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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93화 (293/346)

무림회귀백서 293화

99장 황금마전(黃金魔殿)(2)

진백천의 말에 장내는 순간 죽은 듯이 침묵이 찾아왔다.

금자 1만 냥을 아무렇지 않게 품속에서 꺼내 뿌릴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았다.

금노산도 진백천과 같은 자는 처음이었는지 호기심을 갖고 지켜봤다.

혹시나 가짜 전표 따위로 장난질을 하는가 싶었지만 그것을 확인한 관리에 따르면 그것도 아니었다.

“크흠! 제법 돈 좀 쓸 줄 아는 자가 나왔구나! 황금 쟁반을 치워라!”

광인들은 머리 하나와 전표들이 담긴 쟁반을 들고 사라졌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 아래로 천천히 내려왔다.

납작해진 무인과 달리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너의 이름은 뭐지?”

“유창.”

진백천은 미리 생각해두었던 가명을 댔다.

웅선의 호패 속에 섞여 있던 이름 중 하나였다.

“유창이라. 말이 짧지만 용서하지. 돈이야말로 힘이고 권력이니까! 적어도 돈이 넘쳐나는 동안에는 버릇없는 것도 자신감이 되어버리지!”

금노산의 말은 얼핏 일리가 있어 보였다.

처음의 과격한 모습과 달리 천천히 내려오며 진백천을 띄어주는 말을 했다.

하지만 곧 그것이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님은 알아차렸다.

목소리에는 은은한 내력이 담겨 있었고 십이금천각의 계단과 함께 공명하며 진백천의 뇌리로 파고들었다.

‘미혼술(迷魂術).’

단순히 정신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뇌를 깨끗이 비우듯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을 잘라내려 했다.

머릿속에 피라냐들이 끊임없이 기어들어 오는 불쾌한 기분이었다.

‘이런 식으로 광인을 만드는 거였군. 술법과 미혼술을 이용해서.’

하지만 이런 수도 진백천에게는 절대 통하지 않았다.

이미 상단전은 활짝 열렸고 완성된 지 오래였다.

더구나 금혈화린어(金血火鱗魚)에 의해 그조차도 모를 정도로 확장된 무의식의 세계는 아무리 놈들이 들어차도 바다에 피 한 방울 떨어드리는 격이었다.

더구나 그 바다에 화가 난 괴물이 살고 있다면 더더욱 더.

으르르릉-

진백천에게만 들리는 작은 용트림이 일어나며 미혼술은 단숨에 깨져나갔다.

태허무극진결(太墟無極進結)의 내력을 일으킬 것도 없이 상단전에 숨어 있는 천마신공의 마기에 의해서였다.

‘그렇다고 해도 감히 나를 광인으로 만들려 했으니 보답은 해줘야지.’

진백천은 단전에서부터 시작된 태허무극진결의 노도와 같은 내력이 전신을 휘감으며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금노산의 기묘한 내력으로 가득 찼던 십이금천각에 파사의 기운이 날카롭게 뻗어갔다.

검녹색을 지나 이제는 은은한 백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보며 금노산은 더더욱 환하게 웃었다.

“돈이 많을 뿐만 아니라 강자였다니! 과연 이 황금마전에 어울리는 자로군!”

그는 어차피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미혼술을 그만두었다.

“약속대로 자네와 뒤편의 돈도 없고 용기도 없는 버러지들을 살려주도록 하지! 다만 이곳으로 찾아온 노력이 있으니 화려한 연회로 보답하겠다. 다들 연회장으로 모셔라!”

“네. 금왕(金王)이시여!”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관리를 따라갔다.

진백천은 그중에 섞여 있는 도홍경과 중혁을 쳐다보며 전음을 날렸다.

-분명 그대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조심해.

-네. 형님.

적어도 술법에 관련된 것이라면 도홍경을 믿어도 좋았다.

“그렇다면 우리도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나 하지.”

금노산의 말은 제안이 아닌 명령이었다.

은근히 쳐다보는 시선에는 진백천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속내가 다분했다.

곧 광인을 따라간 곳은 십이금천각에서 조금 더 들어간 안채였다.

거대한 금빛의 탁상에는 화려한 음식이 가득했고 금노산은 마찬가지로 끝쪽에 가서 앉았다.

“마음 편히 들지. 나는 강자에게 관대하니까!”

말은 무척이나 편했지만 이 자리는 그렇지 않았다.

이곳도 술법의 영향을 받는 듯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기운이 끊임없이 밀려 들어왔다.

진백천이 자리에 앉자 금노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유창이라 그랬지? 무슨 일을 하길래 그 젊은 나이에 돈이 그렇게 많지?”

