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91화
98장 뒤따르는 자들
망망대해 바다.
당소예와 당천기는 진백천이 그랬던 것처럼 산동에서 배를 잡고 요녕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와의 차이점이라면 큰 배를 구하지 않고 다소 작은 배에 올라탔다는 것이었다.
“배는 작아야지. 너무 크면 쉽게 부서진다니까.”
당천기의 말을 듣고 따른 게 문제였다.
떠날 때까지만 해도 지극히 잠잠했던 바다는 그들이 떠나자마자 거칠게 출렁이며 바람이 불어댔다.
재수 없게도 용풍(龍風)이 사방에서 나타나며 배를 휘몰아친 것이다.
“20년 선원 생활에 이렇게 용풍이 많은 것은 처음이야!”
“다들 난간에서 멀어져! 떨어지면 죽는다아아!”
배의 선원들은 태풍 속에서 계속해서 소리치며 끈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당소예와 당천기는 서로를 필사적으로 움켜쥔 채 기둥을 붙들었다.
배는 마치 장난감처럼 파도가 칠 때마다 솟구쳤다 아래로 떨어졌다.
“당천기! 이게 다……! 당신 때문……!”
“……미, 미안하…… 오오오!”
당천기의 비명 같은 사과만이 태풍 속에서 허무하게 울려 퍼졌다.
* * *
용풍이 사그라든 것은 꼬박 이틀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들은 태풍에 휘말려 이리저리 떠돌아다닌 탓에 채 절반도 가지 못한 상태였다.
“……그나마 바람이 불지 않으니 살 것 같군. 후우.”
하지만 이런 당천기의 말도 곧 찾아오는 뱃멀미에 부정당했다.
“웨에에에엑! 독, 독이다! 독이 아니고서야!”
“모두 해독하라!”
멍청한 몇몇이 실제로 해독제를 입에 들이부었지만 먹은 것보다 더 많이 쏟아냈다.
당천기를 비롯해 당가의 무인들은 하나같이 샛노랗게 질린 얼굴이었다.
그나마 상태가 좋은 것은 당소예 뿐이었다.
그녀는 진백천과 비슷하게 선천적으로 멀미에 강한 체질이었다.
유일하게 챙겨온 음식을 먹으며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요녕까지는 아직 멀었어요?”
“지금 이 속도라면 아직 이틀은 더 가야 합니다. 용풍에 밀려서 배가 나아가질 못했습니다. 옆의 저 배들도 전부 저희처럼 바람에 밀린 배들입니다.”
선원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그녀가 탄 것과 비슷한 크기의 배들이 보였다.
안력에 집중하자 그곳에서도 상황은 전부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난간을 부여잡고 속에 있는 것들을 게워내는 중이었다.
제법 귀공자 같은 남자부터 새하얀 얼굴의 남자까지 전부 마찬가지였다.
“……어휴. 물고기들만 살판나겠네.”
배가 마침내 요녕에 도착한 것은 선원이 말한 이틀 후가 아니었다.
꼬박 3일은 더 가고 나서야 겨우 항구에 도착했다.
재수 없게도 한 번 더 용풍을 마주치며 죽을 뻔한 경험을 하고 나서였다.
“……당 소저. 아무래도 한동안은 객잔에서 쉬어야겠소.”
“그래요. 우선 몸부터 추스르죠.”
다른 걸 떠나서 온몸을 움직일 때마다 우스스 떨어져 내리는 소금기는 정말 참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제일 가까운 객잔으로 향했다.
그곳은 이미 도착한 이들로 인해 북적였다.
그중에는 당소예가 바다에서 봤던 귀공자 같은 자부터 새하얀 얼굴의 남자도 함께였다.
“어서 오십시오!”
“큰 방 2개에 작은 방 1개. 그리고 씻을 물하고 식사도.”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점소이는 이런 주문에 익숙한 듯 그들을 방으로 안내했다.
당소예는 따로 구한 작은 방에 들어가서 몸부터 씻었다.
품속에 있던 청서생은 어느 틈이나 나와서 벌러덩 누워 있었다.
