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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87화 (287/346)

무림회귀백서 287화

96장 궁귀와 사냥꾼들(5)

진백천은 눈을 뜨자마자 시야에 들어오는 흉악한 두 얼굴에 미간을 찌푸렸다.

익숙한 산적 같은 얼굴은 도홍경이 분명했고 나머지 곰보 얼굴은 모르던 자였다.

하지만 그가 손에 쥐고 있는 약초는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냄새가 지독했다.

“형니이임!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도홍경은 그가 눈을 뜨자 펄쩍 뛰며 진백천을 껴안았다.

제법 고생을 했는지 그의 몸은 여기저기 피투성이였다.

그것을 보고 진백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도홍경은 그의 시선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형님이 깨어나신 거에 비하면 이건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니긴. 상처가 한두 개가 아닌데?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중혁은?”

도홍경은 깨어나자마자 자기들부터 걱정하는 모습에 울먹이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가 마인과 겨루고 정신을 잃고 나서부터였다.

“그러니까. 나 깨우려고 안고 길림까지 왔다 이거지?”

“네. 맞습니다.”

“후우. 짜식들 평소답지 않게 왜 이렇게 무리하냐.”

진백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이리 풀며 상태를 점검했다.

얼굴과 옷에 묻은 피만 아니면 몸은 최상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중혁에게 가려다 멈춰 서서 장수객을 쳐다봤다.

“장수객이라고 했나? 실력 있는 의원이라고?”

“네. 맞습니다.”

그는 자신이 몇십 년이나 나이가 많았지만 진백천을 반로환동한 고수로 알았기에 말을 낮추지 않았다.

그 증거로 저 산적 같은 도홍경이 형님이 부르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잠깐 다녀올 테니까 동생 좀 치료해 줘. 값은 다녀오면 치를 테니.”

그 말을 남긴 진백천의 신형이 희끗하며 사라졌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저 멀리 점이 되어 날아가는 중이었다.

“허허…… 엄청나군.”

장수객의 놀람에 도홍경은 곧 긴장이 풀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약의 진통 효과가 사라지며 통증이 몰려오던 참이었다.

* * *

말 그대로 상공으로 날아오른 진백천은 스스로에게 깜짝 놀랐다.

그다지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몸의 반응이 전과 달랐다.

단지 주먹을 쥔 것만으로도 태허무극진결의 내력이 휘몰아쳤다.

‘……죽었다 살아난 대가일까?’

진백천은 심상세계의 백발노인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마을이 전부 한눈에 담겼다.

그뿐만 아니라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선명히 보였다.

단순히 안력에 집중해서 주변을 살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시야였다.

그리고 곧 쓰레기 같은 놈들에게 휩싸여 있는 중혁을 발견했다.

“뭐야 저 새끼들은?”

진백천은 마음을 먹은 순간 다시 한번 몸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백면섬보(百面閃步)가 펼쳐졌다.

그 대상은 중혁의 뒤를 노리는 사냥꾼들이었다.

콰아아아앙!

그가 단지 땅에 내려앉는 것만으로도 그 충격으로 주변 사냥꾼들의 몸이 휘청이며 떠올랐다.

진백천은 그대로 놈들을 빗자루로 쓸듯 쳐냈다.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놈들의 뼈가 으깨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단 하나도 다시 일어나거나 숨을 쉬는 자는 없었다.

“…….”

장내에는 조용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전부 진백천 등장, 그 하나 때문이었다.

그의 몸에서 자연스레 풍겨 나오는 내력은 보이지 않는 안개처럼 모두를 휘감았다.

꿀꺽-

“……누, 누구…….”

“닥쳐.”

가까스로 입을 벌리던 흑갈은 머리가 터져 나가며 쓰러졌다.

사냥꾼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기세등등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초라한 최후였다.

하지만 당황한 것은 막상 놈을 죽인 진백천도 마찬가지였다.

‘어허. 나도 모르게 호무살이 뻗어 나왔다.’

원래대로라면 이 정도의 호무살을 사용하면 전신에 탈력감이 가득 차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상단전이 완성되면서 조금의 피로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백천은 아무렇지 않게 걸어서 중혁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의 몸을 살폈다.

