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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284화 (284/346)

무림회귀백서 284화

96장 궁귀와 사냥꾼들(2)

금혈화린어의 습성은 간단했다.

끊임없이 땅을 파고들며 용암을 흐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용암 따위 존재하지 않았고 금혈화린어는 단지 무의식 깊숙이 파고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나운 성격이 어디 가지 않겠지.’

금혈화린어는 그 포악한 생김새답게 주변에 다가오는 존재는 일단 물어뜯고 보았다.

얼핏 땅이 찢기며 드러난 놈의 모습은 현실에서보다 몇십 배는 더 커다랬다.

그 정도의 크기라면 검은 용의 목에 이빨을 박아넣을 정도는 충분했다.

‘문제는 거기에 어떻게 처박느냐는 거겠지.’

땅이 뭉개지고 금혈화린어가 보이는 지하까지 구멍을 뚫는 것은 백발노인과 검은 용의 싸움으로도 충분했다.

그 이후에 백발노인이 놈을 구멍으로 유인하면 진백천과 동자승이 함께 공격해서 그 아래로 처박는다.

물론 단순히 그 정도로는 깊숙한 지하까지 검은 용을 밀어 넣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금혈화린어를 끌어올리면 되는 거잖아?’

거기서 독꽈리 나무의 역할이 중요했다.

독파리들을 이용해 금혈화린어를 꼬여내 검은 용의 궁둥이를 올려다보게 하면 되었다.

분명 그 토실토실한 궁둥이를 깨물지 않고는 못 배길 터였다.

“어때요? 제 계획이?”

-몇몇 난관이 보이긴 하겠지만 시도조차 안 해볼 정도는 아닌 것 같군.

“동자승 너는?”

-죽음이야말로……!

독꽈리 나무야 고깃덩이로 독파리들을 유인하면 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실행뿐이었다.

검은 용은 진백천이 이들과 모여서 속닥거리는 것에 의문을 갖는 모양이었지만 딱히 행동은 없었다.

어차피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것은 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나 먼저 시작하지.

“네. 가능한 소란스럽게 부탁드려요.”

우우우웅-

백발의 노인은 검강을 흩뿌리는 자신의 검으로 대신 대답을 했다.

검은 용 또한 마기를 일으키며 맞부딪쳤다.

심상세계는 또 한 번 거칠게 떨리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좋았어. 이 상태로라면 조금 더 빨리 갈라지겠어.’

진백천은 무의식중으로 커다란 고깃덩이를 만들어냈다.

독파리들을 꾀어낼 것이었다.

그의 생각대로 선홍빛의 고깃덩이가 나타나자 독파리들이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래. 다들 모여들어라. 밥 먹을 시간이야.”

진백천은 독파리들을 유인하며 갈라지는 틈 중 가장 깊숙한 곳 옆에 섰다.

얼핏 붉은 것이 가장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동자승아. 여기 틈 좀 더 넓혀봐.”

진백천의 명령에 동자승이 합장을 하며 붉은 강기를 쏘아냈다.

드드드득-

틈새가 벌어지자 진백천은 그곳으로 고깃덩이를 떨어뜨렸다.

독파리 수만 마리가 고기를 향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백발노인의 공격도 이어졌다.

검은 용의 머리 위로 올라서며 단숨에 검을 내리그었다.

콰아아아앙!

서로 다른 내력이 충돌하며 거친 충격파가 생겨났다.

백발노인의 몸이 찢기며 상처가 생겨났지만 검은 용도 멀쩡하지는 못했다.

정확히 틈새에 처박히며 몸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몸이 커서 그런지 반쯤 걸치는 정도로 끝났다.

“동자승아! 공격해!”

진백천은 몸을 일으키려는 검은 용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지금까지 그나마 모아놨던 내력이 독고구검을 따라 강기의 파도가 되어 검은 용을 덮쳤다.

거대한 몸에 이쑤시개 하나를 꼽는 격이었지만 그렇다고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뒤이어 동자승의 붉은 강기가 뒤이어 몸통을 후려쳤다.

-크으으으, 나를 바닥에 처박아 두겠다는 거냐?

진백천은 검은 용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백발의 노인과 싸우느라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직까지도 구덩이를 빠져나오려고 필사적이지 않았다.

“어르신!”

진백천의 외침에 백발의 노인의 검이 다시 한번 번쩍이며 허공을 갈랐다.

검은 용이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두 개의 손 중 하나가 잘려나가며 휘청였다.