보통이었다면 무공에 대해 물었을 테지만 금노산은 아니었다.

황금에 대한 욕심.

끊임없이 자신의 것을 채우려는 욕망은 자연스레 진백천이 가진 돈의 출처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다.

진백천은 눈앞에 놓인 칼을 들어 조심스럽게 고기를 썰었다.

“부모에게 물려받았지.”

“부모라.”

사업을 해서 번 것도 아니고 단지 물려받은 금수저라는데 딱히 꼬치꼬치 캐물을 것도 없었다.

진백천이 부모님들은 돈만 물려주시고 돌아가신 지 오래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금노산은 그의 부모가 단순히 돈 많은 자만은 아니라고 오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진백천이 의도적으로 보이는 식사예절 탓이었다.

‘황궁 예절. 이것을 못 알아볼 리 없겠지. 더구나 유씨 성이라면 황가의 방계이니 아무리 돈에 미친 당신이라도 모를 리 없을 거야. 그렇지?’

진백천의 속마음에 대답하듯 그를 바라보는 금노산의 두 눈이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적당히 무공을 익히고 강호를 돌아다니다 이곳에 오게 되었지만…… 가히 특이한 곳이더군.”

“뭐가 특이하지? 세상의 온갖 황금이 모인 것 같아서? 욕심이 났나?”

아무렇지 않게 물었지만 이것은 꽤나 위험했다.

금노산의 커다란 눈동자에서 순간이지만 살의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만약 그렇다고 대답하는 순간 주변의 광인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그는 상대가 그 누구라도 자신의 것에 욕심을 내는 자는 절대 살려두지 않았다.

‘돈에 미친 노인네 같으니라고.’

진백천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도시에서도 그렇고 저자들이 마치 인형 같아서 말이지.”

그의 시선이 탁상 옆에 서 있는 남자아이에게 향했다.

무표정한 아이는 고기를 발라 주는 것이 평생의 목적인 양 작은 칼을 움직였다.

“크하하하! 광인들을 말하는 거군! 그것이라면 정확하게 봤다! 이 금왕의 옆에 서려면 희노애락의 감정 따위는 필요 없으니 전부 지워 버렸지. 오로지 내가 말하는 것에만 반응하고 어떤 명령이든 전부 듣는다. 괜한 생각을 해버리는 노예 따위와 비교도 안 되는 것들이지.”

대놓고 자신을 노예와 비교하지만 아이는 듣지도 못하는 것처럼 표정의 변화가 하나도 없었다.

“왜? 너도 광인이 갖고 싶으냐? 황금만 있다면 그 무엇도 살 수 있다! 무공을 모르는 광인은 금자 500냥 무공을 아는 광인은 금자 1,000냥에 팔도록 하지!”

“……너무 비싸군.”

단순히 비싸다는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엄청난 가격이었다.

“아직 광인의 위대함을 잘 모르는 모양이군. 잘 봐라.”

하지만 금노산은 진심인 듯 옆에 선 아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유창에게 광인의 위대함을 보여주려 함이니 당장 목을 베어 목을 바쳐라.”

“네. 금왕이시여.”

아이는 금노산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고기를 썰던 칼을 자신의 목으로 가져다 댔다.

칼날 위에 사는 무인이라도 보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단호한 움직임이었다.

진백천은 재빨리 손을 뻗어 아이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아이의 목을 베려는 시도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방해하는 진백천의 손을 강제로 할퀴고 깨물며 어떻게든 칼날을 목에 가져가려 했다.

“이거 놔! 놓으라고!”

얼핏 광기마저 보이는 모습에 진백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금노산은 발버둥 치는 아이를 흡족하게 지켜보다 뒤늦게서야 명령을 거뒀다.

“그만.”

“네. 금왕이시여.”

아이는 조금 전 자신의 목을 베려 했던 칼로 다시 고기를 묵묵히 썰었다.

‘세뇌라고 하기에는 뭔가 다르다. 단순히 술법이라고 하기에도 꺼림칙하고…… 도홍경이라면 뭔지 알 수 있으려나?’

“이 정도라면 내가 제시한 금액이 나쁘지 않겠지?”

“생각은 해보도록 하지.”

“이왕 생각해 보는 김에 황금마전을 위해 나와 함께 일해보는 건 어떤가? 섭섭지 않은 대접을 해주지.”

금노산은 마치 호방한 대인처럼 말했지만 그 좁아터진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

자신의 자그마한 금자 조각이라고 떼어내 갈까 봐 광인이 아니면 십이금천각에 들이지 않는 금노산이었다.