“쯧쯧. 뭐가 이렇게 만신창이냐. 적당히 위험하면 피하라니까.”

“……회주님.”

진백천은 도홍경과 마찬가지로 몸 여기저기 난 화살 자국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겨우 표정과 그의 심기가 변했을 뿐이지만 그 대가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유형화된 날카로운 살기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사냥꾼들은 몸이 굳은 채 몸을 덜덜 떨었다.

내력이 약한 자는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었다.

“네놈들이냐?”

진백천의 싸늘한 목소리가 장내에 퍼졌다.

“내 새끼 이렇게 만든 것들이?”

사냥꾼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방금 죽은 흑갈을 보면 어떤 말을 하든지 그들을 살려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억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중혁의 몸에 난 화살 자국들을 전부 그들이 만든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진백천은 활을 든 놈부터 찾았다.

‘어떤 새낀지 몰라도 똑같이 화살 자국을 박아주마.’

그리고 곧 활을 들고 있는 궁귀를 발견했다.

눈이 마주치자 궁귀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하며 뒤로 물러설 뻔했다.

그만큼 눈빛에서 전해지는 기운은 사람 같지가 않았다.

“……크흠. 깨어나셨습니까?”

“나를 아나?”

“길에서 발견하고 의원에게 데려온 것이 저입니다.”

“내 새끼한테 화살 자국 낸 것도 너고?”

궁귀는 서늘한 그의 말투에 애써 고개를 저었다.

“그건 사소한 오해입니다.”

“오해는 개뿔. 이놈들도 다 네가 데리고 다니는 놈들이지?”

진백천은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단순한 걸음걸이뿐인데도 궁귀는 쏟아지는 기세에 짓눌려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지금 이 상태에서 괜히 몸을 빼려 했다가는 더더욱 시인하는 꼴이었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오해를 설명하려 했지만 진백천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그의 속마음으로 대충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정도는 파악한 지 오래였다.

“됐고. 깔끔하게 한 방으로 끝내자.”

“한 방이라면……?”

“뭐긴 뭐야. 한 방이 한 방이지.”

곧 궁귀의 시야가 어두워지며 무언가로 가득 채워졌다.

어느 틈엔가 바로 앞까지 뻗어온 진백천의 주먹이었다.

그 앞에서 궁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눈을 꾸욱 감는 것뿐이었다.

“커헉!”

다행히 손속에 사정을 두었는지 궁귀의 머리가 터지거나 뜯겨나가는 일은 없었다.

대신 한쪽 눈이 시푸르딩딩하게 변했을 뿐이었다.

“쯧. 중혁아 이 정도면 괜찮겠냐? 아니면 확 팔다리도 분질러줘?”

“……그 정도면 괜찮습니다.”

중혁의 대답에 진백천이 손을 탁탁 털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귀찮은 듯이 손을 휘저었다.

“쓰레기놈들아. 뭘 잘했다고 그렇게 서서 구경하고 있어? 당장 꺼져.”

사냥꾼들은 진백천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마을을 빠져나갔다.

얼마나 급했으면 흑갈의 사체를 그대로 남겨둔 채였다.

“후우. 할 말이 많을 것 같으니까 우선 그 장수객인지 뭔지 하는 의원 집으로 갈까?”

“……그러시죠. 모시겠습니다.”

장수객의 집으로 돌아가자 그는 도홍경의 치료를 이제 막 끝마친 상태였다.

그래 봤자 더러워진 상처를 소독하고 다시 금창약을 발라준 것이 전부였다.

진백천은 그곳으로 가자마자 피곤한 듯 한숨을 내쉬며 자연스레 자리에 앉았다.

“배도 고픈데 뭐라도 먹으면서 이야기할까?”

“마침 잡아놓은 멧돼지가 있습니다.”

진백천은 고기란 말에 크게 반색하며 뒷마당에 직접 불까지 지폈다.

그래 봤자 손가락 튕겨 삼매진화를 일으키는 것에 불과했지만 직접 눈앞에서 보는 궁귀와 장수객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잠깐 불똥을 튄 것도 아니고 돼지의 껍질을 구워버릴 정도로 맹렬한 화염이었다.