하지만 노인의 힘은 거기까지였다.

파리해진 안색으로 몸을 휘청였다.

반면에 잘려나간 검은 용의 손은 검은 연기처럼 일렁이며 다시금 생겨났다.

‘저 한 손만 잘라내면 돼!’

동자승은 계속해서 검은 용이 일어서지 못하게 공격을 퍼부어댔다.

남은 것은 진백천뿐이었다.

힐끔 아래를 보자 틈새는 점점 닫히고 있었다.

독파리들이 금혈화린어를 끌어냈는지 어쨌는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붉은 것이 점점 선명해지는 것만은 확실했다.

‘내가 잘라내야 한다.’

가지고 있던 내력은 전부 짜낸 지 오래였다.

이곳이 현실이었다면 역혈비결이라도 사용해 힘을 끌어내겠지만 이곳은 심상세계였다.

진백천은 정신을 집중하며 거대한 칼날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 무엇보다 크고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내력을 사용 못 한다고 해도 정신력이 없는 것은 아니야. 오히려 이곳이라면 더더욱 내 상단전의 힘을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지!’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결국 이곳도 상단전과 이어진 곳.

주변이 잘게 떨리기 시작하며 멈췄던 붕괴가 이어졌다.

대신 진백천의 머리 위로 1장 크기의 칼날이 만들어졌다.

드드득-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진백천은 느끼지 못했지만 그의 뇌는 과부화로 코피가 흘러내는 중이었다.

“떨어져라!”

만들어진 칼날은 그대로 작두처럼 검은 용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크아아아아악!

검은 용은 포효를 내지르며 발버둥 쳤지만 버티고 있던 마지막 손이 잘려나가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놈의 몸이 틈새로 빠져들었다.

그와 동시에 검은 용의 등 뒤가 노랗게 물들었다.

진백천의 예상대로 금혈화린어는 독파리들을 쫓아 머리를 치켜들고 검은 용을 발견한 것이다.

콰드드득!

금혈화린어는 검은 용의 목을 물어뜯으며 바닥 깊은 곳으로 끌어 내려가려 했다.

곧 둘의 힘겨루기가 시작되며 사방이 크게 흔들렸다.

-지금이 기횔세! 어서 검은 용을 없애야 해!

백발노인이 재촉했지만 진백천은 손끝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이미 그의 뇌는 과부화로 인해 곤죽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저 틈새로 공격을 퍼붓는 백발노인과 동자승이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젠장. 왜 이렇게 졸립지?’

진백천은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일어나려다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정신 차리게! 조금만 더 버티면 돼!

백발노인의 목소리가 귓가를 계속해서 울렸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의 역혈비결을 사용했던 때보다 몸이 더 엉망이었다.

“……뒷일을…….”

부탁한다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진백천의 의식이 끊기자 그의 심상세계인 이곳도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백발노인과 동자승, 검은 용, 금혈화린어의 싸움은 끊이지 않았다.

-이대로면 우리는 모두 사라진다! 그래도 좋은가?!

-크르르륵 천마의 신체는 망가지지 않는다!

-신체가 망가지지 않는다 해도 정신은 아니겠지! 금강동인처럼 말이야!

검은 용 또한 그 사실을 알기에 더욱더 거칠게 포효했다.

이대로 자신이 버티면 진백천은 물론 천마의 부활도 또다시 멀어졌다.

검은 용, 천마신공의 마기는 선택을 해야 했다.

또다시 주도권은 백발의 노인, 태허무극진결에 넘겨주든지, 아니면 이대로 무너지는 심상세계에서 사그라들지.

-어서 선택하라!

고민은 길지 않았다.

금혈화린어가 끊임없이 그의 목을 물어뜯었고 마기는 계속해서 사그라들었다.

또한 연두부처럼 흐물거리는 진백천의 뇌도 문제였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더는…… 더는!

천마신공의 마기는 스스로 몸이 검은 연기로 부서지며 심상세계 안 곳곳으로 휘날렸다.

그 폭발에 금혈화린어는 깜짝 놀라며 다시 바닥으로 처박혔고 태허무극진결은 다시금 주도권을 찾으며 심상세계를 정리해나갔다.

우우우우우우웅-

진백천의 몸은 내면에서부터 새롭게 만들어지며 망가진 것들을 모조리 치유했다.

그에게 있어 세 번째 환골탈태이었다.

