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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86화 (286/346)

무림회귀백서 286화

96장 궁귀와 사냥꾼들(4)

인신매매 조직, 통칭 사냥꾼이라 칭하는 이들과 궁귀는 처음부터 사이가 좋지 못했다.

처음 궁귀가 마을에 돌아왔을 때부터 사냥꾼들은 온갖 수를 동원해 그를 회유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돈 욕심도 없었고 그저 여생을 이곳에서 편안히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틀어진 이들은 궁귀를 암살하려 들었지만, 매번 실패할 뿐이었다.

오히려 이제는 길림의 숲속에서 궁귀에게 사냥을 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기회가 오다니. 크큭.”

마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에 찾아와본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궁귀는 어떤 어린놈과 싸우며 기력을 소모 중이었다.

덕분에 평소 굳게 닫혀 있던 목책은 부서지고 온전히 안으로 향하는 길이 드러난 것이다.

사냥꾼들은 이때다 싶어 모두를 끌고 왔다.

궁귀는 그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훑어보며 말했다.

“오늘은 특별히 보내줄 테니 그냥 가라.”

“뭐? 특별히 보내줘?”

얼굴에 검은 전갈 문신이 있는 남자가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내 품속에서 낫을 꺼내며 멀찍이 떨어져 있던 노인을 향해 휘둘렀다.

촤르르륵-

손잡이에 사슬이 연결되어 있는 낫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허공을 가르며 노인의 목을 베어냈다.

“X랄! 오늘 이곳의 전부는 죽는다! 물론 네놈을 포함해서! 이건 그동안 우리에게 반항하고 대든 본보기일 테니 죽어도 원망 마라!”

남자가 피에 젖은 사슬 낫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뒤쪽에 서 있던 사냥꾼들이 일제히 마을 안으로 뛰쳐 들었다.

“허억! 도, 도망가!”

“안 돼! 맞서 싸워야 한다고!”

몇몇은 무기를 들고 용감히 맞섰지만, 무공을 익히 놈들과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궁귀의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달려들던 사냥꾼의 머리를 관통했다.

동시에 3명이 고꾸라졌지만 놈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숲에서 눈먼 화살에 당하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 번에 3명만 죽으니 오히려 기뻐했다.

“오늘 네놈은 기필코 죽는다! 아니, 궁귀 네놈 때문에라도 마을 사람 전부를 죽이고 그 시체 위에서 직접 분해해 주마!”

궁귀의 대답은 3발의 화살이었다.

하지만 검은 문신의 남자가 사슬 낫을 휘두르며 화산을 전부 쳐냈다.

너무 가까운 탓에 화살의 방향이 그대로 전부 드러난 탓이었다.

“흑갈. 이렇게까지 하겠다는 거지?”

“크큭. 애초에 이 싸움은 네놈이 시작한 거다! 다른 마을이 하는 것처럼 식량과 사람을 바쳤으면 이럴 일도 없었지!”

마을 사람들이 사냥꾼들에 의해 죽어갔다.

순간 마음이 약해졌지만 궁귀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사냥꾼들이 바라는 것은 그들 마음대로 할 노예였다.

그들의 뜻을 따랐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똑같았다.

오히려 치욕스러운 죽음만 있을 뿐.

“네놈들은 어떻게든 죽여주도록 하지.”

안타깝지만 궁귀는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라도 살아남아야 마을 사람들의 복수를 할 수 있었으니까.

“궁귀! 움직이지 마라! 한 발자국이라도 더 움직이면 이 꼬마는 죽는다!”

그 순간 흑갈은 마을에서 가장 어린아이를 붙들고 소리쳤다.

평소 궁귀를 보면 할아버지라 부르며 따르던 아이였다.

도망치다 넘어졌는지 온몸이 흙투성이였다.

“이 꼬마를 죽이고 싶다면 당장 떠나라!”

흑갈은 궁귀가 멈칫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비릿하게 웃으며 사냥꾼들에게 눈짓했다.

그들은 무기를 빼 들고 궁귀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궁귀가 꼬마의 눈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질 때 누군가 그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피에 젖은 중혁이었다.