-배고파!
당소예는 홀쭉한 배를 내미는 모습에 품속에서 철전 하나를 꺼내서 건넸다.
그러자 청서생이 허겁지겁 그것을 갉아먹었다.
“맛있어?”
-맛있긴! 철 말고 은자를 달라고!
청서생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당소예는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방에서 나오자 당천기를 비롯해 무인들은 자리를 잡고 배를 채우는 중이었다.
“당 소저! 여기오!”
그들은 언제 속을 비워냈냐는 듯이 음식을 잔뜩 시켜놓고 허겁지겁 먹어댔다.
당소예도 그들 옆에 앉았다.
그녀가 앉자 당천기는 주변을 둘러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제법 따라잡은 것 맞소?”
“그런 것 같아요. 어차피 이제 위로는 얼마 남지도 않았잖아요.”
“그나저나 회, 아니, 그 친구는 대체 어디로 가는지 짐작이 가시오?”
“글쎄요.”
당소예는 잠시 생각하다 얼핏 북해빙궁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지나가듯 말했었지만 진백천이 그곳에 관심을 두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개방의 태상장로님과 적의단도 북해빙궁으로 간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목적지는 빙궁이란 말씀이시오?”
“아마도요. 분명 이유 없이 나오실 리는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당천기는 곧 끝이 보인다는 생각에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크나큰 오산이었다.
요녕을 지날 때만 해도 지긋지긋하던 모기와 벌레들이 길림에 들어서자 아주 극성이었다.
마차도 끌고 다니지 못하는 진흙 길에 다리가 푹푹 빠지며 억지로 나아갔다.
오죽하면 품속에서 고개만 쏙 내미는 청서생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통통아. 어느 쪽이야?”
청서생은 냄새를 킁킁 맡더니 한쪽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그곳으로 얼마 가지 않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중에 관군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여기저기 비산한 돌과 모래가 눈에 들어왔다.
“이쪽으로는 지나갈 수 없다.”
“산사태라도 난 모양인데요?”
관군은 조금 더 지나서 가면 마을이 있으니 쉴 거면 그곳으로 가라 전했다.
그리고 관군의 말대로 마을이 존재했다.
최근 들어 복원되는 중인지 지어진 건물보다 새롭게 지어지는 것들이 더 많았다.
다행히 하루 머물 객잔은 존재했다.
그곳으로 걸어가던 도중에 당소예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멈춰섰다.
“어? 홍 내관님!”
“당 소저?”
동창의 무인들과 떠날 준비를 하던 홍내관은 그녀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백천이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그런데 갑자기 당소예가 이곳에 나타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더구나 옆에 있는 자들은 당가의 무인들이었다.
“표기장군을 따라가는 중이십니까?”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는 홍 내관의 말에 당소예의 눈이 번뜩였다.
“회주님 보셨어요? 어디로 가셨어요?”
그녀의 반응에 홍 내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진백천이 왼팔과 다름없는 그녀에게까지 말을 하지 않고 몰래 나왔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일주일 정도 되셨으니 서두른다면 따라잡으실 수 있을겁니다아.”
홍 내관의 말에 당소예가 크게 반색하며 포권을 취했다.
“역시 홍내관뿐이에요! 나중에 또 보면 사례할게요!”
그녀는 당천기에게 그 사실을 말하며 마을을 빠르게 벗어났다.
곧이어 그런 이들을 쫓듯 악살신괴와 살왕도 똑같이 움직였다.
* * *
호북 정도회(正道會).
진백천이 폐관에 든 후에도 그곳은 무척이나 분주했다.
그가 혼자서 내리던 결정을 장로들을 비롯해 대주들이 모여 의견을 모아야 했다.
물론 대부분은 진백천의 오른팔과 다름없는 황대원의 의견 쪽으로 몰려갔다.
그런데도 전보다 시간이 몇 배나 걸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후우. 오늘 결정해야 하는 것은 또 뭐가 있지?”
황대원의 물음에 춘식이 세 개의 서신을 가져왔다.
각각 마인과 최근 들려오는 소문, 그리고 황실상단에서 보낸 것이었다.