진백천의 돈을 모조리 갈취한 후에 토사구팽하거나 어떻게든 광인으로 만들려 할 게 분명했다.

“시간은 내일 아침까지면 충분하겠지? 그동안은 이 화려한 성에서 황홀한 하룻밤을 보내게.”

금노산은 통보와 같은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가 미처 빠져나가기 전에 진백천이 다시 그를 붙잡았다.

“연회로 간 이들 중에 내 일행을 부르려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지?”

“일행이 있었다고?”

금노산이 희미하게 웃으며 물었다.

왜 진즉에 말하지 않았냐는 질책의 시선이 가득했지만 진백천은 오히려 당당했다.

“왜? 일행을 불러오려면 또 돈을 내야 하나?”

그가 품속에서 꺼내 탁상 위에 올려놓은 것은 금원보였다.

황금에 미친 금노산은 자연스레 금덩이로 시선이 향했다.

“부족하면 더 꺼내지.”

곧 금원보가 10개가 넘어가자 금노산이 다시 예의 활짝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자네가 머무는 곳으로 일행을 보내도록 하지!”

그는 금원보를 쓸어담듯 품속에 밀어 넣으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유난히 쿵쾅거리는 발소리에는 미약한 분노가 담겨있었다.

속마음은 듣지 못했지만 진백천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잔악하게 죽일 생각으로 가득할 것이 분명했다.

이후로 그를 안내한 것은 광인들이었다.

‘말이 안내지 이건 감금이나 다름없는데?’

황금으로 덮인 길을 걸으며 도착한 곳은 외로이 전각 하나 놓인 곳이었다.

그 주변으로는 눈치도 보지 않는 듯 수십 명의 광인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런데 그 광인들이 허리춤에 멘 무기가 무척이나 눈에 익었다.

‘흐음. 마검(魔劍)인가……?’

그러고 보니 한 명의 광인만이 아니었다.

족히 20명에 가까운 광인들이 전부 마검을 찬 채 서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진백천의 종마검(從魔劒)급은 아니었지만 청성파 무인들이 가지고 있던 것과는 비슷했다.

‘만약 황금마전이 마검을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야.’

광인의 실력이 떨어진다 해도 마검을 쥐여준다면 그 간격을 좁힐 수 있었다.

또한 황금이 마르지 않는 황금마전이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마검을 쥔 광인들의 군대를 수도 없이 만들어낼지도 몰랐다.

‘그것이 지금 금노산이 벌이고 있는 일인 듯하고 말이지.’

“여기입니다.”

광인은 문을 열고 진백천을 안으로 안내했다.

그가 들어서자 바깥에서 문을 단단히 닫고 그 앞에 보초를 섰다.

누가 봐도 감금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진백천은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침상에 가서 털썩 누웠다.

지금 머릿속은 금노산과 광인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복잡했다.

‘내가 알던 것과는 역시 너무 틀어져 버렸어. 마검과 광인들이라니. 그것만큼 최악의 궁합이 어디 있을까.’

그가 이후의 일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문이 열리며 도홍경과 중혁이 들어섰다.

그런데 어쩐지 둘의 표정이 인형처럼 딱딱했다.

‘……설마?’

진백천이 흠칫 놀라며 쳐다보자 도홍경과 중혁이 참았던 숨을 파하- 하고 내뱉었다.

그제서야 표정이 풀리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뭐야 왜 그래?”

“……후우. 말도 마세요. 형님한테 오기 전에 금노산인지 금노괴인지 따로 찾아왔었다니까요.”

그리고 그는 진백천에게 줄 특별한 선물이니 뭐니 기괴한 소리를 내뱉으며 둘을 광인으로 만들려 했다.

눈치 빠른 도홍경이 호신부(護身符) 미리 중혁과 자신에게 붙여놓았기에 다행이었다.

“놈이 순순히 성공한 줄 알고 보내줘?”

“물론 아니죠.”

둘은 각각 서로의 허벅지를 송곳으로 쑤셔 넣어야 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자해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금노산은 흡족해하며 둘을 보냈다.

“고생했다.”

“뭐. 화살에도 수없이 박혔었는데 이제 이 정도야 별것도 아닙니다.”

“그나저나 그 연회인가 뭔가는 어땠냐?”

“아아. 말도 마세요. 연회는 무슨. 무간지옥(無間地獄)이나 다름없었다니까요.”

“무간지옥?”

그들이 끌려간 곳은 음식이 마련된 연회장이 아닌 썩은 물이 고인 지하 감옥이었다.

이어지는 도홍경의 말에 진백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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