“후우.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군.”

중혁은 악귀 같은 모습으로 화살촉을 부러뜨리며 몸에서 뽑아냈다.

영단과 전신을 강하게 맴도는 구촉비전의 기운으로 상처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를 발견한 흑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궁귀와 싸우던 놈이군. 죽은 줄 알았더니 용케 살아 있었다니.”

하지만 그가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사냥꾼 중 하나가 그를 끝내기 위해 다가갔다.

하지만 오히려 목을 붙잡힌 채 꺾인 것은 사냥꾼이었다.

우드득-

“회주님이 멀쩡하셨다면……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끝이었다고…….”

피처럼 일렁이는 두 눈은 한눈에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흑갈은 다른 사냥꾼들에게 눈짓하며 다시 궁귀에게 집중했다.

몸은 휘청이는 중혁은 그의 안중에도 없었다.

곧 뒤편에서 피륙이 으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궁귀 네놈도 저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어서 활을 버려라.”

궁귀가 뻣뻣하게 서 있자 흑갈은 아이의 귀라도 하나 벨 생각으로 사슬 낫을 내리그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뭔가에 걸린 것처럼 사슬 낫은 움직이지 않았다.

“뭐냐?”

사슬 낫의 시퍼런 날을 붙잡은 것은 검게 물든 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피에 젖은 검은 손이었다.

화들짝 놀라 사슬 낫을 휘둘렀지만 붙잡힌 그의 독문 무기는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나 잡고 협박이나 하는 지저분한 새끼.”

중혁은 그대로 손을 뻗어 흑갈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난 네놈같이 비겁한 놈들이 제일 싫다.”

우드드득-

“끄아악!”

관절이 으깨지며 한쪽 팔이 축하고 늘어졌다.

놈은 중혁을 밀쳐내며 멀찍이 떨어졌다.

그제서야 중혁을 죽이려던 사냥꾼들이 전부 온몸이 붙잡혀 뒤틀려 죽은 것을 발견했다.

중혁은 겁에 질려 바닥에 쓰러진 꼬마를 일으켜 사냥꾼들이 보이지 않은 쪽으로 보냈다.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이 꼬마를 감싸 안고 도망쳤다.

궁귀는 그 모습을 보며 복잡한 표정이었다.

“왜 도왔지?”

“이런 쓰레기들을 없애는데 이유가 있나?”

“그건 그렇지. 그렇다면 잠시 휴전인가?”

중혁은 놈들에게 달려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곧 앞선 사냥꾼들이 피를 흩뿌리며 튕겨 나갔다.

궁귀도 표정을 굳히며 화살을 시위에 올렸다.

“화살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삼재살(三災殺) 환(換).

시위를 벗어난 화살이 잘게 떨리더니 여러 개로 늘어났다.

실제로 늘어난 것은 아니고 내력으로 만들어낸 착시현상이었다.

하늘을 뒤덮은 화살의 세례에 사냥꾼들이 당황하는 사이 중혁이 그들을 덮쳤다.

“커헉! 어린놈의 몸이 쇳덩어리다!”

“철 그물을 던져!”

사방에서 고리가 달린 철 그물이 중혁을 향해 던져졌다.

재빨리 벗어나려 했지만 사냥꾼들의 수는 보통이 아니었다.

같이 그물에 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몸을 껴안고 바닥을 굴렀다.

사냥꾼을 떼어내고 벗어나려 했을 때는 이미 여러 겹의 철 그물이 그를 덮은 상태였다.

“어림없다!”

중혁은 혈수인의 장기를 쏟아내며 철 그물을 갈기갈기 찢어냈다.

하지만 처음과 달리 실린 내력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단약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지쳐서 쓰러졌을 상황이었다.

“하아하아.”

거친 숨을 내뱉는 와중에 저 멀리서 불꽃 하나가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다름 아닌 도홍경이 진백천을 찾았다고 보내는 신호였다.

* * *

중혁이 시선을 끌어주는 사이 도홍경은 재빨리 마을을 돌아봤다.