이번에는 전의 두 번과 달리 그의 무의식 세계가 크게 확장되며 완성된 상단전이 다시 한번 활짝 열렸다.

스며 들어갔던 기운들이 빠져나오며 그의 몸을 다시 한번 가득 채웠다.

드드득-

푸석했던 머리와 피부가 생기를 찾으며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겉보기뿐이었고, 3갑자였던 태허무극진결의 내력이 5갑자에 다다르며 다른 기운들을 모조리 아울렀다.

그런 변화를 지켜본 것은 단순히 진백천의 내력들뿐만이 아니었다.

“……너…… 대체 뭘 주워온 거냐?”

한 손에 침을 든 채 동상이라도 된 것처럼 서 있는 것은 교하의 돌팔이 의원 장수객이었다.

그 옆에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궁귀 또한 딱딱하게 굳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이건…… 인간이긴 한 거냐?”

장수객의 질문에 궁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궁귀가 반 시체 상태의 진백천을 데려온 것은 겨우 반시진 전이었다.

반 시체라고 표현한 것은 궁귀가 아니라 그를 살핀 장수객이었다.

희끗한 머리만큼이나 깐깐해 보이는 얼굴에는 불만이 잔뜩 어렸다.

“흐음. 뇌가 급격히 죽어가고 있다. 특이하게도…… 과하게 활성화된 상태지만 회광반조(回光返照)인 모양이군.”

“회광반조라고? 겉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데?”

궁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백천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검게 죽은 피였다.

피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곧 그의 옷은 붉게 물들었다.

“쯧. 네놈 때문에 내 집만 더러워졌군. 그러게 왜 시체를 들고 오냐?”

“시체라고 하기에는 마인이 너무 공손히 챙기던데.”

“마인이라고?”

장수객이 다시 한번 진백천의 손목을 잡아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정도의 무공을 익힌 자야. 그것도 엄청난 고수였군. 젊은 얼굴은 분명 반로환동이나 그런 게 분명할 정도로.”

죽어가는 것이 뇌만 아니었다면 장수객은 어떻게든 그를 살리려 노력했을 터였다.

“무공에 최적화된 근골과 단단한 피부는 분명 환골탈태를 한 몸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릴 때 벌모세수를 여러 차례 한 대단한 집의 무인이거나! 한마디로 이런 곳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을 존재가 아니란 말이지.”

“그렇게 강한 무인이라면서 왜 이런 모습이지?”

“그거야 내가 어떻게 알아? 천마라도 만나서 싸웠나 보지!”

장수객은 고개를 흔들며 바닥을 닦을 천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곧 땅이 잘게 떨리자 깜짝 놀라며 물러났다.

드드드득-

“지진인가?”

“길림에 지진이라니 그럴 리가!”

장수객이 집 밖으로 나가보려 했지만 궁귀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의 시선은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진백천으로 향했다.

“…….”

“왜 그러나? 시체 처음 봐?”

장수객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진백천의 몸이 허공에 두둥실 떠 있었다.

그의 미간 앞에는 화려한 백색의 연꽃이 잎을 활짝 열고 피어나는 중이었다.

“허어어억! 오, 오기조원(五气朝元)!”

그는 비명처럼 소리를 내지르다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혹시라도 자신의 목소리가 방해될지도 몰랐다.

영롱한 무지갯빛이 진백천을 휘광처럼 감싸 안았다.

망가졌던 뇌가 회복되며 코피가 멈췄다.

한참을 그렇게 신선처럼 허공에 떠 있던 진백천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제 어떻게 하냐?”

장수객이 휘둥그레 뜬 눈으로 궁귀에게 물었다.

궁귀는 미간을 찌푸렸다.

“의원인 네놈이 그걸 물으면 어쩌자는 거냐.”

“크흠. 나라고 평생 이런 광경을 볼 일이나 있었겠느냐!”

장수객은 괜히 큰소리를 내며 침통을 들고 진백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레 진맥을 해보자 죽어가던 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아난 후였다.

“……지금이라면 이자를 깨울 수 있을 것 같다.”

“깨워봐.”

장수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른침을 집어삼켰다.

어쩐지 손이 덜덜 떨리고 긴장이 되었다.

50년 인생에 침을 잡고 이렇게 떨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럼…… 해보마.”

그의 침 끝이 점점 진백천을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그전에 장수객의 집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서는 게 더 빨랐다.

“……궁귀님! 큰일입니다! 침입자입니다!”

“침입자?”

“네!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소란을 피우며 궁귀님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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