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283화
96장 궁귀와 사냥꾼들(1)
도홍경은 자신의 몸을 꿰뚫은 화살에 신음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애초에 중혁을 노렸던 화살이었기에 그의 급소는 피해갔다.
각기 허벅지와 팔뚝, 옆구리에 3발이었다.
하지만 당장 목숨에 위험이 가지 않는다는 뜻이지 괜찮다는 것은 아니었다.
“……중혁아. 도망가!”
도홍경은 늪지 위에 넘어지며 소리쳤다.
중혁은 그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며 도홍경에게 다가오려 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어서 형님 챙기고 도망가라고!”
도홍경은 품속에서 부적을 꺼내 허공에 흩날렸다.
부적은 곧 스스로 불이 붙으며 사방의 나무에 달라붙었다.
주변이 흐려지며 그들의 기척이 희미해졌다.
-나는 여기 숨어 있을 테니까. 안전한 곳까지 형님을 모셔놓고 다시 와!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더 시간 끌면 저놈한테 전부 잡힌다.
중혁은 이를 악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재빨리 지게를 등에 메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나갔다.
쒜에에에엑-
마치 누군가 피리를 부는 것 같은 파공성이 들리며 화살이 날아들었다.
중혁은 본능적으로 팔로 목을 감쌌다.
그곳만 아니라면 다른 부위는 얼마든지 꿰뚫려도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3발의 화살은 정확히 목을 가린 팔뚝에 박혔다.
푸욱!
구촉비전을 끌어올렸지만 화살은 너무나도 쉽게 살을 파고들었다.
도홍경의 미혼진을 뚫고 도망치는 중혁을 정확히 노린 것이다.
‘……고수다!’
구촉비전으로 붉게 물든 눈이 어둠 사이에서 짐승처럼 일렁였다.
그는 계속해서 날아드는 화살을 손으로 막아내며 나무 사이를 뛰어갔다.
잠깐 사이에 허벅지에도 화살이 박혔지만 겨우 그 정도로 중혁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크흑!”
그때 그의 시야로 가파른 계곡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바위가 많은 저곳이라면 활을 쏴대는 놈도 쉽게 쫓아오기 힘들 거란 생각에서였다.
‘우선은 회주님부터 숨겨야 한다!’
스스로가 미끼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야만 했다.
그는 곧 움푹 파인 공간을 발견하고 진백천을 그곳에 내려놓았다.
대신 지게 위에는 지푸라기와 옷으로 덮어 위장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중혁은 계속해서 계곡 아래로 뛰어갔다.
그의 예상대로 활을 쏘는 자는 그를 쫓아왔다.
하지만 곧 일정 구역이 지나자 화살이 더는 날아오지 않았다.
“흐음.”
중혁은 나무 뒤에 숨어서 몸을 꿰뚫은 화살들을 전부 빼냈다.
구촉비전 덕분에 상처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는 쉴 틈도 없이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아직 놈이 이 근처에 있을 수도 있어. 우선은 형님부터 챙기고 회주님에게 돌아가자.”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를 쫓던 궁귀는 여전히 경계에 서서 그를 찾는 중이었다.
중혁은 본능적으로 그를 피해 반대로 돌아갔다.
도홍경은 여전히 늪지대에 파묻힌 채로 그 자리에 있었다.
다행이라면 처음 공격당했던 그 상태였다.
“으으. 중혁이냐? 형님은?”
“안전한 곳에 모셔두었습니다.”
중혁은 그를 조심스럽게 늪에서 빼냈다.
그 상태에서도 나름 임시처치를 끝냈는지 구멍 뚫린 상처는 전부 지혈되고 금창약이 발라진 상태였다.
그를 등에 업자 도홍경이 비릿한 피 냄새에 깜짝 놀랐다.
“……중혁아! 너 몸이!”
도홍경과 달리 10발 가까이 화살이 박혔던 몸이었다.
급소를 피해갔다지만 흘린 피만으로도 이미 눈앞이 어질거렸다.
“아직…… 괜찮습니다.”
중혁은 그를 업고 서둘렀다.
이대로 기절했다가는 언제 깨어날지 몰랐다.
그러면 계곡에 숨겨놓은 진백천도 위험했다.
돌아다니는 산짐승이라도 만나면 큰일이었다.
“이쪽입니다.”
