엉킨 수염과 머리카락 사이로 호랑이 같은 두 눈동자가 언뜻 드러났다.
‘……!’
그 얼굴을 본 진백천은 자기도 모르게 화들짝 놀랐다.
그자는 다름 아닌 진백천에게 호무살을 알려주었던 도광귀(賭狂鬼)였다.
남만으로 떠난다던 그가 왜 이곳에 있는지는 몰라도 지금의 모습은 십대악인(十大惡人) 중 하나라고 보기에는 너무 초라해 보였다.
“지금이라도 내게 십이용천공(十二龍天功)의 호랑이 부분을 알려준다면 살려주겠다.”
“X랄하지 말아라. 함정으로 나를 붙잡은 놈이 뭐 어쩌고 저째?”
거친 쇳소리 같은 목소리에는 외견과 달리 여전히 힘이 담겨있었다.
금노산을 노려보는 호안에는 점점 기세가 실렸다.
“함정이 아니라 네놈이 그토록 좋아하던 내기였지 않느냐?”
“내기는 내가 네놈들의 광인 20명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네놈이 내놓은 광인은 500여 명이었지.”
“어쨌거나 네놈은 패배했어. 그러니 호무살을 넘겨라. 이제 시간도 많이 흘렀으니 우리 십이지괴도 하나로 뭉쳐야 하지 않겠느냐?”
도광귀는 웃음을 참기 힘든지 몸을 거칠게 떨었다.
몸에 붙어 있던 쇠사슬이 흔들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었다.
“더러운 마교놈이 십이지괴라니.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어차피 네놈이 이곳에서 죽으면 호무살은 아무에게도 이어지지 못한다!”
“하하하하! 내 호무살은 이미 다른 이에게 이어졌다! 그것도 네놈 따위가 감히 손대지 못할 자에게 말이지!”
도광귀가 말하는 것이 진백천 본인임을 그는 잘 알았다.
그는 이미 이곳에서 죽을 것을 각오한 모습이었다.
금노산은 당장에라도 도광귀를 쳐죽일 듯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차마 내지르지는 못하고 애꿎은 벽을 내리쳤다.
쿠우웅-
“네놈의 호무살과 합쳐져야 내 금혼제법이 더 강한 놈들을 광인으로 만들 수 있다!”
도광귀는 그의 고함을 들으며 눈을 지긋이 감았다.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표시였다.
“……또 오지.”
금노산은 그 말을 남긴 채 지하 감옥을 빠져나갔다.
-후우. 도광귀라니. 그러고 보니 형님도 본 적 있는 자 아닙니까?
-맞아.
그러니 더더욱 그냥 두고 가기에는 마음에 걸렸다.
이내 마음을 정한 진백천이 감옥을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