‘흐음. 내력에 담긴 화기가 무척이나 강해졌어. 금혈화린어의 영향이려나?’

진백천은 몸 상태를 제대로 점검해보고 싶었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우선이었다.

그가 깨어났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 공격을 주고받은 만큼 앙금이 남아 있었다.

“술도 있나?”

“약주는 있습니다.”

장수객이 자신의 밤일을 위해 담가놓은 정력주였지만 진백천은 오히려 더 좋다며 가지고 오라고 했다.

중혁과 도홍경은 한참 기력이 떨어진 상태였으니까 분명 도움이 될 터였다.

술병을 따는 장수객이 아쉬워하는 티가 역력했다.

“값은 치를 테니까 걱정 마.”

“……알겠습니다.”

일주일 만에 정신을 차린 진백천은 마치 걸신이 들린 사람처럼 먹어댔다.

오죽하면 탈 것 같은 맹렬한 불길에도 끊임없이 목구멍에 밀어 넣으니 탈 새가 없었다.

커다란 돼지가 머리와 몸통 일부만 남아서야 진백천의 식기행은 끝이 났다.

“후우. 이제야 조금 살 것 같네.”

입가심으로 장수객의 정력주를 마시자 느끼함이 싹 사라졌다.

진백천은 그를 황망히 쳐다보는 둘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자. 다들 이야기해 봐.”

첫 시작은 궁귀부터였다.

중혁을 마인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사냥꾼들에 대한 것들도 포함이었다.

“흐음. 그러니까 사냥꾼들과 같은 마인이라 생각했다 이거지?”

“맞습니다.”

궁귀의 말을 들어보면 진백천이 돌려보냈던 사냥꾼들이 길림에서 꽤나 유명한 놈들 같았다.

작은 마을들 정도는 놈들의 손에 불타 없어진 게 한두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관군이 오지 않는 것은 인신매매로 벌어들이는 돈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제대로 된 소탕이 되지 않았다.

“놈들의 근거지가 있는 계곡도 크게 한몫을 합니다. 워낙 미로 같은 곳이라 안으로 숨어들면 관군들이라고 해도 잡아내기 힘듭니다.”

더구나 요즘같이 마교를 상대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니 놈들의 기가 더 살았다.

“그건 확실히 문제네. 그렇다고 해도 단순히 무공만으로 사람을 판단한 건 실수야. 중혁이 펼치는 건 마공이 아니니까.”

“……그건 제 잘못입니다. 저 어린 소형제가 사냥꾼들과 싸울 때 그 의기를 충분히 느꼈습니다.”

궁귀는 자신이 미안하다며 중혁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만약 원한다면 자신의 몸에도 동일하게 화살을 박아넣어도 된다고 했지만 중혁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의 억울함과 울분은 진백천이 정신을 차리고 어깨를 두드린 순간 이미 전부 사라졌다.

“그러면 남은 건 그 사냥꾼 놈들이지? 그놈들은 내가 처리하고 떠날 테니까 너무 걱정 마.”

진백천은 품속에 손을 넣어 전표 뭉치를 꺼내 장수객에게 건넸다.

그가 약속했던 치료 값부터 방금 먹은 고기와 술값이었다.

그 액수에 장수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억! 이, 이렇게나 큰돈을?”

“내가 값은 치른다고 말했잖아. 대신 하루만 이 집 좀 써도 되지?”

“……물론입니다! 마음껏 쓰시다 박살 내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진백천이 건넨 전표는 길림성 번화가에 번득한 장원을 구해도 될 정도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사냥꾼들인지 뭔지 또 오면 말해.”

“네. 알겠습니다.”

진백천은 몸을 휘청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도홍경과 중혁도 쓰러지듯 바닥에 누웠다.

일주일간에 강행 탓인지 금세 곯아떨어졌다.

“짜식들 꽤나 피곤했나 보네.”

하지만 진백천은 잠들지 않았다.

대신 가부좌를 틀고 몸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흐음!’

전과 달리 묵직한 태허무극진결의 진기가 혈도를 따라 기경팔맥을 맹렬하게 휘저었다.

그 경로의 끝에는 단전만큼이나 커진 상단전도 포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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