중혁은 혀끝을 작게 깨물며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진백천을 숨겨놓은 자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곧 텅 빈 자리를 발견하고 무너지듯 쓰러졌다.
“……허억!”
대신 그 자리에 있는 것은 한 장의 깃털이었다.
* * *
길림 교하(蛟河).
그곳은 궁귀의 고향이었다.
그는 전쟁터에서 활 하나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은퇴한 군인으로 들뜬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고향은 풍비박산이 난 지 오래였다.
인근에 인신매매꾼들의 조직이 자리 잡은 탓이었다.
자칭 사냥꾼이라는 놈들이 마을을 약탈하거나 심지어 납치해가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졌다.
“씹어먹을 놈들. 가만두지 않는다.”
그때부터 궁귀는 사냥꾼 놈들이 보일 때마다 족족 사냥했다.
자신의 마을이 다시금 예전처럼 평화로워지기를 바랐다.
다행히 그의 활 실력은 강호에서도 내놓으라 할 정도 뛰어났고 길림의 복잡한 지형에도 익숙했다.
사냥꾼들은 그의 그림자 한번 보지 못하고 몸이 꿰뚫리며 죽어갔다.
불과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백여 명의 사냥꾼이 죽어갔다.
“쓰레기 같은 놈들 죽여도 죽여도 계속 나타나는군.”
궁귀는 평소처럼 마을 주변을 순찰 중이었다.
분노에 찬 그의 시선이 매섭게 주변을 훑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숲속의 어둠뿐이 보이지 않겠지만 그에게는 아니었다.
바람에 섞인 이질적인 냄새와 소리만으로도 그는 외부인을 파악했다.
스스스슥-
바로 지금처럼.
그는 시위에 화살 세 개를 올려놓고 강하게 잡아당겼다.
삼재살(三災殺)이라는 불리는 그의 궁술이었다.
‘보인다.’
적은 두 명이었다.
한 명이 길을 안내하고 그 뒤를 누군가 따라왔다.
느껴지는 기운만으로는 사냥꾼이 아니었다.
하지만 뒤따라오는 두 번째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가 않았다.
‘어디선가 느껴본 기운이다.’
그리고 이내 그 기운의 경험을 깨달은 궁귀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활시위를 놓았다.
‘마인의 기운!’
유난히 기운이 민감한 궁귀는 똑똑히 기억했다.
자신의 동료들을 찢어 죽이던 마인을.
그렇기에 중혁의 몸에서 은은히 풍기는 구촉비전의 기운을 말 그대로 귀신처럼 알아봤다.
세 발의 화살은 각각 허공을 가르며 정확히 중혁을 노리고 뻗어갔다.
쐐애애애액-
화살이 빗겨나갈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한번 쏘아진 이상 무조건 맞춘다.’
하지만 의외의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앞장서던 이의 돌발행동 탓이었다.
그는 자신과 같이 유난히 눈이 뛰어난 자였는지 뒤돌아서며 마인을 밀쳐냈다.
화살은 마인 대신 그의 몸을 꿰뚫었다.
“멍청한 짓을 하는군.”
넘어진 마인은 다시 일어나더니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얼핏 그의 등 뒤로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자는 점혈이라도 당한 듯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미 누군가를 납치한 건가? 지독한 놈들. 내게 도망칠 수 없다.”
궁귀는 쓰러진 자를 내버려 두고 마인이라 생각하는 중혁의 뒤를 쫓았다.
활시위가 한 번씩 당겨질 때마다 화살이 거친 파공성을 내며 중혁을 노렸다.
놀랍게도 화살은 하나하나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나무 사이를 스치며 날아갔다.
화살은 각기 다른 각도에서 정확히 중혁의 목을 파고들었다.
“잡았다!”
하지만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놈은 놀랍게도 맨손으로 목을 감싸며 화살을 막았다.
돌아선 중혁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졌다.
“……어린아이?”
그 어려 보이는 얼굴에 궁귀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외견에 속지 않았다.
이미 저 움직임은 단순히 어린아이라 생각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뛰어났다.
핏발 선 두 눈과 검게 물든 피부는 자신의 동료를 찢어 죽이던 마인이 정확했다.
“이 숲은 나의 공간이다. 벗어날 수 없다.”
화살은 쉬지 않고 쏟아졌다.
그렇지만 중혁도 절대 만만치 않았다.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바깥쪽으로 쉬지 않고 도망쳤다.