화살이 꽂혔던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새어 나왔지만 지혈할 틈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혁은 자신의 한 몸 바쳐서 시선을 끌고 있을 테니.

‘서둘러야 돼.’

그리고 다행히 넓지 않은 마을이라 외곽의 집에서 나오는 궁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중혁이 소란을 일으키는 정문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형님은 저 안에 있을 확률이 높겠지.’

예상은 정확했다.

지붕에 올라 구멍을 뚫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진백천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것은 같았지만 얼굴과 전신이 피로 젖어 있었다.

‘이 개 같은 놈들! 정신이 없는 사람을 고문까지 하다니!’

도홍경은 분노로 두 손이 덜덜 떨렸다.

진백천의 주변에는 궁귀의 일행으로 보이는 놈이 그릇에 뭔가를 넣고 열심히 빻는 중이었다.

도홍경은 조심스레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까이 다시 보는 진백천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잔악한 놈들!’

더구나 뭔가를 빻는 놈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콧노래까지 부르는 중이었다.

“……각성제를 사용하면 금방 일어나겠지. 후후.”

도홍경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놈의 마혈을 짚었다.

생각 같아선 똑같이 피투성이로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그것보다는 진백천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더구나 정문 쪽에서 강한 충격음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중이었다.

“……크윽. 형님. 죄송합니다.”

도홍경은 진백천을 안아 들고 재빨리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중혁과 약속한 대로 신호를 보냈다.

그의 부적은 맹렬히 타들어 가며 하늘 위로 솟구쳤다.

“제발 중혁이 봐야 할 텐데.”

그곳을 벗어나려던 그때.

문이 열리며 혈도를 짚었던 장수객이 비틀거리며 나왔다.

“잠, 잠깐……!”

아직 혈도가 덜 풀렸는지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도홍경은 화들짝 놀라며 그의 가슴팍을 발로 후려쳤다.

“커헉!”

바닥을 여러 바퀴나 구른 장수객은 넝마 같은 꼴이 되어서야 혈도가 풀렸다.

그리고 진백천과 함께 자리를 벗어나려는 도홍경에게 소리쳤다.

“지금 당장 깨어나게 할 수 있다!”

“……뭐?”

“등에 업힌 그자 말이다! 무슨 사유로 그렇게 된 건지는 몰라도 내가 깨울 수 있다고!”

도홍경은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침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제서야 그의 곰보 얼굴이 눈에 들어오며 머릿속에 새겨넣었던 이름이 떠올랐다.

“……장수객?”

“으음? 내 이름을 어떻게 아냐?”

어딘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도홍경은 자리에 멈춰섰다.

“여기 마을이 혹시 교하인가?”

“맞다.”

“근데 왜 형님은 이렇게 피투성이지?”

“궁귀가 데려올 때만 해도 거의 반쯤 죽어가는 상황이었으니까! 하나 지금은 멀쩡하다.”

도홍경은 그 말에 깜짝 놀라며 한쪽 손으로 진백천을 진맥했다.

놀랍게도 그의 말대로 텅텅 비었던 혈도는 다시 바다처럼 맹렬히 기운이 흘렀다.

진맥하려던 도홍경의 손이 오히려 튕겨 나갈 지경이었다.

“궁귀라는 자는 왜 우리를 공격한 거지?”

“공격하다니? 궁귀가?”

장수객은 잠시 생각하더니 손바닥을 내리치며 말했다.

“아까 말하던 마인들이 당신들이었군! 아무래도 서로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오해?”

도홍경은 재차 장수객을 발로 차버리려다 정문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멈춰섰다.

“그 오해 때문에 우리는 죽다 살아났거든? 당장 형님을 깨워!”

장수객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준비한 약을 꺼내 들었다.

방금까지 열심히 빻고 있던 약초였다.

“뇌의 각성을 촉진하는 약초다. 이미 몸은 정상이니 언제고 깨어나겠지만 이 냄새를 맡으면 바로 일어날 거다.”

장수객은 조심스럽게 진백천의 코밑에 약초를 들이댔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처음에는 코가 씰룩대더니 이윽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마침내 진백천의 눈이 번쩍 떠졌다.

무려 일주일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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