그는 먼저 익숙한 마인에 대한 것부터 펼쳤다.
“마검의 회수가 상당히 이뤄졌지만, 여전히 마인들이 여기저기 날뛰는 중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무력대가 직접 파견을 나가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큰 인원수가 아니라면 저희 복건추룡대가 가능합니다.”
대주 전등신이 대답하자 황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주변 문파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하고 넘어가죠.”
다음 서신은 소문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올라왔다는 것을 보면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정체불명의 소문이 입을 통해 번지고 있음. 그 주된 내용은 강호의 대도둑 마기자가 자신이 평생을 다해 모은 보물을 보관한 비동이 존재한다는 것. 그곳에는 곤륜의 선단법 뿐만 아니라 각 문파의 절기도 존재한다고 함.]
단순히 소문이었다면 이렇게 신경을 쓰지도 않았을 터였다.
소문을 퍼뜨린 자들은 마기자의 비동의 위치가 담긴 지도를 곳곳에 뿌렸다.
오래된 고서적, 파헤쳐진 땅.
마치 우연처럼 발견되게 만들었지만 그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대부분은 잘 알았다.
그런데도 이것을 단순히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지도 아래에 적힌 단 한 문장 때문이었다.
[마기자의 비동을 여는 자가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 된다!]
이 말은 수많은 이들의 웅심을 건드렸고, 욕심을 부추겼다.
벌써부터 지도의 위치를 찾겠다고 강호를 주유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중에는 명문정파도 포함되었다.
“흐음. 아무리 거짓이라고 말해도 본문의 무공이 담겨 있다고 하면 참기 힘들겠지. 회주 대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약왕당주의 물음에 황대원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백천이라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비동의 위치를 찾아가겠다 말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진백천이 아니었다.
무턱대고 움직이려 하다가는 자칫 이것이 진짜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흐음. 회주님이 계셨으면 좋았으련만.’
왠지 오늘따라 더 진백천이 그리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폐관에 들어가기 전에 마기자의 비동에 대해 황대원에게 말을 남겨놨다.
그곳은 마기자의 거대한 무덤이자 함정일 뿐 무공서와 영약 대신에 강시들과 독이 묻은 칼날만이 존재했다.
혹시라도 자신의 폐관이 끝나기 전에 그런 소문이 돈다면 필시 의도된 것이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우선은 더 지켜보겠습니다. 아직 그곳의 위치가 발견된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크흠. 회주 대리의 생각이 그렇다면야.”
몇몇이 불만족스러운 듯 입매를 삐죽거렸지만 감히 반발은 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황실상단에서 보낸 것입니다.”
[길림의 금맥 발견. 정도회 분타 설립 요청.]
서신에는 금맥의 매장량과 그로 인해 나오는 이익금의 1할을 정도회에 공유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보낸 이였다.
“황실상단의 상후(商后) 고유빈 공주님이 직접 자필로 보내신 겁니다.”
그렇다는 것은 진백천이 아닌 이상 쉽게 거절하기 힘들었다.
“서신 내용만으로 보면 정도회에게 기회를 주는 것과 다름없으니 가능한 받아들이려 합니다.”
모두의 시선이 황실상단과 대척 중인 당천아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뭔가 깊게 고민하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기회 맞아요. 그곳에 분타가 세워진다면 운룡상단의 활동범위도 동북쪽으로 뻗어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녀마저 동의하자 이것은 최우선적으로 처리되어 보내졌다.
남은 일을 정리하고 황대원이 회주전을 빠져나왔을 때는 저녁노을로 하늘이 붉었다.
문득 휴가를 떠난 당소예가 생각났지만 얼마 전 산동에 도착했다는 서신 이후론 연락이 없었다.
“……바쁜가.”
괜한 쓸쓸함이 옆구리에 스며들었지만 지금도 수련동에서 열심히 수련 중일 진백천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회주님께서는 더 힘드시겠지.”
안타깝게도 그 시간.
흑룡강에 도착한 진백천은 거나하게 한잔하는 중이었다.
붉게 물든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