궁귀는 마을의 경계에 멈춰 서서 다시 한번 판단을 내려야 했다.
여기서 놈을 쫓아 확실히 끝을 낼지 아니면 다시 마을로 돌아가야 할지를 말이다.
“흐음. 놈은 이미 한계야. 도망쳤다 해도 곧 과다출혈로 쓰러질 거다.”
이런 숲속이라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게 분명했다.
피 냄새에 끌린 각종 독물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아쉽지만 이쯤 하기로 하고 돌아섰을 때 궁귀는 허공에 맴도는 피 냄새를 맡았다.
중혁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그의 후각은 남들보다 몇 배나 뛰어났다.
그가 잠시 이곳에 서 있으며 흘렸던 핏방울의 냄새마저도 맡을 정도였다.
“……흐음?”
그가 냄새의 근원지에 찾아가자 마주친 것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진백천이었다.
궁귀는 진백천을 보고 흠칫 놀랐다.
두 번의 환골탈태를 겪은 그는 겉으로만 봐도 절대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중혁은 미처 몰랐겠지만 그가 진백천을 밀어 넣은 곳은 바로 길림의 독전갈들이 사는 굴의 입구였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미 온몸이 뜯겨야 정상이지만 독전갈들은 감히 그의 몸 근처로 다가오지 못했다.
“……특이하다. 특이해.”
궁귀는 진백천의 몸을 짚어보고 나서야 그가 정상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미력하게나마 내력이 있다.”
그것도 난생 처음 보는 지극히 순수하고 맑은 기운이었다.
“……그 간악한 두 놈이 납치하려는 이유가 있겠지. 우선은 마을로 데려간다.”
궁귀는 조심스럽게 진백천을 등에 업고 마을로 향했다.
그의 마을에는 돌팔이 같지만 꽤나 실력이 뛰어난 의원이 한 명 있었다.
“장수객이라면 상태를 확실히 진단할 수 있겠지.”
곧 진백천을 업은 그의 신형이 희끗해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그의 화살에 사용되는 깃털뿐이었다.
* * *
“흐음. 며칠이나 지났으려나.”
-4일 정도군.
“그거밖에 안 됐어요? 적어도 일주일은 된 거 같은데.”
심상세계에서는 잠을 자지 않으니 그 시간의 개념이 많이 헷갈렸다.
하지만 백발의 노인은 그럴 때마다 정확히 일러주었다.
가끔 보면 밖의 상황도 어느 정도 보는 듯한데 말해주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저놈은 이제 잠잠하네요?”
진백천이 검 끝으로 가리킨 것은 멀찍이서 노려보는 검은 용이었다.
놈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듯이 광기 어린 눈으로 진백천을 쳐다봤다.
그의 도발 이후 백발노인과 한참을 싸우다 이제야 얌전해졌다.
-지금으로는 답이 없다는 것을 자신도 안 거지.
“그건 그렇고 제 생각은 어때요?”
진백천은 백발의 노인이 물러서자마자 그에게 자신이 새롭게 떠올린 계획에 대해 말했다.
다름 아닌 기저에 깔려 있는 금혈화린어를 끄집어내 함께 검은 용을 공격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을 들은 백발의 노인은 주름은 얼굴을 더 주름지게 만들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 건가? 금혈화린어는 이곳의 네 기운들보다 훨씬 오래 이곳에 머물렀어. 자네는 모르겠지만 무의식이 지금처럼 단단해지고 강해지는데 금혈화린어의 역할이 제법 컸겠지.
금혈화린어의 습성은 가장 밑바닥을 파고드는 것.
그의 무의식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고 넓어진 것에는 이러한 도움이 존재했다.
-또한 그만큼 시간이 지나면서 자의식으로 가지고 강해졌을 거야.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을걸세.
“제 말을 듣지 않을 거다, 이 말이죠?”
-당연하지 않은가? 계속해서 무의식을 파고들뿐 우리에게 관심조차 없을 거야.
하지만 진백천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죠.”
이미 한 차례 부대끼며 싸워봤던 금혈화린어였다.
억지로 빠져나오게 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검은 용을 공격하게 만드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이어지는 진백천의 말에 백발노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게 가능하겠는가?
“가능하죠. 전부 힘을 합치면 충분히요.”
진백천의 뒤편으로 동자승이 다가왔다.
이제는 동자승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어엿한 성인의 모습이었다.